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책의 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

1. 개인적으로 만나,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가 있다면?

닉 혼비. '소설가' 닉 혼비는 잘 모르겠고 인생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원하지도 않지만, "잉글랜드는 나의 팀이 아니다."라고 말한 위트 있는 '축구팬' 닉 혼비와 대화를 하면 꽤나 즐거울 것 같다. 그가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가정하에 만난다면, "아스날이 역사적인 무패우승을 달성했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라거나 "아스날의 아름답지만 반드시 승리를 담보하지는 못하는 경기 스타일과 아름답지는 않지만 대체로 승리를 담보하는 경기 스타일 중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들을 하고 싶다.

2. 단 하루, 책 속 등장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으세요?

<구운몽>에 나오는 양소유의 삶. 2처 6첩을 거느리고 부귀공명을 얻는 삶이란 남아라면 한 번쯤 꿈꿔볼 만한 삶이다. 다만, 양소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행여나 성진이 꿈을 깨버리면 이쪽도 산통이 다 깨지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하루 웬종일 불경만 외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3.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완전히 달랐던, 이른바 ‘낚인’ 책이 있다면?

나는 최근 십수 년 간, <퍼거슨 리더십>보다 더 실망스런 책은 읽은 기억이 없다.

4. 표지가 가장 예쁘다고,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은?

기본적으로 표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고 내 심미안이란 것도 형편없지만, <야구란 무엇인가>가 괜찮았다. 하얀 바탕에 야구공 하나가 박힌 게(야구공은 엠보싱(?) 처리가 되어 있다!) 심플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보였다. 책장만 널찍하다면 앞표지가 나오게 꽂아 놓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였다. 게다가 내용까지 최고!
반면에ㅡ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ㅡ그리 산뜻한 느낌은 아닌 축구 경기장을 바탕에 깔고 불에 타는 듯한 축구공 하나가 박힌 <피버 피치>의 표지는 좀 아니었다. 솔직히 그런 표지를 가진 책의 제목으로는 <불꽃 슈터 통키> 정도가 어울리지 않나 생각한다.


 
 

 

 

 

 

 


5. 다시 나와주길, 국내 출간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사이먼 쿠퍼가 지은 <축구 전쟁의 역사(원제: Football against the enemy)>. 나는 이 책을 대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는데, 나 말고는 이 책을 아무도 안 읽는 것 같았다. 그때 이미 이 책은 품절 상태라 살 수는 없었고 도서관에는 한 3권쯤 있어서, 나는 이 책을 소유하고픈 욕심에 일단 이 책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도서관 측에 변상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희귀본'은 정가의 몇 배 이상을 변상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혹 '품절본'도 '희귀본'에 속할까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대학에 갖다 바친 돈을 생각하면 이런 아무도 안 읽는 책 한 권쯤은 내게 그냥 줄만도 한데, 유감스럽게도 대학이란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이 다시 국내에 출간될 일은 없을 것 같다. 여전히 이 책을 읽을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저 이제는 사이먼 쿠퍼의 다른 책이나마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랄 뿐이다.

 

 

 

 

 

 

 


6. 책을 읽다 오탈자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내가 글을 쓸 때 오탈자를 주의하는 만큼 오탈자를 쉽게 찾는 편이긴 한데, 그렇다고 특별히 어떤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꽤 마음에 들었던 책에 오탈자가 많다면 출판사에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물론, 실제로 그러지는 않는다).

7. 3번 이상 반복하여 완독한 책이 있으신가요?

하루키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3번 가량 읽었던 것 같다. 이런 일은 무척 이례적인 경우인데, 사실 그렇게나 읽었던 이유는 그 책이 무지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이후, 독서에는 그닥 관심이 없던 내가 하루키의 책 몇 권을 의욕적으로 찾아 읽었었는데,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읽고 나서는 외려 하루키를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고, 나는 그 뜻밖의 변심에 나름대로 해명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다. 하지만 끝내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쯤 해도 어떤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제 그것으로 되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책을 한 3번쯤 읽은 이유는 헤어지는 상대에 대한 마지막 예우였다고 해도 좋겠다.



