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그런 의도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헤아려 보니 월드컵이 임박했던 5월과 월드컵이 개막했던 6월, 이 두 달 동안에는 특히 축구 관련 서적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사놓고 계속 쌓아두기만 했던 <축구장을 보호하라>를 마침내 읽었고, 꽤 만만치 않은 값을 치르고 <월드컵 1930-2010>을 사 보았으며, 계속해서 관심만 두고 있던 <일본인과 천황>(이 책은 사실 '축구'라는 카테고리로만 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도 드디어 사 보았다. 게다가 장원재의 <유럽축구에 길을 묻다>는 심지어 두 권을 사기까지 했으니ㅡ물론 그 이유는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들고 간 이 책을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 가방에 넣은 채 홀연히 작별을 고하고 돌아 온데다, 다행히 책값이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지만ㅡ확실히 이런 자세는 월드컵을 맞이하는 축구팬으로서 매우 적절했다고 자평할 만하다(와중에 박상의 야구소설 <말이 되냐>를 읽은 것은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일단 물량으로 압도하는 형국이니 지난 두 달 간 읽은 몇 안 되는 책들 중에서 탁월했던 건 역시 축구 관련 서적으로, 정윤수의 <축구장을 보호하라>와 헤르만 악셀의 <월드컵 1930-2010>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정윤수의 책 같은 경우에는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 책이 월드컵을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을까 짐작했었는데, 정작 이 책은 몇몇 월드컵의 비순수성을 지적하기는 해도 대체로 여전히 계속되는 월드컵의 순수성을 예찬하고 있었고, 놀랍게도 이것은 기존의 내 마음마저 바꾸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월드컵을 꽤나 못마땅해 하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태도에서 벗어나, 월드컵을 마음껏 즐기되 비판의 시선을 놓지 않는 쪽으로 선회했고, 이것은 결국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의외로 월드컵이 훨씬 즐거워지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알려준 건, '월드컵은 일단 즐길 만한 세계적인 이벤트다'라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책은 2002년 월드컵을 다양한 문화적,역사적 관점으로 해석해내며 2002년 월드컵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재생해 놓고 있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풍성한 수사에 대한 약간의 강박관념과 환원주의적 오류(비록 저자가 이를 경계함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이 느껴지는 듯도 했지만, 감히 말하건대 2002년 월드컵에 관한 책들 중에서는 세계를 둘러봐도 이보다 더 나은 책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까 싶다.

한편, <축구장을 보호하라>가 다양한 스펙트럼과 세심히 쓴 듯한 문장으로 즐거움을 주었다면, <월드컵 1930-2010>은 흥미로운 시선과 재기 넘치는 그림으로 즐거움을 주었다. 특히 이 책의 출판사에서는 책을 사자마자 곧 책 가격이 떨어진 걸 조금 억울해 하던 내게, 알지도 못했던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며 '박지성 사인본'으로 한 권을 더 주겠다고 연락을 해 와서 나를 기쁘게 했는데, 사실을 말하면 나는 박지성 사인본을 받게 되는 것과 책값이 2분의 1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점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욱 마음에 드는 건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이건 실제로 사인본 책을 받아봐야 알겠는데, 불행히도 이후 출판사에서는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가타부타 말이 없고, 들리는 소식으로는 박지성이 한국에 들어왔다지만 그게 내가 받을 책에 사인을 해주기 위한 목적은 아닌 것 같으니, 과연 내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출판사에서는 박지성의 사인을 이제부터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를 고민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는데, 만약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면 아무쪼록 그 일에 행운이 따르기를 바랄 뿐이다.

장원재의 <유럽축구에 길을 묻다>는 책보다도 저자가 <100분 토론>에 나온 것이 더욱 인상 깊었다. 장원재는 지난 6월 10일, "다시 월드컵! '광장'을 말하다"를 주제로 한 <100분 토론>에서 패널로 출연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날 <어퍼컷>의 저자인 정희준이 함께 출연하면서 나는 당시 근자에 읽었던 두 책의 저자의 모습과 육성을 TV로 확인하는 셈이 되었다. 그런데 장원재는 정희준과 나란히 앉은 진중권의 반대편에 앉아서 꽤나 유감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진중권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의 반대편에 앉은 사람은 '언제나' 악당이었다(고 내가 생각한다)는 게 문제다. 그 토론에서 장원재는 악당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역시 악당이군 하는 생각이 드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덕분에 장원재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사라져버렸다. 물론 저자의 정치적 성향(그것도 극히 부분적인)으로 저자의 책을 예단하는 것이 정당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건 이후에 장원재의 신간 <끝나지 않는 축구 이야기>가 나온 걸 알았을 때 나는 간단히 그 책을 외면했다. 뿐만 아니라, 실은 알라딘에서는 그 책의 저자를 '정원재'라고 잘못 표기해 놓고 있었는데, 나는 이걸 결코 신고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인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장원재든 정원재든 이제 아무래도 좋으니까 말이다(하지만 내가 앞으로 장원재의 책을 절대로 보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까지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그는 제법 많은 축구 관련 서적의 저자다).

