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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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사정을 지닌 세 청춘남녀가, 이렇게 저렇게 얽혀 팀을 이루고, 이러쿵 저러쿵 10억엔을 훔쳐낼 모의를 해서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밤중의 도쿄를 좌충우돌한다, 라는 게 바로 <한밤중에 행진>의 큰 줄거리라고 한다면, 이 책은 제법 흥미진진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공교롭게도 25살의 동갑내기인 그 세 청춘남녀라는 사람들이, 2류 양아치에 불과하면서도 가끔은 요령 있는 모습을 보이는 요코하마 겐지와, 좀 모자라보이기는 하지만 때때로 놀라운 집중력과 머리회전을 자랑하는 미타 소이치로와, 마지막으로 도도하고 세련된 도시 미인의 이미지이지만 알고 보면 여리고 착한 구석이 있는 구로사와 치에라고 한다면, 개성 있고 톡톡튀는 등장인물들 때문에라도 이 책이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결정적으로, 10억엔이라는 거금을 두고 확실히 어설픈 3인조와, 무섭고 흉폭하지만 역시 좀 어설퍼 보이는 야쿠자와, 냉철하고 과감하지만 그래도 또한 어설픈 중국인 2인조와, 전혀 어설프지 않지만 결국 어설플 수밖에 없는 사기꾼이 서로 쫓고 쫓기며 소소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게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 될 게 틀림없으리라.

물론, 실제로ㅡ어느 정도는ㅡ그렇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과 반전들은 분명 이 책의 장점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야, 하는 허탈하고 심드렁한 느낌만이 더욱 진하게 남는다. 그야 물론 10억 엔쯤 되는 돈이 목표라면 이유 따위야 어떻든, 상대가 야쿠자든 사기꾼이든 간에 한바탕 난리를 칠 법도 하지만, 그저 '돈을 갖고 튀어라.'가 이 책이 말하는 전부란 말인지. 대관절 25살 청춘이란,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질주하는 것만으로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란 말인지. 달리 어떤 '메시지' 혹은 '공감'을 얻지 못하니, 흥미진진한 소재와 이야기도 갈수록 무덤덤해지고,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과도 공명하지 못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도 더 이상 긴장을 야기하지 못한다. 하긴, 그러고 보면 이미 25살이 지난 지가 오래고, 딱히 25살 때라고 한들 "두려울 것도, 아까울 것도 없는 질주하는 청춘"이었다기보다는, 두렵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던 미적지근한 청춘이었으니, 쉽게 책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순전히 내 탓인지도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이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남쪽으로 튀어>의 오쿠다 히데오를 기대해서였는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괜스레 실망도 커진 듯하다.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남쪽으로 튀어>에 비하면 이 책은 한참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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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2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3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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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직후'에 나온 몇몇 축구선수들의 자서전이 혹평을 받은 것은, 당시 월드컵 대표팀의 선전과 그에 따른 국민들의 열광을 마케팅에 '이용'했다는 측면보다는 좀 더 진지하고 제대로 된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는, 책 '내용' 자체의 결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축구사에서 하나의 거대한 이정표가 되었던 월드컵 4강과 관련된 이야기는 오히려 축구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가시지 않는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반갑기만 한 시원한 물줄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이 워낙 부실하다 보니 도저히 축구팬들의 기갈을 해결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이와는 대조적으로 2002년 월드컵 '직전'에 나온 홍명보의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는 2002년 월드컵의 열광으로부터 일정 부분 비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출간 시기로 인해 일단 아쉬움을 남기는 책이다. 결과적으로 2002년 월드컵의 그 놀라운 성과를 거의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서전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홍명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90년 월드컵을 시작으로 이미 3차례 연속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았고, 1994년 월드컵에서는 수비수임에도 두 골을 기록하며 월드스타의 반열에 올랐으며, 무엇보다도 10년 이상 한결같이 대표팀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홍명보였기에 2002년 월드컵의 엄청난 성공에 편승하지 않고도 자서전을 낼 수 있었다는 의미다(물론, 그렇더라도 홍명보의 자서전 역시 월드컵 특수에 힘입은 바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축구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한국축구사의 가장 위대한 선수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는 홍명보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못 아쉬운 일이다. 2002년 월드컵 전에 출간되었기에 기대할 수 있음직했던 차분함과 진지함이, 한편으로는 종종 심심함과 동의어로 여겨지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흔히 '홍명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그대로 홍명보의 자서전이 진지함으로 가득 차있다고 하는 건 그 자체로 좋고 나쁠 것은 없다. 설령 그의 축구인생은 말할 것도 없고, 연애조차도 너무 진지하여 심지어 그의 부인 조수미 씨가 결혼 이후에 너무나 과묵한 홍명보 때문에 인형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을 정도였다고(말할 상대를 찾지 못했기에) 고백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렇듯 진지함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홍명보의 자서전에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라고 할 만한, 한국축구에 대한 차분한 진단과 제안, 일본 J리그를 경험하며 느낀 한,일 축구의 의미 있는 비교와 그로부터 얻은 교훈 등, 언제 어디서나 '축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의 열정과 진지함은, 유감스럽게도 사뭇 무미건조하게 읽힌다. 좋은 진단이고 좋은 비교이고 좋은 제안이지만, 대체로 간단한 감상으로 끝나고 좀 더 깊이 있는 방향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록을 제외하면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 책은 홍명보가 다른 축구인에 대해 평하거나 혹은 다른 축구인이 홍명보에 대해 평하는 짤막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도 하고, 특히 6장 '아내가 쓰는 나의 사랑, 나의 가족'은 홍명보의 아내인 조수미 씨가 직접 쓴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다시 약간 수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2장 'J리그 통신'은 예전에 모 스포츠 신문에 기고했던 칼럼을 옮겨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글들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홍명보'라는 이름이 지니는 무게와 기대를 고려할 때, 이 책이 실제로 홍명보 자신의 육성을 전하는 데에 꽤나 적은 분량을 할애하고, 그로 인해 좀 더 내밀한 홍명보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거의 '직무유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홍명보의 자서전은 월드컵 직후에 나온 일부 태극전사들의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면서 책 자체의 내용에 그리 충실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워 보인다.

