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저런 사정을 지닌 세 청춘남녀가, 이렇게 저렇게 얽혀 팀을 이루고, 이러쿵 저러쿵 10억엔을 훔쳐낼 모의를 해서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밤중의 도쿄를 좌충우돌한다, 라는 게 바로 <한밤중에 행진>의 큰 줄거리라고 한다면, 이 책은 제법 흥미진진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공교롭게도 25살의 동갑내기인 그 세 청춘남녀라는 사람들이, 2류 양아치에 불과하면서도 가끔은 요령 있는 모습을 보이는 요코하마 겐지와, 좀 모자라보이기는 하지만 때때로 놀라운 집중력과 머리회전을 자랑하는 미타 소이치로와, 마지막으로 도도하고 세련된 도시 미인의 이미지이지만 알고 보면 여리고 착한 구석이 있는 구로사와 치에라고 한다면, 개성 있고 톡톡튀는 등장인물들 때문에라도 이 책이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10억엔이라는 거금을 두고 확실히 어설픈 3인조와, 무섭고 흉폭하지만 역시 좀 어설퍼 보이는 야쿠자와, 냉철하고 과감하지만 그래도 또한 어설픈 중국인 2인조와, 전혀 어설프지 않지만 결국 어설플 수밖에 없는 사기꾼이 서로 쫓고 쫓기며 소소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게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 될 게 틀림없으리라.

물론, 실제로ㅡ어느 정도는ㅡ그렇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과 반전들은 분명 이 책의 장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야, 하는 허탈하고 심드렁한 느낌만이 더욱 진하게 남는다. 그야 물론 10억 엔쯤 되는 돈이 목표라면 이유 따위야 어떻든, 상대가 야쿠자든 사기꾼이든 간에 한바탕 난리를 칠 법도 하지만, 그저 '돈을 갖고 튀어라.'가 이 책이 말하는 전부란 말인지. 대관절 25살 청춘이란,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질주하는 것만으로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란 말인지. 달리 어떤 '메시지' 혹은 '공감'을 얻지 못하니, 흥미진진한 소재와 이야기도 갈수록 무덤덤해지고,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과도 공명하지 못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도 더 이상 긴장을 야기하지 못한다. 하긴, 그러고 보면 이미 25살이 지난 지가 오래고, 딱히 25살 때라고 한들 "두려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 질주하는 청춘"이었다기보다는, 두렵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던 미적지근한 청춘이었으니, 쉽게 책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순전히 내 탓인지도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이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남쪽으로 튀어>의 오쿠다 히데오를 기대해서였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괜스레 실망도 커진 듯하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남쪽으로 튀어>에 비하면 이 책은 한참 못 미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6-22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창 유럽 축구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던 작년 4월의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어느 축구팬이 1년이 지난 올해 5월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그는 깨자마자 으레 그렇듯 주요 유럽 축구리그의 우승팀을 확인하게 될 것인데, 그때 그가 좀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1년 이상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깐 눈치 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08-0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우승팀은 지난 2년간 그랬던 것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고, 이탈리아 세리에A의 우승팀은 지난 3년간 언제나 그랬듯 인터밀란이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비록 작년과 달리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역시 그가 정신을 잃고 있었다고 여길 한 달 동안에 충분히 일어남직한 결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이러한 가정의 핵심은, 4월쯤이면 우승 가능한 팀이 몇몇 특정 팀으로 압축되고 5월이면 그중 하나가 우승을 차지하는 일이 거의 매년 유사하게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가 시야를 조금 넓혀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맨유와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다든지, 바르셀로나가 스페인 국왕컵에서 우승을 했다든지, 첼시가 FA컵에서 우승을 했다든지 하는 따위의 소식들도 전혀 놀라울 것 없는 결과들이다. 거의 모든 것이 매년 4월에서 5월 한 달 사이에 일어남직한 진부한 일들뿐이다. 이쯤 되면 "축구는 22명이 90분간 경기를 치러 결국에는 항상 독일이 승리하는 스포츠다."라고 한 게리 리네커의 말을 살짝 바꾸어서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20개의 팀이 팀당 38경기를 치러 결국에는 항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하는 리그다." 물론 이것은 꽤나 비약이지만, 적어도 최근 3년간은 언제나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른 리그나 대회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우승팀은 언제나 몇몇 특정 팀 중의 하나라는 식으로 범위를 조금만 확장하면, 이것은 거의 '공식'에 가깝다).  


