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만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동국이 지난 12일, 파라과이와의 A매치에 선발 출전하여 45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경기 전에는 물론, 경기 이후에도 이동국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동국이 대표팀에 복귀하며 남긴 메시지는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 메시지란 이동국이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대표팀 선발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라는 것, 그리고 그러므로 여전히 2010년 월드컵 대표팀 승선을 위한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라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가 유효한 한, 그리운 이름 하나를 떠올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 대표팀의 중추였던 이름, 바로 김남일이다.  


                                                                                                   (C) 피파 홈페이지

사실 김남일의 대표팀 하차는 꽤나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거니와, 특히 대표팀의 주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아주 잠깐 부상으로 하차해 있던 동안 상황은 일변하고 말았다. 박지성이 주장 완장을 차고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며 박지성의 리더십이 새삼 화제가 되었고, 더욱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김두현과 영건 기성용이 급부상하며 김남일의 부재는 자연스런 '세대교체' 바람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결국, 김남일은 부상에서 회복하며 J리그에서 꾸준한 선발출장을 했지만, 끝내 대표팀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김남일은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대체 그 동안 김남일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002 한일 월드컵 : 김남일의 발견 
2002년 월드컵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찬란하게 빛냈던 선수들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그 중에서도 김남일은 여러모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선수이기도 했거니와, 특히나 그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는 본래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당당히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오른 김남일의 존재는 한국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존재와 역할을 환기시켜주었고, 아울러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이상적인 모델로 자연스레 김남일을 떠올리도록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준 김남일의 활약은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손색이 없었다. 왕성한 활동량과 끈질긴 수비를 바탕으로 한 그의 분전은 그 자신에게는 '진공청소기'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안겨주었고, 한국 대표팀에게는 상대적으로 강팀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주었다. 김남일이 빠졌던 독일 전과 터키 전에서 유이하게 대표팀이 패배했던 것은 반드시 김남일의 존재여부와 직결되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 전력에 차질을 빚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하며 김남일은 바야흐로 한국대표팀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전력이 되어 있었다.

네덜란드 에레지디비에 리그 : 도전과 실패, 그리고 진화 
2003년 초, 박지성과 이영표 그리고 송종국의 네덜란드 에레지디비에 리그 진출 이후, 김남일은 2002년 월드컵 선수로서는 4번째로 네덜란드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은 김남일에게 그리 유쾌한 순간만은 아니었다. 페예노르트의 위성구단에 불과한 엑셀시오르에 임대 형식으로 입단하며 차후 페예노르트로의 입성을 노렸지만, 워낙에 처지는 팀 전력으로 인해 빛을 보기가 어려웠다. 나름대로는 데뷔전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의 활약을 했지만, 끝내 김남일은 엑셀시오르가 강등되면서 페예노르트 혹은 타 구단의 제의는 받지 못한 채 한국으로 쓸쓸히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전남과 단기 계약을 맺으며 K리그 무대에 복귀한 김남일은 분명 이전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전의 그가 단지 악착 같은 수비로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면, 유럽 축구를 경험한 후의 그는 이제 세련된 전개 플레이에 눈을 뜨며 공,수에 걸쳐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로 거듭난 것이다. 실제로 김남일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전에는 무조건 수비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유럽에 가보고 나서 수비만 해서는 반쪽 선수밖에 안되는 걸 깨달았다."는 내용의(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그러한 깨달음은 그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55번 등번호를 단 김남일이 골을 넣고 나서 동료들과 기차 세리머니를 한 것은 김남일의 '진화'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내 뇌리에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다. 네덜란드로의 도전은 흔히 실패로 평가되지만, 분명 그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K리그 : 최고의 순간에서 계륵으로 
2005년 김남일은 수원으로 이적하며 차범근 감독의 품에 안긴다. 송종국을 영입한 지 얼마되지 않아 김남일마저 영입한 수원은 본격적으로 아시아 최고를 꿈꾸게 되었고, 곧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 첫 번째 무대는 A3 챔피언스컵. 김남일은 나드손과 환상적인 호흡으로 수원에 우승컵을 안기며 화려하게 수원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선보인다. 그리고 2006년에는 수원의 주장으로 선임되며 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물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선발로 활약하며 대표팀에서 역시 그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더욱이 2006년 K리그 올스타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 김남일은 최고 중에서도 최고로 등극했다. 


