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떡볶이 -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아무튼 시리즈 25
요조 (Yozoh) 지음 / 위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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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싱어송라이터라는 유명세로 압도되어서 오히려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다. ‘요조’라는 이름은 너무 많이 들어 봤는데 그게 딱히 그녀의 음악을 찾아서 듣는다거나 책방을 열었다든가 해서 가본다거나, 글을 썼다는 책을 찾아볼 이유는 되지 않았다. 저명하다는 과장된 입소문에 따른 과거 기억 속의 실망이랄까 아무튼 나는 기대를 걸고 싶지 않은 관성 탓을 해본다. 사실 이 책도 주체적으로 읽어볼 요량으로 책을 펼쳐본 것은 아니다. 굉장히 우스꽝스럽게도 ‘장강명’ 작가의 책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요조’의 등장 때문에 자연스럽게 꼬리에 꼬리를 물듯 나는 책을 읽었다. (장강명의 에세이에서 이 책을 꽤 위트 있게 추천했다: 심지어 다른 이유로 ‘요조’는 마무리 글에서 작가‘장강명’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감사와 이 책의 공헌을 돌린다) 

떡볶이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감상이 일었다. (파스타도 아니고 갈비찜도 아닌 분식인 떡볶이가 과연..) 나한테는 적어도 멋들어진 메뉴도 아니고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음식일 뿐인데 그래서 작가에게는 더 특별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대상이었을까. (보통의 위대함이 여기서 등장하는 것일까) 떡볶이 하나로 이렇게 많은 일이 작가에게 일어났고 (심지어는 이렇게 책을 썼다!) 다양한 사연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다. 그걸 지나쳐버릴 평범한 에피소드로 넘겨버릴 법도한데 작가는 유머러스한 필체를 활용해 멋들어진 글로 일상을 뒤집고 재발견한다.  작가는 과연 책을 쓰는 시작과 끝맺음까지도 (출간 계약하는 과정을 소재로 삼다니!!) 하나의 에피소드로 엮을 수 있는 대단한 실력자이었다. (나는 왜 유명세라는 불필요한 장애물로 작가를 모른척하였던 것일까..) 작가는 후기에 독자들이 이 책을 덮고 떡볶이를 먹고 싶어지는 이유가 되었다면 그걸로 이 책의 목적이 충분하다고 했다.  그녀의 바람은 간절할지 몰라도 이미 책 자체가 자극적으로 맵고 달콤한 떡볶이 그 본질이 아닐는지 했다. (종이로 떡볶이를 만든다면 과연 이렇겠군!) 
작가는 독자가 알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실명(등장인물들의 본인들은 당연히 동의했겠지..?)을 언급하며 현장의 디테일한 상황묘사가 정말 뛰어난데, 이게 누구나 애용할 수 있는 사진보정 필터라 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인기겠다. (무기력한 일상의 건조함에 생기를 더하는 묘사를 나도 경험해보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던 탓인지 한 에피소드를 (박군떡볶이 부분) 친구에게 연신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감칠맛 나는 작가의 글솜씨는 1할도 반영하지 못한 채 이야기는 떡볶이집이 작가의 클레임 때문에 폐업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진중한 사건처럼 되어버려 오히려 재밌는 책이 졸지에 단순한 카더라 뉴스처럼 다뤄졌다. (아 이래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뜬소문은 믿을 수가 없군..) 나는 전파하고 말 것이다. 이 작가의 훌륭한 떡볶이 한 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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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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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경험한 것만 글로 옮겨 쓴다는 작가의 철저한 철학 탓에 그의 문학이 독특하고 빛이 났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지만) 때문에 나는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연유로 그런 철학을 고집하며 글을 쓰는지, 무슨 환경 탓에 그녀의 성장한 배경이 궁금하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질문투성으로 가득 차있었다. 소설인가? 하고 집어든 이 한 권은 (‘진정한 장소’라는 의미 가득한 타이틀이 오해를 살만도 하다) 한 다큐멘터리 감독과 대담을 나눈 인터뷰집으로 문학은 아니지만 그녀의 사실기초한 자료를 재료로 삼는 재능 앞에서는 이 또한 소설처럼 취급될지도 모를 터이다. 나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며 인터뷰를 통한 답변들이 종이 위에 옮겨진 글로 스스로를 분명하게 대변한다는 확신은 전혀 없다고 고백하나, 독특하게도 그녀를 전혀 모르는 독자 앞에서는 적어도 모든 것이 그녀였고 작가 자신이었다. 작가가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에세이를 몇 권 읽었다. 