[사진 =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든 퍼거슨. 이 사진은 2009년 것이지만, 2007년이나 2008년의
것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 (C)게티 이미지]

주요대회에서 언제나 우승을 하는 팀들을 살펴보면, 그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의심의 여지없이, 우승을 일삼는 팀들은 훌륭한 시설과 최고의 선수들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최고의 팀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막강한 '돈'의 위력이다. 가령 위에서 언급된 팀들을 예로 들면, 올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베르바토프를 영입하는 데 3000만 파운드를 썼고, 인터밀란은 콰레스마와 문타리를 영입하는 데 4500만 파운드 이상을 쓴 것으로 추산되며, 바르셀로나는 다니엘 알베스와 흘렙, 케이타를 영입하는 데 약 5000만 파운드를 썼다. 여기서 해당 선수들이 실제로 올 시즌 팀의 우승에 얼마나 결정적인 기여를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 팀들이 이처럼 엄청난 돈을 매년 지출하면서 전력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이고, 이것은 '돈'이 각 팀들의 전력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심지어 '마법'을 무시로 부리는 것처럼 보였던 거스 히딩크조차도 최근에 첼시가 맨유와 우승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슬픈 일이지만, 요컨대 축구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마법'이란 사실상 거의 존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올 시즌 가장 의외의 이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호비뉴의 맨체스터 시티 행은 개인적으로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펠레는 첼시가 아닌 맨체스터 시티를 택한 호비뉴를 두고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많은 사람들이 호비뉴를 '돈'에 팔린 선수로 매도했지만, 까놓고 말해서 축구선수의 가치를 결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돈'이라는 것과 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한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팀이었던 첼시가 러시아 갑부 구단주의 '돈'을 앞세워 프리미어리그의 강자로 발돋움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그러한 첼시로 가는 것은 되고 이제 첼시보다 더 부자가 되어 첼시의 선례를 따르려고 하는 맨시티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호비뉴가 비난을 받아야만 한다면, 그건 그가 여전히 발전단계에 있는 맨시티의 행보를 기다리거나 혹은 이끌어가지 못하고 인내심의 바닥을 보이는 경우, 그리고 맨시티에서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보일 때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려 수십 조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알 파힘을 새로운 구단주로 맞이한 맨시티의 돈지랄(?)도 심정적으로 마뜩찮게 보일 수는 있지만, 현재 축구계의 생리가 그러한 이상 일방적으로 맨시티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굳이 비난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축구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오간다는 사실 그 자체여야만 할 것이다. 즉, 비판의 대상에는 세계 유수의 클럽들이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진 = 맨체스터 시티의 새 구단주 알 파힘의 얼굴이 들어간 지폐(?). 행여라도 이런 얼굴과 마주한다면 반드시 맨체스터 시티의 칭찬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다. (C)게티 이미지]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의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금껏 이적 시장에서 썼던 이적료를 살펴보면 팀의 명성과 성적이 돈과 갖는 함수관계가 비교적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맨유가 세계적인 클럽이라는 것은 맨유가 부유한 구단이라는 말과 같고, 이는 곧 맨유가 이적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 맨유의 '캡틴'이었던 로이 킨은 1993년 당시 리그 최고 이젹료인 375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맨유로 이적해왔고, 1998년 맨유가 야프 스탐을 데려올 때 쓴 1075만 파운드는 당시 수비수로서는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였다. 그리고 2001년 베론의 영입을 위해서 쓴 2800만 파운드도 당시 리그 신기록이었으며, 2002년 리오 퍼디낸드의 영입을 위해 쓴 약 3000만 파운드는 퍼디낸드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비수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2003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할 때 쓴 1200만 파운드는 당시 10대로서는 최고 이적료였고, 이듬해 영입한 동갑내기 웨인 루니의 경우에 이적료는 약 2700만 파운드에 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요약하자면, 맨유가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한 이면에 막대한 돈의 투자가 있었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것은 다른 세계적인 클럽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팀들이 뛰어난 선수들을 구성해 좋은 성적을 내고, 이로써 다시 구단 수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그리 부유하지 못한 팀들은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하고(혹은 뛰어난 선수를 계속 팀에 잔류시키지 못하고), 결국 떨어진 성적이 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구단 수입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즉, 부유한 구단은 선순환으로 인해 언제나 강세를 유지하고(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의 수입을 얻은 팀은 맨유다), 가난한 구단은 악순환으로 인해 언제나 약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더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이 이른바 '빅4'가 아닌 경우를 상상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바로 이러한 현실 하에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돈'이다. 적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을 소유한 구단주가 팀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 야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돈을 쓰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것은 결코 반칙이 아니다. 

