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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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생각하면 늘 약간의 부끄러움(?)이 함께한다. 이유는 단 하나인데, 아직 <상실의 시대>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편견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게 하루키 소설에 대한 편견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딧불이>를 읽고 나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하루키 소설의 아류들, 혹은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보이는 어떤 포즈에 대한 편견이었다.   

하루키의 <반딧불이>는 정말 좋았다. 특히 <상실의 시대>의 모티프가 되었다던 표제작이 정말 좋았다.   

"나는 그런 기분을 몇 번인가 그녀에게 얘기하려고 했다. 그녀라면 내 생각을 정확하게 알아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얘기할 수 없었다. 그녀가 처음 내게 말했듯이, 정확한 말을 찾으려고 하면 그것은 언제나 내 손이 닿지 않는 어둠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청춘의 정의인 것처럼 읽었다. '반딧불이'는 바로 이 어둠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 잡히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어찌할 바 모르는 슬픔,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불확실한 것들. 그런 기분을 간신히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병 속에 갇혀 있는, 너무도 약하고 엷은 반딧불이의 빛.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둠이 너무나 깊어서 잘 볼 수 없었던 작은 빛.  

그 시간을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모든 불확실한 것들을 언어화할 수 있을 때, 찬찬히 내게 닥친 모든 슬픔이, 어떤 사건이 머릿속에서 정리될 때, 그때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읽는 내내 1Q84가 떠올랐던 '춤추는 난쟁이'는 정말 무서웠다;; 이런 문장.  

"너의 승리야. (중략) 그러나 이걸로 끝난 건 아냐. 넌 몇 번이고 이길 수가 있어. 그러나 지는 건 단 한 번이다. 네가 한 번 지면 모든 것은 끝난다. 그리고 넌 언젠가 반드시 진다. 그걸로 끝이야. 알겠어? 나는 그걸 계속 기다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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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을 위하여
홍윤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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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의자가 없어지고 나서 이정록의 시 <의자>를 이해했던 적이 있다.
이사를 하는 날이었는데, 어디 한군데 앉질 못하고 종일 서 있어보니까 의자가 정말 간절해졌다. 좀 앉고 싶다, 는 생각을 하는데 퍼뜩 이정록의 <의자> 생각이 났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시간이 지나다보면 아, 그렇구나, 하고 어떤 시구를 내 몸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온다. 머리도 마음도 아니고, 그냥 몸이다. 
 

돌아갈 내 '방'이 없어지고 나서 홍윤숙 시인의 시를 읽었다.
이 시집을 읽고 나면 유난히 집에 대한 이미지가 오래 남는다. 돌아갈 집. "마음이 텅 비어 쓸쓸한 사람을 위하여 이 세상에 집 한 채 짓고 싶다"던 표제작의 이미지가 오래 남아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갈피를 접어놓았던 시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으면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면서
늘 무슨 일인가 하고 있다
주고 잃는 것만큼
어디선가 그만큼씩 채워지고 있는
빌수록 가득 차는 지상의 나날
이제 돌아갈 집도 멀지 않으니
슬퍼하지 마라 곧 밤이 온다

"청춘의 또다른 말 방랑 ; 다시는 없을 그 푸르던 날들을 아득히 돌아본다"는 작가의 말이나, 이미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들을 가만 읽고 있으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이 마음이 뭘까,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나 말을 고르고 골라봐도 잘 모르겠다. 그냥, 속상하다. 나이들어서 약해진 내 가족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평생 내 옆에 있어줄 것 같은 엄마가 제 입으로 "엄마 많이 늙었지"라고 말하는 것 같달까.

돌아갈 '방'이 아닌, 영영 돌아갈 집. 곧 밤이 올 거고,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는 위의 시를 내 몸으로 이해하게 될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사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이 나에게 가장 좋은 시절이며, 곧 좋았던 시절이 되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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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지음, 박태희 옮김 / 눈빛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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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런 장면에서 멈춰 섰다.