                                                                    (C) 수원 삼성 홈페이지

그러나 탄탄할 것만 같던 김남일의 위치에 미묘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해 5월에 있었던 국내 프로축구 경기에서 김남일은 수비수로 출장한 적이 있는데, 수비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던 측면이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김남일은 그가 가장 자신 있는 포지션을 다른 선수에게 내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김남일이 이후 일본으로 진출한 뒤에, <포포투>의 'My perfect 11' 코너에서 차범근 감독을 후보로 선정하며 굳이 "수비수로 넣은 것"이라고 부연한 대목은, 차범금 감독이 '수비수'로 출전시킨 것이 김남일에게는 그리 달가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일화다. 김남일이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며 수원과 다소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던 것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불만이 쌓여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2007년 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허정무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임명된 김남일은 대표팀에서는 여전히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지만, 그 기간 또한 그리 길지 않았다. 2008년 들어서 대표팀 경기 중, 김남일은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나왔다가 경기 종반 교체 아웃되는 경우가 점차 잦아졌다. 그런데 특이했던 것은, 교체 상황을 보면 주로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수비를 굳히기 위해 김남일이 빠지고 대신 조용형 등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대개였다는 것이다. 언뜻 수비 강화를 위해 '진공 청소기'의 코드를 뽑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지만, 그것은 당시 김남일의 수비 능력에 대한 허정무 감독의 의문을 방증하는 것이며,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김남일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최고'였던 김남일은 어느새 허정무 감독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2008년 9월 10일,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1차전에 출전했던 김남일은 후반에 홍영조에게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고, 그 다음 경기를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이래 결국 국가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김남일의 하차 이후 신예 선수들의 성장과 대표팀의 선전이 맞물리면서 대표팀의 터줏대감이던 김남일은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다.

J리그 : 김남일의 현재와 미래
2008년 빗셀 고베에 입단하며 J리그에 진출한 김남일은 첫해 무난하게 팀에 적응한 것은 물론, 2008 조모컵에서는 J리그 올스타에 선발되는 영예를 누리며 건재를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 J리그 올스타 선발은 이제 막 1회 대회로 개최되는 조모컵의 흥행을 위해 다분히 전략적으로 선발된 측면이 없지 않았고, 더욱이 2009년 들어서는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부상과 악운이 겹치면서 김남일은 '45M 자책골'로 새삼스레 화제가 되었을 뿐, J리그에서 꾸준히 경기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더 이상 태극마크와 관련된 논의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C) 빗셀 고베 홈페이지

그러나 최근, 이동국의 복귀와 부상에서 회복한 김남일의 J리그 선발 출전이 맞물리면서, 김남일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 또한 조심스레 수면 위로 올라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여러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현재 대표팀 선수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며 여전히 대표팀의 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음을 시사했고, 김남일 또한 다시 한 번 대표팀에 승선하기 위한 각오를 결연히 밝힌 바 있다. 특히 김남일은 대표팀에서 설령 벤치 멤버라 할지라도 상관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에, 향후 그가 J리그에서 보이는 활약 여부에 따라 한두 번 정도의 기회는 더 부여해 보는 것도 대표팀 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괜찮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김남일이 네덜란드 무대를 경험하며 '진화'를 겪었듯, 일본 무대를 경험하면서도 분명 무언가 얻은 것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또한, 언제나 자신의 자리라고 믿었던 대표팀의 중앙을 후배들에게 내어 주면서 국가대표가 그저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좀 더 많은 노력과 의지를 보여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을 재인식 했으리라고도 믿는다. 그래서 마침내 김남일이 다시 대표팀에 승선하는 날, 나는 한국 대표팀의 전력이 보다 탄탄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남일에게는 뛰어난 전개력이 있고, 여전히 녹록치 않은 수비력이 있으며(그가 다시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고 가정할 때), 무엇보다도 큰 무대를 누벼 본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김남일의 이름이 그저 그리운 이름이 아닌, 다시 한 번 익숙한 이름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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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 조모컵 공식 홈페이지]
 