그렇다면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이쯤에서 '돈'의 영향력 밖에서 이루어진 몇몇 의미 있는 사례들을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칼레의 기적'은 축구에 있어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난방기구 수리원과 부두 노동자, 정원사 등 아마추어 선수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클럽 칼레는 2000년 프랑스 컵에서 프랑스 유수의 프로 클럽들을 모두 꺾고 결승에 진출해 낭트와 맞붙게 되었다. 결과는 이미 잘 알다시피,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칼레는 페널티킥을 내주며 1대2로 패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이 그저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결승 경기 전 어느 여론조사에 의하면, 설문대상인 18세 이상의 성인 1000명 중의 61%가 칼레의 승리를 희망했고, 그들 중 85%는 "칼레는 축구의 모든 것을 돈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칼레를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편, '칼레의 기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올 시즌에도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오직 스페인 바스크 지역 출신 선수만 영입하는 방침을 현재까지도 바꾸지 않고 있는 스페인 1부리그의 아틀레틱 빌바오는 스페인 국왕컵 결승전까지 진출하여 결국 바르셀로나에게 1대4로 패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칼레와 아틀레틱 빌바오는 패했지만, 그것은 축구에서 결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패배였던 것이다(올 시즌 프랑스 컵에서는 2부리그 팀인 갱강이 결승전에서 1부리그의 스타드 렌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 = 칼레와 낭트의 2000년 프랑스 컵 결승전. 왼쪽이 칼레의 선수이지만, 필드 위에서 누가 많은 돈을 받고 누가 적은 돈을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C)게티 이미지]

1970년대 리버풀의 전성기 시절 리그 우승에 기여한 바 있던 수비수 래리 로이드는 당시를 "대부분의 팀들에게 우승 가능성이 있던 시기였다. 돈으로 우승을 사는 팀들은 없었다"라고 전한다(<포포투> 5월호 참조). 이 말이 현재의 축구계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렇다. 현재의 축구계에는 돈으로 우승을 사려는 팀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현실적으로도 그것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명백하게도, '돈'은 '우승'을 얻는 데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팬들은 축구에는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의미 있는 패배일 수도 있고, 놀라운 기적일 수도 있으며, 혹은 아름다운 게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둥근 축구공'은 구르게 마련이고,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한들 축구공을 네모나게 만들거나 혹은 구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는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한 가지 진실이야말로,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는 시대를 맞은 우리가 여전히 축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축구에서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고, 둥근 축구공이 구르는 한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는 언제고 또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이것만큼은 돈으로도 어쩔 수 없다.