 

 

 

 

 

 


8. 어린 시절에 너무 사랑했던, 그래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으로는 기껏해야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 시리즈 정도인데, 이것들은 지가 직접 읽으면 모를까 별로 읽어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질문을 조금 바꿔서, 내 아이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책으로 나는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를 꼽겠다.
나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기에 나의 아이도 축구를 좋아하길 바라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야구에 대해서도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야구를 모른다면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가 조금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며, 말할 필요도 없이 <터치>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9.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길이가 긴) 책은?

단권으로 치면 아마도 <야구란 무엇인가>가 가장 두꺼웠던 것 같다. 단권이 아니어도 괜찮고 만화책이어도 괜찮다면 <메이저>. 나는 <메이저>를 52권쯤까지 본 것 같은데, 지금 검색해 보니 <메이저>는 73권까지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다. 아마도 그 책을 모으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언젠가 파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모을 생각은 없으니 한 200권을 넘겨도 상관은 없지만, 아무쪼록 내가 죽기 전까지는 완결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51권까지 나온 <열혈강호>도).

10. 이 출판사의 책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딱히 좋아하는 출판사는 없지만, 굳이 꼽으라면 <돌베개>와 <한겨레출판>의 책들이 좀 더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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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퍼컷 - 신성 불가침의 한국 스포츠에 날리는 한 방
정희준 지음 / 미지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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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나온 경기를 나는 생방송으로 지켜 보았었다. 김연아가 아니었다면 평생 볼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을, 그러니까 나는 순전히 김연아 덕택에 약간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유심히 지켜 보았던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금메달을 땄을 때에는 확실히 조금 감동적이었다. 김연아가 경쟁자들에 비해 기술적으로 얼마나 탁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연기는 충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은 가장 좋았던 건 어쩌면 그냥 '금메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녀가 앞으로 혹 '메달권'과 거리가 먼 선수가 되더라도 그렇게 유심히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을 볼 일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섣불리 긍정적인 답변을 내어놓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물론 '한국' 국적을 지닌 탁월한 재능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각고의 노력 끝에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따낸다는 스토리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금메달을 따낸 선수를 향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팬들의 열광 또한 대단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돌리면 '금메달'과 대비되는 까닭에 더욱 불편한 장면들도 이내 눈에 띈다. 이를테면, 환한 표정으로 환대를 받으며 돌아오는 '금메달' 선수들과, 그중에서도 유독 찬란히 빛나는 '세계 기록 보유자' 김연아 선수, 그리고 그들을 위해 마련된 기자회견과 김연아의 미래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 공세. 그러나, 함께 올림픽에 참가했던, '금메달'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외려 미래가 더욱 만만치 않을 그 많던 선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설마하니 그들은 캐나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

나 역시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 스포츠가 소비되는 방식은 대단히 '反스포츠적'이다. '스포츠맨 정신'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한국에서는 승부와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그 과정의 정당성과 가치는 간과되기 일쑤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과 권위주의는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압력 하에서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고,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들의 퇴로는 완전히 막혀 있다. 더욱이 당연한 수순처럼 스포츠가 '국가주의'와 결합하면, 이제 스포츠는 스포츠를 넘어 종종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면서 스포츠는 더 이상 즐거움이나 여가를 위한 창조적이고 흥미로운 '놀이'가 아닌, 단지 '국가'를 위한 강압적이고 도구적인 '수단'으로 전락하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스포츠에 남는 건, 종래에는 그저 '금메달'이라는 이름의 '강박'일 뿐이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면서 그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어려움이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대~한민국'으로 치환해버리는 데 대해 불편해 하는 저자는 이러한 '반스포츠적'인 현실에 대해 날을 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 자신도 스포츠계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경기 단체, 팀, 지도자, 그리고 일부 기자들이 공고하게 얽혀있는 스포츠계를 '카르텔'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일종의 내부고발자로서의 역할을 자청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한국 스포츠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국가주의', '집단 몰입', 그리고 '폭력'을 들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그래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반스포츠적'인 장면들에 여지없이 '어퍼컷'을 날린다.

