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ㅡ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 ㅡ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습지 속 여기저기서 진짜 늪이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포복한 수렁으로 꾸불꾸불 기어든다.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빛을 다 삼켜버려 물은 잔잔하고 시커멓다. 늪의 소굴에서는 야행성 지렁이도 대낮에나와 돌아다닌다. 소리가 없진 않으나 습지보다는 늪이 더 정적이다. 부패는 세포 단위의 작업이다. 삶이 부패하고 악취를 풍기며 썩은 분토로변한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 또 삶의 씨앗이 싹튼다.
프롤로그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