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순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마누엘라 브란다오 지음, 박영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그다지 '대인배'라고 할 만한 성품을 지니지 못한 탓에, 23살 짜리가 자서전을 썼다고 하면 일단 '10년은 이르다, 이 애송아!'와 같은 냉소어린 반응을 보여주는 게 상례겠으나, 그 '애송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가 지난 시즌 보여준 '압도적'인 활약을 다시 언급하는 것은 입만 아픈 일이니, 여기서는 그냥 그가 대략 3억원의 '주급'을 받고 있으며 곧 4억원에 재계약할 가능성이 높다고만 말해두는 것이 낫겠다. 물론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세상은 '애송이'에게 수억씩을 그냥 집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그러니까 속이 쓰리긴 해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아직 어린 녀석이지만 세계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명이고, 이것은 곧 그의 자서전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축구선수의 자서전이라는 말과도 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분명히 밝혀두자면, 호날두의 화려한 이력을 최대한 부각시키려는 듯한, 책 표지를 덮어버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발롱도르 수상ㅡ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다!"라는 내용의 띠지는 염두에 두지 않는 편이 낫다. 이건 끝내 '엄친아'스러운 어린 녀석에 대한 시기를 포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호날두의 자서전에 대해 갖기 쉬운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즉, 이른 나이에 거둔 성공과 잘생긴 외모, 여기에 자못 오만해보이기까지 하는 호날두의 태도가 합쳐져서 형성하는 어떤 화려한 이미지는, 호날두의 자서전을 그저 젊은 축구선수의 성급하고도 화려한 성공담으로 치부할 우려가 있지만, 정작 호날두가 그의 자서전에서 풀어내는 글 속에는 그가 경험한 '순간'들에 대한 '의외의' 진지함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곧, 책의 방점이 '최고'가 아닌 '순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실상 원제는 그저 <MOMENT>이기도 하거니와, 책이 해외에서 발간된 건 그가 발롱도르를 수상하기 전의 일이다). 

호날두의 자서전이 '의외로' 진지할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호날두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가 그의 삶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호날두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인생에서 기억할 만한 '순간'들ㅡ이를테면 어린 시절부터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목표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했던 외로움이랄지, 포르투갈 국가대표선수로 경기에 나설 때 느꼈던 자부심과 책임감이랄지, 혹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견뎌내야만 했던 괴로움과 절망이랄지, 또는 공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과 소신 같은, 감정의 파고를 넘어야 했던 '순간'들에 대해 사뭇 열정적이고 솔직한 태도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호날두는 다만 그러한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꽤나 진부한 주제를, 그의 지나온 삶으로 여실히 증명하며 찬찬히 풀어낸다.

물론, 여전히 호날두의 자서전은 호날두가 직접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수많은 화려한 사진들을 배경으로 인쇄된 글들은, 아쉽게도 사진들처럼 아름답지는 않고, 아주 논리적인 문장도 아니며(그렇다고 글이 엉망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이 물리적인 경험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다시 말하지만, 그는 고작 23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충분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항상 배우고 더 나아지려는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린 아이로 생각하고 싶다는 호날두의 삶에 대한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는 '의외로' 적지 않은 감흥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호날두의 말마따나 미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최고'의 순간이 과연 올지도 불확실하기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다만 '순간'에 충실한 것만이 '최선'일 뿐인 것이다.

호날두의 동료이자 박지성의 '베프'이기도 한 파트리스 에브라는 예전에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호날두를 꼽으며 이렇게 덧붙였었다. "재능을 갖고 있는 선수는 많지만, 그들이 전부 호날두처럼 노력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순간'이 중요하다는 말 따위야 어떤 '애송이'라도 떠들어 댈 수 있지만, 호날두는 연습장에서, 경기장에서, 그리고 그의 삶 속에서 언제나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행동으로 증명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러니까 여전히 갈 길이 먼 젊은 나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쨌거나 호날두는, 적어도 말만 앞세우는 '애송이'는 확실히 아닌 셈이다. 뭐, 이 정도면 23살 짜리의 자서전을 읽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정확히 말하자면 호날두는 85년 2월생인데, 그의 자서전이 유럽에 나온 것은 2007년의 일이다).

누구에게나 목표지점이 있지만, 때로는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때가 있다. 삶은 그런 것이다. 언젠가는 끝이 날 이 여정의 가장 큰 의미는 어쩌면 우리가 이 여행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p192-1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