보통 당나라는 안록산의 난이 평정된 다음에 할거한 번진들 때문에기울었다고 한다. 당왕조의 덕종과 헌종은 번진을 줄이려는 정책을 써서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이러한 평가는 당나라의 패망을 왕조사적 측면에서 보기 때문에 나오는것이다. 당왕조는 초기에 통일을 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문제도를완성하여 공식과 원칙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모든 제도를 시행하려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과 원칙은 사회변화와 지역적 차이에 부합하지못했다. 그리하여 지역 실정에 맞도록 번진이 만들어졌고, 세금제도도양세제로 바뀐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현대주의자들의역사적 방식을 충분히 분명하게 설명한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방식을정리하자면, 우선 철학자가 길을 열고역사가가 그 뒤를 따르며, 그 다음 순서에따라 기록 분석이 따라온다는 식이다.우리는 지금 어떤 한 가지 해석법과맞서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의이 해석법과 맞섬으로써 실상은불가지론과 우주 내재론, 그리고진화론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이유 때문에, 이 새로운 해석법을신봉하고 사용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해석에 포함되어 있는 오류들을받아들임으로써 가톨릭 신앙의 반대편에서는 것이 된다.
복음서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앞의 세복음서와 마지막의 <요한의 복음서> 간에 특히 큰 차이가있다. 그러나 네 복음서는 연대기의 원리를 충실히 따르고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복음서들에서 나타나고 있는대부분의 사건들은 35년에서 40년 정도를 헤아리는예수의 생애 중 단지 몇 주일 만에 일어난 것들이다.이렇듯 예수의 생애를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보면, 기자들이 복음서 기록의 목표를 자전적이고역사적인 면에만 두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루가의복음서>의 서문(루가 복음서 1:1-4)이나, <요한의복음서>의 거의 마지막 부분(요한복음서 20:30-31)에서그 점이 분명해진다. ‘교리‘에 근거한 믿음을 갖게 하는것이 전반적인 사건들을 다루는 것만큼, 또는 그보다 훨씬 더중요한 문제라고 밝히고 있기때문이다.
성서 앞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역사는<열왕기 하>의 마지막에서 잠시 일단락된다.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포로로 끌고 갔던바빌론 왕이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을감옥에서 나오게 하여, 자신의 식탁에초대하는 순간이다 (열왕기 하 25:27-30).그러나 역사의 기록 작업이 재개되면서, 다른역사서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왜냐하면 결국, "지혜란 야훼께서 주시는 것, 그의 입에서떨어지는 말로 지식과 슬기를 깨치기 (잠언 2:6)" 때문이다.결국 야훼와 율법에 대한 신앙과 복종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현명한 이해, 곧 지혜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세가그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그 형제들에게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현명한 이해를 구하며, 지혜를 근본으로 하는 삶을추구하도록 권고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신명기30: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