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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1
이시키 마코토 지음, 유은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피아노의 숲은 3년전쯤, 무척 지루하다는 생각으로 덮어 버렸던 작품인데, 어제 우연히 다시 읽게 되었다. 읽어본 사람들마다 강력하게 추천을 한다는 사실이, 왠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제목과 표지의 푸른 느낌과는 달리, 그림체는 서툴러 보이기도 하고, 난잡해 보일 정도로 균형미가 없고, 펜선이 울퉁불퉁했다. 게다가 읽다보면, 초등 학생들의 왕따니, 유치한 힘겨루기 등이 전에 느꼈던 지겨움을 되살렸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가다가 서서히 내용의 큰 틀거리가 잡혀나가자, 스토리 자체에 끌리게 되었다. 카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재능에 우정과 동경, 질투를 동시에 느끼는 슈우헤이의 감정선을 따라 읽다가, 어느새 카이의 자유분방한 매력에 너털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무도 칠 수 없었던 버려진 피아노를 어릴 때부터 쳐 왔던 카이...왜 다른 사람이 칠 때는 소리가 나지 않았는지...그 비밀스러운 피아노의 과거를 파헤치면서 카이와 슈우헤이는 갈등을 겪으면서도 우정을 쌓아 간다.
한적한 숲속과 맞닿아 있는 창녀촌의 반대편...큰 나무 한그루를 타고 내려가면 높은 나무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빛의 줄기가 아름다운 피아노를 비춘다. 그 숲속에서 울려퍼지는 카이의 피아노 소리는 피아니스트를 지망하는 슈우헤이에게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재능과 노력이라는 각각의 재산이 있고, 환경적 차이가 또다시 둘을 갈라 놓는다. 창녀의 자식인 카이와,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자식인 슈우헤이...만화를 읽다보면 그 둘의 관계에 점점 매혹된다.
어떤 대결구도의 형식은 아니지만, 예술적인 선천적 재능과 다 갖추어진 환경...이 두가지의 대립은 예술적인 만화의 주된 레파토리다. (예를 들어 유리가면 등) 하지만, 단순히 예쁜 만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더욱 이 만화를 신뢰할 수 있다. 이 만화의 배경에는 거친 창녀촌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어린아이들의 집단적인 잔인성이라든지...어른들의 치사하고 더러운 욕심, 욕망 등이 위악적으로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와 상반되는 그림인 숲 속의 피아노는 카이에게 그런 위악적인 환경인 창녀촌과 드넓은 세상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그리고 더욱 순수하게 내면의 피아노 소리를 찾게 만든다. 일본피아노콩쿠르의 엄격성은 음의 정확도만 따지지만, 카이는 인정받을 수 있는 피아노를 치지는 않는다. 카이에게 피아노란...숲 속의 피아노 소리이자, 자기 내면과 끊임없는 교류이기 때문이다.
그 피아노의 원주인이었던 아지노 선생은 만화 속에서 '피아노'와 같은 구실을 한다. '피아노'가 카이 속에 잠재한 음악성을 불러 일으켰다면, '아지노'선생은 그 꽃피기 시작하는 음악성을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손을 다쳐 피아니스트를 포기한 '아지노'선생...그리고 그 버린 피아노는 스스로 카이라는 새 주인을 찾아 '아지노 선생의 예술적 열정을 일깨운 것이다. 이 만화에서는 '피아노'자체가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슈우헤이가...자기나름의 존재방식으로 철저히 악보에 맞는 완벽한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카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정어린 친구로서의 피아노를 연주했다.
서투른 듯 한 그림체는 음악적인 세계와 비음악적인 세계, 카이와 슈우헤이, 아지노 선생과 슈우헤이의 아버지,오히려 이런 상반되는 세상을 보여주는데 큰 구실을 한다. 그리고 이런 대비는 단절되어 있는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자극해서 더 놓은 세계로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