축구선수로서의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그리고 선수로서 마지막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자신의 축구인생을 되돌아보고 싶었다는 홍명보의 자서전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홍명보의 자서전이 일정 부분 유용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축구팬과 홍명보 자신 모두에게 <영원한 리베로>가 결코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보다도 '홍명보'라는 훌륭한 재료를 책에서 충분히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과 2004년 은퇴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홍명보의 행보는, 그래서 그러한 아쉬움을 그의 또 다른 자서전에 대한 기대로 치환하게 만들 수 있는 의미 있는 행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홍명보'라는 이름 석 자의 무게가 여전하고, 그의 축구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영원한 건 홍명보일 뿐 이 자서전이 영원할 필요는 없다. 최근 U-20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변함없이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 홍명보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길, 좀 더 충실하고 매력적인 자서전이 언젠가 꼭 다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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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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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두 살이 많은,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우리의 어린 시절을 나보다 더 또렷이 기억하는 누나는 예전에 우리집에 내용이 조금은 축약된 <빨간 머리 앤>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그 책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음에 틀림없는 듯하다. 하기야 어린 시절에 재밌는 놀이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빨간 머리 앤> 따위를 읽을 시간이 있었겠는가. '빨간머리 용사'랄지 혹은 '빨간머리 해적'이라고 해도 읽을까 말까일 판에, '빨간머리 앤'이라니! 당연한 귀결로 어린 시절 이후로도 나는 빨간머리를 가진 '앤'이라는 여자아이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고, 내게 '빨간머리'란 오직 '강백호'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앤'이야 빨간머리든 파란머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런 나라도 빨간머리 앤에 대해서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EBS에서 방영해준 '명작만화' <빨간 머리 앤>을 누나 옆에서 그럭저럭 보았던 덕이다. 일단 만화영화라면 제목과 내용이 어떻든, 자연스레 눈과 귀를 TV로 가져가게 마련이었으므로. 그리고 그 만화로 인해, 나는 꽤 오랫동안 앤이라는 여자가 조금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품게 되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어떤 의미로든 빨간머리 앤은 확실히 '정상'의 범주는 벗어난다. 나는 이미 만화를 통해 앤이 자신의 이름을 꼭 'e'가 붙은 앤으로 불러달라고 말하고(단지 더 근사하다는 이유로!), 무슨 연극놀이를 한다며 배를 타고 죽은 듯이 누워가다 진짜로 죽을 뻔한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책을 읽으니 이건 한결 더하다. 앤이란 여자 아이는 한 번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은 예사고, 잠시 말이 끊기는 것도 잠깐 질문을 할 때나 혹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할 때일 뿐, 곧 또 다시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치지도 않고 떠들어 댄다. 게다가 그 이야기란ㅡ마릴라가 항상 지적하듯이ㅡ대체로 쓰잘 데 없는 공상이 대부분으로, 숲속에 유령이 있다고 믿는다거나,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상상하거나, 혹은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상정하는 따위의 내용이다. 어디 그뿐인가. 물론 실수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의 친구' 다이애나에게 딸기주스 대신 포도주를 마시게 한다거나, 앨런 부인에게 대접할 케이크에 바닐라 대신 진통제를 넣는다거나 하는 등의 사건을 앤은 끊임없이 저지른다. 오죽하면 앤이 울거나 놀라며 달려올 때면 마릴라가 이렇게 말하겠는가. "앤, 이번엔 또 무슨 일이니?"