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한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

햇볕이 잘 드는 큰 교실에서 다양한 매체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서로의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시간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였고, 점차 해가 저물어 실내는 어두워졌다. 하지만 프레드 마틴은 불을 켜지 못하게 했다. 그 세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작품들, 사람들, 공간, 목소리의 어조, 서로의 관계...... 모든 것. 그것은 계시적이었다.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음악의 음색, 목소리의 어조, 감정의 느낌, 시의 가락, 떨림의 장단, 동작의 선.

 
천천히 나는 자연이란 비평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가 자연 속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빛, 공간, 질감 그리고 공기의 울림과 관련이 있고, 자연이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는 놀라운 발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행운이란 순간적으로 바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빛이 반짝거리는 웅덩이에 둥둥 떠다니는 나뭇잎이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마침내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사물들 간의 위계질서도 점점 희미해져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내용'은 그 모습과 기능 안에 녹아 있었다.

 

어떤, 잘 써진 글은 그 자체로 이미 음악인데. 
감정의 느낌. 목소리의 어조. 떨림의 장단.
그 고유한 리듬들.  

이 책이, 내가 의문시했던 것들에 손을 들어주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를 사로잡는 이미지, 톤, 리듬에 좀더 집중해야겠다는, 그 떨림에 진짜가 있을 거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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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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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이 책은 정말 발을 퉁퉁 붓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광화문에서 다 읽고 서너 시간 걸어다녔다.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내일이 또 올 거라는 생각에 우울했고 그 내일이 바로 월요일이라는 사실에 참담했고 텅 비어 있는 도심이 무서워서 걷고 또 걸었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나면 나와, 내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내가 전화 걸면, 있는 그곳에서 내 전화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한강은 정말 징그럽게도 무시무시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지금도 정희와 인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인주도, 삼촌도, 인주의 엄마도 이제는 세상에 없다는 생각.
정희가 혼자라는 생각. 남아 있는 정희의 고통을 나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나는 종종 그런 공포와 마주한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은데,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조금 누그러졌던 그 공포가 한강의 소설을 읽고 나면 뚜렷하게 되살아난다. "통각들이 생생히 되살아"나듯이.

그래서 나는 밖에서 엄마를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헤어질 때마다 늘 그때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버스를 타고 가는 엄마,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는 엄마의 뒤꼭지가 내가 보는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우리는 제대로 작별하지 못할 거라는 예감.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꿨어. 꿈에 보니 난 이미 죽어 있더구나.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 햇볕을 받으면서 겅중겅중 개울가를 뛰어갔지. 시냇물을 들여다봤더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만큼 맑은데, 돌들이 보였어. 눈동자처럼 말갛게 씻긴...... 동그란 조약돌들이었어. 그중에서 파란 빛이 도는 돌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지.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걸.

 ......그게 무서워서, 꿈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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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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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가장 좋았던 한때'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친구는 '가장 좋았던' 하면 바로 떠오르는 나이인 스무 살, 스물한 살을 이야기했고 나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나이로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좋고,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 좋을 것이다, 라고 나는 막연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이런 나이에 나는 나를 믿지 못해서 언제나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매사 지금 내가 그 사람이었더라면, 하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 네 명의 인물이 살아내고 있는 바로 그 나이이다.  

정윤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해 매일매일 걷고 또 걷는다. 마치 이 도시의 길을 몸에 새기기라도 하겠다는 듯.  

나는 이 책을 쉬지 않고 걸었던 여행길에서 다시 읽었다. 처음 가보는 도시였고,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 물었을 때 이 도시라고 대답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그 여행에서 나는 태생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난생처음 생각해보았다. 나고 자란 곳, 엄마가 있는 곳, 같은 것. 그제야 윤이 어째서 도시를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었는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이야. (......) 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궁금해"(107쪽) 

나도 궁금하다. "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다는 보장이 아니라, 모두가 다 견디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므로, 함께 견디고 있을 누군가에게 "내.가.그.쪽.으.로.갈.게" 하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삶은 그것대로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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