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하는 요리사
뤽 랑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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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하는 요리사'를 읽고 나서, 작가가 하려는 말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봤다. 하지만...알 수 없었다. 백민석의 '목화밭살인사건'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더 뛰어나다. 주인공의 사고방식은 어딘가 인간적인 면이 결핍되어 있다. 그래서 더 두려운 존재이다. 도덕이나 양심적인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아니면 자기 자신을 너무 믿는 것이 문제인가...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는 기계적인 냄새가 난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그 사람들을 지배하는 쾌감을 느낀다던지...자기 나름의 잣대로 사람을 죽이면서도 죄책감도 없다. 그리고 계산적인 측면도 강해서....교도소 폭동이 잘 보이는 집을 공개해 돈을 벌기도 한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는 것을 보면 무식한 사람도 아니면서 뭔가 비정상적인 면모를 보인다.

현대인들을 보면, 어떤 측면으로 상대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삐뚤어진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심하지만 않으면 상관은 없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면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타인을 파괴하거나, 장악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것만큼 모순되는 일이 있을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는 이해하기가 힘들지만...대충 현대인들의 이런 모순성을 그려내고자 한 것 같다.

하지만 소재의 괴팍성이라든지, 낯설음...그리고 인물의 괴이함은 이런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기 보다, 오히려 주제 외의 다른 부분들에 더 초점을 맞추게 만든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왠지 씁쓸하고 미묘한 기분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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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1
이시키 마코토 지음, 유은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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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은 3년전쯤, 무척 지루하다는 생각으로 덮어 버렸던 작품인데, 어제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다. 읽어본 사람들마다 강력하게 추천을 한다는 사실이, 왠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제목과 표지의 푸른 느낌과는 달리, 그림체는 서툴러 보이기도 하고, 난잡해 보일 정도로 균형미가 없고, 펜선이 울퉁불퉁했다. 게다가 읽다보면, 초등 학생들의 왕따니, 유치한 힘겨루기 등이 전에 느꼈던 지겨움을 되살렸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가다가 서서히 내용의 큰 틀거리가 잡혀나가자, 스토리 자체에 끌리게 되었다. 카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재능에 우정과 동경, 질투를 동시에 느끼는 슈우헤이의 감정선을 따라 읽다가, 어느새 카이의 자유분방한 매력에 너털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무도 칠 수 없었던 버려진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쳐 왔던 카이...왜 다른 사람이 칠 때는 소리가 나지 않았는지...그 비밀스러운 피아노의 과거를 파헤치면서 카이와 슈우헤이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우정을 쌓아 간다.

한적한 숲속과 맞닿아 있는 창녀촌의 반대편...큰 나무 한그루를 타고 내려가면 높은 나무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빛의 줄기가 아름다운 피아노를 비춘다. 그 숲속에서 울려퍼지는 카이의 피아노 소리는 피아니스트를 지망하는 슈우헤이에게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재능과 노력이라는 각각의 재산이 있고, 환경적 차이가 또다시 둘을 갈라 놓는다. 창녀의 자식인 카이와,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자식인 슈우헤이...만화를 읽다보면 그 둘의 관계에 점점 매혹된다.

어떤 대결구도의 형식은 아니지만, 예술적인 선천적 재능과 다 갖추어진 환경...이 두가지의 대립은 예술적인 만화의 주된 레파토리다. (예를 들어 유리가면 등) 하지만, 단순히 예쁜 만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욱 이 만화를 신뢰할 수 있다. 이 만화의 배경에는 거친 창녀촌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어린아이들의 집단적인 잔인성이라든지...어른들의 치사하고 더러운 욕심, 욕망 등이 위악적으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와 상반되는 그림인 숲 속의 피아노는 카이에게 그런 위악적인 환경인 창녀촌과 드넓은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그리고 더욱 순수하게 내면의 피아노 소리를 찾게 만든다. 일본피아노콩쿠르의 엄격성은 음의 정확도만 따지지만, 카이는 인정받을 수 있는 피아노를 치지는 않는다. 카이에게 피아노란...숲 속의 피아노 소리이자, 자기 내면과 끊임없는 교류이기 때문이다.

그 피아노의 원주인이었던 아지노 선생은 만화 속에서 '피아노'와 같은 구실을 한다. '피아노'가 카이 속에 잠재한 음악성을 불러 일으켰다면, '아지노'선생은 그 꽃피기 시작하는 음악성을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손을 다쳐 피아니스트를 포기한 '아지노'선생...그리고 그 버린 피아노는 스스로 카이라는 새 주인을 찾아 '아지노 선생의 예술적 열정을 일깨운 것이다. 이 만화에서는 '피아노'자체가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슈우헤이가...자기나름의 존재방식으로 철저히 악보에 맞는 완벽한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카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정어린 친구로서의 피아노를 연주했다.

