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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09.07.21]
이언 매큐언이 쓰고 우달임이 옮겨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체실 비치에서>를 보았다. 이언 매큐언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소설 전반부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추리소설에 비하면 흥미진진한 스토리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터질지 모를 그 무언가 읽는 맛을 더해준다. 물론 이 <체실 비치에서>도 마찬가지.
누군가 훌륭한 문학작품은 웬만한 실용서에 못지 않게 실용적이라고 했던가. 사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실용성에 있다. 20세기 중반 영국, 서로에게 첫사랑인 남자와 여자의 신혼여행, 그리고 '첫날밤'. 그리하여 얄궂은 섹스 테크닉이라든지 친절하게 체위를 설명해주는 동영상을 보며 밤을 지새는 것보다는 이 소설을 읽는 게 백 번은 나을 만큼 이 소설은 실용적이다. 적어도 이 소설에는 '잠짜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머릿속을 오고가는 수많은 생각들이 보여지고 있고, 그런 생각들과 실제 말이나 행동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또한 나타나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로서는 대단히 실용적이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의외로 중반이 지나자마자 나타난다. 그리고 사건은 쉽게 짐작하기 힘든 방향으로 전개되어 끝이 난다. 출판사 측에선 "당신이 가지 않았던 길 그 끝에, 사랑이 있었습니다"라든지, "단 한 번 사랑하고 평생을 그리워한 젊은 연인들의 슬픈 운명"(뒤표지)라며 소설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값싼 홍보문구를 동원하여 꽤나 감상적으로 소설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인 이유는 그런 의외의 슬픈 결말이 눈물샘을 자극하여 싸구려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엔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게 사랑이든 인간이든, 보다 보편적인 것에 대해 탐구하고자 할 뿐이다. 물론 인물들의 배경도,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 또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특수한 상황일 수 있겠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어떤 보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설이다. 비록 소설 말미, "그리고 설령 에드워드가 이 리뷰를 읽었다 해도, 객석에 불이 켜지고 빛 때문에 눈이 부셨던 젊은 연주자들이 열광적인 박수갈채에 화답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제1바이올린 주자가 저절로 세번째 줄 중앙의 9C 좌석으로 향하는 그녀(*자신)의 시선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알 수 없었으리라, 플로렌스 외에는, 아무도."(193)와 같은 구절에선 어쩔 수 없이 울컥하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