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시원한 승리로 장식해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한국 대표팀은 아르헨티나와의 두 번째 조별예선 경기에서 1대4로 패했다. 몇몇 아쉬운 상황들을 보면 운이 없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개인 기량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 경기였다. 그런데, 대패였던 만큼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플레이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과도한 비판이 쏟아지는 게 마뜩치않다. 더욱이 몇몇 선수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경기에 투입해서는 안 되었다는 원초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인터넷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박주영과 염기훈 그리고 오범석을 투입한 게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이를 한국축구가 지닌 고질적인 인맥과 학연에 따른 선발과 연결시킨다. 오범석의 경우에는 그의 아버지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김희태 축구센터 총괄감독이라는 사실까지 언급된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오범석이 선발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기사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유럽선수들과 상대하기 위해 신체조건이 좋은 차두리를 기용하고, 기술이 좋고 작은 남미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영리하고 민첩성이 좋은 오범석을 기용한다는 전략은 꽤나 그럴듯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고, 누가 나오든 선전을 바란다던 기사 말미의 응원은 끝내 공염불로 남았다.

박주영에 대한 비판은 사실 그리스 전과의 경기에서도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미국의 한 언론매체에서는 박주영을 경기 MVP로 뽑을 만큼 그의 공헌도를 인정했고, 굳이 그런 공식적인 평가가 아니더라도 박주영이 그리스의 거한들과 맞서 공중볼을 경합하고 활발하게 공간을 창출했던 것은 모두가 목도했던 바와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경기에서 박주영이 기록한 자책골은 그의 모든 노력을 단번에 부정해버리는 모양새다. 그리고 이러한 잔인하리만치 혹독한 '비난'은 그리스 전에서 중원 장악에 힘을 보탠 김정우나 대표팀 선수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소화했던 염기훈에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듯하다.

물론, 이번 경기에서 앞서 언급한 선수들이 아쉬웠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상대가 강하니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그리스 전에 비하면 집중력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지적도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해당 선수를 빼버려야 했다거나 모든 것이 인맥에 의한 선발 탓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떤 건설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비판'이 아닌, 소모적이고 찰나적인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그런 식으로 몇몇 선수들을 계속해서 빼다보면 대표팀에 남는 선수들은 거의 없다. 가령, 적게 뛰는 이동국을 빼고 노쇠한 안정환을 빼고 경험 없는 이승렬을 빼고 인맥으로 들어간 염기훈을 빼고 이제는 세레머니도 못마땅한 박주영도 빼면, 과연 대표팀의 공격진에는 누가 남는가. 설령 누군가 새로운 선수가 들어간다고 해도 언젠가 지는 경기를 피할 수 없는 한 한국 대표선수들은 영원한 돌림노래처럼 들고 나기를 반복해야 할 뿐이 아니겠는가.

어떤 말로도 패배를 아름답게 포장하기란 어렵다.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패배조차도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역시 어렵다. 하지만 정말로 씁쓸한 것은 비단 패배가 아니라,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일부의 사람들처럼 '패배'를 그렇게 발작적으로 받아들일 바에야 차라리 한국 대표팀의 응원을 당장 관두고 아르헨티나나 브라질 혹은 스페인과 같은 강팀을 응원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게 백 배 나은 일이다. 물론 아무리 강팀들이라도 승리가 영원할 수 없는 한, '발작'은 곧 되풀이되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제는 그저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패배의 아쉬움을, '비난'의 대열에 가세하지 않는 대다수의 팬들이 그렇듯, 다음에 다가올 짜릿한 승리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마냥 슬퍼하며 고개를 숙이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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