스포츠라면 종목을 막론하고, 아울러 非스포츠 영역까지도 아우르는 저자의 글은 '어퍼컷'이라는 책 제목이 부끄럽지 않게 그야말로 거침이 없어서 읽노라면 절로 통쾌한 마음이 들 정도인데, 이건 책의 소제목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가령 <언론의 박지성 장사, 그 불편한 진실>, <촛불 정국, 보이지 않는 스포츠 스타들>, <MLB 제국주의에 열광하는 한국>, <올림픽은 개고생이다>, <한국 스포츠 최고의 명곡, "금메달 타령">,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등등, 소제목들이 시사하는 바는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고, 실제로 내용 역시 실명 비판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사뭇 공격적이고 논쟁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와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 그리고 다채로운 사례의 제시를 통해 저자의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특히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기 위한 자치단체장들의 노력에 대해 그 부당성을 논박하는 대목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모든 논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몇몇 대목들에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또한 저자의 "들여다보기"가 지나치게 '반스포츠적'인 불편한 장면들에 집중되는 탓에, 도리어 그것이 그저 '스포츠'를 순수하게 '스포츠'로서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측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자의 "들여다보기"는 '금메달'에 환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금메달' 뒤에 가리어진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 캐나다 동계 올림픽에서 금빛 역주를 펼쳤던 쇼트트랙 선수들에 대한 환호 뒤에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선수선발과정이 있었던 사례에서도 보듯, 스포츠계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저자는 다만 그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자고 역설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외려 스포츠를 순수한 스포츠로 남겨 두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시원하고 통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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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원정대의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조금쯤 관대한 마음이었을 때 눈에 띈 이 문구는, 이내 관대한 마음을 우주 밖으로 날려버렸다. 이 문구를 전면에 내세운 배너 광고 속에는 무려 김태희가 붉은 셔츠를 입은 채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바뀔 건 크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불만과 시기와 짜증은 더욱 증폭되었다고 해야겠다. 설마하니 김태희가 남아공 원정대의 동료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남아공 원정대는 김태희의 옆자리에서 함께 응원이라도 한단 말인가. 설사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더욱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 원정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얘기가 될 테니까. 굳이 배너를 클릭해서 자세한 사항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건 쉽사리 알 수 있는 일이다. 시간도 돈도, 게다가 열정도 부족한 나는 남아공 원정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나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그따위 발칙한 문구로 사람을 현혹하는 빌어먹을 관계자에게 항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그냥 조연으로 데리고 가면 안 되겠니?"

"남아공으로 가자!"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2010년이 시작되고서 최소한 두 번 이상 주변에 '남아공으로 가자.'고 호기롭게 외쳤었는데, 그 중 두 번의 경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 번은 추운 겨울에 공을 차다가 정신조차 얼어버렸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두 잔쯤 들이부어서 정신이 해롱거렸을 때였다. 요컨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였단 얘기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도 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내뱉은 말이, 2010년의 새해가 밝자 실제로 남아공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지도 않고 '남아공의 해가 밝았다.'는 상투적 문구를 써댄 어느 언론만큼이나 진실성이 없고, 2010년이 호랑이의 해라는 이유만으로 '올해는 호랑이가 쥐를 잡는 형국'이라고 한 어느 네티즌의 기대만큼 신빙성이 없으며, 역시 같은 이유로 '호랑이 엠블럼을 단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이다.'는 어느 축구팬의 믿음만큼이나 허황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남아공으로, 갈 수, 없다.

"남아공이냐 캐나다냐, 그것이 문제로다."

솔직하고도 단호하게 말해서, 실상 내게 남아공과 캐나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비록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캐나다에서는 김연아가 환상적이고도 우아한 연기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선택할 것은 무조건 남아공이었다. 심지어 설령 시간이 제법 흘러, 한국팀이 3전 전패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참혹한 운명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확고한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선택만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제로 엄마가 내게 어느 곳을 원하느냐고, 백화점 영수증의 경품 응모권을 손에 들고 물어왔을 때,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남아공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흘러서 가장 명명백백히 밝혀진 건, 내가 어느 곳이든 갈 수 없다는 가혹한 현실이었을 뿐이다.