그런데 놀랍게도, 이 빨간머리 여자아이의 활극(?)은 굉장히 재미있어서 나는 책을 차마 손에서 놓기 아쉬울 지경이었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만 해도, 주근깨에 빼빼마른 빨간머리 앤은 사랑스럽기는커녕 그저 이상스럽다는ㅡ심하게는 정신병이라는ㅡ심증을 굳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앤이라는 조그만 여자아이에게 매료되어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앤의 무한한 상상력에 공감되었다기보다는, 다만 매슈 아저씨의 입장에 동감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글쎄"라는 말을 반복하며 앤의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감성에 약간의 난감함을 표했던 매슈 아저씨처럼 앤의 감성을 따라가기란 빈약한 내 감성으로는 벅찬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슈 아저씨가 여전히 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듯ㅡ심지어 엄격한 마릴라도 인정했듯ㅡ앤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의외로 상당히 흥미로웠던 것이다. 게다가 그저 공상만 하던 어린 아이가 우정과 사랑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며, 무엇보다도 그러면서도 따뜻한 심성을 결코 잃어버리는 법이 없는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라는, 실로 어처구니없던 '명작만화'의 옛가사 내용을 십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빨간머리 앤은, 결코 미친 게 아니었다!!

남들은 예전에 다 읽었을 법한 책을 뒤늦게 읽고 호들갑을 떠는 꼴인데, 정말이지 <빨간 머리 앤>이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책인 줄은 몰랐다. 과연 이 책의 결말 이후에 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무척 궁금해진다. 하지만 예전부터 '빨간머리 앤'의 충실한 신봉자였던 누나 덕택에 책장에 꽂히게 된, '초록지붕 집의 앤' 이후를 다룬 몇 권의 책들을 읽는 일은 좀 더 나중으로 미뤄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집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이 원서라서 어차피 내게는 읽을 재간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긴 해도 별로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아마도 앤이라면 "영어를 읽을 수 없어서 아쉽지만 좋은 점도 많아요. 상상할 여지가 더욱 커지잖아요." 따위의 말을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앤이 아니니 영어라서 좋은 점은 단 하나도 찾지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그보다는 매슈 아저씨가 한 말을 이유로 삼는 편이 좀 더 그럴 듯해 보이리라. "낭만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아라, 앤. 조금쯤은 낭만적인 게 좋아. 물론 너무 지나치면 안 되겠지. 하지만 조금은 남겨 둬, 앤. 조금은 말이야." 적어도 아직은, 여전히 "어떤 초록빛 영광과 다채로운 빛과 어둠"을 품고 있는 '모퉁이'들을 상상할 수 있는, '초록지붕 집'의 낭만을 좀 더 남겨두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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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바라기 2020-11-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과 리뷰를 보고 갑니다.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군요.
 
