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쪽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아주 침착한 객관성. 아주 차가운 시선. 희생당한 자. 그 단조로운 회색의 분위기가 아주 뛰어난 저널리스트의 정신으로 밝혀져 있다. <다시 일어나려는 열정적 욕망,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욕망, 이런 것들이 나에게 기다릴 줄 아는 강인함과 희망을 준다. (......) 나에게는 수백 명의 친구들이 있지만 나는 겁날 정도로 민감해졌다. 나는 마침내 그런 게으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 때때로 나는 이 고독한 곳으로 나를 보낸 운명을 축복한다. 그런 고독이 없었더라면 이처럼 나 자신을 잘 판단하지 못했으리라.>

 그의 감옥은 내 안의 질병과 비슷하다. 질병은 자유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한시바삐 비켜 가야 한다. 자유를 실제 이상의 어떤 것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하나는 희망이고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도스토옙스키의 러시아 정교회 신자처럼 순교를 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철저한 고행과 겸손을 통하여 영광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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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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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09.07.21]


이언 매큐언이 쓰고 우달임이 옮겨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체실 비치에서>를 보았다. 이언 매큐언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소설 전반부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추리소설에 비하면 흥미진진한 스토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터질지 모를 그 무언가 읽는 맛을 더해준다. 물론 이 <체실 비치에서>도 마찬가지.

누군가 훌륭한 문학작품은 웬만한 실용서에 못지 않게 실용적이라고 했던가. 사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실용성에 있다. 20세기 중반 영국, 서로에게 첫사랑인 남자와 여자의 신혼여행, 그리고 '첫날밤'. 그리하여 얄궂은 섹스 테크닉이라든지 친절하게 체위를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보며 밤을 지새는 것보다는 이 소설을 읽는 게 백 번은 나을 만큼 이 소설은 실용적이다. 적어도 이 소설에는 '잠짜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머릿속을 오고가는 수많은 생각들이 보여지고 있고, 그런 생각들과 실제 말이나 행동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또한 나타나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로서는 대단히 실용적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의외로 중반이 지나자마자 나타난다. 그리고 사건은 쉽게 짐작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되어 끝이 난다. 출판사 측에선 "당신이 가지 않았던 길 그 끝에, 사랑이 있었습니다"라든지, "단 한 번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한 젊은 연인들의 슬픈 운명"(뒤표지)라며 소설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값싼 홍보문구를 동원하여 꽤나 감상적으로 소설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인 이유는 그런 의외의 슬픈 결말이 눈물샘을 자극하여 싸구려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엔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게 사랑이든 인간이든, 보다 보편적인 것에 대해 탐구하고자 할 뿐이다. 물론 인물들의 배경도,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 또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특수한 상황일 수 있겠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어떤 보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설이다. 비록 소설 말미, "그리고 설령 에드워드가 이 리뷰를 읽었다 해도, 객석에 불이 켜지고 빛 때문에 눈이 부셨던 젊은 연주자들이 열광적인 박수갈채에 화답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제1바이올린 주자가 저절로 세번째 줄 중앙의 9C 좌석으로 향하는 그녀(*자신)의 시선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알 수 없었으리라, 플로렌스 외에는, 아무도."(193)와 같은 구절에선 어쩔 수 없이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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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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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20] 


테드 창이 쓰고 김상훈이 번역하여 행복한책읽기 출판사에서 출간된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보았다. 이 책은 "단 8편의 중단편으로 '21세기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는 칭호를 얻은 테드 창의 걸작 중단편집"(뒤표지)이다. 테드 창의 소설은, SF 매니아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소설 독자들에게도 많은 호응을 얻어냈다고 한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이 소설은 "과학자가 읽어도 과학적 오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SF소설"이다. 소설을 읽을 때 보통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서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조금 달랐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책 말미에 실린 많은 독자들의 찬사에 아무런 거부감도 느낄 수 없었다. 직접 읽어보지 않는다면 숱한 말들은 그저 부질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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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앵무새/아나톨의 망상 - 지만지 고전선집 402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최석희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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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16]


최석희가 번역하여 지만지 출판사에서 402번 째로 출간된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희곡 <초록 앵무새>와 <아나톨의 망상>을 보았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흠모하던 시절 때였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출연했던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에 대한 검색을 하던 중 나는 이 영화의 원작소설이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 이야기>(혹은 <꿈의 노벨레>라는 제목으로 출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설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해두지 않았는데 영화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적어둔 것은 있다.