어제 저녁, K리그 올스타와 J리그 올스타가 맞붙은 2009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J리그 올스타에게 1대4로 무너졌다. 패배 자체보다도 K리그 올스타의 실망스러웠던 경기력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는 한판이었지만, 경기 후에 쏟아지는 많은 비판성 기사들을 보니 언제나 그렇듯, 결국 무엇보다도 '패배'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논란과 비판을 양산하는 원인인 듯해서 씁쓸하기만 하다. '패배'에만 집착해서는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배 이후에 비판 받는 대목들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서울에서 갑자기 인천으로 장소를 바꿨다거나, 현재 K리그 하위권에 처져 있는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다거나, 감독의 전술이 애초부터 문제였다거나, 선수 선발과 합숙 훈련 문제로 잡음이 있었다거나, 무엇보다도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이 부족했다거나 하는 등의 비판들은 모두 나름 합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분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이러한 비판의 가장 주요한 근거는 결국 K리그 올스타가 '패배'했다는 데에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그러한 비판들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어제 경기 이후에 나온 비판의 많은 부분은 실상 이미 경기가 치러지기 전에 나옴직한 것들에 불과하다. 장소와 선수 선발, 그리고 합숙 훈련 등의 문제들은 이미 K리그 연맹에서 확고한 원칙들을 정했어야 마땅했고, 특히 감독 선정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의 우승팀이 올해 부진에 빠질 수도 있음을 예상해서 다른 방식으로 감독을 선정하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 불행히도 그러한 원칙이 부족해서 약간의 잡음이 나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조모컵이 이제 2회째를 맞이한 새로운 대회인 걸 감안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비판들은 앞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소소한 운영상의 지적에 불과하거니와, 특히 '패배'와 연결시키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비판이 집중되는 감독과 선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난해에 처음 열렸던 2008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는 경기력 측면에서는 J리그 올스타에 비해 전혀 나을 게 없었지만, 결국 문전 앞에서의 찬스를 놓치지 않은 덕택에 3대1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경기를 앞둔 양 팀의 수장은 공히 감독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했고, 양 팀 선수들은 진지한 승부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를 피력했었다. 그리고 어제 경기를 앞두고도 그러한 인식과 각오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작년의 경기 직후 차범근 감독이 환하게 웃고, 일본 선수들이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감내해야만 했다면 반대로 어제, 차범근 감독은 경기 내내 웃을 수 없었고, K리그 올스타들은 프로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혹독한 비판과 직면해야만 했다.  