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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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북부 키웨이틴 불모지역에는 한 가족이 살고 있다. 한 쌍의 부부와 꼬마 넷, 그리고 친척뻘 쯤 되는 아저씨 한 명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은 불모지역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그리 풍요로운 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편 조지와 아내 앤젤린 그리고 앨버트 아저씨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그곳에서 영위해 나간다. 그들의 집에는 이따금 가까운 친척이 방문을 하기도 하고, 순록이 이동하는 때가 되면 지역 동족들이 사냥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며, 혼자인 앨버트 아저씨에게 갑작스러운 사랑이 찾아오기도 하는 등, 그들의 삶은 여유롭고 따뜻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삶은, 그리 좋지 못한 목적으로 불모지역을 찾은 한 남자에 의해 낱낱이 관찰되기 시작한다.

자,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이 책 <울지 않는 늑대>는 한 스토커 같은 낯선 침입자에 의한 범죄 스릴러물 냄새를 물씬 풍길지도 모르나, 나는 위에서 고의로 중대한 사실 하나를 빠뜨렸다. 아니,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사실이다. 세상에 사는 생명이 인간이 전부가 아닌 한, 단란한 가족이 실은 늑대 가족이라는 사실 정도야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가지 사실로 인해 위에 언급한 가족의 삶에서 어떤 위화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오직 늑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간의 '허구화된' 이미지 때문일 뿐이다. 이를테면, 일찍이 어떤 가수가 "진짜로 늑대들은 모두 다 자기네 여자 밖에 모른다"고 노래를 불렀음에도, 여전히 늑대를 반듯한 남자의 이미지로는 매치시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캐나다의 최고 작가로 알려진(나는 몰랐던 일이기는 하지만) 팔리 모왓은 이 책에서 그러한 늑대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는 늑대가 지닌ㅡ차라리 애교로 봐줄 법한ㅡ음흉한 남자들의 상징이라는 이미지 외에, '잔혹한 킬러'라거나 혹은 '무자비한 약탈자'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얼마나 와전되고 과장된 것이며, 특히 늑대를 사냥의 경쟁자로 인식하는 인간에 의해 어떻게 악의적으로 조작되었는지를 여실히 밝혀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늑대에게 덧씌운 이미지란 실상 인간이 지닌 어두운 그림자를 고스란히 늑대에게 전가시킨 것일 뿐임을, 풍자와 조소를 섞어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고발한다. 그리하여 종래에 이 책은, 역자의 말대로 인간과 늑대의 위치를 완전히 뒤바꿔 버리고 만다. 

물론,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책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된 내용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계로 지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보면 쉽게 믿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사실성 여부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실의 검증 따위는 그저 과학자들이나 연구자들에게 맡겨두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이, 이 책은 "사실이 진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업이며, 삶을 이해하는 데 유머가 차지하는 역할이 지극히 중대하다는 내 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며, 따라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만 진실과 유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 책에서 '사실'이란 그저 부차적인 가치일 뿐인 셈이다.