마지막으로, <맛의 달인>의 원작자인 카리야 테츠가 쓴 <일본인과 천황>은 솔직히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사실 이 책은 예전에 축구잡지에 소개되어 관심을 가졌었는데, 줄거리만 보자면 '축구 관련 서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더욱이 일단은 '만화책'이다. 간략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일본 도토 대학 축구부의 스미카와 준이 전 일본 대학축구대회 결승전에서 국가 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줄거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주인공도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의 역할은 주로 천황제의 해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학교 이사장의 말을 '들어' 주는 것으로, 가령 이사장이 "'교육칙어가 일본인을 속박해왔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리라도 들은 듯이 깜짝 놀라서는 앵무새처럼 이사장의 말을 되풀이한다. 또한 질문은 언제나 이사장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질문만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럴 바에야 그냥 이사장이 혼자 질문하고 혼자 답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다. 물론, 기실 이 책의 목적은 천황제의 해악에 대해 저자가 이사장의 입을 빌어 비판하는 것이고, 그러니 이런 방식인 건 한편으로 당연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개성 없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스토리가 그닥 중요하지 않은 만화에 재미를 기대하기란 확실히 어려운 것도 또한 당연하다. 더욱이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일본의 역사적 사건과 제도 등에 관련된 각주들도 대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만화책'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내용의 진정성을 따지자면 이 책은 한 번 읽어 볼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천황제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바라고 썼다는 이 책은 천황제와 관련해서 중요한 점들을 거듭 짚어주면서 최대한 독자들이 쉽게 그리고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는 게 느껴진다(그럼에도 그게 쉽지 않다고 느끼는 건 독자 탓도 있겠지만). 더욱이 기본적으로는 이 책의 대상이 당연히 일본인들, 특히 천황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일본의 현 젊은 세대들이겠지만, 저자의 비판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과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가령, 사회 내에 만연한 엄격하고 기계적인 상하관계라든지, 인맥과 학연이 무시 못 할 힘으로 작용한다든지, 혹은 천황으로 대변되는 어떤 '상징'을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손쉽게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든지 등의 모습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만은 않거니와, 특히 '천황'을 '국가'로 대치해서 보자면 결국 그러한 시스템과 제도가 '개인'의 건강하고 자유로운 의식과 행동을 의도적으로 통제한다는 점에서 이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추천사에서 김규항이 지적하듯이, "천황제의 특징은 천황을 신처럼 떠받들면서도 정작 천황이 누구인가는 상관이 없다는 데 있고", 따라서 "우리 안의 천황제"를 직시하고 경계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의문 하나는 왜 천황제가 없는 우리나라가 '천황제'의 해악을 그대로 답습하는가가 아닐까 싶은데, 이와 관련해서는 <포포투>의 한 구절을 곱씹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온 <포포투>는 이제 내게 마치 밥상의 김치와 비슷하고, 그런 이유로 <포포투>를 보았다고 굳이 언급하는 건 오늘 점심에 김치를 먹었다고 말하는 것만큼 불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포포투>를 읽고 나서도 가끔은 그 안의 몇몇 대목을 굳이 어딘가에 옮겨 적어 놓고 싶은 때가 있고, 바로 지금도 그러하다. <포포투>에 칼럼을 연재하는 사이먼 쿠퍼는 '왜 잉글랜드를 응원하나'라는 제하의 칼럼(<포포투> 6월호)에서 케냐의 작가 은구기와 티옹오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는데, 그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나 또한 그의 말로 이 글을 끝내는 게 꽤나 적절할 듯하다. 물론, 그의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 안의 천황제"를 마주하는 데 있어서 티옹오의 말이 중요한 밑그림은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정복이란 피지배자가 지배자의 가치에 대해 칭송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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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는 순간, 떠나고 싶게 했던 책을 추천해 주세요!

