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늑대
팔리 모왓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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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북부 키웨이틴 불모지역에는 한 가족이 살고 있다. 한 쌍의 부부와 꼬마 넷, 그리고 친척뻘 쯤 되는 아저씨 한 명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은 불모지역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그리 풍요로운 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편 조지와 아내 앤젤린 그리고 앨버트 아저씨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그곳에서 영위해 나간다. 그들의 집에는 이따금 가까운 친척이 방문을 하기도 하고, 순록이 이동하는 때가 되면 지역 동족들이 사냥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며, 혼자인 앨버트 아저씨에게 갑작스러운 사랑이 찾아오기도 하는 등, 그들의 삶은 여유롭고 따뜻하기만 하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삶은, 그리 좋지 못한 목적으로 불모지역을 찾은 한 남자에 의해 낱낱이 관찰되기 시작한다.

자,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이 책 <울지 않는 늑대>는 한 스토커 같은 낯선 침입자에 의한 범죄 스릴러물 냄새를 물씬 풍길지도 모르나, 나는 위에서 고의로 중대한 사실 하나를 빠뜨렸다. 아니, 달리 생각하면 그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사실이다. 세상에 사는 생명이 인간이 전부가 아닌 한, 단란한 가족이 실은 늑대 가족이라는 사실 정도야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가지 사실로 인해 위에 언급한 가족의 삶에서 어떤 위화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오직 늑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간의 '허구화된' 이미지 때문일 뿐이다. 이를테면, 일찍이 어떤 가수가 "진짜로 늑대들은 모두 다 자기네 여자 밖에 모른다"고 노래를 불렀음에도, 여전히 늑대를 반듯한 남자의 이미지로는 매치시킬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캐나다의 최고 작가로 알려진(나는 몰랐던 일이기는 하지만) 팔리 모왓은 이 책에서 그러한 늑대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는 늑대가 지닌ㅡ차라리 애교로 봐줄 법한ㅡ음흉한 남자들의 상징이라는 이미지 외에, '잔혹한 킬러'라거나 혹은 '무자비한 약탈자'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얼마나 와전되고 과장된 것이며, 특히 늑대를 사냥의 경쟁자로 인식하는 인간에 의해 어떻게 악의적으로 조작되었는지를 여실히 밝혀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 늑대에게 덧씌운 이미지란 실상 인간이 지닌 어두운 그림자를 고스란히 늑대에게 전가시킨 것일 뿐임을, 풍자와 조소를 섞어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고발한다. 그리하여 종래에 이 책은, 역자의 말대로 인간과 늑대의 위치를 완전히 뒤바꿔 버리고 만다. 

물론,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책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된 내용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한계로 지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보면 쉽게 믿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그런 이유로 이 책의 사실성 여부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실의 검증 따위는 그저 과학자들이나 연구자들에게 맡겨두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이, 이 책은 "사실이 진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업이며, 삶을 이해하는 데 유머가 차지하는 역할이 지극히 중대하다는 내 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며, 따라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만 진실과 유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이 책에서 '사실'이란 그저 부차적인 가치일 뿐인 셈이다.

인간이 "남자는 다 똑같은 늑대" 운운하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것과는 달리, 늑대의 세계에서는 "바람을 피우며 가족을 돌보지 않고, 그저 재미로 사냥을 하며 탐욕을 부리는 늑대는 완전히 인간과 똑같네" 어쩌고저쩌고 하는 노래를 사뭇 비장한 어조로 부른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건 내가 지금 막 멋대로 지어낸 터무니없는 '사실'에 불과하다. 그러나 순록의 대량 살상이 늑대 짓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키웨이틴을 찾은 한 남자가 발견한 것이, 그 모든 일이 실상 인간의 짓이었다는 진실일 뿐이었듯, 사라진 늑대의 노랫소리에는 자연 파괴자인 인간에 대한 조소와 증오 그리고 공포만이 가득하다는 것이 오직 진실일 뿐이다. 그리고 이 선연한 '진실'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울지 않는 늑대'란, '진실을 잃어버린 인간'의 슬픈 표상에 다름 아닌 것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재미있게 쓰면서, 여기에 더해 은근한 비판과 풍자를 섞을 줄 아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팔리 모왓은 이런 내 기호에 딱 들어맞는 작가다. 뒤늦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아마도 그의 다른 책들도 언젠가 집어들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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