인간이 "남자는 다 똑같은 늑대" 운운하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것과는 달리, 늑대의 세계에서는 "바람을 피우며 가족을 돌보지 않고, 그저 재미로 사냥을 하며 탐욕을 부리는 늑대는 완전히 인간과 똑같네"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래를 사뭇 비장한 어조로 부른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건 내가 지금 막 멋대로 지어낸 터무니없는 '사실'에 불과하다. 그러나 순록의 대량 살상이 늑대 짓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키웨이틴을 찾은 한 남자가 발견한 것이, 그 모든 일이 실상 인간의 짓이었다는 진실일 뿐이었듯, 사라진 늑대의 노랫소리에는 자연 파괴자인 인간에 대한 조소와 증오 그리고 공포만이 가득하다는 것이 오직 진실일 뿐이다. 그리고 이 선연한 '진실'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울지 않는 늑대'란, '진실을 잃어버린 인간'의 슬픈 표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재미있게 쓰면서, 여기에 더해 은근한 비판과 풍자를 섞을 줄 아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팔리 모왓은 이런 내 기호에 딱 들어맞는 작가다. 뒤늦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아마도 그의 다른 책들도 언젠가 집어들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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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순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마누엘라 브란다오 지음, 박영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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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대인배'라고 할 만한 성품을 지니지 못한 탓에, 23살 짜리가 자서전을 썼다고 하면 일단 '10년은 이르다, 이 애송아!'와 같은 냉소어린 반응을 보여주는 게 상례겠으나, 그 '애송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가 지난 시즌 보여준 '압도적'인 활약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입만 아픈 일이니, 여기서는 그냥 그가 대략 3억원의 '주급'을 받고 있으며 곧 4억원에 재계약할 가능성이 높다고만 말해두는 것이 낫겠다. 물론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세상은 '애송이'에게 수억씩을 그냥 집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속이 쓰리긴 해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아직 어린 녀석이지만 세계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명이고, 이것은 곧 그의 자서전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축구선수의 자서전이라는 말과도 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분명히 밝혀두자면, 호날두의 화려한 이력을 최대한 부각시키려는 듯한, 책 표지를 덮어버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발롱도르 수상ㅡ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다!"라는 내용의 띠지는 염두에 두지 않는 편이 낫다. 이건 끝내 '엄친아'스러운 어린 녀석에 대한 시기를 포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호날두의 자서전에 대해 갖기 쉬운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즉, 이른 나이에 거둔 성공과 잘생긴 외모, 여기에 자못 오만해보이기까지 하는 호날두의 태도가 합쳐져서 형성하는 어떤 화려한 이미지는, 호날두의 자서전을 그저 젊은 축구선수의 성급하고도 화려한 성공담으로 치부할 우려가 있지만, 정작 호날두가 그의 자서전에서 풀어내는 글 속에는 그가 경험한 '순간'들에 대한 '의외의' 진지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곧, 책의 방점이 '최고'가 아닌 '순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실상 원제는 그저 <MOMENT>이기도 하거니와, 책이 해외에서 발간된 건 그가 발롱도르를 수상하기 전의 일이다). 

호날두의 자서전이 '의외로' 진지할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호날두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가 그의 삶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호날두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순간'들ㅡ이를테면 어린 시절부터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목표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했던 외로움이랄지, 포르투갈 국가대표선수로 경기에 나설 때 느꼈던 자부심과 책임감이랄지, 혹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견뎌내야만 했던 괴로움과 절망이랄지, 또는 공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과 소신 같은, 감정의 파고를 넘어야 했던 '순간'들에 대해 사뭇 열정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호날두는 다만 그러한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꽤나 진부한 주제를, 그의 지나온 삶으로 여실히 증명하며 찬찬히 풀어낸다.

물론, 여전히 호날두의 자서전은 호날두가 직접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수많은 화려한 사진들을 배경으로 인쇄된 글들은, 아쉽게도 사진들처럼 아름답지는 않고, 아주 논리적인 문장도 아니며(그렇다고 글이 엉망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경험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다시 말하지만, 그는 고작 23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충분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항상 배우고 더 나아지려는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린 아이로 생각하고 싶다는 호날두의 삶에 대한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는 '의외로' 적지 않은 감흥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호날두의 말마따나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최고'의 순간이 과연 올지도 불확실하기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다만 '순간'에 충실한 것만이 '최선'일 뿐인 것이다.

호날두의 동료이자 박지성의 '베프'이기도 한 파트리스 에브라는 예전에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호날두를 꼽으며 이렇게 덧붙였었다.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는 많지만, 그들이 전부 호날두처럼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순간'이 중요하다는 말 따위야 어떤 '애송이'라도 떠들어 댈 수 있지만, 호날두는 연습장에서, 경기장에서, 그리고 그의 삶 속에서 언제나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행동으로 증명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러니까 여전히 갈 길이 먼 젊은 나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쨌거나 호날두는, 적어도 말만 앞세우는 '애송이'는 확실히 아닌 셈이다. 뭐, 이 정도면 23살 짜리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정확히 말하자면 호날두는 85년 2월생인데, 그의 자서전이 유럽에 나온 것은 2007년의 일이다).

누구에게나 목표지점이 있지만, 때로는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때가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언젠가는 끝이 날 이 여정의 가장 큰 의미는 어쩌면 우리가 이 여행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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