"남아공은 신포도다."

시간도 돈도 열정도, 게다가 행운도 없는 사람에게 남는 건, 값싼 자기 위안뿐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행운마저 내 것이 아님을 알고 난 이후부터, 나 스스로를 위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남아공 월드컵이 목전에 다가오면서 남아공이 지닌 매력들이 더불어 드러나면, 나는 그것이 실은 종종 빛좋은 개살구임을 부득불 확인하고는 묘하게 안도하곤 했다. 가령, 백상어가 득실한 곳에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케이프 타운의 간스바이나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파도가 친다는 제프리만의 슈퍼큐브스가, 알고 보면 경력 있는 다이버나 서퍼 전문가들이나 즐길 만한 곳이라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지간해서는 가봤자 이용도 못할 '최고'의 장소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하고 나는 꽤나 기뻐했더랬다. 특히 남아공에서는 연간 1만 5,000명이 도로에서 비명횡사한다는 정보는, 그 아찔한 수치와 나의 비도덕적인 접근 태도에도 불구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위안과 해답이 되어 주었다. 말하자면 남아공은 신포도이고, 그러므로 나는 남아공에 가지 않겠다고, 나는 그럭저럭 납득했던 셈이다.

"남아공 월드컵 단독중계가 웬말이냐!"

그러나 그러한 가엾은 자기 위안 속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기대와 기쁨은 물론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라면서도 꽤 자주 오는 잡상인도 아닌, 달이면 달마다 으레 발간되는 잡지도 아닌, 작년에 왔다가 죽지 않고 돌아온 각설이도 아닌, 무려 4년 만에야 겨우 한 번 만나는 축구제전이 꼭 직접 가서 보지 못한다고 어디 남의 일이겠는가. 오히려 발전된 축구중계 기술과, 어쩌면 또 다시 호흡을 맞출지도 모를 김성주-차범근 콤비의 해설에 대한 기대와, 무엇보다도 보고 싶은 경기를 골라 볼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의 기회는 직접 남아공에 가는 축구팬들이 누리지 못하는, 오직 남은 자들만의 호사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남아공 월드컵을 단독중계하려는 SBS의 야심은 국내에 남은 축구팬들의 마지막 위안조차 가볍게 날려버릴 태세다. 물론 SBS는 경제논리를 들먹이며 법적 영역에서 똬리를 틀고 있지만, 그들은 그들이 건드리는 것이 다름 아닌 축구팬의 위안이라는 마지막 보루이며, 따라서 그것은 협상과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임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남아공에서 기차가 떠난다."

원래 이주 노동자들이 불렀다가 이제 남아공 대표팀의 주제가가 되었다는, 경쾌한 증기기관차 리듬의 쇼쇼로자(Shosholoza)는 이렇게 끝난다고 한다. "Stimela siphume South Africa(남아공에서 기차가 떠난다)" 분명히 밝혀두건대, 설령 끝내 SBS가 월드컵 단독중계를 고수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남아공 행 기차'를 타기 위해 이번 월드컵에서 SBS를 차마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잔치가 없는 한 SBS와의 이별은 또한 필연적이고, 그렇다면 SBS가 고민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도 자명하다. SBS는 남아공 행 편도 열차에서 홀로 안락함을 도모하고자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도모해야 할 것은 남아공의 기차가 아닌, 그들의 기차로 축구팬들을 끌어 모으는 일이다. 남아공의 기차는 결국엔 멈추게 마련이고, 축구팬들이 다른 기차로 다시 갈아타야 할 때가 기어코 돌아올 테니까. 과연 그러한 때가 와도, 축구팬의 불만과 비판을 외면하는 SBS의 기차로 축구팬들이 기꺼이 갈아탈 것을 SBS는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쩐지 쇼쇼로자의 마지막 노랫말이 남아공 월드컵 이후, SBS의 결말을 예고하는 듯 들린다. "남아공에서 기차가 떠난다." 물론 이때의 '기차'란, '축구팬의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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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블라니(Jabulani). 남아공 공용어 중 하나인 줄루어로 '축하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축구공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라는 영예로운 수식어에 걸맞게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 자블라니는 FIFA에서 정해 놓은 뭇 기준들을 우수하게 통과했음은 물론이고, 공을 이루는 패널(조각)의 수를 줄여 공의 불규칙성은 감소시킨 반면 안정성과 정확성은 향상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블라니는 구의 형태에 가장 근접하면서도 탄력성은 강화되어 더욱 빠르고 강한 슈팅을 가능케 한다. 그러니까 자블라니는 화려한 월드컵 무대에서 골문을 출렁이며 축제를 '축하할' 준비를 모두 마친 셈이다. 하지만, 이 최첨단 축구공은 과연 진정으로 그저 축하만 할 일일까? 