나는 겨우 그 몇 권 가지고 생각의 결론을 내릴 이렇다 저렇다 할 근거로 재료 삼기에 부족하겠으나 그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써야만 했다는 당위성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에 나는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무당의 신내림처럼 점쳐진 운명과도 같이 표현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매우 조금도 가공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비친다. 읽고 쓴다는 일. 주위를 세심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옮겨 적는 일.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는 기적처럼 여겨진다는 거장의 겸손한 멘트에 무엇이 그녀를 이끌었고 파헤치려던 생기발랄한 호기심이 갈 곳을 잃었다. 그녀를 통해 글을 쓴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마음이 끌리고 조금이라도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작가를 모른다. 작가를 모르기에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냈고 헤쳐나가는지 아직도 끊임없이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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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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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본 책과 동명의 타이틀로 작가가 진행했던 팟캐스트 기록을 토대로 이 책은 그 이야기들을 엮고 있다.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매우 깊은 애정과 시간을 기여했는지를 떠오르면 나는 매우 애석할 뿐이다; 아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니!) 사실 이 책에서 팟캐스트라는 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큰 카테고리에 지나지 않고 책의 본론은 ‘장강명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에 관한 내용이다. 만약 작가가 누군지 궁금했었다면 그에 대한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얻지 않는 한 권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만큼 작가의 사적이고 이렇게 까지 노출해도 되는 걸까 하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심지어 작가는 소설이 안 써져서 우울증이 왔다는 기록을 남기며(오랜 기간 동안 감정의 굴곡을 겪으며 세 번씩이나) 이렇게 작가라는 신비주의를 그대로 노출해도 되려나 싶은 걱정이 드는 반면에, 작가라는 직업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훌륭한 일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본인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려 시도했다는 용기에 또한 감탄하게 된다. 
작가는 ‘말하고 듣는 인간’과 ‘읽고 쓰는 인간’이라는 분리된 형태의 자아로 스스로를 구분해 표현했다. 그 서로 다른 영역 속의 자아의 충돌가운데 서로를 고민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무엇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인지 사회에 속한 ‘나’가 어떤 타협점으로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얘기했다.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작가는 읽고 쓰는 인간으로 본인을 대변하기에 그것이 훨씬 더 고귀하고 본인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 했다. (다소 ‘말하고 듣는 인간’의 중요성이 이 책에서는 배제되는 편; 때문에 ‘읽고 쓰는 인간’이 아닌 독자가 읽으면 조금은 서운할 수도 있겠다; 애초에 그들은 이 책을 읽지도 않겠지만) 나는 때때로 독서를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우쭐대기도 한다. 책을 읽는 게 뭐 그리 큰 대수일까 하지만, 나와 책을 읽지 않는 타인을 구분 짓고 그들 가운데 선을 분명하게 그어놓으며 종종 스스로를 우월성의 재단에 올려놓는다. 나는 단순히 영상으로 흘러가고 끊임없이 자극하는 시각적인 자료와 소음에 익숙하지 않을 뿐인데, 기존의 룰이 만들어놓은 기대에 편승해서 하위문화로 소비되는 미디어를 저급하다는 인식 안에 놓아두고 구태여 편협한 시각을 뒤집으려 하지는 않는다. 나 스스로가 고급문화에 속해있다는 안도감일까 과거의 영광과 역사에 한 발 들여놓았다는 허세로 치장하려고 드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다만 애써 남들 앞에서는 조금도 그런 치부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때문에 작가들이 현실을 외면하면서 그들의 세계에서만 살아왔다는 것 충분히 공감한다. 고귀한 영역 안에 안주하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위험에 노출되지는 않으면서 어느 정도의 안정된 대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확신을 준다. 작가는 문학이 그들의 팬덤 안에서 빠져 넓은 세계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으로 한계와 미래의 위기를 지적한다. 