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예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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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대상이 주는 의미가 이런것이었던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고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것 같은데.. 서점사람들은 이러한 인물에 대한 동경 혹은 갈망이 있는것 처럼 느껴졌다.
나에겐 지나가는 낯선이를 붙잡고 권해줄 만큼 거리낌없는 동화같은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겐 자기계발서저럼 느껴질만큼 삶에 대한 곧은 자세와 의지를 붙돋는 듯한 뉘앙스가 없지않아 있는듯. 아무나 가질수 없음을 알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주인공의 올곧음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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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플루언트 : 영어 유창성의 비밀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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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어떤결과를 얻기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조금은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하면 대중들이 영어를 대하는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쉽게 체득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것이기에 차근차근 작가가 이야기하는 논지에 귀기울일 수 밖에없다.

사실 언어에대해 구체화해서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어떤 다른 분야에 적용해서도 사용해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포괄적인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주제를 확장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작가가 제시한 몇 가지의 방법에 대해 직접 시도해 볼 용기가(?) 바로 생기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관심을 갖고 영어를 대할 때 문득문득 작가가 던진 화두가 떠올라서 실천할지도 모르겠다.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한다는 간접적인 세계관의 형성. 그런 거창한 목적론을 일부러 되새기지 않아도 자연스레 몸에 배여있으면 좋으련만, 공교육과 사교육을 완벽하게 거쳐온 나에게 그런 인위적인 자극이 없다면 이미 체제화된 선입견이 무너질겨를이 전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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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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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수상이 결정되어 신문 한쪽에 기사기 실렸길래, 이번에는 어떤 난해한 이야기가 관심도 없이 잊혀질까 하는 마음에 쓱하니 헤드라인만 힐끗하고 넘겼다.<편의점 인간>이라니. 모두 알고있으며, 그동안 무관심에 속해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던 그 주제가 드디어 민낯을 드러내고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했다. 이미 편의점은 백화점을 능가하는 성장속도로 유통채널의 신 영역으로 그 주목성을 한 몸에 받는 동시에, 신문 한 장을 넘기면 알바의 대표적인 상징의 직업군으로 을의 관계를 대변하는 (지금의 현대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역할의 또 다른 얼굴을 갖고있다. 언제쯤 번역되나 했는데, 수상기사의 흥미가 조금은 잊혀갈 정도에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은 낮선 겉표지를 두른채로 판매중 이었다. 마음을 추수리고 아직은 읽을 때가 아닌것 같아 미루다가 적당한 시기를 골라 소설을 집어들었다.(정확하게는 이북을 다운받았다) 무덤덤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위트로 가득찬 한 권이(다소 한 권이라고 하기에 그 양이 부족한 느낌이다) 편의점이라는 특수공간에서 아름답게 빛나고있다. 개성있는 주인공의 사상이 언뜻 스쳐지나간 누군가를 잠깐이라도 떠올려 볼만한 대중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고있기에 정확히 선을 긋고 이것은 픽션이다라고 치부할 수없게 만든 그 상황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중은 그냥 위트있는 작가의 망상에 존재된 현실로써 글을 읽을까, 아니면 현대가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상황을 재현한 나와 그 들의 관계를 재현한 작품으로 받아들일까.비정상이고 이상한것은 주인공에게 있어 그녀가 놓인 상황 그 전부였기에 정상을 강요받는 환경을 대놓고 비난하기도 힘들다. 비난은 칭얼대는 아이의 투정에 불과할 뿐이고, 그것은 어른됨이 바른 인간의 초상이 된 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될 금기이다. 나는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환경에 동의 하여 이미 대중의 부속이되어 그들과 사고를 공유하는 충실한 일원의 한 명으로써 그에 합당하지 않은 인간을 찾아 날마다 재판장에 올려 그들을 갱생시킬궁리만 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편의점은 그런 사회의 축소판이자 매뉴얼로 깔끔하게 정돈된 그야말로 이상화된 특수공간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며 정확하게 처리해준다. 그야말로 찬양받아 마땅할 미래의 성지로써 사람들에게 자리매김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과거의 위치와 의미를 고집하기에 변화의 속도가 인간을 뛰어넘고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구태연한 녹슨 유물처럼.느껴진다. 불안한 이 마음을 정확한 매뉴얼에 기대고 싶은 건 사치라고 비난할 인간은 과연 누가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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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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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하나의 완전한 세계로 구축되어 현대인의 삶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SNS라는 부속물들이 전혀다른 한 개인과 개인을 급속하리라 할 만큼 동등하게 묶어낼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있다. 온라인이 만든 관계의 접근성과 대비되어 나타난 현대인의 고립성을 구차하게 반복적으로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소 누구나 알고있어서 식상하기 그지없는 그 명제가 얼마나 당연하기에 그토록 이상하기에 짝이없는 불편한 문제가 도서에서 분출하는지, 나는 그 원인의 한 조각이라도 그것에서 붙잡고 싶은 심정에 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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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정의는 어디에도 써있지 않았는데 나는 읽은 것 같다. 저 인간이 싫은 이유도 관계의 오해를 사는 이유도 모두 내가 마련한 사고에서 출발하는데, 나는 누구를 시발점을 두고 그 책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려 했던 것일까? 원인을 재료의 대상으로보고 분해하며 설득시키는 작가의 노력이 가상하다. 그렇게 까지 해서라도 문제는 해결되어야만 한다. 특히 지금의 모든이들에게 강요아닌 사고의 자체를 통해서 말이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았던 변화하지 않을 상황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덕목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현실은 디지털이라는 상황에 맞추어 조금 더 세밀하고 민감해졌고, 모두는 그로인한 신물질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다. 어쨌든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도 없으며,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서 마주치는 인간관계 형성 가운데 자아를 매번 확립해 나갈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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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물의 도움을 받지않아도 상황에 반응하는 자극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이에 책은 간단명료하리라 할 만큼 독자에게 단순하게 진단한다.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는 지금의 인간이 갖춰야 할 당연한 소양이 아니라 제어가 가능한 경고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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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쁜 뉴스의 나라
조윤호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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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묵을 낼 께˝
사람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듯한 발언은 이런 사소한 가위바위보에서도 일어나곤 한다. 그럼 나는 상대를 이기기위해 반대를 제시해야하나? 아니면 그가 거짓을 얘기 할 수도 있으니 그 수를 미리 예견하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준비해야 하나? 생각이 여기 까지 다다르면 애초에 하려고자 했던 계획이 무엇인지 다소 헷갈리기까지 한다. 기껏해봐야 가볍게 빗대어 얘기하고자 한 가위바위보라는 장난에 불과 한데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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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크게 바쁘지 않다면 하루에 항상하는 것이 아침식사, 아침식사시 배달된 조간신문 읽기(요즘엔 구독자가 별로없는 탓인지 배달부가 적어 배송이 매우 늦다..) 그리고 퇴근 후 저녁식사와 함께하는 지상파 저녁뉴스이다. TV는 그렇다고 쳐도 종이신문은 최근에 들어 급격하게 드문 행위처럼 여겨져, 주위사람들에게 종종 본인스스로가 굉장히 독특한 취미행위를 가지고있는 것처럼 보여진다.(이게 언제부터 취미활동으로까지 격상했는지 세월의 힘은 대단하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습관처럼 고착화되어온 탓에 기계적으로 뉴스를 읽어내는 행위는 내가 현재의 사회를 읽는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최선의 기능처럼 생각되었다.