실제로 자블라니를 접해 본 선수들의 반응에서 느껴지는 것은 일단 '당혹스러움'이다. K리그의 어느 선수는 자블라니의 탄력성이 너무 강해서 마치 탱탱볼을 차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전하고, A매치에서 자블라니로 경기를 뛰었던 대표팀 선수들도 자블라니의 적응이 쉽지 만은 않은 일이었음을 토로했다. 그리고 허정무 감독은 이러한 자블라니 적응의 어려움을 감안해 프로축구연맹에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 만이라도 K리그에서 한시적으로나마 자블라니를 사용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새로운 축구공이 공인구로 지정되면서 나타난 이러한 일련의 반응들은 일견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의아한 느낌도 없지 않다. 기본적으로 축구공의 진화는 대체로 빠르고 강력한 슈팅이 가능해지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발전해왔는데, 과연 그것만이 능사인지에 대해서는 몇몇 의문을 남긴다. 슈팅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탄력성이 강조되면서 정작 공을 정교하게 컨트롤하는 일이 어려워진다면, 과연 그때도 여전히 세밀한 패스 게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인지. 공에 회전력을 가하는 것이 좀 더 어려워지더라도, 그저 빠르게만 날아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자블라니'로 대표되는 기술의 진화는 과연 오직 '축구'를 위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월드컵 역사에 있어서 이른바 '기술'이 상당한 공헌을 했던 유명한 사례로는 1954년 월드컵에서의 '베른의 기적'을 들 수 있을 듯하다. 당시 결승에 올랐던 서독의 결승전 상대는 이미 조별 예선에서 3대8의 대패를 안겨주었던, 그리고 약 4년 여 간 무패를 달리던 최강의 팀 헝가리였다. 하지만 서독의 헤르베르거 감독은 결승전을 앞두고 승부의 향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만약 내일 비가 온다면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결과는 익히 알려진 대로 비가 내리는 스위스 베른에서 서독이 3대2로 승리했고, 이 승리의 비결 중 하나는 잔디의 상태에 따라 뽕을 바꿔 끼울 수 있는, 나사식 뽕이 장착된 아디다스의 축구화에 있었다. 그것은 비단 독일의 승리만이 아닌, 아디다스와 나아가 기술의 승리이기도 한 것이었다.

