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어떻게 우리를 단절시키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 민주적·지성적 문화의 타락을 부추긴 세계 최강,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에 대한 미디어 생태학자의 신랄한 고발장
시바 바이디야나단 지음, 홍권희 옮김 / 아라크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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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안티소셜미디어’의 타이틀이 세분화되고 길어졌다.  사실상 책의 모든 요약은 책 초반에 마련된 옮긴이의 말에 자세하고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다. 교수의 논문이 그러하듯 많은 사례와 사건을 실증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주석들이 줄줄이 엮여 한 권이 되었으나, 결국하고자 하는 말은 간략하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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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복 탐구 : 새로운 패션
박세진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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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매거진에 실리면 찾고 헤매던 마지막 퍼즐조각처럼 딱 알맞게 적당한 글이 아닐까 했다. 정작 화려한 잡지 페이지에서는 번쩍거리는 이미지에 눈길에 사로잡혀 가독성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작가가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5pt로 가지런히 마련한 깨알 같은 글들은 읽지 못하겠지만. 
내가 ‘패션’이라는 거추장스럽게 무거운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가 하면 그 결과물로 자신을 돌아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내 기준에 ‘패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란 신상판을 구매하기 위해 셔터가 굳건한 매장 앞에 줄은 한 번쯤 서서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주한 분들이 아닐까 했다. 그런 반면에 왜 그렇게 나는 의류브랜드에 많은 돈을 기부해왔는지도 동시에 의문이다. 맘에 들어 혹은 누군가가 입고 있어 멋져 보였던, 쇼윈도의 마케팅에 사로잡힌 그대로의 복사 붙여 넣기 착장은 매번 실망과 좌절이라는 감상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신상으로의 호기심의 악순환을 고착화할 뿐이었는데도 인간의 습관이랄까 본능은 변화할 기색이 없어 보였다. 패션브랜드는 이런 나의 패턴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가소롭게도 소비자의 엉뚱한 선택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유도하겠으나) ‘패스트패션’이라는 시장을 창조해내고 변화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고객에게 선택폭과 신속성을 그리고 무엇보다 가성비를 철저하게 제공해 주었다. 이제 와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가를 점검하기가 두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버린 미궁가운데 작가는 ‘일상복’과 ‘패션복’의 차이를 구분을 시작으로 아주 단순하게도 혹은 다수가 모른척했던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했던 욕심의 한계를 인정하길 바랐다. 사실 이 구분으로 시작한 주절거림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이지만, 왜 그렇게 한 권을 통해 끊임없이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옷에 관한 고찰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무언가를 작가는 분명하게 시사한다. (그게 끝없는 소비라든지,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진 의류노동자 혹은 의류제작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등 문제점에서 시작한 시사점에서 출발하든 무관하게) 
잘 갖춰 입는다는 것의 포상을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기준하기에 앞서,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의 편의와 감정을 우선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무엇보다 나의 취향이 무엇이었는지, 이전에 실패했던 의류들을 돌아보며 (혹은 반복하며) 이미 가진 옷들의 소재, 형태와 색감을 그리며 패턴화 하는 그런 단계말이다. 무턱대고 맘에 든다고 구매해버리는 습관을 완벽하게 버리지는 못했으나(오히려 24시간 운영되는 온라인매장의 편의성은 이를 더 확대하면 강조했지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충동이라는 과감함을 현명한 인스피레이션으로 포장된 감각으로 패션에 녹일 수 있다면 그걸로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여러 가지 룰이 생기고 그걸 또 파괴하고 새로운 자산을 형성하고 무너뜨려버리고 하는 반복된 혼동 속에서 살아남을까 아니면 흐름을 유연하게 즐기고 있을까?. 답은 없지만 답은 만들어 내야 할 거 같은데 그게 또 내 안에 있어서 불명확한 모호함의 기준은 갈피가 잡기 힘들어 보일 뿐이다. 