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안 된다고 하긴 했는데 순무를 보면 아빠 마음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 있을까?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아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느낀다. 두 사람 모두 불이 켜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느낀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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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리언그레이는 책 한 권에 중독되었다. 180

어쨌든 이것은 도리언 그레이의 의견이기도 했다. 인간의자아가 간단하고 영속적이며 믿을 만하고 한 가지 본질로 이루어졌다고그가 보기에 인간은 무수한 삶과 감각을지닌 존재였고, 내면에 낯선 사상과 열정의 유산을 품고 살아가는 복잡하고 다중적인 생명체이자 망자들이 물려준 무시무시한 질병에 오염된 육체였다. 그는 시골 별장에 있는 싸늘하고 소름 돋는 회랑을 거닐며 자신에게 피와 살을 물려준 사람들의 초상화를 바라보기를 즐겼다.

그중 한 명인 필립 허버트는 프랜시스 오즈번이 쓴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왕의 치세에 관한 회고』에서 보면 "잘생긴 외모로 궁정의 사랑을 받았으나 미모를 금세 잃었다."라고 나와 있다.

애초에 도리언에게 주어졌던 삶은 젊은 허버트의 삶이었을까? 어떤 괴이하고 유독한 세균이 몸에서 몸으로 세대를 거쳐 넘어와서 그에게 도달한 것일까? 허버트처럼 일찍이 우아함을 잃어버릴 운명이라는 사실을 희미하게 의식하고 있었기에 그때 바질 홀워드의 작업실에서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기 삶을 바궈 놓은 광적인 기도를 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금실로 수놓은 빨간 더블릿과 보석 박힌 겉옷, 가장자리에 금박을 두른 옷과 손목 보호대 차림의 앤서니 셔라드 경이 발치에 은색과굽은색 갑옷을 쌓아 놓고 서 있었다. 이 남자의 유산은 무엇일나폴리의 여왕 조반나의 연인이던 그는 혹시 도리언에게악과 수치를 물려주었을까?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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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수 수학은 물론 굉장히 아름답지. 우아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물리학도 마찬가지고. 하지만생물학은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지. 완전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져있어. 패트릭, 정말 믿지 못할거야. 나도 크리스타의 유기화학교•과서를 읽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으니까." 크리스타는 형이 듀크대를 다닐 때 만난 여자친구로 나중에 형의 아내가 됐다.
"이렇게 말하면 될까? 너나 내가 기계를 만든다면 논리적으로 접근하겠지. 최소한의 부품을 써서 깔끔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지만 살아 있는 자연은 전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아. 겹치는 것도 엄청나게 많고, 빙빙 돌고, 주제하나를 놓고 수백만 개의 변형을 만들어내. 그래서 4분의 3쯤 잘못돼도 생명체는 죽질 않아. 그 결과로 생기는 게 골드버그 장치같은 건데, 무지 튼튼한 골드버그 장치인 거지. 상상할 수 없을만큼 괴상하고 엄청나게 여러 겹을 가진 물건이 탄생하는 거야.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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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자기 안의 관광객이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깨달음을 얻는 곳, 금각사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자기 안의 고지식한 안내자가 천천히 답을 생각하고 길을 가르쳐주려고하면, 그 관광객은 이미 서둘러 떠나고 없다. 그래서 삶에 대한 진짜이야기는 대개 허공에 흩어지게 된다. 허공에다 이야기하다가 죽는 게 인생이지. 그러나 이것도 사치스러운 생각일 거야, 병원에 누워 있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지. 이처럼 건전한 생활철학에생각이 미치자,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이 보였다. "당신은 교토를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17.11.19)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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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나누는 대화’

옆으로 나누는 대화는 브라질의 개혁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신부의 생각에서 영감을 받았다. 보프 신부는 그의 책 《생태 신학》에서 생태중심의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신부가 말하는 생태란 푸르른 자연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는 생태학이란풀과 동물에 대한 별개의 연구가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것(생물이든 무생물이든)이 자신과 존재하는 다른 모든것(그것이 실재하는 것이든 잠재하는 것이든)과 갖는 관계이자 상호작용 즉, ‘옆으로 뻗어나가는 대화‘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생태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해치는 모든 사악한 구조에 등을 지고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프 신부의 생태학 관점에 따르면, 우리가 겪는 전 지구적인 환경 위기는 자연보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무를 더 심거나 보호구역으로 공표하는 온건한 제스처만으로는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아마존열대림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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