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병화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흥미로운 접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반의 두 챕터는 더 이상 읽기가 어려워서 집어던져 버리기는 했으나, 작가는 직장인이라면 (혹은 이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곱씹어서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진다. 그의 글은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장난에서 뼈를 때리는 현실을 던지는데 그게 여간 어벙하게 타격이 크다.
작가는 ‘불쉿 잡’이라는 생경한 개념을 독자들에게 던지며 무엇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불쉿 직업’인지 카테고리별로 이유와 현상을 사례로 들면 하나하나 점검해 나간다. 그 시작에 앞서 나는 직감했다. 작가는 정말로 ‘불쉿’에 진심이구나! 하지만, 글쎄 이미 ‘불쉿’에 길들여 있어서 나는 그게 ‘불쉿’인지 아닌지 조차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모호하기도 할 따름이고, 그에 앞서 자신을 ‘불쉿’으로 취급해버리자니 (물론 작가는 어떤 한 사람 즉 본인이 아닌 직업에 해당한 평가로 언급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자신을 구분해 분리한다는 것 차체가 혼란스럽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는 무엇인지 무념의 회한에 휩싸이기는 또 싫어서 나는 마냥 그의 이야기를 회피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들고 있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을 수는 없다) 글의 중간중간 그에게 호응해서 자신의 사례를 (안타깝게도 외국국적의 직장인들에 한한 고백들이지만;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더 역설적으로 기묘했다) 자진해서 작가에게 보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다. 작가의 여럿 얘기들 가운데 매우 흥미로웠던 건 ‘사조마도히즘’에 빗대어 회사 내의 구도를 설명한 대목이다.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비해서 언급한 건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데, 나름 그의 논리가 비상하게 웃기다. 보통의 성적인 플레이를 즐기기 위한 관계에서는 위기감을 느꼈을 때, 멈춤을 요청하는 상호 간의 룰이 있지만, 일의 관계에서는 위압적인 상하구조만 동일하게 존재할 뿐 위급상황을 경고할 만한 동의는 마련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자연스레 실소가 인다. 작가의 그런 엉뚱하면서도 적확해 보이는 사례가 크게 내 맘에 들어왔던 것은 그의 글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누군가의 모습 과거 회사의 동료, 사건들이 소소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생각났기 때문이지 않나 했다. 직업으로서 직장인의 연기를 해야 한다면 스스로를 아무래도 ‘불쉿’이라고 치부하게 되겠지만, 동시에 어느 누구도 ‘불쉿’을 쉽게 떨쳐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작가를 포함해서 ‘불쉿’은 일을 하는 내내 자연스럽게 스멀스멀 떠오른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어느 회사나 ‘또라이’는 한 명쯤 있기 마련, 만약 ‘또라이’가 회사 내에 없는 것처럼 보이면 ‘또라이’는 바로 너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