  

범의 상을 한 준수한 얼굴은 육색(肉色)에 윤기가 역력하며 정면을 응시하는 눈초리가 자못 삼엄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압도해버린다. 그의 눈빛에는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 속에서 느꼈던 온갖 고뇌가 서려 있는 듯하다. 한마디로 그의 인생 역정이 이 작은 화폭에 완벽하게 담겨 있다. (p58)

<화인 열전> '공재 윤두서' 편에서 유홍준은 공재의 <자화상>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지만 나로서는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유홍준은 다분히 그의 주관으로, 특히 공재의 삶을 부득불 그의 자화상에 투영하여 보기를 원하는 듯하지만, 내 주관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공재의 자화상은 깊은 산속에서 결코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얼굴을 완벽하게 묘사해 놓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발그레한 얼굴빛에 형형한 눈빛과 고집스레 다문 뭉툭한 입술, 그리고 마치 호방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구레나룻은 <삼국지>의 장비 익덕이나 <수호지>의 흑선풍 이규를 연상시키고, 솔직히 이러한 외향은 '고뇌'보다는, 심지어 산적조차도 산속에서 만나면 무서워 벌벌 떨게 할 만한 '기세'를 담고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한마디로 말해, 공재의 <자화상>은 확실히 자꾸 보고 싶어지는 얼굴을 그린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태 전, 나는 이 '겁나는' 공재의 <자화상>을 보기 위해 해남을 찾았었다. 공재 자화상에 대한 내 불경한 평가와 그림에 대한 내 무지를 고려하면 스스로도 꽤나 놀라운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해남을 찾은 건 비단 '그림'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사실 <화인 열전>의 '공재 윤두서' 편을 보면서 매력적이었던 건, 공재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공재가 보여준 어떤 '문인의 멋'이었다. 출신 성분 탓에 벼슬길이 막혔지만 그런 불우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여러 분야에서 선구자적 면모를 보였다는 점도 감탄할 만했지만, 무엇보다도 공재와 그가 사귄 벗들에 관한 일화는 공재의 풍모를 진정 매력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특히 동국진체의 창시자인 옥동 이서가 공재가 세상을 떠난 이후 쓴 제문에는 공재가 살아있던 당시(심지어 죽음과 마주했을 때조차도) 그들의 교우의 깊이와 공재의 면모를 실로 멋스럽게 웅변하고 있었다.

공이 태어날 때 나는 여섯 살이었다. 나는 약관 때부터 공과 더불어 서로 좋아하고 추종하여 강구하고 연마하기를 40여 년이 되었다. 공은 나의 마음을 믿고 나는 공의 도량을 좇았다. 내가 그것을 아교와 칠이라 일컬으면 공은 금란이라 말했고, 내가 관포(管鮑)라 하면 공은 범장(范張)이라 했다. 마음이 비록 서로 거스르지 않았으나 구차하게 합하지 않았다. 한마을에서 같이 늙어가기를 기대하였더니 뜻하지 않게 가난으로 인해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장차 살아 되돌아와 서로 만나자고 했으나 뜻밖에 세상을 떠나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다.
오호라, 하늘이 나를 돕지 않는구나. 어찌 나의 분신(分身)을 빼앗아가는가. 어찌 나의 몸 반쪽을 잘라내는가. 오호라, 이로부터 다시는 마음을 합할 친구가 없으며, 다시는 마음의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수 없으니, 쓸쓸하여 하늘과 땅 사이가 홀로 외롭고 쓸쓸하구나. (p71)

또한 <심득겸 초상>과 관련한 일화도 그림 자체의 뛰어남보다는 외려 공재 자신의 풍모를 은연중 드러내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심득겸의 생전 모습을 그토록 실감 나게 그렸다는 건 공재의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일화에서 친우의 모습을 속속들이 기억하는 공재의 "금석 같은 사귐"의 요체를 확인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호 이익이 공재 사후 제문에서 썼듯 "장부라고 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러한 꼿꼿함과 진정으로써 벗을 대하는 공재의 태도에서 나는 한 문인의 '풍류와 멋'을 보았고, 바로 그러한 것들을 찾아 녹우당이 있는 해남으로 가고자 했었던 것이다.

