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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 이 책의 장르를 뭐라해야할까. 강연집? 서평집? 서문모음(이건 어디에 넣나)? 그냥 어슐러 르 귄 쯤 하자.
침묵의 사춘기를 보냈다. 극렬한 사춘기를 보낸 혈육들을 생각하면 효녀였다고 자신한다. 물론 그 때에, 상대적으로.
얼마나 효녀냐 하면 시키는대로 입시필독서는 모조리 줄거리를 외운 후 수업시간엔 조용했다(잤다) 반항의 씨앗도 같이 잠자는 줄 모르고. 자유가 주어졌고 시간이 남아돌던 대학교 1학년때 조소작업실 용접기 위에 올려있던 선배 책을 주섬주섬 읽은게 어스시 연대기다.(아마 2권- 가물가물한것이 재독할때가 되었나보다) 이 세계 문명인의 피부색이 저 세계에선 야만인의 피부색이 되는 전복의 세계. 누군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펼쳐진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자체를 재창조한 책 한권 덕분에 반항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 세계의 당연한 것에 해명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평범,주류,보통'과 멀어졌다. 나는 내 질문들이 유난한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 물을만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답을 얻지 못할지언정 질문마저 막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부정받을 때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가 자책하고 혼자 위로하고 스스로 단단해져야 했다. 돌아보니 SF가 '문학'으로 인정받는 여정과 닮았다.
비평가와 교수와 문단의 무시와 묵살에 살아남으려는 무한한 부딪힘의 연속, 출판사와 독자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작가의 바램, 그러면서도 치밀한 세계관과 설득력있는 서사로 독자에게 작품을 넘어 장르의 신뢰를 주고자 노력한 작가들을 생각한다.(물론 타협한 작가도 있었겠지) 안전한 세계 틈새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생태계 교란종 취급 받으며 뿌리내리고 사는 미지의 유입종 취급에도 불구하고.
90년동안 (최소 그가 작가생활을 한 60년동안) 문단의 안과 겉, 작품의 속과 밖, 작가와 독자로서 저 과정들을 지켜보고 고민했을 어슐러 르 귄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이 그래서 반갑다.
책의 서문에는 분명 '이 책은 나이가 많아지고 에너지 총량이 줄어서' 강연(1부) 와 에세이 (2부), 그리고 1000자 전후의 서평(3부)과 같은 짧은 글들의 모음이라 했건만, 군더더기라곤 찾아보기 힘든 간결한 문장과 글에 대한 우아한 애정표현, 거기에 더해진 주저없는 비판은 줄어든 에너지의 총량을 체감할 수 없다. 총량이 아닌 부피가 줄었을 뿐, 에너지의 밀도는 증가했다. 짧은 글 하나를 읽고 머릿속으로 얼마나 많은 혼잣말을 했는지, 얼마나 자주 내적 박수를 쳤는지,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문장은 얼마나 많았던지. 그의 능력과 통찰력에 기반한 에두름없는 비판은 묘한 쾌감을 일으킨다. 종종 독후감에 가까운 서평을 쓰며 얼마나 말을 고르고 골라 '귀족적화법'으로 써야했는지 그 갑갑함을 한번이라도 겪어봤다면 읽는 내내 속으로 웃지 않을수 없다. (살만루슈디의 책 중 2년 8개월 28일의 서평을 아주 감명깊게(!) 공감하며 읽었다.- 예 선생님,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연설 <자유>는 어떤가. 미국 문학과 출판계를 향한 쓴소리를 (미국 문학에 공헌을 인정하는 상) 내셔널 북 파운데이션 메달 수락 연설로 외친 담력이란. 그러니 '형편없는 책에 대한 죽여주는 혹평을 읽으면 죄책감없이 즐겁다'-(P.12)는 문장을 이 책의 대표문장으로 꼽을 수 밖에.
<내셔널 북 파운데이션 메달 수락연설 中>
『 책은 그냥 상품이 아닙니다. 이익 추구는 종종 예술의 지향과 갈등을 빚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속에 살고 자본주의의 힘은 벗어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치면 왕들의 절대권력도 그랬지요. 인간이 만들어낸 권력이라면 인간이 저항하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저항과 변화는 예술에서 시작될 떄가 많고, 그 중에서도 우리의 예술 말의 예술일 때가 많아요.
