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만에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이동국이 지난 12일, 파라과이와의 A매치에 선발 출전하여 45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경기 전에는 물론, 경기 이후에도 이동국에 대한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동국이 대표팀에 복귀하며 남긴 메시지는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그 메시지란 이동국이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대표팀 선발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라는 것, 그리고 그러므로 여전히 2010년 월드컵 대표팀 승선을 위한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라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가 유효한 한, 그리운 이름 하나를 떠올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 대표팀의 중추였던 이름, 바로 김남일이다.
(C) 피파 홈페이지
사실 김남일의 대표팀 하차는 꽤나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거니와, 특히 대표팀의 주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아주 잠깐 부상으로 하차해 있던 동안 상황은 일변하고 말았다. 박지성이 주장 완장을 차고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며 박지성의 리더십이 새삼 화제가 되었고, 더욱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김두현과 영건 기성용이 급부상하며 김남일의 부재는 자연스런 '세대교체' 바람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결국, 김남일은 부상에서 회복하며 J리그에서 꾸준한 선발출장을 했지만, 끝내 대표팀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김남일은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대체 그 동안 김남일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002 한일 월드컵 : 김남일의 발견
2002년 월드컵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찬란하게 빛냈던 선수들이 어디 한 둘일까마는 그 중에서도 김남일은 여러모로 놀라운 발견이었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선수이기도 했거니와, 특히나 그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는 본래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당당히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오른 김남일의 존재는 한국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의 존재와 역할을 환기시켜주었고, 아울러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이상적인 모델로 자연스레 김남일을 떠올리도록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준 김남일의 활약은 '뛰어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손색이 없었다. 왕성한 활동량과 끈질긴 수비를 바탕으로 한 그의 분전은 그 자신에게는 '진공청소기'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안겨주었고, 한국 대표팀에게는 상대적으로 강팀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주었다. 김남일이 빠졌던 독일 전과 터키 전에서 유이하게 대표팀이 패배했던 것은 반드시 김남일의 존재여부와 직결되었던 것은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 전력에 차질을 빚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하며 김남일은 바야흐로 한국대표팀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전력이 되어 있었다.
네덜란드 에레지디비에 리그 : 도전과 실패, 그리고 진화
2003년 초, 박지성과 이영표 그리고 송종국의 네덜란드 에레지디비에 리그 진출 이후, 김남일은 2002년 월드컵 선수로서는 4번째로 네덜란드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의 경험은 김남일에게 그리 유쾌한 순간만은 아니었다. 페예노르트의 위성구단에 불과한 엑셀시오르에 임대 형식으로 입단하며 차후 페예노르트로의 입성을 노렸지만, 워낙에 처지는 팀 전력으로 인해 빛을 보기가 어려웠다. 나름대로는 데뷔전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의 활약을 했지만, 끝내 김남일은 엑셀시오르가 강등되면서 페예노르트 혹은 타 구단의 제의는 받지 못한 채 한국으로 쓸쓸히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전남과 단기 계약을 맺으며 K리그 무대에 복귀한 김남일은 분명 이전의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전의 그가 단지 악착 같은 수비로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면, 유럽 축구를 경험한 후의 그는 이제 세련된 전개 플레이에 눈을 뜨며 공,수에 걸쳐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로 거듭난 것이다. 실제로 김남일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전에는 무조건 수비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유럽에 가보고 나서 수비만 해서는 반쪽 선수밖에 안되는 걸 깨달았다."는 내용의(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그러한 깨달음은 그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55번 등번호를 단 김남일이 골을 넣고 나서 동료들과 기차 세리머니를 한 것은 김남일의 '진화'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순간으로 내 뇌리에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다. 네덜란드로의 도전은 흔히 실패로 평가되지만, 분명 그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K리그 : 최고의 순간에서 계륵으로
2005년 김남일은 수원으로 이적하며 차범근 감독의 품에 안긴다. 송종국을 영입한 지 얼마되지 않아 김남일마저 영입한 수원은 본격적으로 아시아 최고를 꿈꾸게 되었고, 곧 가시적인 성과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 첫 번째 무대는 A3 챔피언스컵. 김남일은 나드손과 환상적인 호흡으로 수원에 우승컵을 안기며 화려하게 수원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선보인다. 그리고 2006년에는 수원의 주장으로 선임되며 팀의 중심으로 자리를 굳힌 것은 물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선발로 활약하며 대표팀에서 역시 그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더욱이 2006년 K리그 올스타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 김남일은 최고 중에서도 최고로 등극했다.