공재는 선비인 심득겸과 금석 같은 사귐을 하였다. 심득겸이 죽으니 공재가 그의 모습을 생각하여 초상을 그렸는데 터럭 하나 틀리지 않았다. 이것을 그 집에 보내어 벽에 걸었더니 온 집안이 놀라서 울었는데, 마치 죽은 이가 되살아온 것 같았다. (p72)

일단 해남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나자 이후의 일정은 자연스레 따라 나왔다. '땅끝'으로 유명한 해남이니만큼 '땅끝'을 찍고, 역시 해남에 위치한 미황사와 대흥사를 녹우당과 함께 둘러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에도 들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해남에서 이틀 가량을 보내고 완도를 통해 제주도로 갈 생각이었기에 고산 윤선도가 머물렀던 보길도는 애초에 제외했었는데, 결국 차편을 맞추지 못해 다산 초당마저 못 들렀고, 그로 인해 여행의 단초를 제공했던 '공재'와 관련된 두 가지 인연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셈이 되었다. <화인열전>을 읽고 알게 된 바지만, 공재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또한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이유만으로 꼭 보길도와 다산 초당을 들르는 것은 아니지만, '공재'에 좀 더 초점을 두고자 했다면 그와 같은 여행 일정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은 조금 아쉽게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해남에서 정녕 인상 깊었던 건 녹우당의 현판과 공재의 <자화상>이 아니었다. 물론, 뒤뜰의 비자림 숲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 하여 이름 지은, 그리고 공재의 '분신' 옥동 이서가 직접 글씨를 쓴 녹우당의 현판과, 유명한 공재의 그림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그보다 해남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든 건 해남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이었다. 조금 성급한 결론이긴 하지만, 나는 해남에서 진정과 선의로 이방인을 대하는 사람들을 만났었고,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자화상>의 겉모습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공재의 매력적인 면모와 닮은 데가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친절했던 해남은 이제 내게 그저 공재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닌, 공재의 '멋'을 아울러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고 있고, 그런 이유로 나는 '자꾸 보고 싶어지는 얼굴은 아닌' 공재의 <자화상> 속 얼굴을 또 보기 위해, 좀 더 정확하게는 공재의 <자화상> 너머에 있는 '인간' 공재를 찾아, 문득 '해남'을 다시 찾아 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화가의 전기는 인물사(人物史)로서 미술사이기 이전에 인간학(人間學)으로서 미술사라고 할 만한 것이다. (p3)

 

 

 

 

 

 

 
 


덧. 해남 여행기1( http://blog.aladin.co.kr/JogaBonito/2358229 )
     해남 여행기2( http://blog.aladin.co.kr/JogaBonito/2359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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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네티즌은 차두리가 골을 넣으면 세레머니로 비행능력을 공개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차두리는 비행능력을 끝내 공개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신에 차두리는 눈물을 보였는데, 그것은 비행능력보다도 좀 더 멋있었고 훨씬 아름다웠으며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다. 그 눈물로써 차두리의 심장은 엔진이 아님이 밝혀졌고, '로봇'이 아닌 '인간'이었던 차두리의 어떤 진실한 감정의 분출은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촉촉하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경기가 끝난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패배의 원인을 쏟아내는 글들은 이러한 눈물을 서둘러서 훔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여전히 특정 선수의 특정 플레이가 패배의 원흉이고, 허정무 감독의 전술이 글러 먹었고, 조직력이 문제였다는 등, 일부 사람들의 글 속에는 감정이 아닌 그저 이성을 가장한 무정만이 넘쳐나는 듯했고, 나는 그들이야말로 정녕 로봇이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물론 종종 그게 일인 사람들도 있고 그런 분석도 필요한 일이니 그걸 마냥 나무랄 수는 없다. 단지 그때의 내 감정은 그랬다). 감정의 여운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서둘러 감정과의 결별을 강제하는 SBS의 인터뷰도 그래서 못마땅했다.

개인적으로 패배 자체는 별로 아쉽지 않다. 4강 신화를 다시 재현할 수 없게된 것도 그다지 아쉽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건 이번 월드컵에서 더 이상 한국 대표팀의 경기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이러면 결국 말 장난 같기도 하지만, 나는 이게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나는 승패보다도, 4강보다도, 무엇보다도 90분간 감정의 파노라마를 겪게 되는 일이 즐거웠었다. 어디가서 그러한 90분을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경기를 앞두고 느끼는 유쾌한 긴장감과 기대를 어디가서 쉬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제는 그런 일들이 당분간 끝났다는 게 정녕 아쉽다.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멋진 경기였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근래에 본 최고의 경기였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경기였다. 더불어 다른 선수들도 그랬지만 눈물 흘리는 '인간', 차두리가 있어서 경기 후의 여운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이제 이것으로 '우리의' 월드컵은 끝났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혼신의 힘'이라는 이 진부한 표현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체현해낸 선수들이 대견하고, 특히 재미와 감동을 더한 차두리가 있어 즐거웠다. 차두리, 로봇이 아니라서 고마워!