타인의 시선이든 소비의 불안한 불편함만 없다면 뭐든 그 시작은 조금이나마 변화해 볼 수 있고 좀 나은 선택의 뚜렷함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일상복’이라는 가볍고 친근한 매일의 대상을 어떻게 마주할지 나에게는 또 다른 관점을 던져준 흥미로운 한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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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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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을 찾으며 글의 출간 시기가 언제였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처럼 배었다. 그 책이 소설이라면 작가가 활동한 기간을 대략적이나마 가늠하기 위함이고, 그게 논픽션이라면 현재를 기준으로 작가의 사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측량하기 위함이다. 작가가 후기에서 언급하듯 본인의 글을 “사적인 강연록” 비스름한 것으로 취급하는데, 한 권에 담긴 구성이며 냉철한 자기 관찰이 오히려 그 어느 작품보다 나에게는 소설처럼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었거나 인상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나에게는 너무 저명해서 닿기 힘든 작품 혹은 작가의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회피해서 경계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 이것도 누군가가 만들어낸 의견에 의심 없이 수저를 올려놓은 꼴 마냥 작가를 순수하게 문학으로 받아들였던가 하는 의문이다. 이에 반기를 들듯 조곤조곤 (강연록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매우 부드러운 화법을 쓴다) 속삭이듯 대처하는 작가의 말 가운데 나는 그동안 작가가 쌓아온 분노를 자근자근 씹어내는 열기를 느낄수록 있었다. (괜히 뜬금없이 불편해진다) 작가는 글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쌓아둔 문장을 교차하고 수정해서 원고를 최종적으로는 통일된 문장으로 정리하였다 했지만 그 기저에 깔린 “화”를 감출 길이 없어 보였다. 굉장히 일본적인 대처법이랄까? 이렇게 그동안 본인을 향한 비난과 시기를 한 권의 묶음으로 타파해 낼 수 있다니 정말인지 그는 대단한 이 시대의 작가가 아닐 수가 없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작가는 소설은 스토리에 담긴 인물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본인이 관여하는 사적인 프로세스의 영역이 작다했지만, 결국 픽션이라는 건 작가 자신의 무의식을 담고 있어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작가라는 사람을 읽고 파헤친다. 소설이 간접화법으로 작가를 드러내는 면모를 추상적으로 그려냈다면 본 책의 글과 같은 에세이는 직접적으로 작가를 드러내며 맞서기에 조금은 당혹감이 생긴다. 팬으로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작가의 사고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다 했다. 구태여 추종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작가라는 독특한 선망의 직업이 “이” 작가에게 (하도 작가가 본인은 스테레오 타입이 아님을 몇 번이고 강조하기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소화하고 있는지 세분화하였다. 이것은 작가를 지망하는 누군가에 가르침이 되는 교양서가 아니다. (마치 그것을 노리듯 교묘하게 뉘앙스를 던진 타이틀에 범죄의 추궁이 요구되지만) 작가도 후기에서 밝히듯이 모호하게 이것은 특정 대상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님을 밝혔다. 
나에게는 신기하게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벗겨내면 그 특이성이 내가 가진 직업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으며 직업으로서의 작가라기보다 작가로서의 무라카미 씨는 어떤 사람인지가 더 두드러져 보여, 혹은 나는 너무 작가주의에 몰두하여 주변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했다. (하지만 그게 또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면 일부러 방향을 틀어 나의 중력을 거슬러하지 않겠으나) 

태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한다면 모두 창작자가 아니겠는가 했다. 작가는 그러기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들어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명의 글쓰기 방식이 있다고 했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소설가로 한정 짓지 않아도 여기에 살고 있는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써 내려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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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 잡 - 왜 무의미한 일자리가 계속 유지되는가?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김병화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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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접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반의 두 챕터는 더 이상 읽기가 어려워서 집어던져 버리기는 했으나, 작가는 직장인이라면 (혹은 이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곱씹어서 생각해 볼 만한 화두를 던진다. 그의 글은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장난에서 뼈를 때리는 현실을 던지는데 그게 여간 어벙하게 타격이 크다. 