ps. 이적료는 비공개인 경우도 있고, 몇몇 옵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서 다소의 오차가 있을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2002년 월드컵 '직후'에 나온 몇몇 축구선수들의 자서전이 혹평을 받은 것은, 당시 월드컵 대표팀의 선전과 그에 따른 국민들의 열광을 마케팅에 '이용'했다는 측면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제대로 된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는, 책 '내용' 자체의 결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축구사에서 하나의 거대한 이정표가 되었던 월드컵 4강과 관련된 이야기는 오히려 축구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시지 않는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반갑기만 한 시원한 물줄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이 워낙 부실하다 보니 도저히 축구팬들의 기갈을 해결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2년 월드컵 '직전'에 나온 홍명보의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는 2002년 월드컵의 열광으로부터 일정 부분 비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출간 시기로 인해 일단 아쉬움을 남기는 책이다. 결과적으로 2002년 월드컵의 그 놀라운 성과를 거의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서전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홍명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90년 월드컵을 시작으로 이미 3차례 연속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고, 1994년 월드컵에서는 수비수임에도 두 골을 기록하며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며, 무엇보다도 10년 이상 한결같이 대표팀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홍명보였기에 2002년 월드컵의 엄청난 성공에 편승하지 않고도 자서전을 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물론, 그렇더라도 홍명보의 자서전 역시 월드컵 특수에 힘입은 바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축구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한국축구사의 가장 위대한 선수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는 홍명보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못 아쉬운 일이다. 2002년 월드컵 전에 출간되었기에 기대할 수 있음직했던 차분함과 진지함이, 한편으로는 종종 심심함과 동의어로 여겨지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흔히 '홍명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그대로 홍명보의 자서전이 진지함으로 가득 차있다고 하는 건 그 자체로 좋고 나쁠 것은 없다. 설령 그의 축구인생은 말할 것도 없고, 연애조차도 너무 진지하여 심지어 그의 부인 조수미 씨가 결혼 이후에 너무나 과묵한 홍명보 때문에 인형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을 정도였다고(말할 상대를 찾지 못했기에) 고백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렇듯 진지함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홍명보의 자서전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라고 할 만한, 한국축구에 대한 차분한 진단과 제안, 일본 J리그를 경험하며 느낀 한,일 축구의 의미 있는 비교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 등, 언제 어디서나 '축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의 열정과 진지함은, 유감스럽게도 사뭇 무미건조하게 읽힌다. 좋은 진단이고 좋은 비교이고 좋은 제안이지만, 대체로 간단한 감상으로 끝나고 좀 더 깊이 있는 방향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록을 제외하면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책은 홍명보가 다른 축구인에 대해 평하거나 혹은 다른 축구인이 홍명보에 대해 평하는 짤막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도 하고, 특히 6장 '아내가 쓰는 나의 사랑, 나의 가족'은 홍명보의 아내인 조수미 씨가 직접 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다시 약간 수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2장 'J리그 통신'은 예전에 모 스포츠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옮겨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글들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홍명보'라는 이름이 지니는 무게와 기대를 고려할 때, 이 책이 실제로 홍명보 자신의 육성을 전하는 데에 꽤나 적은 분량을 할애하고, 그로 인해 좀 더 내밀한 홍명보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거의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홍명보의 자서전은 월드컵 직후에 나온 일부 태극전사들의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책 자체의 내용에 그리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축구선수로서의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그리고 선수로서 마지막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자신의 축구인생을 되돌아보고 싶었다는 홍명보의 자서전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홍명보의 자서전이 일정 부분 유용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축구팬과 홍명보 자신 모두에게 <영원한 리베로>가 결코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보다도 '홍명보'라는 훌륭한 재료를 책에서 충분히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과 2004년 은퇴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홍명보의 행보는, 그래서 그러한 아쉬움을 그의 또 다른 자서전에 대한 기대로 치환하게 만들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홍명보'라는 이름 석 자의 무게가 여전하고, 그의 축구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영원한 건 홍명보일 뿐 이 자서전이 영원할 필요는 없다. 최근 U-20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변함없이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 홍명보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길, 좀 더 충실하고 매력적인 자서전이 언젠가 꼭 다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과 1주일 만에 모든 것은 뒤바뀌어 버렸다. 