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퍼컷 - 신성 불가침의 한국 스포츠에 날리는 한 방
정희준 지음 / 미지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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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나온 경기를 나는 생방송으로 지켜 보았었다. 김연아가 아니었다면 평생 볼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을, 그러니까 나는 순전히 김연아 덕택에 약간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유심히 지켜 보았던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금메달을 땄을 때에는 확실히 조금 감동적이었다. 김연아가 경쟁자들에 비해 기술적으로 얼마나 탁월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연기는 충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은 가장 좋았던 건 어쩌면 그냥 '금메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녀가 앞으로 혹 '메달권'과 거리가 먼 선수가 되더라도 그렇게 유심히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을 볼 일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섣불리 긍정적인 답변을 내어놓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물론 '한국' 국적을 지닌 탁월한 재능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각고의 노력 끝에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따낸다는 스토리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금메달을 따낸 선수를 향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팬들의 열광 또한 대단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돌리면 '금메달'과 대비되는 까닭에 더욱 불편한 장면들도 이내 눈에 띈다. 이를테면, 환한 표정으로 환대를 받으며 돌아오는 '금메달' 선수들과, 그중에서도 유독 찬란히 빛나는 '세계 기록 보유자' 김연아 선수, 그리고 그들을 위해 마련된 기자회견과 김연아의 미래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 공세. 그러나, 함께 올림픽에 참가했던, '금메달'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외려 미래가 더욱 만만치 않을 그 많던 선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설마하니 그들은 캐나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

나 역시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 스포츠가 소비되는 방식은 대단히 '反스포츠적'이다. '스포츠맨 정신'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한국에서는 승부와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그 과정의 정당성과 가치는 간과되기 일쑤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과 권위주의는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압력 하에서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고, '선수'로서 성공하지 못하는 이들의 퇴로는 완전히 막혀 있다. 더욱이 당연한 수순처럼 스포츠가 '국가주의'와 결합하면, 이제 스포츠는 스포츠를 넘어 종종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면서 스포츠는 더 이상 즐거움이나 여가를 위한 창조적이고 흥미로운 '놀이'가 아닌, 단지 '국가'를 위한 강압적이고 도구적인 '수단'으로 전락하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스포츠에 남는 건, 종래에는 그저 '금메달'이라는 이름의 '강박'일 뿐이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면서 그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어려움이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대~한민국'으로 치환해버리는 데 대해 불편해 하는 저자는 이러한 '반스포츠적'인 현실에 대해 날을 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 자신도 스포츠계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경기 단체, 팀, 지도자, 그리고 일부 기자들이 공고하게 얽혀있는 스포츠계를 '카르텔'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일종의 내부고발자로서의 역할을 자청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한국 스포츠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로 '국가주의', '집단 몰입', 그리고 '폭력'을 들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그래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반스포츠적'인 장면들에 여지없이 '어퍼컷'을 날린다.

스포츠라면 종목을 막론하고, 아울러 非스포츠 영역까지도 아우르는 저자의 글은 '어퍼컷'이라는 책 제목이 부끄럽지 않게 그야말로 거침이 없어서 읽노라면 절로 통쾌한 마음이 들 정도인데, 이건 책의 소제목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가령 <언론의 박지성 장사, 그 불편한 진실>, <촛불 정국, 보이지 않는 스포츠 스타들>, <MLB 제국주의에 열광하는 한국>, <올림픽은 개고생이다>, <한국 스포츠 최고의 명곡, "금메달 타령">,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등등, 소제목들이 시사하는 바는 어느 것 하나 가볍지 않고, 실제로 내용 역시 실명 비판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사뭇 공격적이고 논쟁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와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 그리고 다채로운 사례의 제시를 통해 저자의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특히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기 위한 자치단체장들의 노력에 대해 그 부당성을 논박하는 대목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모든 논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몇몇 대목들에서는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또한 저자의 "들여다보기"가 지나치게 '반스포츠적'인 불편한 장면들에 집중되는 탓에, 도리어 그것이 그저 '스포츠'를 순수하게 '스포츠'로서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측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저자의 "들여다보기"는 '금메달'에 환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금메달' 뒤에 가리어진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 캐나다 동계 올림픽에서 금빛 역주를 펼쳤던 쇼트트랙 선수들에 대한 환호 뒤에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선수선발과정이 있었던 사례에서도 보듯, 스포츠계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저자는 다만 그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자고 역설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외려 스포츠를 순수한 스포츠로 남겨 두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은, 시원하고 통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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