물론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기술이 특정 팀의 승리를 위한 비밀병기로 기능했다면, 오늘날의 기술은 어느 팀에나 공평하게 그 혜택을 돌아가게 만든다. 유럽의 부유한 국가의 선수에서부터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가의 선수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월드컵 무대에서 자웅을 겨룰 때 기술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제 기술은 과거와 달리 좀 더 거시적이고 큰 변화에 관여를 하는 쪽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단순히 특정 팀의 조그마한 이점을 위해서가 아닌, 축구 그 자체의 변화에 기술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자블라니로 대표되는 축구공뿐만이 아니라, 최첨단 축구화를 살펴보면 기술의 영향력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아디다스의 설명에 따르면 아디다스의 프레데터 익스 축구화는 이전 모델에 비해 7%의 슈팅 파워 향상을 가져옴과 동시에 컨트롤과 정확성까지도 향상시키고,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나이키의 토탈90 레이저3 축구화는 원하는 킥의 종류에 따라서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심지어 미즈노의 웨이브 이그니터스 축구화는 폴리우레탄 패널을 배치하여 축복 받은 소수의 전유물인 것처럼만 여겨지는 '무회전 슛'을 가능케 한다고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축구화를 신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축구공을 차며, 특히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유니폼을 입으면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아디다스가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발표한 그 이름도 '최첨단 기술스러운' 테크핏 파워웹 저지는 기존의 기능성 스포츠웨어와 유니폼의 접목을 시도해 무게는 더 가볍게 하면서도 "폭발적인 파워, 가속성, 지구력을 향상시키고, 근육 떨림 감소, 자세와 신체 감각, 안정성을 높이는 등 근육 에너지에 포커스를 맞춰 선수들이 자기 능력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한다. 아디다스 측은 그 구체적인 수치까지도 제시했는데, 그들의 말을 그대로 믿자면 이 저지를 착용하면 선수들은 5.3%의 파워와 4%의 점프 높이, 그리고 1.1%의 스피드와 0.8%의 지구력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첨단 기술의 효과 측면에 있어서 다른 회사의 제품이라고 크게 뒤떨어지지 않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이러한 특정한 기술적 효과는 현시점에서도 충분히 놀랍지만, 정말로 흥미로우면서도 우려가 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가령, 최대한 낮춰 잡아서 매년 축구공이 1%씩 빨라지고, 축구화가 1%의 파워 향상을 가능케 하고, 또 기능성 의류가 1%의 파워 향상을 가능케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현재 정상급 선수의 슈팅 속도가 현재의 1.5배 혹은 2배가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나로서는 도저히 계산하기 어렵지만, 생각만큼 그리 먼 훗날의 일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기술의 진화가 더욱 속도를 내고 1%로 낮춰 잡은 수치가 좀 더 커진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축구는 더 이상 오늘날의 축구와 같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이것은 상당히 섣부른 이야기이지만, 첨단 수영복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진 수영의 경우에서 보듯, 기술의 진화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고 놀랍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은 둥글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베른의 기적'을 창출했던 헤르베르거 감독의 이 격언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까닭은, 자블라니가 역대 그 어떤 축구공보다도 가장 완벽한 구의 형태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승부의 향방은 누구도 알 수 없다라는 의미였을 그 격언은 이제 기술의 진화 덕택에 '진짜로' 둥근 공의 시대를 맞이하며, '둥근 공'을 가능케 한 최첨단 '기술'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적응하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한 요인이라는 의미처럼 들린다. 물론, 아마도 2010년 월드컵도 지난 대회가 언제나 그랬듯 멋진 경기로 가득할 테고, 그것은 기술의 화려한 진화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전혀 꿀릴 것 없는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 덕택일 거라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혹 이번 대회가 그 어느 대회보다도 많은 이변으로 점철된다면 거기에 자블라니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임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자블라니. 이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진짜 둥근 공이 정말로 그저 축하할 만한 일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축구에 있어서 기술의 진화가 초래하는 영향력과 그것이 지향하는 방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고, 어쩌면 이번 대회의 자블라니는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대략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지도 모른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 자블라니는 그저 '축하하다'라는 의미로도 충분하겠지만, 혹 그렇지 않다면 자블라니가 의미하는 것은, 아마도 '기술의 반란'이 아닐까.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축하와는 거리가 먼 의미임은 확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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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