정확하게는 9일 전인 4월 30일, 맨유와 아스날의 08-09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의 경기 개시 휘슬이 막 울려퍼지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박지성의 미래는 어두워 보였다.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경기를 위해 한국에 다녀간 이래, 사뭇 무딘 몸놀림으로 팬들의 우려를 사던 박지성은 끝내 아스날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 것이다. 이번 시즌 들어서는 오히려 중요한 경기에서 중용된 박지성이었기에 그 충격은 적지 않았고, 비록 섣부른 전망이긴 해도 지난 시즌 모스크바에서의 허탈감이 또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일주일 만에, 두 경기에 연속으로 선발출장한 박지성은 두경기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박지성이 지옥과 천당을 오고간 1주일 동안, 대다수의 언론들도 극과 극을 오갔다. 박지성이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출전선수 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을 때만해도 부정적 전망과 우려를 전하던 언론들은, 이제 "이번에는 (박지성이 결승전에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퍼거슨 감독의 발언을 앞세워 밝은 전망과 외신들의 칭찬을 쏟아내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팬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지성에게 조소와 야유를 퍼붓던 일부 팬들은 잠잠해진 반면, 박지성의 활약에 대해 환호하고 칭찬하는 팬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로써 이제 박지성의 미래는 다시 밝아졌다고 단언해도 좋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박지성의 미래에 대해 가장 의미 있는 기사를 쓴 이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기자 존 듀어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5월 1일, "박지성, 이제 맨유와의 이별을 준비하라"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지금이 박지성이 맨유와 결별할 적기라고 주장했다(http://news.cyworld.com/view/20090501n03278). 존 듀어든이 그러한 주장을 한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나는 박지성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팬들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이제는 소위 '스쿼드 플레이어'에서 벗어나 축구선수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는 팀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것과, "매 주말마다 '오늘은 박지성이 나올 수 있을까?'라며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는 토요일 밤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TV 앞으로 가는 편"을 팬들은 더 선호할 거라는 게 존 듀어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인 것이다. 물론, 존 듀어든의 이 칼럼은 박지성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일주일 전에 작성된 것이지만, 그가 냉정하게 분석하듯이 크게 보면 여전히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인 빌 섕클리는 팀의 스타와 나머지 조연들 간의 균형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피아노 연주와 같다. 피아노를 옮기는 데 8명이, 그리고 그 망할 것을 연주할 수 있는 3명이 필요하다." 팬들이 박지성에게 바라는 것, 그리고 존 듀어든이 박지성 본인에게 당부하려고 하는 것은, 이제는 박지성도 피아노를 옮기는 데에만 전념하지 말고 직접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맨유에서는, 결코 박지성의 피아노 연주소리를 듣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설령 박지성이 오는 28일, 로마에서 벌어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당히 선발출장하게 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일이다. 존 듀어든이 지적하듯이(또한 많은 팬들도 인정하듯이), 박지성은 결코 맨유에서는 주역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박지성은 과연 이제 맨유를 떠나는 게 옳은 일일까? 뻔하고 재미없는 대답이 되겠지만, 여기에는 또한 명백하고 유일한 대답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어제 새벽에 많은 축구팬들이 목도했듯이, 결국 박지성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고, 그의 미래에 대한 판단과 선택 역시 오직 그의 몫일뿐이다. 무수한 전망과 우려 속에서, 묵묵히 2주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예전의 활발한 모습을 되찾은 박지성의 모습만이 그의 과거와 현재를 증명하고, 아울러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존 듀어든의 말대로 어쩌면 "한 팀에 머무는 이유는 언제 올지 모르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아니라 매주 마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위해 수많은 선수들이 무수한 땀방울을 흘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일개 단원과 중소 교향악단의 지휘자 중 어느 역할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궁극적인 판단과 선택이 우리의 몫은 아님을 인정해야만 한다. 

비록 "이번에는 결승전에 꼭 출전하고 싶다."는 박지성의 발언에 대해 퍼거슨 감독이 긍정적인 답변으로 화답했다지만, 박지성이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로마에서 마침내 떨쳐버릴 수 있을 지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 1년여의 계약기간을 남긴 박지성과 맨유와의 관계 또한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섣부른 전망과 조언, 혹은 일방적인 비방과 조소를 일삼는 사람들도 경기장 곳곳에 무수한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박지성의 노력 앞에는 끝내 그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맨유를 떠나라는 존 듀어든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팬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박지성이 어느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그의 미래를 기꺼이 존중하고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미래는 그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오직 노력하는 자의 것이어야 마땅할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빨간 머리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보다 두 살이 많은,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우리의 어린 시절을 나보다 더 또렷이 기억하는 누나는 예전에 우리집에 내용이 조금은 축약된 <빨간 머리 앤>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그 책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음에 틀림없는 듯하다. 