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8쪽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너무나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화적이어서 비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호메로스가 인간이든 신이든 대상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눈초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는 인간과 신, 둘 다 초월했다. 모든 행동과 에피소드는 간결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양식화되어 있다.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어서 항아리 그림의 양식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뛰어난 인간성의 면모와 훌륭한 비유의 손길을 엿볼 수 있다. 단순한 대상들과 그것들의 기본적 형태와 특질을 사랑하기. 호메로스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아이러니의 측면이다. 영웅들(영웅들이 있기 때문에 신들이 비로소 중요한 존재가 된다)을 소개할 때 그들의 단점도 함께 제시한다. 영웅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완벽함을 배반한다. 자신의 가면이 계속 벗겨지는 무언극의 연기자들과 유사하다. 사실 영웅적 신화의 창조자 호메로스는 그런 사실들을 계속 비웃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포인트는 호메로스의 유머다. 3천 년이나 지속되어 온 유머 감각이지만 정말 생생하다. 가령 게임 장면이 그러하다. 아킬레우스는 안틸로코스의 아첨에 넘어가고 아가멤논은 승부를 겨루지도 않고 상을 받는다. 아킬레우스는 객관적으로 관찰되고 있으나 흑백의 구도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만 생각하는 심술꾼으로 등장한다. 그르 구제해 주는 유일한 장면은 마지막 프리아모스가 나오는 짧은 연설 장면이다. 디오메데스는 또 다른 자신감에 넘치는 친구다. 오디세우스는 아주 흥미진진한 인물이다. 대체로 보아 트로이아 사람들은 불쌍하게 느껴진다. 네스토르와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그리스 사람들은 둔탁하고 시무룩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