폴 호프만 지음, 신현용 옮김 / 승산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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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의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생애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ㅡ폴 에어디쉬는 1913년에 도착해서 누구에게도 포획되지 않았고, 당연한 귀결로 해방된 적도 엡실런을 둔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두뇌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의 언제나 열려진 채 'SF(독재자)의 책에 있는 바로 그것'을 알고자 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는 결코 사망을 맞지 않고서 1996년 떠났다.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면 일단 안심해도 좋다. 위에서 알듯 모를 듯한 표현들은 에어디쉬가 즐겨 사용한 표현들을 이용한 것인데(가령, 수학에서 지극히 작은 숫자를 의미하는 엡실런은 아이를, 두목과 사망은 각각 아내(혹은 남편)과 수학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표현들은 못 알아듣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이건 단순히 익숙지 않은 단어의 사용이 문제가 아니다.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책에 언급된 발언을 인용하자면, 에어디쉬와 공동연구를 한 바 있는 수학자 해롤드 데이븐 포트의 미망인은 남편과 에어디쉬의 기괴한 대화 장면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물론 그들은 미쳤지요." 미친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 명백하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대개의 수학자들이 아마도 조금쯤 미친거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1과 자신을 제외하고는 어떻게도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소수'를 찾기 위해 수십만, 수백만 자릿수를 헤매고 다니는 그들을 보라. 2를 3,021,377제곱하여 얻은 수에서 1을 뺀 수가 '소수'인데 대체 어쩌란 말인지. 설마하니 하필이면 딱 그 수만큼의 빵이 있다면 결코 한 사람 당 하나씩 외에는 달리 나누어줄 방법이 없을까봐 미리 걱정이라도 할 참이란 말인가! 수백 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또 어떤가. "일반적으로 2보다 큰 어떤 거듭 제곱도 두 개의 같은 거듭 제곱의 합으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대관절 왜 증명해야 하는가.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수학자들이 조금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미친 사람이 하는 일에는 별다른 이유가 필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책 속의 소제목에서 가져온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이 책의 원제가 실은 '숫자만 사랑한 남자(The Man Who Loved Only Numbers)'라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이 책은 약간 미친 수학자들 중에서도 유별난, 그러나 또한 그만큼 뛰어난 수학자였던 폴 에어디쉬의 생애를 주로 좇으면서 그와 관련된 (미친) 수학자들 그리고 그들이 다룬 (미친) 수학적 문제들도 아울러 언급하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미친) 이야기들은 종종 재미있고 또 경이적이다. 가령, 콜럼비아 대학의 프랭크 넬슨 콜이 1903년, 지난 250여 년 동안 일반적으로 소수로 믿어져왔던, 2의 67거듭 제곱에서 1을 뺀 수가 193,707,721과 761,838,257,287의 곱으로 나타내짐을 담담히 칠판에 쓴 일화에서는 나도 모르게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고, 미친 짓처럼만 보였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마침내 증명되는 역사적 과정도 대단히 흥미진진했다. 만약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끝내 증명이 되지 않았다면, 나라도 그 정리를 풀기 위해 이제라도 수학에 투신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라는 건 조금 뻥이지만, 파울 볼프슈켈이라는 사람은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고 자살을 생각했다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접하고는 흥미를 느껴 그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상당한 금액의 상금을 걸었다고 한다).

"미쳐야 미친다."는 표현은 수학자들에게 특히 유효하다. 책 속에서 폴 에어디쉬가 말하듯이, 무엇보다도 수학자들은 "무한과 맞서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이유로 종종 그들이 하는 일들은 일상생활과는 더욱 더 멀어지며 그저 미친 짓으로 보이는 듯도 하지만, 또한 그런 이유로 그들은 숫자를 더욱 더 사랑한다. 이 책은 그렇듯 숫자를 사랑하여 미친 사람들의 세계를 따뜻하고 세심하며 또한 유머러스하게 담아내었으며, 수학적 주제에 대한 친절한 설명으로(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그런 건 대충 넘어가도 별로 문제될 건 없다) 독자들이 그 세계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니까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러한 진지함과 치열함이 있는 한 미치는 것은 분명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인 것이다.

A graduate student at Trinity    트리니티 대학의 한 대학원생이
Computed the square of infinity    무한의 제곱을 계산해 보았네
But it gave him the fidgits    그러나 그 숫자를 써나가다가
To put down the digits,    그만 현기증이 나버려서 그는
So he dropped math and took up divinity    수학을 그만두고 신학을 하게 되었네

ㅡAnonymous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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