동시에 나는 그냥 글을 읽는 게 편하고 나랑 잘 맞아서 그렇게 행동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타인과 자아를 분명하게 차별화해서 계급을 만드려고 드는지 무의식적인 위계가 선동하는 탓에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어디에 두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도 분명하게도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은 멋지고 더욱이나 작가와 같이 재밌는 글을 쓰는 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부러운 재능이다. (그런 작가도 스스로를 힘들어하며 아직도 부족한 실력을 탓하며 본인을 돌아본다는 건 꽤나 인상적이다 ) 많이 먹으면 배출하고 소화하며 영양분을 체득하듯, 글을 읽고 무언가를 끄적끄적 쓰는 행위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을 언제 읽냐는 질문에 물을 언제 먹고 공기를 언제 호흡하냐는 반응으로 치환할 만큼 책은 작가에게 매우 가까이에 있다. 나는 유희로 책을 접하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걸 꺼려하는 탓에 책을 통해 다른 이의 사고를 엿보고 그들의 관점을 훔쳐볼 목적으로 책을 읽는다. 나에게 불순한 의도가 있듯이 타인이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자아를 찾아 나서듯 그 방법과 과정의 연습에 문학이라는 고고한 잣대는 성립하지 않을 터. 작가를 통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고 무엇이 나에게 도달하는 명제가 되는지 실패하기도 동의하기도 하면서 앞으로 내가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나는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게 바로 내가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주체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약간의 의의가 아닐는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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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 당신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경이로운 작은 우주
필리프 데트머 지음, 강병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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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왜 내 도서목록에 놓여있었고, 하지만 나는 또 아랑곳하지 않고 왜 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적어도 내가 자발적으로 손에 집어들만한 책은 절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주제는 아무리 예쁜 그림과 노란색의 흥미로운 커버로 장식한들 그 내용은 큰 포식 세포, MHC분자, 사이토카인, T세포 수용체, 림프계와 항체와 같은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종횡무진하는 글자들로 그득그득 채워진 면역학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 나는 문과출신이다: 이런 이상한 단어를 이상할만큼 매우 경계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이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단어들이 책을 펼치기 전에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나는 결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매우 단호하게) 그런 나의 즉각적인 거부반응과는 극명하게 (마치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항체 같다) 작가는 이러한 독자들의 거리낌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냐오냐’하며 달래고 애쓰며 나름의 유머코드를 쥐어짜고는 (세포들을 주제로 개그를 만드는 건 정말 극한 직업이 아닌가! 우리 모두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시다) 자신의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보길 원했다. 어찌나 묘사가 섬세하고 말투의 디테일이 세심한지 나의 분개했던 감정마저 작가 앞에서는 스르륵 누그러진다. (이것이 진짜 면역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의 능력인가?!)

이 책은 내게 ’해리포터‘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다음은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당장 말해줘) 또 어릴 때 주야장천 열심히 보던 ‘신기한 스쿨버스’(몸속으로 만화 등장안물들이 스쿨버스를 타고 들어가 각종 장기들을 체험하고 이해하는 교육용 애니메이션; 구조가 디테일하지 않아 거부감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아동용 작품이다)를 시청하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특히나 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메인 주제였던 해부학 때문은 아니고 주인공인 담임선생님의 빠글거리는 파마와 쫑알쫑알 거리는 수다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작가는 몸 안에서 일어난 각각의 세포들의 반응과 연속적인 행동 변화 추이를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는데 (작가가 표현하가로는 세포들의 춤) 마법을 부리는 듯한 인과과정이 잘 정돈된 클래식을 듣는 듯한, 혹은 신상 디바이스를 손에 쥐고 하나씩 버튼을 눌러가며 기쁜 마음으로 기능을 살펴보는 느낌이 들었다.