이렇게 위치가 뒤바뀐 이유는 단 하나, 경기의 '승패'일 뿐이다. 물론 지난해 패배를 당했던 J리그 올스타가 상대적으로 전의를 불태웠던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제한된 역할의 감독과 열심히 뛴 선수들에게 단지 '승패'라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특히 실점 상황들이 대개 선수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그 결과를 두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는 것은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본의 세밀한 플레이에 경기 내내 밀렸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겠지만, 그건 작년과 다르지 않은, 한일 간의 축구 스타일의 문제이기도 하다(어느 특정 감독이 잠깐 벤치에 앉는다고 해서 선수들이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믿는 것은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결국, 작년의 '어설픈 승리'에 가리어져있던 문제점들이 올해의 '완벽한 패배' 이후 봇물처럼 쏟아진 셈이다. 당연히 경기 이후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 일정 부분 감독과 선수들이 비판을 면할 길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오직 감독과 선수 탓만을 한다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 패배(지난 승리도 마찬가지지만)에서 배울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은 '사람'보다 언제나 빠르다."는 화두가 아닐까 싶다. K리그에 부임한 외국인 감독이나 용병들이 종종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가 K리그의 선수들은 모두 빠르고 기술도 좋지만 정작 공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다는 것인데, 이러한 K리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게 바로 어제 경기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K리그 올스타는 일단 공을 잡으면 치고 나가려는 성향을 보이면서 몸만 빠져나가려 할 뿐 정작 공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했던 반면, J리그 올스타는 간결한 패스로 중원을 효과적으로 점유하면서 K리그 올스타들을 하릴없이 우왕좌왕하며 체력만 소모하게 만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제 J리그 올스타의 경기력은 충분히 아름답고 효율적이었으며, 세밀한 패스 게임의 강함은 최근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가 증명한 바와 같다. 즉, 이제 세밀한 패스 게임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세계 축구의 지향점이며, K리그는 바로 이점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어제의 패배 이후 매서운 비판을 하면서 조모컵이 득보다 실이 많은 대회라고 하지만, 그건 패자가 하기에 그리 적합한 말이 아닌 듯하다. 물론 이제 고작 한 경기를 졌고, 또 그것이 현재 K리그와 J리그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도 아니지만, 적어도 지난 두 경기 동안 얻을 것이 많았던 팀은 분명 K리그 올스타였다. 더욱이 올시즌 들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J리그 팀들의 훌륭한 경기력에 K리그 팀들이 고전했던 것을 상기시켜 보면, 더 이상 K리그가 그저 막연히 K리그의 강함을 자신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J리그를 배워야 한다는 현실 인식에 보다 치밀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조모컵은 그러한 자극과 교류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떠나서, 나는 K리그 올스타전보다 조모컵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저 인기투표를 통해 선수들을 모아놓고 설렁 설렁 골만 많이 넣는 올스타전보다, 각 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진심으로 한번 부닥쳐보는 조모컵이 축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는 경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때로는 패배의 쓰라림도 맞보게 마련이겠지만, 본래 축구 경기란 건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조모컵을 환영하는 것은 패배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승리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조모컵은 꽤나 재미있는 축구경기이기 때문이다. 축구팬으로서 축구경기를 즐길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나머지는 차후의 문제일 뿐이다.

ps. 어제 경기를 중계했던 SBS는 K리그와 J리그의 연맹로고 대신 한국과 일본의 국기를 사용했는데, 이건 정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가령, K리그 올스타의 리 웨이펑이 한국인이고, J리그 올스타의 이정수가 일본인이란 말인가. 어느 블로거가 지적한대로, SBS가 그 경기의 시청률을 위해 의도적으로 내셔널리즘에 기대려한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캐스터의 다소 편파적인 발언들 또한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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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매의 발에 줄을 묶어둔 채 그 줄의 길이를 조금씩 늘여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마침내 두 날개를 활짝 편 매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매의 발에 묶은 줄을 없애야 한다고, 소년은 설명한다. 소년의 이름은 빌리. 무엇 하나 관심을 가진 것이 없는 허약하고 소심한 소년 빌리는, 그러나 자신이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매를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물게도 당당하게 빛난다. 그리고 그 순간, 빌리를 향한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심과 주의가 집중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소년을 둘러싼 환경도 마치 매가 날 때의 고요와 사뭇 닮아 있다. 

배리 하인즈의 소설 <케스ㅡ매와 소년>을 원작으로 한 켄 로치 감독의 1969년 작 <케스>는 날개를 펴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과 날개를 활짝 펴는 매의 모습을 의미심장하게 대조시켜 보여주는 영화다. 되풀이 되는 엄마와 형의 날 선 대립과 가정 내에서 겪는 소외, 선생님의 묵인 혹은 선동 하에 자행되는 학교 아이들의 따돌림과 괴롭힘, 그리고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교육 속에서 생기를 잃어버리는 소년의 모습은, 소년이 훈련시킨 매가 여전히 야생성을 간직한 채 화려하게 비상하는 모습과 뚜렷하게 대비되고, 이를 통해 영화는 과연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또는 교육의 궁극적인 가치와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 것처럼 보인다. 