하기야 어린 시절에 재밌는 놀이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빨간 머리 앤> 따위를 읽을 시간이 있었겠는가. '빨간머리 용사'랄지 혹은 '빨간머리 해적'이라고 해도 읽을까 말까일 판에, '빨간머리 앤'이라니! 당연한 귀결로 어린 시절 이후로도 나는 빨간머리를 가진 '앤'이라는 여자아이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고, 내게 '빨간머리'란 오직 '강백호'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앤'이야 빨간머리든 파란머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런 나라도 빨간머리 앤에 대해서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EBS에서 방영해준 '명작만화' <빨간 머리 앤>을 누나 옆에서 그럭저럭 보았던 덕이다. 일단 만화영화라면 제목과 내용이 어떻든, 자연스레 눈과 귀를 TV로 가져가게 마련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만화로 인해, 나는 꽤 오랫동안 앤이라는 여자가 조금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품게 되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어떤 의미로든 빨간머리 앤은 확실히 '정상'의 범주는 벗어난다. 나는 이미 만화를 통해 앤이 자신의 이름을 꼭 'e'가 붙은 앤으로 불러달라고 말하고(단지 더 근사하다는 이유로!), 무슨 연극놀이를 한다며 배를 타고 죽은 듯이 누워가다 진짜로 죽을 뻔한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책을 읽으니 이건 한결 더하다. 앤이란 여자 아이는 한 번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은 예사고, 잠시 말이 끊기는 것도 잠깐 질문을 할 때나 혹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할 때일 뿐, 곧 또 다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 댄다. 게다가 그 이야기란ㅡ마릴라가 항상 지적하듯이ㅡ대체로 쓰잘 데 없는 공상이 대부분으로, 숲속에 유령이 있다고 믿는다거나,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상상하거나, 혹은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상정하는 따위의 내용이다. 어디 그뿐인가. 물론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의 친구' 다이애나에게 딸기주스 대신 포도주를 마시게 한다거나, 앨런 부인에게 대접할 케이크에 바닐라 대신 진통제를 넣는다거나 하는 등의 사건을 앤은 끊임없이 저지른다. 오죽하면 앤이 울거나 놀라며 달려올 때면 마릴라가 이렇게 말하겠는가. "앤, 이번엔 또 무슨 일이니?"

그런데 놀랍게도, 이 빨간머리 여자아이의 활극(?)은 굉장히 재미있어서 나는 책을 차마 손에서 놓기 아쉬울 지경이었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만 해도, 주근깨에 빼빼마른 빨간머리 앤은 사랑스럽기는커녕 그저 이상스럽다는ㅡ심하게는 정신병이라는ㅡ심증을 굳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앤이라는 조그만 여자아이에게 매료되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앤의 무한한 상상력에 공감되었다기보다는, 다만 매슈 아저씨의 입장에 동감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글쎄"라는 말을 반복하며 앤의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감성에 약간의 난감함을 표했던 매슈 아저씨처럼 앤의 감성을 따라가기란 빈약한 내 감성으로는 벅찬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슈 아저씨가 여전히 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듯ㅡ심지어 엄격한 마릴라도 인정했듯ㅡ앤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의외로 상당히 흥미로웠던 것이다. 게다가 그저 공상만 하던 어린 아이가 우정과 사랑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며, 무엇보다도 그러면서도 따뜻한 심성을 결코 잃어버리는 법이 없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실로 어처구니없던 '명작만화'의 옛가사 내용을 십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빨간머리 앤은, 결코 미친 게 아니었다!!

남들은 예전에 다 읽었을 법한 책을 뒤늦게 읽고 호들갑을 떠는 꼴인데, 정말이지 <빨간 머리 앤>이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책인 줄은 몰랐다. 과연 이 책의 결말 이후에 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무척 궁금해진다. 하지만 예전부터 '빨간머리 앤'의 충실한 신봉자였던 누나 덕택에 책장에 꽂히게 된, '초록지붕 집의 앤' 이후를 다룬 몇 권의 책들을 읽는 일은 좀 더 나중으로 미뤄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집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이 원서라서 어차피 내게는 읽을 재간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긴 해도 별로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아마도 앤이라면 "영어를 읽을 수 없어서 아쉽지만 좋은 점도 많아요. 상상할 여지가 더욱 커지잖아요." 따위의 말을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앤이 아니니 영어라서 좋은 점은 단 하나도 찾지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그보다는 매슈 아저씨가 한 말을 이유로 삼는 편이 좀 더 그럴 듯해 보이리라. "낭만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아라, 앤. 조금쯤은 낭만적인 게 좋아. 물론 너무 지나치면 안 되겠지. 하지만 조금은 남겨 둬, 앤. 조금은 말이야." 적어도 아직은, 여전히 "어떤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과 어둠"을 품고 있는 '모퉁이'들을 상상할 수 있는, '초록지붕 집'의 낭만을 좀 더 남겨두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p526)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바라기 2020-11-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과 리뷰를 보고 갑니다.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