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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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너무나 유명하고 자주 인용되는 소설이다. 오히려 그래서 이 책을 읽지 않았다. 빅브라더라는 존재, 끊없는 감시체제,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 이런 것들을 다 들어 알고 있고, 수많은 영화등에 인용되어 있을 것이므로 재미있게 읽을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역시 고전은 그 것을 소개 받았던 중고등학교 때 읽었어야 했다.
그러던 차에 1Q84를 읽게 되고, 그 제목이 1984에서 유래되었 다는 것을 알게 되고, 1984를 읽었더라면 더 재밌었겠다 싶어지자 용기를 내어 1984를 읽어보자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은 경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 하자면, 읽는 내내 흥미 진진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역시 고전으로 추천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겼으며, 고전이라 이제는 진부할 법한 그런 것은 거의 없었다.

주인공은 지구상에 오직 3개의 국가만이 존재하는 근미래(작품 연도보다 4~50년후)를 살고 있다.
알려진대로 근미래는 빅브라더가 감시와 통제로 전체주의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 주인공은 이 체제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이야기는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어느정도 예상이 된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것은 근미래이긴 하지만 미래의 사회상을 눈에 본듯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1984년을 이미 25년이나 지난 지금 읽어봐도 그 묘사가 기가 막히다. 창조적인 설정 몇개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텔레스크린
- 이건 감시카메라겸 모니터 역할을 한다. 지금 기술로는 훨씬 많은 감시카메라를 장착할수 있겠으나, 텔레스크린의 미묘한 사각지대가 긴장감을 더해주는 장치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모니터의 이미지는 1984년 애플사의 매킨토시 광고에서 잘 볼수 있듯이 기묘한 공포감을 더 잘 보여준다.
3개의 국가 그리고 전쟁
- 만약 미래의 어떤 전체주의 국가를 상상한다고 해보자. 영화들에서는 단일 정부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단일정부가 아니라면 어떨까?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상대국들이 다수 존재 할것이고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두 시스템간에 어떤 생산성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므로 그 두 시스템간의 충돌이 중요한 줄거리를 이룰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지구상에 국가가 달랑 3개(오세아니아:미국,영국,호주, 유라시아: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동아시아) 존재하는 것으로 나온다. 모두 전체주의 국가로 이 들간에는 끊임 없는 전쟁이 존재한다는 설정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쟁이라는 것이 상대를 무찌르고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부 단속용이라는 것이다. 전쟁으로 공포와 증오 긴장감 그리고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사실 3개 국가는 서로 밀고 당길 뿐이다. 남과 북의 비민주적인 2개의 국가가 서로 증오하면서도 서로의 체제 유지에 서로의 존재를 활용했던 것을 보면 이 소설의 통찰력을 절감할 수 있다.
역사 조작
주인공의 주된 업무이기도 하거니와 이 국가에서는 철저한 역사 조작을 통하여 국민들의 기억을 통제한다. 가령 오세아니아가 동아시아랑 동맹을 맺고 유라시아와 전쟁중이라고 하자. 그런데 외교적인 문제로 유라시아와 손잡고 동아시아와 전쟁을 하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었다면, 이 전에 유라시아와 전쟁중이었던 사실은 모두 동아시아와 전쟁했던 기록으로 대체되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와 빅브라더의 무오류성에 대한 도전을 막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일제시대에 조선일보의 친일 행적이 담긴 오래된 신문들을 검색해보면 일제에 저항한 기사로 교묘하게 변환되어있는 격이다. 그러자면 일제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까 아예 역사를 새로 써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대에 와서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는 일은 없지만, 중요한 기사를 다루지 않거나 네이버같은데서 메인에서 빼버리거나 하는 방법으로 이와 비슷한 일을 할수 있다. 그 과정에서 완벽하게 통제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뉴라이트의 교과서 수정이나, 이 정부의 방송 장악 등은 이런 수단을 현실화하려는 것으로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
신어(新語)
- 사상은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불온한 말과 표현을 없앰으로써 사상범을 원천봉쇄 하기 위해서 새로 언어를 만든다는 설정이다. 언어가 풍부한 표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의사전달만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가령 good이라는 말과 bad라는 말이 있으면 good과 ungood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자유라는 단어가 없고, 그런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도 금지되어있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할수 있을까? 흥미로운 상상이다. 비록 한줌의 쌀도 만들어내지 못 하지만, 문학과 유머의 힘이란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시간은 흘러 과학기술은 발달했고, 우리는 이미 1984년을 구경한바 있기 때문에 더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 할수는 있었겠지만,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어떤 영화도 1984를 크게 뛰어 넘은 것이 있었을까 싶다. 예로 든 설정에서 보듯이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어떠한 법칙을 찾아내는 작가의 통찰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알수 있다.