덧 하나. 감동을 좀 더 지속시켜줄 말들.

두리한테서 자꾸 문자가 오네. 정말정말 아쉽네요. 난 이기는 줄 알았어요... 이러면서. 설마 아직 울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한 시가 다 되가는데...  ㅡ차범근 트위터 中ㅡ 

"이번 월드컵에 오기 전, 안전 문제에 대해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을 하고 왔었다. 그런데 이곳에 막상 와보니 우리가 경기장, 훈련장, 숙소를 오갈 때마다 우리를 보는 많은 남아공 사람들, 어린아이들이 모두 환호하고 좋아해줬다." "어린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해주는 것을 보니 축구선수로서 우리의 큰 임무를 완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ㅡ차두리ㅡ 

어느날 팀 마사지사가 "경기도 안 하는데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은 모양이다.
그러나 두리는 의아해 한 마사지사에게 "나는 입으로 나의 위기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더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고 설명했단다.
그 자리에서 마사지사, 난 너에게 무릎 꿇어 존경을 보낸다며 무릎을 꿇는 시늉을 해보이더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기특하고
또 어려움을 아빠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겨내려고 애쓰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인생은 길다.
선수 생활이 끝나면 모든 걸 결산해야 하는 게 인생은 아니다
오늘도 경기를 마친 두리에게 물었다.
"경기 재미있게 했어?"
나는 잘 했느냐고 묻지는 않는다.
그게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단지 좋은 경기를 하고 나면
주변의 잡음이 줄어들고 본인이 마음 편해 하니까
나는 감사한 것일 뿐이다.
 

ㅡ차두리 어머니 오은미 씨의 글 中ㅡ (출처 : http://blog.naver.com/haena37/140025725820)

"한국 선수들은 고개를 들기 바랍니다. 당신들은 고개를 떨굴 이유가 없는 멋진 축구를 했고, 고개 들어 당당하게 어깨펴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개를 드세요." ㅡ독일의 한 캐스터ㅡ (출처 : http://v.daum.net/link/7769310) 

덧 둘. 차두리에 관한 재밌는 일화.

이젠 우리 두리 녀석도 제법 컸다. 분데리스가 선수들에 관한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가진 전형적인 꼬마 팬이다. 아빠인 내가 얻어다 주지 않으니까 레버쿠젠 팀의 리벡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서는 "내가 두리인데 우리 아빠가 자꾸 까먹어서 그러니까 사인 두 장만 보내달라."고 해서 기어이 사인지를 손에 넣을 만큼 열성이다. 한 번은 장차 독일 국가대표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국 국가대표가 될 것인가 하는 주제 넘은 고민을 하기도 했다. 또 1986년 겨울엔 내가 깁스를 해서 한쪽 밖에 양말을 신을 수가 없었는데 그것도 아빠가 하는 것이라 좋아 보였는지 녀석도 겨우내 한쪽 양말만 신고 다녔다.

또 1986년 9월의 일이다.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두리 녀석과 마당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이날도 두리 녀석은 11번이 새겨진 유니폼에 팬츠, 그리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기다란 스타킹에 뽐이 제법 뾰족뾰족한 축구화를 신고 있었다. 내가 볼을 갖고는 뺏으라고 했더니 갑자기 내 정강이를 향해 두 발로 덮치는 것이었다. 어찌나 아픈지 '악' 소리만 하고 두 손으로 정강이 뼈를 붙들고 주저않고 말았는데 두리 녀석은 옆으로 쓱 오더니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냉큼 돌아서는 것이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야! 볼을 보고 태클을 해야지 다리를 차는 게 어딨어? 그리고 아빠가 아파 죽겠다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어?"하고는 소리를 냅다 질렀다. 그런데 녀석의 하는 말이 더 걸작이었다. "월드컵 선수들은 다 그렇게 하는 거야." 