소년이 자신의 현재에 진저리를 치고 감히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이유를 소년을 둘러싼 환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소년의 날개를 펼쳐 주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소년에게로 향하는 날카로운 대화와 소리 높인 훈시와 매서운 체벌에 근본적으로 결여된 어떤 가치들은, 소년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 매를 훈련시킬 때 매를 매개로 하여 고스란히 빛을 발하는 까닭이다. 자신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고 하늘을 나는 매의 모습은 그 완벽한 증거다. 그리고 그 가치란 곧, 매를 훈련시키는 소년의 입을 통해 분명하게 제시된다. "세상에 길들이다니! 매는 길들지 않아요. 훈련될 뿐이죠." 좀 더 직관적으로 말해서, 소년에게 필요하고 매에게 투영된 것, 그것은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존중'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며 체득하고 증명한 몇몇 가치의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처럼 화려하게 비상하는 소년의 모습을 쉽사리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아니, 외려 영화는 소년의 날개가 그저 움츠러드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심지어 완전히 날개가 꺾일 수도 있다는 끔찍한 예견조차도 서슴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날개가 꺾인 소년이 시련을 계기로 성장하여 날개를 활짝 편다.'라는 일반적인 성장영화의 도식을 <케스>는 단호히 거부하고, 도리어 현실의 극한을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뜻밖의 결말을 제시하는 <케스>의 마지막 장면이 다소 허무하고 급작스러운 느낌을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편으로 그 개운치 않은 뒷맛의 적나라함은 소년을 둘러싼 완고한 현실을 거듭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그 현실이란, 소년의 발에 묶인 '줄'에 다름 아니다.

소년이 매를 훈련시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 칠판에 적은 줄(leash)이라는 단어가 '구속'과 '속박'을 아울러 의미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발에 묶은 줄을 없앤 매가 하늘을 나는 모습과의 대비를 통해 날지 못하는 소년에게 묶인, '구속'과 '속박'이라는 '현실'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단순히 소년의 '성장'이 아니라 소년을 둘러싼 완고한 '현실'ㅡ가정과 학교와 교육의 문제와, 나아가 인간에 대한 존중의 결여ㅡ을 똑바로 응시한다. 물론 그 시선의 끝에서 마주하는 결말은 끝내 마냥 희망적이지만은 않지만, 적어도 <케스>는 '줄에 묶여 있는 한 매는 날 수 없는 법'이라는 '진실'을 결코 외면하려 하지 않고, 그런 이유로 비극적 결말을 서슴지 않는 <케스>의 의연한 시선은 또한 믿음직하기만 하다. 설령 어떤 희미한 희망을 꿈꾸든, 그것은 여전히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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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유럽 축구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던 작년 4월의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어느 축구팬이 1년이 지난 올해 5월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그는 깨자마자 으레 그렇듯 주요 유럽 축구리그의 우승팀을 확인하게 될 것인데, 그때 그가 좀 더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1년 이상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잠깐 눈치 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08-09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우승팀은 지난 2년간 그랬던 것처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고, 이탈리아 세리에A의 우승팀은 지난 3년간 언제나 그랬듯 인터밀란이며,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비록 작년과 달리 바르셀로나가 우승을 차지하기는 했지만 역시 그가 정신을 잃고 있었다고 여길 한 달 동안에 충분히 일어남직한 결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이러한 가정의 핵심은, 4월쯤이면 우승 가능한 팀이 몇몇 특정 팀으로 압축되고 5월이면 그중 하나가 우승을 차지하는 일이 거의 매년 유사하게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가 시야를 조금 넓혀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맨유와 바르셀로나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다든지, 바르셀로나가 스페인 국왕컵에서 우승을 했다든지, 첼시가 FA컵에서 우승을 했다든지 하는 따위의 소식들도 전혀 놀라울 것 없는 결과들이다. 거의 모든 것이 매년 4월에서 5월 한 달 사이에 일어남직한 진부한 일들뿐이다. 이쯤 되면 "축구는 22명이 90분간 경기를 치러 결국에는 항상 독일이 승리하는 스포츠다."라고 한 게리 리네커의 말을 살짝 바꾸어서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20개의 팀이 팀당 38경기를 치러 결국에는 항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하는 리그다." 물론 이것은 꽤나 비약이지만, 적어도 최근 3년간은 언제나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른 리그나 대회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우승팀은 언제나 몇몇 특정 팀 중의 하나라는 식으로 범위를 조금만 확장하면, 이것은 거의 '공식'에 가깝다).  