정독까지는 아니기에 휘리릭 넘기는 책장과 시선사이에서 어느정도는 광고성 기사가 무엇인지, 이게 어떤 의도로 미화된것인지는 판단될 정도로 대락적인 관점은 가지고있다고 생각했다. (다소 그 깊이가 미미하다는 건 문제) 근데 저자가 얘기하는 일련의 얘기들을 듣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조간이 형성하고자하는 그들의 사고체계로 내가 행동하고 생각하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런 초입단계를 벗어나 다음 스텝으로 진입한 듯) 비판적으로 읽기에 그들은 나의 리스트에 없었다. 당연히 기사는 공정하고 분명한 논지로 (다소 거론되는 정치색이나, 광고성은 그들의 애교정도) 지면과 함께 항상 뭔가 굳건하고 신뢰두터운 대상임에 틀림없었다. 아직도 스스로가 변화한 뉴스취득방법에 익숙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대변되는 그런 변화가 단지 가볍고 (물론 항상 가볍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순히 소비되는 기삿거리로 격하해 생각하기만 했다. 이전에는 팩트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조차 앞으론 하나하나 따져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전락해버린건지, 아니면 그만큼 냉철한 시각으로 자신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는것인지 언론이라는 지금의 구조가 나에겐 너무 낯설고 불편하다. 이래서 관여하고 싶지않았던 대부분의 대중들은 감정의 타이틀만 가볍게 취하고 다음 이슈를 던지는 여론의 흐름에 생각을 맡기고만 있는걸까? 이건 비난이라기 보다 자조적인 허망함에 가까워서, 오히려 마음편히 그렇게 얘깃거리로 만들고 그렇게 잊혀지는게 지금 현대인이 갖춰야 할 자연스러운 덕목인것 처럼까지 느껴진다.

근데 나는 아직 TV뉴스를 끄고싶지도 조간배달을 취소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에게 휘둘리더라도 그들이 보여주는 유치한 구조잡기를 멍청하게나마 쳐다는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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