(이 글에 비유가 많은 건 작가 탓이다: 그는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흥미를 잃어버리게 하지 않기 위해 온갖 비유란 비유는 다 가져다 쓴다!) 분명 제일 가까운 순간에 누구보다도 내 몸속에서 가장 쉽게 마주하고 있음에 분명한 면역과정이 누구보다도 낯설고 때문에 근거리에서 묵인해 버린 과정들이 이렇게까지 미묘하게 구미를 당기는 지도 모른다. (딱히 이해하고 있지 않아도 몸은 알아서 면역활동을 잘 해내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풀어내서 간략화하고 축약한다는 건 그만큼 작가가 이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도 세세하게 잘 알고 있다는 얘기.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이미 아는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쉬운 언어로 치환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후기에 전한다) 독자들은 작가가 이끄는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닫었을 뿐인데,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세포들의 움직임을 신기하고 앙증맞게 대면하는 신비를 경험하게된다. 이미 작가도 언급했지만 면역계에는 아직 미지의 세계로 넘어있는 부분들이 많고, 때문에 확실한 구조와 원인을 전부 파악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어렵지만 나는 이렇게나마 갑작스러운 조우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어 마냥 뿌듯했다. 타인에게 권하고 싶지만 아무도 추천받고 싶어 하지 않을 주제이기에 작가가 그러했듯이 은밀하고 조용하게 슬그머니 책을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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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양장)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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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위해 연신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내 노트북보다 얇은 두께의 소설을 읽었다. (심지어 이 책은 하드커버에 역자후기와 해설이 붙어있으니 그 낱장은 바람에 날아가기 쉽게 더욱더 얇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판형과 물성과는 현저하게 대비될 정도로 (과연 이것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작가의 이야기는 엄청난 무게와 강렬함을 선사한다. 짧은 글의 구성도 그렇지만 필체의 흐름이 어찌나 빠르던지 나는 정말 한 순간에 하수구로 사라지는 머리카락처럼 작가의 글 속으로 소멸했다. 왜 이렇게 묘사가 생생한지 토통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남의 일기를 엿보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데, 이게 현실인지 진실인지 혹은 가상인지 허구인지 판단의 분별이 서지 않아 혼동스러웠다. 의문의 해답은 의외로 간결했다. 책 끄트머리에 마련된 지은이 소개의 분명한 문장으로 그 답변을 대신한다. 
작가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당돌한 문장의 강한 맺음새가 내 신경을 긁은 이유는 이와 같은 이유였다. 작가는 본인이 겪지 않은 얘기를 글로 남기지 않았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매섭게 몰아치는 글줄기가 왜 그렇게 파장을 일으켰는지 그 까닭을 나는 다시 한번 곰곰이 되짚어본다. 
밑도 끝도 없이 포르노영화를 봤다는 첫 장의 고백에 나는 당혹스러웠다. (아니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글의 서문을 여는 걸까..) 사람은 본인의 인생에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어떤 감정에 뒤엉키는 일에 삶을 맡긴다. 그 대상은 연인이 될 수도 친구가 될 수도 혹은 전통적인 개념에 따르지 않는 어떤 형태의 관계일지라도 누구나 한 번쯤 감정이 지배하는 무언의 경험을 한다. 누군가를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생각하고 매달리면서 열정을 퍼부었던 적이 있었던가, 있을까, 있는가?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치가 아닐는지 자문하며 책을 끝내는 작가의 물음에 멍청한 자의식이 이성을 헤맨다. 삶을 지속하기 위한 사회인으로서의 구태연한 요소들이 반기를 들며 닦달하듯이 외치는 와중에 맹목적인 감정 타령이 웬 말인가 했다. 그런 황홀한 상태에 빠질지언정 타인을 밀어붙이고 나를 고통의 회한에 빠뜨리고 사랑이라는 구닥다리 정의에 가둬둘 것인가. 저울질할 문제가 전혀 아닌데 감정과 행동은 수긍하면서 이성을 짓누른다. 작가는 개인의 철저한 사적인 체험을 통해 이를 공동화했다. 자신은 이미 그 과거를 떠난 지 오래이므로 한때의 감정에서 비롯한 부끄러움과 후회에서 벗어났으며 활자와 잉크로 눌려진 종이 위의 글자들이 어떻게 타인을 자극하든 그것은 상관할바가 아니라는 떳떳함으로.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나도 그 단순한 열정 한 스푼 떠안은 독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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