[사진 =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든 퍼거슨. 이 사진은 2009년 것이지만, 2007년이나 2008년의
것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 (C)게티 이미지]

주요대회에서 언제나 우승을 하는 팀들을 살펴보면, 그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의심의 여지없이, 우승을 일삼는 팀들은 훌륭한 시설과 최고의 선수들 그리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최고의 팀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막강한 '돈'의 위력이다. 가령 위에서 언급된 팀들을 예로 들면, 올 시즌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베르바토프를 영입하는 데 3000만 파운드를 썼고, 인터밀란은 콰레스마와 문타리를 영입하는 데 4500만 파운드 이상을 쓴 것으로 추산되며, 바르셀로나는 다니엘 알베스와 흘렙, 케이타를 영입하는 데 약 5000만 파운드를 썼다. 여기서 해당 선수들이 실제로 올 시즌 팀의 우승에 얼마나 결정적인 기여를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각 팀들이 이처럼 엄청난 돈을 매년 지출하면서 전력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이고, 이것은 '돈'이 각 팀들의 전력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심지어 '마법'을 무시로 부리는 것처럼 보였던 거스 히딩크조차도 최근에 첼시가 맨유와 우승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슬픈 일이지만, 요컨대 축구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마법'이란 사실상 거의 존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올 시즌 가장 의외의 이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호비뉴의 맨체스터 시티 행은 개인적으로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펠레는 첼시가 아닌 맨체스터 시티를 택한 호비뉴를 두고 "정신과 상담이 필요하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많은 사람들이 호비뉴를 '돈'에 팔린 선수로 매도했지만, 까놓고 말해서 축구선수의 가치를 결정하는 하나의 기준이 '돈'이라는 것과 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한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욱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팀이었던 첼시가 러시아 갑부 구단주의 '돈'을 앞세워 프리미어리그의 강자로 발돋움했던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그러한 첼시로 가는 것은 되고 이제 첼시보다 더 부자가 되어 첼시의 선례를 따르려고 하는 맨시티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호비뉴가 비난을 받아야만 한다면, 그건 그가 여전히 발전단계에 있는 맨시티의 행보를 기다리거나 혹은 이끌어가지 못하고 인내심의 바닥을 보이는 경우, 그리고 맨시티에서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보일 때뿐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려 수십 조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알 파힘을 새로운 구단주로 맞이한 맨시티의 돈지랄(?)도 심정적으로 마뜩찮게 보일 수는 있지만, 현재 축구계의 생리가 그러한 이상 일방적으로 맨시티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굳이 비난을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축구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오간다는 사실 그 자체여야만 할 것이다. 즉, 비판의 대상에는 세계 유수의 클럽들이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진 = 맨체스터 시티의 새 구단주 알 파힘의 얼굴이 들어간 지폐(?). 행여라도 이런 얼굴과 마주한다면 반드시 맨체스터 시티의 칭찬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다. (C)게티 이미지]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의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금껏 이적 시장에서 썼던 이적료를 살펴보면 팀의 명성과 성적이 돈과 갖는 함수관계가 비교적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맨유가 세계적인 클럽이라는 것은 맨유가 부유한 구단이라는 말과 같고, 이는 곧 맨유가 이적 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 맨유의 '캡틴'이었던 로이 킨은 1993년 당시 리그 최고 이젹료인 375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맨유로 이적해왔고, 1998년 맨유가 야프 스탐을 데려올 때 쓴 1075만 파운드는 당시 수비수로서는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였다. 그리고 2001년 베론의 영입을 위해서 쓴 2800만 파운드도 당시 리그 신기록이었으며, 2002년 리오 퍼디낸드의 영입을 위해 쓴 약 3000만 파운드는 퍼디낸드를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비수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2003년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영입할 때 쓴 1200만 파운드는 당시 10대로서는 최고 이적료였고, 이듬해 영입한 동갑내기 웨인 루니의 경우에 이적료는 약 2700만 파운드에 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요약하자면, 맨유가 세계적인 클럽으로 성장한 이면에 막대한 돈의 투자가 있었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것은 다른 세계적인 클럽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팀들이 뛰어난 선수들을 구성해 좋은 성적을 내고, 이로써 다시 구단 수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대로, 그리 부유하지 못한 팀들은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하고(혹은 뛰어난 선수를 계속 팀에 잔류시키지 못하고), 결국 떨어진 성적이 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해 구단 수입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즉, 부유한 구단은 선순환으로 인해 언제나 강세를 유지하고(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의 수입을 얻은 팀은 맨유다), 가난한 구단은 악순환으로 인해 언제나 약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더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이 이른바 '빅4'가 아닌 경우를 상상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바로 이러한 현실 하에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돈'이다. 적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을 소유한 구단주가 팀을 좀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 야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돈을 쓰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것은 결코 반칙이 아니다. 