(C) 수원 삼성 홈페이지
그러나 탄탄할 것만 같던 김남일의 위치에 미묘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부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해 5월에 있었던 국내 프로축구 경기에서 김남일은 수비수로 출장한 적이 있는데, 수비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던 측면이 없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김남일은 그가 가장 자신 있는 포지션을 다른 선수에게 내준 셈이었기 때문이다. 김남일이 이후 일본으로 진출한 뒤에, <포포투>의 'My perfect 11' 코너에서 차범근 감독을 후보로 선정하며 굳이 "수비수로 넣은 것"이라고 부연한 대목은, 차범금 감독이 '수비수'로 출전시킨 것이 김남일에게는 그리 달가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일화다. 김남일이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며 수원과 다소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던 것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불만이 쌓여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2007년 말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허정무 감독에 의해 주장으로 임명된 김남일은 대표팀에서는 여전히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지만, 그 기간 또한 그리 길지 않았다. 2008년 들어서 대표팀 경기 중, 김남일은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로 나왔다가 경기 종반 교체 아웃되는 경우가 점차 잦아졌다. 그런데 특이했던 것은, 교체 상황을 보면 주로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수비를 굳히기 위해 김남일이 빠지고 대신 조용형 등의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대개였다는 것이다. 언뜻 수비 강화를 위해 '진공 청소기'의 코드를 뽑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가지만, 그것은 당시 김남일의 수비 능력에 대한 허정무 감독의 의문을 방증하는 것이며,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김남일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최고'였던 김남일은 어느새 허정무 감독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2008년 9월 10일, 북한과의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1차전에 출전했던 김남일은 후반에 홍영조에게 반칙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고, 그 다음 경기를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이래 결국 국가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말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김남일의 하차 이후 신예 선수들의 성장과 대표팀의 선전이 맞물리면서 대표팀의 터줏대감이던 김남일은 서서히 잊혀지고 말았다.
J리그 : 김남일의 현재와 미래
2008년 빗셀 고베에 입단하며 J리그에 진출한 김남일은 첫해 무난하게 팀에 적응한 것은 물론, 2008 조모컵에서는 J리그 올스타에 선발되는 영예를 누리며 건재를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실상 J리그 올스타 선발은 이제 막 1회 대회로 개최되는 조모컵의 흥행을 위해 다분히 전략적으로 선발된 측면이 없지 않았고, 더욱이 2009년 들어서는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부상과 악운이 겹치면서 김남일은 '45M 자책골'로 새삼스레 화제가 되었을 뿐, J리그에서 꾸준히 경기를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더 이상 태극마크와 관련된 논의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C) 빗셀 고베 홈페이지
그러나 최근, 이동국의 복귀와 부상에서 회복한 김남일의 J리그 선발 출전이 맞물리면서, 김남일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 또한 조심스레 수면 위로 올라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여러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현재 대표팀 선수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며 여전히 대표팀의 문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음을 시사했고, 김남일 또한 다시 한 번 대표팀에 승선하기 위한 각오를 결연히 밝힌 바 있다. 특히 김남일은 대표팀에서 설령 벤치 멤버라 할지라도 상관없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에, 향후 그가 J리그에서 보이는 활약 여부에 따라 한두 번 정도의 기회는 더 부여해 보는 것도 대표팀 내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괜찮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김남일이 네덜란드 무대를 경험하며 '진화'를 겪었듯, 일본 무대를 경험하면서도 분명 무언가 얻은 것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또한, 언제나 자신의 자리라고 믿었던 대표팀의 중앙을 후배들에게 내어 주면서 국가대표가 그저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좀 더 많은 노력과 의지를 보여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을 재인식 했으리라고도 믿는다. 그래서 마침내 김남일이 다시 대표팀에 승선하는 날, 나는 한국 대표팀의 전력이 보다 탄탄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남일에게는 뛰어난 전개력이 있고, 여전히 녹록치 않은 수비력이 있으며(그가 다시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고 가정할 때), 무엇보다도 큰 무대를 누벼 본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도면, 김남일의 이름이 그저 그리운 이름이 아닌, 다시 한 번 익숙한 이름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