"소설과 영화와 합해져 시너지 효과를 발한 작품으로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 이야기>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샷>이 있다. 소설을 먼저 본 뒤에 영화를 봤는데, 그래서 영화 속 인물의 말과 행동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고 결국 영화 작품에 만족할 수 있었다. 만약 소설을 먼저 보지 않고 영화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재미있게 봤긴 했겠지만 만족도에는 조금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길었는데,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초록 앵무새>와 <아나톨의 망상>은 대단히 다른 작품이다. 크게 봤을 때, 전자가 연극(허위,거짓)과 현실(진실,사실)을 절묘하게 비꼼으로써 계급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본성 내지는 시대적, 사회적인 아이러니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후자는 (망상한다기보다는 찌질함에 가까운)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연애 혹은 기억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결과(?) 번역자의 해설은 물론이거니와 지인의 리뷰에도 <아나톨의 망상>보다는 <초록 앵무새>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아나톨의 망상>에 더 관심이 갔다. 현재 내 관심이 그 작품에서 보여지는 부분에 더 공명했으므로.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면 간접경험이 풍부해진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경험(과 고민)이 풍부한 사람이 문학작품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접경험은 말 그대로 간접경험일 뿐 직접 겪은 일이 한 개인에게 주는 영향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니까 최근에 내가 많이 하는 생각들 중 하나, 왜 남자와 여자의 연애(혹은 사랑)에 있어서, 그 시작부터 끝까지, 일부 예외를 제외하자면, 여자가 남자보다 한 걸음쯤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가. 그리하여 사랑에 빠진 많은 남자들이 찌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을 목격하게 되는가.

아나톨은 그러니까, 어쩐지 많은 남자들의 안 좋은 보편성을 이끌어내 만든 캐릭터인 것 같다. 그리하여 (작품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내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아나톨이 몹시 싫다가도, 내 모습을 보고 있다는 이유로 안쓰러운 마음에 미워하기만도 힘든 그런 캐릭터.

아나톨은 친구인 막스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기억만 믿을 수는 없어... 기억은 거짓말을 하지. 기억은 변덕스럽지... 그러면, 우리들은 연애할 때 무엇을 알고 있는가?"(102) 그 후 아나톨은, 자신에게 교태를 부린다고 망상하(지만 이후에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 아네테와의 대화에 이어,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베르타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나눈다. 결국 베르타는 "당신네들은 거짓말을 끌어내요. 우리에게 거짓말을 강요한다고요!"(126)라는, 괜히 내 가슴을 쾅 두드리는 말을 아나톨에게 내뱉고 말지만 아나톨은 끝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기억만을 믿을 수는 없다며 자기 입으로 말한 그 기억만을 신봉한 채로.

마지막 부분인 아네테와 그의 연인인 플리더와의 대화, 특히 끝나기 직전 아네테의 말 "지금은 질투를 하지 않나요? (...) 나의 귀여운 천사여! 저런 늙은이에 대해서는 말이에요!"(132)는, 두세 번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해설을 보고 나서야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고, 동시에 내가 여전히 책을 꼼꼼하게 읽지 못한다는 사실도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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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 염상섭 중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9
염상섭 지음, 김경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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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07]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어 김경수가 책임 편집을 맡은 염상섭 중편선 <만세전> 중 표제작인 <만세전>을 보았다. 이 소설은 로드소설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이인화가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귀향하면서 보고 느끼는 1918년 겨울의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인상기 내지는 관찰기"(<산책자의 눈길>, 203)라고 할 수 있다. 동경에서 출발하여, 고베, 시모노세키를 거쳐 현해탄을 건넌 후 부산 찍고 김천 들렀다 서울에 다다르는 로드소설. 그리하여 이 소설의 공간적 구조에서 길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특히 "그 길이 철도(기선)로 되어 있다는 점이야말로 염상섭 문학의 근대적 성격을 지탱하는 척추에 해당한다"(<염상섭연구>,194)고 김윤식은 말한다. 이 소설을 보면 당대를 향한 염상섭의 시각이 얼마나 첨예한지,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감각이 얼마나 웅숭깊은지 맛볼 수 있다. 소설의 절정에서 주인공이 토로하는 "'공동묘지다! 구더기가 우글우글하는 공동묘지다!'"(127)를 보니 콘라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 (*<암흑의 핵심>, <어둠의 속>, <어둠의 심연> 등의 제목으로 번역됐는데 이 중에서 <어둠의 심연>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속 주인공인 커츠의 절규 "'끔찍하다! 끔찍해!'"(<어둠의 심연>, 151)가 떠올랐다. 이 두 소설은 전반적인 분위기나 서사기법 등 여러 부분이 다르지만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비교해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애초 <묘지>라고 지었던 소설의 제목을, 작가는 어떤 이유로 <만세전>이라고 바꾸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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