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주일 만에 모든 것은 뒤바뀌어 버렸다. 정확하게는 9일 전인 4월 30일, 맨유와 아스날의 08-09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의 경기 개시 휘슬이 막 울려퍼지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박지성의 미래는 어두워 보였다.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경기를 위해 한국에 다녀간 이래, 사뭇 무딘 몸놀림으로 팬들의 우려를 사던 박지성은 끝내 아스날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 것이다. 이번 시즌 들어서는 오히려 중요한 경기에서 중용된 박지성이었기에 그 충격은 적지 않았고, 비록 섣부른 전망이긴 해도 지난 시즌 모스크바에서의 허탈감이 또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일주일 만에, 두 경기에 연속으로 선발출장한 박지성은 두경기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박지성이 지옥과 천당을 오고간 1주일 동안, 대다수의 언론들도 극과 극을 오갔다. 박지성이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출전선수 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을 때만해도 부정적 전망과 우려를 전하던 언론들은, 이제 "이번에는 (박지성이 결승전에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퍼거슨 감독의 발언을 앞세워 밝은 전망과 외신들의 칭찬을 쏟아내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팬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지성에게 조소와 야유를 퍼붓던 일부 팬들은 잠잠해진 반면, 박지성의 활약에 대해 환호하고 칭찬하는 팬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로써 이제 박지성의 미래는 다시 밝아졌다고 단언해도 좋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박지성의 미래에 대해 가장 의미 있는 기사를 쓴 이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기자 존 듀어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5월 1일, "박지성, 이제 맨유와의 이별을 준비하라"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지금이 박지성이 맨유와 결별할 적기라고 주장했다(http://news.cyworld.com/view/20090501n03278). 존 듀어든이 그러한 주장을 한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나는 박지성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팬들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이제는 소위 '스쿼드 플레이어'에서 벗어나 축구선수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는 팀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것과, "매 주말마다 '오늘은 박지성이 나올 수 있을까?'라며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는 토요일 밤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TV 앞으로 가는 편"을 팬들은 더 선호할 거라는 게 존 듀어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인 것이다. 물론, 존 듀어든의 이 칼럼은 박지성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일주일 전에 작성된 것이지만, 그가 냉정하게 분석하듯이 크게 보면 여전히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인 빌 섕클리는 팀의 스타와 나머지 조연들 간의 균형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피아노 연주와 같다. 피아노를 옮기는 데 8명이, 그리고 그 망할 것을 연주할 수 있는 3명이 필요하다." 팬들이 박지성에게 바라는 것, 그리고 존 듀어든이 박지성 본인에게 당부하려고 하는 것은, 이제는 박지성도 피아노를 옮기는 데에만 전념하지 말고 직접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맨유에서는, 결코 박지성의 피아노 연주소리를 듣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설령 박지성이 오는 28일, 로마에서 벌어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당히 선발출장하게 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일이다. 존 듀어든이 지적하듯이(또한 많은 팬들도 인정하듯이), 박지성은 결코 맨유에서는 주역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박지성은 과연 이제 맨유를 떠나는 게 옳은 일일까? 뻔하고 재미없는 대답이 되겠지만, 여기에는 또한 명백하고 유일한 대답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어제 새벽에 많은 축구팬들이 목도했듯이, 결국 박지성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고, 그의 미래에 대한 판단과 선택 역시 오직 그의 몫일뿐이다. 무수한 전망과 우려 속에서, 묵묵히 2주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예전의 활발한 모습을 되찾은 박지성의 모습만이 그의 과거와 현재를 증명하고, 아울러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존 듀어든의 말대로 어쩌면 "한 팀에 머무는 이유는 언제 올지 모르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아니라 매주 마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위해 수많은 선수들이 무수한 땀방울을 흘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일개 단원과 중소 교향악단의 지휘자 중 어느 역할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궁극적인 판단과 선택이 우리의 몫은 아님을 인정해야만 한다.
비록 "이번에는 결승전에 꼭 출전하고 싶다."는 박지성의 발언에 대해 퍼거슨 감독이 긍정적인 답변으로 화답했다지만, 박지성이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로마에서 마침내 떨쳐버릴 수 있을 지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 1년여의 계약기간을 남긴 박지성과 맨유와의 관계 또한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섣부른 전망과 조언, 혹은 일방적인 비방과 조소를 일삼는 사람들도 경기장 곳곳에 무수한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박지성의 노력 앞에는 끝내 그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맨유를 떠나라는 존 듀어든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팬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박지성이 어느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그의 미래를 기꺼이 존중하고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미래는 그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오직 노력하는 자의 것이어야 마땅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