그렇다면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이쯤에서 '돈'의 영향력 밖에서 이루어진 몇몇 의미 있는 사례들을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칼레의 기적'은 축구에 있어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난방기구 수리원과 부두 노동자, 정원사 등 아마추어 선수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클럽 칼레는 2000년 프랑스 컵에서 프랑스 유수의 프로 클럽들을 모두 꺾고 결승에 진출해 낭트와 맞붙게 되었다. 결과는 이미 잘 알다시피,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칼레는 페널티킥을 내주며 1대2로 패했다. 하지만, 이미 그것이 그저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결승 경기 전 어느 여론조사에 의하면, 설문대상인 18세 이상의 성인 1000명 중의 61%가 칼레의 승리를 희망했고, 그들 중 85%는 "칼레는 축구의 모든 것을 돈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칼레를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한편, '칼레의 기적'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올 시즌에도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오직 스페인 바스크 지역 출신 선수만 영입하는 방침을 현재까지도 바꾸지 않고 있는 스페인 1부리그의 아틀레틱 빌바오는 스페인 국왕컵 결승전까지 진출하여 결국 바르셀로나에게 1대4로 패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칼레와 아틀레틱 빌바오는 패했지만, 그것은 축구에서 결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패배였던 것이다(올 시즌 프랑스 컵에서는 2부리그 팀인 갱강이 결승전에서 1부리그의 스타드 렌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 = 칼레와 낭트의 2000년 프랑스 컵 결승전. 왼쪽이 칼레의 선수이지만, 필드 위에서 누가 많은 돈을 받고 누가 적은 돈을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C)게티 이미지]

1970년대 리버풀의 전성기 시절 리그 우승에 기여한 바 있던 수비수 래리 로이드는 당시를 "대부분의 팀들에게 우승 가능성이 있던 시기였다. 돈으로 우승을 사는 팀들은 없었다"라고 전한다(<포포투> 5월호 참조). 이 말이 현재의 축구계에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렇다. 현재의 축구계에는 돈으로 우승을 사려는 팀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현실적으로도 그것은 결코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명백하게도, '돈'은 '우승'을 얻는 데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팬들은 축구에는 여전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의미 있는 패배일 수도 있고, 놀라운 기적일 수도 있으며, 혹은 아름다운 게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둥근 축구공'은 구르게 마련이고, 아무리 많은 돈이 있다한들 축구공을 네모나게 만들거나 혹은 구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는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 한 가지 진실이야말로,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는 시대를 맞은 우리가 여전히 축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축구에서는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고, 둥근 축구공이 구르는 한 "인간의 얼굴을 한 축구의 수호자"는 언제고 또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이것만큼은 돈으로도 어쩔 수 없다.

ps. 이적료는 비공개인 경우도 있고, 몇몇 옵션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어서 다소의 오차가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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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주일 만에 모든 것은 뒤바뀌어 버렸다. 정확하게는 9일 전인 4월 30일, 맨유와 아스날의 08-09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의 경기 개시 휘슬이 막 울려퍼지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박지성의 미래는 어두워 보였다.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경기를 위해 한국에 다녀간 이래, 사뭇 무딘 몸놀림으로 팬들의 우려를 사던 박지성은 끝내 아스날과의 중요한 경기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 것이다. 이번 시즌 들어서는 오히려 중요한 경기에서 중용된 박지성이었기에 그 충격은 적지 않았고, 비록 섣부른 전망이긴 해도 지난 시즌 모스크바에서의 허탈감이 또 다시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직후 일주일 만에, 두 경기에 연속으로 선발출장한 박지성은 두경기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각인시켰다.