ㅡ차범근 에세이 中ㅡ (출처 : http://blog.naver.com/jordyinny/11000567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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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그 자체로 '순수한 축구대회'를 표방하지만 지구상 최대의 국제적 이벤트라는 점에서 '순수성'의 포장지를 가볍게 벗어던진다. 독재정권의 추악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1978년 아르헨티나) 열린 적도 있고 독재에서 벗어나 그 억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1982년 스페인) 열린 적도 있다. 역대 개최국들은 악착같이 월드컵을 국운 상승의 호기로 삼았다. 미국(1994년)과 프랑스(1998년)는 경제적 효과와 '일시적' 인종화합의 장으로 삼기도 했다. ㅡ<축구장을 보호하라> 中ㅡ 

월드컵의 역사가 증명하듯 본래 월드컵은 '순수한 축구대회'와는 거리가 있었다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유독 상업주의와 관련하여 '순수성'이 발가벗겨지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는 SBS의 공로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SBS는 월드컵 단독중계를 강행하면서 독점한 '상품'을 통해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내기 위해 가히 천박할 정도로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덕분에 월드컵 경기를 전후로 보이는 광고들은 오직 소수의 대기업의 것으로만 채워져 있고, 시민들을 위해 전광판에 광고 대신 축구를 보여주고자 하는 전광판 업체들의 호의는 그에 대해 돈을 요구하는 SBS에 의해 무산되기도 했다. 게다가 열정적이고 자발적인 거리 응원은 발 빠르게 장소를 선점한 기업들에 의해 그 순수성의 상당부분을 위협받고, 많은 돈을 지불한 월드컵 '공식' 스폰서들을 위한 FIFA의 특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순수성이 훼손된 월드컵에 냉소가 자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한국 대표팀이 지난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누군들 없겠는가마는, 이미 순수성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진 상황에서 한국 대표팀의 승리는 천박한 자본주의와, 혹은 때로는 정권을 쥐고 있는 이들의 승리를 아울러 의미하고, 그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한국 대표팀의 조별 경기만으로도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SBS의 수익은 한국 대표팀이 토너먼트에 진출할 때부터 급격히 늘어나는데, 이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중계권마저 독점으로 보유한 SBS의 향후행보에 타당성을 안겨주고, 또한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있을 때 몇몇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일들을 서둘러 처리하려는 '독재적' 정권은 대표팀의 승리가 있을 때마다 벙커에서 승리의 휘파람을 부는 것이다. 그 꼴을 볼 바에야 차라리 대표팀이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오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축구가 그렇게 희생만 치른 것은 아니다. 프랑코 독재시대를 끝낸 스페인에게 축구는 희망의 예광탄이었으며 남미와 아시아에서도 축구는 거역할 수 없는 저항적 에너지가 되기도 했다. 구체적인 스트라이크의 계기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축구가 없는 독재를 상상해 보자. 무슨 낙으로 그 혹독하고 지루한 세월을 견딜 것인가. 물론 그 참담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경기가 독재자의 안녕에 이바지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권력자가 애용하는 축구라고 해서, 이를테면 약 20년 동안 집권했던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딴 아시아 지역 축구대회를 열어 독재의 달콤한 맛을 즐겼다고 해서 그 자리에 모인 수만 명의 관중들이 오로지 독재자에게 충성을 다짐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ㅡ<축구장을 보호하라> 中ㅡ 

하지만 월드컵이 개막한 이후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단지 냉소만으로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어떤 가치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우려스러웠던 팔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내 조별리그 첫 경기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드록바가 2006년 월드컵 당시 자국의 내전 중단을 눈물로 호소했던 이야기라거나, 혹은 북한 대표팀 선수로서 월드컵 무대를 밟아 세계최강 브라질을 상대하게 된 정대세가 만감이 교차한 듯 눈물을 쏟았다는 이야기라거나, 혹은 1966년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했던 북한이 준결승 티켓을 양도해야만 했던 상대인 포르투갈과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나서 다시 맞붙게 되었다는 이야기라거나, 또는 시한부 인생 선고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출전 의지를 불태운 호주의 해리 큐얼에 대한 이야기 등, 월드컵이 엮어내는 문화적,역사적 '드라마'에는 문자 그대로 '월드컵'이기에 접할 수 있는 전세계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에 대한 반응은 결코 냉소일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제 '냉소'는 눈을 씻고 봐도 흔적을 찾기 어렵다. 거슬리는 부부젤라의 소음과 지나치게 다루기 힘든 자블라니의 탄성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열의를 다해 경기장에서 땀을 흘리고, 그 선수들을 보며 관중들은 때로 환호하고 때로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 역시 그 어느 대표팀 선수들 못지않게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와중에 훌륭한 경기력으로 승리를 기록하기도 하고 아쉬운 경기력으로 패배를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경기장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오직 '축구경기'가 펼쳐지고, 그것은 세계의 많은 나라 그리고 각국의 많은 선수들이 바라마지 않던 순수하고 역사적인 현장인 셈이다. 그렇기에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며 거리로 나선 붉은 악마들의 순수성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고, 이는 또한 여전히 유효한 축구의 가치를 확고히 웅변하는 것이다.