서투른 듯 한 그림체는 음악적인 세계와 비음악적인 세계, 카이와 슈우헤이, 아지노 선생과 슈우헤이의 아버지,오히려 이런 상반되는 세상을 보여주는데 큰 구실을 한다. 그리고 이런 대비는 단절되어 있는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자극해서 더 놓은 세계로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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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야당 딸들 1
유치 야요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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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화광에 속한다.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많은 만화책을 읽는다. 그리고 거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래도 재미있었던 만화는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인상적이었던 몇몇 만화를 빼놓고서는...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이 후쿠야당의 딸들은 그 몇 안 되는 만화 중에 속한다. 여러가지 요소가 매력을 더했기 때문이리라. 독특한 일본의 지방색이 드러나고, 이 지방색은 인물들의 성격에 영향을 준다. 특히 후쿠야당의 여주인인 어머니와 첫째딸 히나 같은 경우에 그러하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엄격하면서도 속을 비치지 않고, 겉으로는 친절하면서 예의범절에 벗어나면 용서가 없는 그런 성향 말이다.

또한 전통과자라는 음식문화와 어우러지면서 이런 지방색과 인물 성격이 맞아 떨어진다. 가문을 잇는다는 것을 중시하는 일본의 특색이 보이기도 한다. 둘째 아라레는 이와는 전혀 반대되는 현대적 여성상으로 보여졌지만, 오히려 반전을 거듭해 후쿠야당을 이어가는 여당주가 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셋째 하나의 귀엽고 달콤한 사랑도 재미있지만 말이다. 세상 살이의 진면목, 자매들간의 우정, 평생 함께 살아오면서도 몰랐던 자매들의 숨겨진 모습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그들의 정은 더욱 굳건해지고 따사로워진다. 읽은지 꽤 된 만화지만,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매우 멋진 만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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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1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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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봤을 땐, 대사가 전혀 없는 그림만으로 된 동화책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장 한장 꼼꼼히 변화가 없는 그림컷을 살펴보자...갑자기 황당하고 재밌는 웃음이 터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노보노는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사고를 가졌다. 겁이 많으면서도 둔하고, 둔한것 같으면서도 순진하고...그 녀석은 보고만 있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약간 느릿느릿한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만화든 영화든 소설이든 빨리빨리 변하려는 삶 속에서 여유를 찾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화의 배경도 늘 숲속이나 자연이다. 소재의 빈곤을 느낄 법도 하건만, 특별한 서사구조도 없는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인물들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다. 많은 대사나, 복잡한 그림체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강력 추천이다. 솔직히 나같은 경우에..이 만화책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몇년 전에 들었지만, 몇장 뒤적이다가 실망해서 접어버린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소박한 그림과 몇 마디 안되는 대사로 사람들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포로리나 너부리와 같은 다른 인물들도 보노보노와 함께 내용 전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인물들이다. 주인공, 조연이 따로 없는 만화라서 더욱 편하게 볼 수 있다. 독특한 발상, 엉뚱한 전개, 인물들의 새로운 행동방식 등...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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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검 1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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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둡게 마음이 가라앉을 때, 나는 김혜린님의 만화를 본다. 김혜린님의 만화는 주체적인 여성이 드러나 있어서 좋다. 희생적이지만, 남자에게 강요당하는 종속적인 모습이 아니라, 끝없이 삶을 지키고 투쟁해나가는 여주인공이 나타나서 좋다. 특히 불의 검에서 아라는 그런 여성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비천무에서는 미미하게 드러났던 부분들이 점차 그림에 내용에 육화되어 나타난다.

가끔 불의 검이 완결되지 않는 것이, 작가의 부담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은 완결되기도 전에 너무나 큰 명성을 얻어...작가에게는 참...고민스러운 작품이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불의 검'은 우리 만화사에 남을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스케일적인 면에서나, 내용, 그림, 인물 설정 등...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수작이니 말이다. 부족 국가 시절의 삶의 모습들, 그리고 철기가 도입되는 과정, 전쟁의 역사, 계급화, 신과 인간이 교감하던 시대임을 알려주는 무녀...그리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랑의 감정을 숨겨야 하는 연인...

특히 사랑에 있어서 김혜린님의 인물 묘사는 대단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하기 힘들다. 고귀한 사랑, 즉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사랑은...문학이나 시에서만 가능하지 않은가라는 내 생각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아라'는 처음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불의 검'을 만들지만, 점차 가면 갈수록 그 의지는 대의를 위한 것으로 바뀐다. 자신의 아이를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으로..그래서 더욱 포용력있고 설득력 있는 연인과 어머니의 모습을 합쳐서...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여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물론 전에는 연인으로서, 어머니로서 고귀함을 획득한 캐릭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큰 사랑이 그 둘을 넘어서 자식, 연인을 넘어서 민족에 대한 사랑, 적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승화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전쟁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싸움이 일어나 죽는 것은 평민들이지만, 그들의 지도자들은(아마도 진정한 지도자) 그 민족의 일원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여긴다. 부족국가라서 그런 면도 있겠지만, 아군이든 적군이든...그 표현 방식이 어떠하든...자기 백성들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는 지도자들을 보며 어찌...비난할 수 있을까? 그때문에 더더욱 갈등은 첨예해질 수 밖에 없다. 자식 하나하나의 피를 밟고 전쟁을 하기 때문에, 갈등은 좁혀질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 만화는 김혜린님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얼마나 진보적인가, 또 얼마나 곧은가를 알 수 있게 만든다. 그것도 하나의 메세지로서가 아니라 육화된 캐릭터로서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김혜린님을 좋아하는 만화가라기보다 존경하는 만화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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