박지성이 지옥과 천당을 오고간 1주일 동안, 대다수의 언론들도 극과 극을 오갔다. 박지성이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출전선수 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되었을 때만해도 부정적 전망과 우려를 전하던 언론들은, 이제 "이번에는 (박지성이 결승전에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퍼거슨 감독의 발언을 앞세워 밝은 전망과 외신들의 칭찬을 쏟아내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팬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지성에게 조소와 야유를 퍼붓던 일부 팬들은 잠잠해진 반면, 박지성의 활약에 대해 환호하고 칭찬하는 팬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띄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로써 이제 박지성의 미래는 다시 밝아졌다고 단언해도 좋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박지성의 미래에 대해 가장 의미 있는 기사를 쓴 이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기자 존 듀어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난 5월 1일, "박지성, 이제 맨유와의 이별을 준비하라"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지금이 박지성이 맨유와 결별할 적기라고 주장했다(http://news.cyworld.com/view/20090501n03278). 존 듀어든이 그러한 주장을 한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하자면, 하나는 박지성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팬들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즉, 이제는 소위 '스쿼드 플레이어'에서 벗어나 축구선수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는 팀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는 것과, "매 주말마다 '오늘은 박지성이 나올 수 있을까?'라며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는 토요일 밤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TV 앞으로 가는 편"을 팬들은 더 선호할 거라는 게 존 듀어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인 것이다. 물론, 존 듀어든의 이 칼럼은 박지성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일주일 전에 작성된 것이지만, 그가 냉정하게 분석하듯이 크게 보면 여전히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리버풀의 전설적인 감독인 빌 섕클리는 팀의 스타와 나머지 조연들 간의 균형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피아노 연주와 같다. 피아노를 옮기는 데 8명이, 그리고 그 망할 것을 연주할 수 있는 3명이 필요하다." 팬들이 박지성에게 바라는 것, 그리고 존 듀어든이 박지성 본인에게 당부하려고 하는 것은, 이제는 박지성도 피아노를 옮기는 데에만 전념하지 말고 직접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맨유에서는, 결코 박지성의 피아노 연주소리를 듣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설령 박지성이 오는 28일, 로마에서 벌어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당당히 선발출장하게 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일이다. 존 듀어든이 지적하듯이(또한 많은 팬들도 인정하듯이), 박지성은 결코 맨유에서는 주역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박지성은 과연 이제 맨유를 떠나는 게 옳은 일일까? 뻔하고 재미없는 대답이 되겠지만, 여기에는 또한 명백하고 유일한 대답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 어제 새벽에 많은 축구팬들이 목도했듯이, 결국 박지성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고, 그의 미래에 대한 판단과 선택 역시 오직 그의 몫일뿐이다. 무수한 전망과 우려 속에서, 묵묵히 2주간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예전의 활발한 모습을 되찾은 박지성의 모습만이 그의 과거와 현재를 증명하고, 아울러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존 듀어든의 말대로 어쩌면 "한 팀에 머무는 이유는 언제 올지 모르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아니라 매주 마다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위해 수많은 선수들이 무수한 땀방울을 흘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일개 단원과 중소 교향악단의 지휘자 중 어느 역할이 더 나은 것인지에 대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궁극적인 판단과 선택이 우리의 몫은 아님을 인정해야만 한다. 

비록 "이번에는 결승전에 꼭 출전하고 싶다."는 박지성의 발언에 대해 퍼거슨 감독이 긍정적인 답변으로 화답했다지만, 박지성이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로마에서 마침내 떨쳐버릴 수 있을 지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 1년여의 계약기간을 남긴 박지성과 맨유와의 관계 또한 여전히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섣부른 전망과 조언, 혹은 일방적인 비방과 조소를 일삼는 사람들도 경기장 곳곳에 무수한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박지성의 노력 앞에는 끝내 그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맨유를 떠나라는 존 듀어든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지만, 아마도 대다수의 팬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박지성이 어느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 그의 미래를 기꺼이 존중하고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미래는 그저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오직 노력하는 자의 것이어야 마땅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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