축구는 철저히 산업화되었다. 수익성이 없는 것은 곧 무익한 것으로 변했다. 어린아이가 공을 가지고 놀거나 고양이가 면실 꾸러미를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은 순수한 쾌락은 상실되었다. 프로 축구의 관료화는 단순한 주력과 체력적 강인함만을 요구한다. 즐거움을 박탈하고 환상을 쇠퇴시키고 대담성을 금지시켰다. 금지된 자유를 향해 모험적으로 돌진하는 육체의 순수한 쾌락이 사라졌다. ㅡ<축구, 그 빛과 그림자> 中ㅡ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서 축구의 역사를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가는 서글픈 여행의 역사"라고 단언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말은, 그래서 그 대단한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그가 지적하듯이 "수익성이 없는 것은 곧 무익한 것"이 되고, "어린아이가 공을 가지고 노는 것과 같은 순수한 쾌락"은 상실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축구장에서 "환상"과 "대담성"과 "즐거움"을 만난다. 최고의 무대에서 승부를 가리려는 그 승부의 원초적 순수성은 월드컵 역사에서 있었던 몇몇 의심스러운 경기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져왔고, 이제 월드컵은 수억의 인구가 지켜보는 축제의 장이 되면서 더 이상 적어도 경기장 안에서의 순수성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축구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그러므로 결코 천박한 상업주의와 과잉된 민족주의만이 아닌, 축구경기에 대한 혹은 나아가 축제에 대한 기대와 환희와 즐거움이기도 한 것이며, 이는 오늘날의 축구가 오로지 '의무'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축구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경계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축구와 월드컵에 환호하는 이들의 순수성을 이용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월드컵을 마치 '악의 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매도할 이유로까지 확대되기에는 불충분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과연 월드컵이 벌어지는 일요일에 무장투쟁이 가능한가? 축구경기가 있는 일요일에 혁명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지만, 지난 2006년 <한국일보>의 한 칼럼에서 강준만이 서남대 김욱 교수의 말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이에 대해서는 이런 반론도 가능한 것이다. "축구경기가 없는 일요일에는 언제나 혁명이 가능한가?"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강준만은 월드컵 열풍에 대한 비판이 '관심'의 기회비용을 걱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월드컵 과잉은 4년에 한 달이지만 나머지 3년 11개월이 더 문제가 아닌가?"하는 재반론도 가능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축구는 한국이다>에서 강준만이 소개한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비유는 월드컵에 대한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한 해답의 하나를 제시한다고 믿는다.

"때로 경기 하나가 인식의 일대 전환을 가져오고 그것이 실제의 물적 질적 변화를 선도한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혹여나 촌스런 애국주의에 대한 민망함에 그를 질타하는 분석은 참아 달라. 지난 월드컵 애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근엄한 분석을 접할 땐, 어렵게 만난 멋진 연인과 이제 겨우 연애 좀 시작해 보겠다는데 연애 너무 집착하면 자칫 살인나는 수도 있다는 훈계부터 듣는 기분이었다." ㅡ<축구는 한국이다> 中ㅡ 