저는 길고 좋은 작가생활을 보냈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했습니다 이제 그 끝에 다다라서 미국 문학이 싸구려로 팔려나가는 꼴을 보고싶진 않군요. 글쓰기와 출판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 과정에서 우리의 정당한 몫을 원하고 또 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어야 할 보상의 이름은 이익이 아니에요. 자유입니다.』- p.201
죽여주는 혹평 혹은 미사여구를 삭제한 비판을 어떻게 담았을까. 치열한 현실성 없는 작품은 작가의 소망충족일 뿐(P.368/ 피플오브더북) 이라 일갈한다. 합리적이고 기본적인 설정을 무시한 SF작품의 한계성(P.418 / 만조의 바다 위에서)을 토로하고, 독자에겐 모든 문학이 그렇듯 SF도(당연히 문학이니까) 나태한 마음으로 읽히지 않는다(P.433/ 엠버시타운) 고 첨언한다. 중류층 작가가 중류층 독자를 위해 글을 써온 최근 수세기의 글(P.474/ 바닥에서 일어서서)을 조망하는 작가의 통찰과 함께 '전통에 맞게 출판사나 비평가들의 구멍에 밀어넣을 수 없는 소설을 경계선,페미니스트,지역적이라며 폄하의 라벨을 붙여 소위 전문가들이 작품을 무시하고 모욕할 수 있는' (P.486 / 도싯이야기) 출판계의 가면을 떼어낸다. 순문학과 sf를 갈라놓는 문단과 작가들의 편협함에도 예외없다(432). 천 자 남짓한 서평 몃개만 보아도 이 책의 밀도는, 글의 정확성은 보통의 에세이로 치부하기 어렵다. 어슐러 르 귄의 강연 중 '장르' 이야기를 보자. 분류하고 정의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장르가 서평가와 출판사와 서점과 도서관 카테고리분류를 위해 오용된 점을 짚고, 문학계의 상업소설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과정과, 인터넷-e북-에서 답을 찾는 장르문학들에 가능성을 짚는 글이 단 다섯장이다. 탁월함은 간결함에 있다(p.439)는 그의 의견을 자신의 글로 증명한 셈이다.
작가가 쓴 서평과 서문은 독자에게 책을 읽을 때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작가에겐 글을 쓸 때 유의해야할 점들도 환기해주는 것 까진 좋았으나 읽어보고싶은 작품, 들여다봐야할 것 같은 작가가 장바구니를 늘린 점은 정말 치명적이다. 좋아하는 작품이어야 쓸 수 있는 서문에 무려 세편이나 등장하는 H,G 웰스와 서문과 서평에 다 들어있는 주제 사라마구를 눈여겨본다. 그 뿐이면 참 다행이련만.....
덧1) 이전의 에세이집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가 인간 어슐러 르 귄의 이야기가 주였다면, 이번 책은 작가와 독자로서의 어슐러 르 귄 이야기라서 완벽하게 내 취향. 독설과 유머와 성찰이 넘실넘실.
덧2) 라임과 오렌지의 상큼한 배색은 겉표지 뿐 아니라 쪽수표기, 작품의 영문표기, 조각글 제목의 설명부분에 등장하는데, 내지의 라임색과 배색을 맞추기 위해 오렌지색 플래그를 붙였다. 쓸모없는데 유난한 정성을 들인만큼 예뻐서 뿌듯하다.
덧3) 본문 글자체 무엇인가요. 예뻐요 정말. 가독성 최고. 마음 편안.
▶그녀는 모두 그 로 통일.
▶자신의 추상적 사고 능력이 스패니얼견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p.54) 라는 망언을 남기셨으니. 통재라....
▶내가 이 곳에 쓰는 글을 서평이라 할 수 있나. 낯이 뜨겁긴하다만 나는 작가가 아니라 독후감 창작자니까 괜찮다고 해야겠다. #뻔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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