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인을 찾으며 글의 출간 시기가 언제였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처럼 배었다. 그 책이 소설이라면 작가가 활동한 기간을 대략적이나마 가늠하기 위함이고, 그게 논픽션이라면 현재를 기준으로 작가의 사고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측량하기 위함이다. 작가가 후기에서 언급하듯 본인의 글을 “사적인 강연록” 비스름한 것으로 취급하는데, 한 권에 담긴 구성이며 냉철한 자기 관찰이 오히려 그 어느 작품보다 나에게는 소설처럼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었거나 인상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나에게는 너무 저명해서 닿기 힘든 작품 혹은 작가의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회피해서 경계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 이것도 누군가가 만들어낸 의견에 의심 없이 수저를 올려놓은 꼴 마냥 작가를 순수하게 문학으로 받아들였던가 하는 의문이다. 이에 반기를 들듯 조곤조곤 (강연록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매우 부드러운 화법을 쓴다) 속삭이듯 대처하는 작가의 말 가운데 나는 그동안 작가가 쌓아온 분노를 자근자근 씹어내는 열기를 느낄수록 있었다. (괜히 뜬금없이 불편해진다) 작가는 글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쌓아둔 문장을 교차하고 수정해서 원고를 최종적으로는 통일된 문장으로 정리하였다 했지만 그 기저에 깔린 “화”를 감출 길이 없어 보였다. 굉장히 일본적인 대처법이랄까? 이렇게 그동안 본인을 향한 비난과 시기를 한 권의 묶음으로 타파해 낼 수 있다니 정말인지 그는 대단한 이 시대의 작가가 아닐 수가 없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작가는 소설은 스토리에 담긴 인물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본인이 관여하는 사적인 프로세스의 영역이 작다했지만, 결국 픽션이라는 건 작가 자신의 무의식을 담고 있어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작가라는 사람을 읽고 파헤친다. 소설이 간접화법으로 작가를 드러내는 면모를 추상적으로 그려냈다면 본 책의 글과 같은 에세이는 직접적으로 작가를 드러내며 맞서기에 조금은 당혹감이 생긴다. 팬으로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작가의 사고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겠다 했다. 구태여 추종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작가라는 독특한 선망의 직업이 “이” 작가에게 (하도 작가가 본인은 스테레오 타입이 아님을 몇 번이고 강조하기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소화하고 있는지 세분화하였다. 이것은 작가를 지망하는 누군가에 가르침이 되는 교양서가 아니다. (마치 그것을 노리듯 교묘하게 뉘앙스를 던진 타이틀에 범죄의 추궁이 요구되지만) 작가도 후기에서 밝히듯이 모호하게 이것은 특정 대상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님을 밝혔다. 나에게는 신기하게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벗겨내면 그 특이성이 내가 가진 직업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으며 직업으로서의 작가라기보다 작가로서의 무라카미 씨는 어떤 사람인지가 더 두드러져 보여, 혹은 나는 너무 작가주의에 몰두하여 주변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했다. (하지만 그게 또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면 일부러 방향을 틀어 나의 중력을 거슬러하지 않겠으나) 태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한다면 모두 창작자가 아니겠는가 했다. 작가는 그러기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들어 100명의 작가가 있다면 100명의 글쓰기 방식이 있다고 했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소설가로 한정 짓지 않아도 여기에 살고 있는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써 내려가고 있는 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