197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하며 줄리메 컵을 영구히 소장함에 따라, 새로이 월드컵 트로피를 고안하게 된 이탈리아의 조각가 실비오 가자니가는 월드컵 트로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광의 선수는 초인이 아니라 위대한 인간이어야 하며 더욱이 최선을 다해 고난을 이겨낸 영웅이어야 한다. 그 선수가 세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어쩌면 우리가 월드컵을 둘러싼 '순수성의 훼손'에 대해 과도한 비판을 하는 건, 월드컵에서 초인의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의 비루하고 천박한 감정과 행태 따위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월드컵은, 그리고 축구는 오직 '인간'의 놀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월드컵에는 종종 인간의 추악한 모습이 끼어들기도 하지만,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인간의 모습도 상존하는 것이다. 땀을 흘리며 공을 좇는 순수성이 있고, 거기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인간들의 '진실한' 감정이 넘실댄다. 물론, 그런 이유로 월드컵을 향한 비판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한 그런 이유로 월드컵을 향한 열광도 이해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요컨대, 월드컵은 그 트로피의 형상이 그러하듯 단언컨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끝내 그 '그림자'의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축제인 월드컵을, 차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월드컵에 가장 바라는 것은... 인간을 고무시키고 단합시키는 (축구의) 힘이다." ㅡ넬슨 만델라ㅡ

멀미나는 알제리 시절, 그 수난의 햇살 아래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던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알베르 카뮈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궁극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의무는 축구선수로서 지녀야 할 윤리와 의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ㅡ<축구장을 보호하라> 中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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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시원한 승리로 장식해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한국 대표팀은 아르헨티나와의 두 번째 조별예선 경기에서 1대4로 패했다. 몇몇 아쉬운 상황들을 보면 운이 없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개인 기량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 경기였다. 그런데, 대패였던 만큼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플레이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과도한 비판이 쏟아지는 게 마뜩치않다. 더욱이 몇몇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경기에 투입해서는 안 되었다는 원초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박주영과 염기훈 그리고 오범석을 투입한 게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이를 한국축구가 지닌 고질적인 인맥과 학연에 따른 선발과 연결시킨다. 오범석의 경우에는 그의 아버지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김희태 축구센터 총괄감독이라는 사실까지 언급된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오범석이 선발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기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유럽선수들과 상대하기 위해 신체조건이 좋은 차두리를 기용하고, 기술이 좋고 작은 남미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영리하고 민첩성이 좋은 오범석을 기용한다는 전략은 꽤나 그럴듯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고, 누가 나오든 선전을 바란다던 기사 말미의 응원은 끝내 공염불로 남았다.

박주영에 대한 비판은 사실 그리스 전과의 경기에서도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미국의 한 언론매체에서는 박주영을 경기 MVP로 뽑을 만큼 그의 공헌도를 인정했고, 굳이 그런 공식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박주영이 그리스의 거한들과 맞서 공중볼을 경합하고 활발하게 공간을 창출했던 것은 모두가 목도했던 바와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경기에서 박주영이 기록한 자책골은 그의 모든 노력을 단번에 부정해버리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러한 잔인하리만치 혹독한 '비난'은 그리스 전에서 중원 장악에 힘을 보탠 김정우나 대표팀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소화했던 염기훈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물론, 이번 경기에서 앞서 언급한 선수들이 아쉬웠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상대가 강하니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그리스 전에 비하면 집중력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도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해당 선수를 빼버려야 했다거나 모든 것이 인맥에 의한 선발 탓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떤 건설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비판'이 아닌, 소모적이고 찰나적인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그런 식으로 몇몇 선수들을 계속해서 빼다보면 대표팀에 남는 선수들은 거의 없다. 가령, 적게 뛰는 이동국을 빼고 노쇠한 안정환을 빼고 경험 없는 이승렬을 빼고 인맥으로 들어간 염기훈을 빼고 이제는 세레머니도 못마땅한 박주영도 빼면, 과연 대표팀의 공격진에는 누가 남는가. 설령 누군가 새로운 선수가 들어간다고 해도 언젠가 지는 경기를 피할 수 없는 한 한국 대표선수들은 영원한 돌림노래처럼 들고 나기를 반복해야 할 뿐이 아니겠는가.

어떤 말로도 패배를 아름답게 포장하기란 어렵다.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패배조차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역시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씁쓸한 것은 비단 패배가 아니라,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일부의 사람들처럼 '패배'를 그렇게 발작적으로 받아들일 바에야 차라리 한국 대표팀의 응원을 당장 관두고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혹은 스페인과 같은 강팀을 응원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게 백 배 나은 일이다. 물론 아무리 강팀들이라도 승리가 영원할 수 없는 한, '발작'은 곧 되풀이되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는 그저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패배의 아쉬움을, '비난'의 대열에 가세하지 않는 대다수의 팬들이 그렇듯, 다음에 다가올 짜릿한 승리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마냥 슬퍼하며 고개를 숙이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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