1984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터넷이란 것이 등장하는 지금. 조지오웰이 이 소설을 쓴다면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인터넷 덕분에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예상했을까? 아니면 달랑 3개 국가만 존재하는 지구를 그리지 않고, 인터넷에 차벽을 설치하고 전체주의를 실행하는 가상의 국가를 그렸을까? 그도 아니면 구글 같은 기업이 빅브라더 역할을 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렸을까? 앞서서도 말했지만, 감시카메라 격인 텔레스크린은 사각지대가 있다. 그러나 빅브라더는 사람들의 속마음까지 장악하길 원했고, 오랜 관찰과 잠꼬대, 상호감시를 통한 밀고 등으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아낸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우리는 블로그와 트위터 각종 덧글 등에 우리의 속마음을 자발적으로 털어놓는다. 악용되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하는 것. 이것은 또한 이 소설의 장점이다.

1984년은 전두환이 강압적인 통치를 하던 때였지만, 아마도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인지 1984년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순간에 우리는 공중파방송을 통하여 1984년 이라는 소설이 소개받을 수 있었다. 아마도 백남준의 작품과 함께 소개되었던 것 같다. 정권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이 될수도 있었는데 그들은 무지했던 걸까? 아니면 니 깟 것들이 뭘 알겠어 하고 국민들을 무시했던 것일까?
인터넷에 차벽을 설치하려는, 방송을 장악하고, 교과서를 뜯어고치려는 이 정권은 어디까지 갈것인지도 걱정되고 궁금하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에 저항할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소설, 198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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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킹트리 - 생각의 프레임을 바꾸는
이안 길버트 지음, 이소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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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시멜로 이야기 처럼 얇고 짧은 성인 우화.
책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각 쳅터별로 한줄이면 요약이 가능하다.

생각의 나무 : 생각을 많이 할수록 생각을 더 잘하게 된다.
본질의 나무 : 디테일은 바뀔수 있어도, 항상 본질은 잃지 말아야한다.
색깔의 나무 : 창의적. 다른 사람의 방식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하라.
자립의 나무 : 스스로 생각하라.
학습의 나무 : 다양한 배움의 방법이 있다. 그 다양한 방법들을 배워라.
대안의 나무 : 하나의 문제에 한가지 해결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안을 다양하게 생각해보라.
직관의 나무 : 다양한 상상력과 변수에 대한 고려가 있을때 직관은 더 잘 발휘된다.

이런 류의 책이 참으로 평가하기 힘든데 이 책을 읽고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평가하자면, 몇몇 좋은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긴 내용에 비하여 책소개 나 가격 등이 과하다.

그 몇구절을 적어본다.
- 늙는다는 것은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현명해진다는 것은 ...
- 어른이 되면 당연한 것들을 잃어버린단다. .... 항상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단다.
-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물수 밖에 없다. -폴 호건-
 

** 색깔의 나무에 관해서는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대학 졸업연설에 더 좋은 문구가 있으니 이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친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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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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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20세기소년을 영화로 보고 만화로 읽을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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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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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올해도 좀 전에 끝낸 1Q84 두 권이 유일한 소설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어떻게 블로그에 정리를 해놓아야 할런지 막연하다.
고민끝에 이 책은 어떤 책인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미래의 나를 위한 정리를 할까 한다.
어차피 나를 위한 정리이므로 혹시 줄거리등을 미리 알게 될까 우려되시는 분들은 뛰어넘어주시길....

1Q84는 아이큐 84의 포레스트 검프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이 아니다. 시간배경이 1984년으로 주인공들이 빠지는 새로운 차원의 1984년을 이전 버전의 1984년과 구분짓기위해 지은 이름이다. 참고로 일본어로 9의 발음이 Q와 비슷하다고 한다. 1권이 4~6월, 2권이 7~9월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으므로 이 소설은 1Q84년의 2Q 3Q 에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두 남녀주인공을 중심으로 한챕터씩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치 턴방식 게임과 같다. 전혀 관계 없어보이는 주인공들이 턴을 거듭하다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근접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그 수수께끼들이 풀리는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은 그렇게 되어있고, 이야기의 중요한 두가지 중심 축이 있다.
하나는 따돌림, 소외, 왕따 이런 것들이다. 주인공 남녀는 물론이고 신비의 소녀 역시 부모님의 특이한 무엇 때문에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님의 종교, 부모님의 공동체(나중에 종교가 되지만), 부모님의 직업. 엄친아란 말도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아들 친구 아버지나 딸 친구 엄마와 비교하여 부모님의 무엇인가가 부끄럽게 느껴지거나 감추고 싶은 일이 있을텐데 주인공들은 그것이 심한 처지여서 어린 시절부터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들인것이다.
둘째는 외부의 주인공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의구심이다. 리틀피플이 공기번데기를 만들고, 하늘에는 달이 두개 뜨는 세상, 그래서 따로 1Q84라는 이름을 붙여줘야하는 세계도 그렇지만, 주인공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 아니면 너무 어려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던 때의 어머니의 기억, 그러나 그 기억이 맞는건지 조차도 모르는 것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며, 달은 하나 뿐이라는 것과 같이 수많은 경험으로 세상은 이렇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매일 같은 고민과 의구심을 갖지 않으려는 잠정적이고 귀납적인 결론일뿐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일까?' 라는 의문은 우리를 늘 두렵게 한다.