작가는 ‘불쉿 잡’이라는 생경한 개념을 독자들에게 던지며 무엇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불쉿 직업’인지 카테고리별로 이유와 현상을 사례로 들면 하나하나 점검해 나간다. 그 시작에 앞서 나는 직감했다. 작가는 정말로 ‘불쉿’에 진심이구나! 하지만, 글쎄 이미 ‘불쉿’에 길들여 있어서 나는 그게 ‘불쉿’인지 아닌지 조차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모호하기도 할 따름이고, 그에 앞서 자신을 ‘불쉿’으로 취급해버리자니 (물론 작가는 어떤 한 사람 즉 본인이 아닌 직업에 해당한 평가로 언급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자신을 구분해 분리한다는 것 차체가 혼란스럽다) 지금까지의 커리어는 무엇인지 무념의 회한에 휩싸이기는 또 싫어서 나는 마냥 그의 이야기를 회피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들고 있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을 수는 없다) 글의 중간중간 그에게 호응해서 자신의 사례를 (안타깝게도 외국국적의 직장인들에 한한 고백들이지만;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더 역설적으로 기묘했다) 자진해서 작가에게 보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우 재미있다. 작가의 여럿 얘기들 가운데 매우 흥미로웠던 건 ‘사조마도히즘’에 빗대어 회사 내의 구도를 설명한 대목이다.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대비해서 언급한 건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데, 나름 그의 논리가 비상하게 웃기다. 보통의 성적인 플레이를 즐기기 위한 관계에서는 위기감을 느꼈을 때, 멈춤을 요청하는 상호 간의 룰이 있지만, 일의 관계에서는 위압적인 상하구조만 동일하게 존재할 뿐 위급상황을 경고할 만한 동의는 마련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자연스레 실소가 인다. 작가의 그런 엉뚱하면서도 적확해 보이는 사례가 크게 내 맘에 들어왔던 것은 그의 글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누군가의 모습 과거 회사의 동료, 사건들이 소소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생각났기 때문이지 않나 했다. 직업으로서 직장인의 연기를 해야 한다면 스스로를 아무래도 ‘불쉿’이라고 치부하게 되겠지만, 동시에 어느 누구도 ‘불쉿’을 쉽게 떨쳐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작가를 포함해서 ‘불쉿’은 일을 하는 내내 자연스럽게 스멀스멀 떠오른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어느 회사나 ‘또라이’는 한 명쯤 있기 마련, 만약 ‘또라이’가 회사 내에 없는 것처럼 보이면 ‘또라이’는 바로 너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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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쇼핑을 좋아해 쏜살 문고
무라카미 류 지음, 권남희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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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영문인지 원제가 “의외로, 쇼핑 좋아해 (案外、買い物好き)”인데, 번역본에서는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라는 말로 치환하며 “남자”라는 특정 성별로 한정된 그릇에 글을 담아 버렸다. 남자는 쇼핑과는 조금 떨어진 영역에 있지 않나 하는 선입견이 뒤집힌다는 감성이 그대로 녹아난 타이틀이었는데 글들이 실린 시기와 무려 10년이 넘은 책 출간의 간극 탓인지 조금은 단언해서 주장하는 듯한 뉘앙스로 번역된 것일까. 이 작가가 풀어내가는 소비패턴이 영 여자분들에게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구매욕이랄지 (사실 작가의 구매는 성별을 떠나 유난스러운 소비방식임에는 틀림없다) 뭐 그런 여러 이유 때문이었을까? 다시 한번 강조해서 (이) 남자는 쇼핑을 좋아한다는 인식을 책 커버부터 강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상이다. 
특히나 반복적인 말투에서 이따금씩 그의 인상적인 사고가 드러난다 “이탈리아에 2년 가까이 못 가서 구두도 부족하지만~” 언제부터 구두가 일회용품이 되었던 건가? 이탈리아 구두는 2년만 신으면 지우개처럼 닳아서 삭아 없어지는 걸까? (이탈리아 구두는 안 신어봐서 토통 상상력을 동원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탈리아에서 구매하는 셔츠처럼 유달리 독특한 집착이나 만큼 나카타 선수에 대한 애정도 에세이의 곳곳에 드러난다. 그의 경기를 보러 이탈리아에 가는 건지 셔츠를 사러가는 김에 경기를 보게 되는 건지 주객이 전도되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행동도 엉뚱하다. 그럼에도 나카타 선수가 작가에게는 본인의 작품에서 스토리라인의 재료가 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주는 것임에는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축구에 관심이 1도 없는 나에게는 이게 뭔 얘기인가 했다) 간간이 놀러 온 서울에 대한 이야기도 반가웠고 (딱히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다 있나 하는 또 다른 경험도 엿보았다.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작가는 어떻게 돈을 쓰며 살고 있나 호기심 가득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싶다면 쉽게 읽을 수 있는 한 권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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