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에 주목하다 보니 상체보다 하체가 강조되며투박하기 짝이 없어요. 즉 태곳적 여성 조형물은 여성의 몸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 몸은 늘 아이를 잉태하고 있어요.. 프루스트가말하는 신체의 오묘한 역설도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예컨대 어떤여인이 있습니다. 여인의 신체는 늙어 갈 수밖에 없죠? 여인이 할머니가 되면서 신체가 소멸하는데 그 신체에서 아이들이 끊임없이태어납니다. 기괴합니다. 끊임없이 아이를 잉태하고 생산하는 신체, 프루스트가 보는 신체가 바로 이렇습니다. 유한한 시간적 존재로서 소멸하지만, 소멸할수록 기억의 경험이라는 아이를 잉태합니다. 이런 신체는 현대적 시간성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탈물질화되어 가는 신체는 삼분법적 시간을 따르지만, 감각의경험을 저장하는 공간으로서 신체는 결코 삼분법적 시간을 따르지않습니다. 오히려 역류해요. 늙을수록, 없어질수록, 소멸할수록 뭔가 자꾸 생산되니까요.
프루스트가 신체를 통해 이야기하는 문제는 이미지나 감각에서끝나지 않고 시간까지 포함합니다. 우리가 경험하지는 못해도 분명히 존재하는 또 다른 시간이 있다. 그것의 이름은 기억이고, 기역은 결코 현대적이며 진보적인 삼분법적 시간을 따라 움직이지않고 역류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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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2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5쪽.
신체.끊임없이 아이를 잉태하고 생산하는 신체. 감각의 경험을 저장하는 공간으로서의 신체. 우리의 모든 시간을 기억하는 신체
 

미완성의 운명을 지닌 현대 소설현대 소설에는 본질적인 딜레마가 있죠. ‘이야기1지 현대‘라는 시대적 조건이 현대 소설을 규정합니다.
가 불가능해진 현대‘라는이는 개인화, 파편화된 시대입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개인은되고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와 전통이라는 범주 안에서 공유할 것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공유점에 대해 충분히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벤야민은 원래 이야기의 공간이 사랑방이라고 합니다. 옛날 우리에게도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줘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것이 이야기죠. 그 시대에는 이야깃거리가 엄청 많았습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손주의 삶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공동체성이 현대사회에서는 도시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파열합니다. 우리가 군중으로 함께 있어도 서로 상관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현대 소설가가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도대체 뭘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딜레마에 빠지는 겁니다. 이 문제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이야깃거리가 내면의 이야기 입니다. 전통적인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던 소재입니다. 그래서 현대 소설을 내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통 소설은 외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현대 소설에는 외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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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ㅡ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 ㅡ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습지 속 여기저기서 진짜 늪이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포복한 수렁으로 꾸불꾸불 기어든다.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빛을 다 삼켜버려 물은 잔잔하고 시커멓다. 늪의 소굴에서는 야행성 지렁이도 대낮에나와 돌아다닌다. 소리가 없진 않으나 습지보다는 늪이 더 정적이다. 부패는 세포 단위의 작업이다. 삶이 부패하고 악취를 풍기며 썩은 분토로변한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 또 삶의 씨앗이 싹튼다.
프롤로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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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시시껄렁하고 속물적이기는 하지만 중산층들은 이를 건전한 식견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종의 천성처럼 되어버렸다. 그냥 웃고 만다. 어쨌든 나도 틀림없이 그들 중의 하나였다.
ㅡ해질 무렵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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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는 그의이상주의가 실력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했지만, 바로 그것이김기영의 실력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나의관대함은 세상을 짝사랑하지는 않겠다고 작심한 뒤에 그를 거리를 두고 바라본 데서 온 여유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사람과 세상은 믿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지난 뒤에 사람들의 욕망은 그런 가치들 가운데 남길 것만 조금걸러내고 대부분을 자기 위주로 변형시키거나 폐기처분해버린다. 조금 남겨두었던 것들마저 마치 오래전에 소비했던 낡은 물건처럼 또다른 기억의 다락방에 처박힌다. 건물을 무엇으로 짓느냐고? 결국은 돈과 권력이 결정한다. 그런 것들이 결정한 기억만 형상화되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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