끝까지 리틀피플의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지지는 않는데, 외계인일수도 있겠고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것일수도 있겠고, 어린시절의 불우한 경험과 이로 인해 사회에 부적응한 주인공이 헛것을 본 것 일수도 있겠다. 아니면 주인공이 '공기 번데기'라는 작품을 남겨 리틀피플의 존재를 폭로한 것 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1Q84'라는 작품을 써서 리틀피플의 존재를 폭로한 것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을 출간해버린 하루끼의 신변에 위협이 있을 수도 있겠다(이렇게 상상하니 오늘 실종되었다는, 전부터 신흥종교에 심취했다는 '짱구는 못말려' 저자의 기사와 연결되면서 섬뜩한 느낌도 든다. 설마 두 작가가 친한 사이인 건 아니겠지?)
책속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 문장에서 힌트를 얻자면 리틀피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자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이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20세기소년을 영화로 보고 만화로 읽을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이 다 그랬듯이 쉽고 재밌고 빠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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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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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올해도 좀 전에 끝낸 1Q84 두 권이 유일한 소설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어떻게 블로그에 정리를 해놓아야 할런지 막연하다.
고민끝에 이 책은 어떤 책인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미래의 나를 위한 정리를 할까 한다.
어차피 나를 위한 정리이므로 혹시 줄거리등을 미리 알게 될까 우려되시는 분들은 뛰어넘어주시길....

1Q84는 아이큐 84의 포레스트 검프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이 아니다. 시간배경이 1984년으로 주인공들이 빠지는 새로운 차원의 1984년을 이전 버전의 1984년과 구분짓기위해 지은 이름이다. 참고로 일본어로 9의 발음이 Q와 비슷하다고 한다. 1권이 4~6월, 2권이 7~9월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으므로 이 소설은 1Q84년의 2Q 3Q 에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두 남녀주인공을 중심으로 한챕터씩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치 턴방식 게임과 같다. 전혀 관계 없어보이는 주인공들이 턴을 거듭하다보면 어느 순간 조금씩 근접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그 수수께끼들이 풀리는 미스테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은 그렇게 되어있고, 이야기의 중요한 두가지 중심 축이 있다.
하나는 따돌림, 소외, 왕따 이런 것들이다. 주인공 남녀는 물론이고 신비의 소녀 역시 부모님의 특이한 무엇 때문에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모님의 종교, 부모님의 공동체(나중에 종교가 되지만), 부모님의 직업. 엄친아란 말도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아들 친구 아버지나 딸 친구 엄마와 비교하여 부모님의 무엇인가가 부끄럽게 느껴지거나 감추고 싶은 일이 있을텐데 주인공들은 그것이 심한 처지여서 어린 시절부터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들인것이다.
둘째는 외부의 주인공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의구심이다. 리틀피플이 공기번데기를 만들고, 하늘에는 달이 두개 뜨는 세상, 그래서 따로 1Q84라는 이름을 붙여줘야하는 세계도 그렇지만, 주인공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 아니면 너무 어려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던 때의 어머니의 기억, 그러나 그 기억이 맞는건지 조차도 모르는 것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며, 달은 하나 뿐이라는 것과 같이 수많은 경험으로 세상은 이렇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매일 같은 고민과 의구심을 갖지 않으려는 잠정적이고 귀납적인 결론일뿐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일까?' 라는 의문은 우리를 늘 두렵게 한다.

끝까지 리틀피플의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지지는 않는데, 외계인일수도 있겠고 심리적이고 상징적인 것일수도 있겠고, 어린시절의 불우한 경험과 이로 인해 사회에 부적응한 주인공이 헛것을 본 것 일수도 있겠다. 아니면 주인공이 '공기 번데기'라는 작품을 남겨 리틀피플의 존재를 폭로한 것 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1Q84'라는 작품을 써서 리틀피플의 존재를 폭로한 것일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 책을 출간해버린 하루끼의 신변에 위협이 있을 수도 있겠다(이렇게 상상하니 오늘 실종되었다는, 전부터 신흥종교에 심취했다는 '짱구는 못말려' 저자의 기사와 연결되면서 섬뜩한 느낌도 든다. 설마 두 작가가 친한 사이인 건 아니겠지?)
책속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 문장에서 힌트를 얻자면 리틀피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자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이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20세기소년을 영화로 보고 만화로 읽을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이 다 그랬듯이 쉽고 재밌고 빠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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