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의학의 만남 - 법의학자 문국진이 들려주는 명화 속 삶과 죽음 명화 속 이야기 3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의학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 호감을 줄만한 미술서이다. 의학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다면 그림을 너무 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관점에 실망하거나 지루해 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미술을 다룬 다른 책보다는 약간 건조하다고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며, 신화, 화가의 삶, 에피소드 등은 충분히 나타나 있는 편이다.

전체적으로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제목에서 주장하다시피 그림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각종 질환이나 인체의 특징들이 이 책이 매력이다. 약간 껄끄러웠던 부분은 생피박리, 형벌을 통해서 살펴본 해부학의 시초 등 저자가 법의학자이기 때문에 주목한 듯한 주제와 그림이었다.

르네상스시대의 유명한 화가인 다비드나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생살을 벗겨내거나 해부학 실험을 여과없이 그려낸 것을 칼라 화보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형벌을 살펴보면, 요즘의 것은 상대도 되지 않을 듯 하다. 여성약탈, 노출된 강간, 문란한 성도덕, 근친상간과 근친혼 등 성에 관련된 내용들 또한 어느정도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그외 '예수의 심장이 오른쪽에 있다'는 내용이나 '발그림' 관한 고찰, '결핵에 걸린 여인은 아름답다', '고흐가 그린 두 의사'의 차이점, '거지 소년 그림' 등에서는 작가의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림이 그려진 시대도 시대지만, 그림의 선택에 이나 해석에 있어서도 여성비하적인 부분이 많아 썩 마음에 드는 책은 아니다. 작가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으로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되었으며 남성의 부속물, 어머니 등으로만 한정지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의 문제일까? 이 소설에서의 '운명'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순응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누군가 빌려준 책이었지만, 크게 감동적으로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우리는, 또는 세계 사람들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글들을 무수히 읽어 왔다. 인체실험을 당했던 우리 민족이나, 위안부로 끌려갔던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그저 값싼 동정표를 얻고자 하는 제스추어정도로만 보이는데 비하면...유태인 학살은 고난과 고통의 상징으로 보인다.

이는 국력의 차이일까? 나는 '안네의 일기'를 좋아하고, 로맹가리의 소설을 좋아한다. 유태계 작가들의 특유의 냉소와 그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끈질김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 나라는 과거를 되짚어 보고 반성하지 않으려는 것인가? 우리나라에도 무수한 작가들이 있는데...왜 우리의 역사는 늘 은폐되고 잊혀져 가는 것인지 안타깝다. 유태계 작가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잊지 않고 되새기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런 노력이 너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싶다.

사설이 길었지만, '운명'을 보고 이번에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 소설도 유태인들...즉 다른 민족에 의해 말살정책의 희생양이 된 민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운명'이라는 소설은 유태인들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 중에 약간 색다른 변주였다. 마치 주인공이 둘인 것처럼 이야기 속의 화자는 감정을 배제하며 상황 속의 자신에 대해 묘사한다. 수용소의 비참한 생활 속에서 거의 시체나 다름없이 되어 버린 자기 자신을 아무 감정없이 묘사한다는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작가가 이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해서 주인공의 운명적인 고통과 역경을 벗어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너무 엄청나서 인간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으로 말이다. 또는 반대로 어떤 삶에도 고통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속에서 주인공과 같이 현실과 자아를 완전히 분리시킨 후에 어떤 운명에도 체념하거나 굴복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운명이라는 이 책 제목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몇 번 더 읽어 본 후에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인간은 섹스머신을 만들었다
호그 레빈스 지음, 한지엽 옮김 / 엔북(nbook) / 200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인간이 만들어낸 성 관련 발명품에 관한 이야기이다. 피임도구, 자위 방지 도구, 브래지어, 정조대 등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림과 함께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다. 만약 성문화적인 측면의 내용을 기대한다면 다른 책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 책은 정보제공의 측면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시대별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기구들도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는 있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 없는 자위 방지 도구는 정말 살인적인 무기에 가깝다. 자위를 죄악시하는 청교도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멀쩡하고 정상적인 남성들이 정신병자로 몰렸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마녀사냥'보다 더한 시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를 낳는 기계라 불려도 과언이 아닐만큼...예전에 우리 어머니들도 십 수년을 애를 낳고 키우는 것에 평생을 보낸 적이 있다. 서양이라고 해서 별 다른 모습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모든 발명이 현재의 기본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서양여성들이 사용했다는 무수한 피임기구 또한 정교하게 만들어진 갑옷이나 쇳덩어리의 느낌밖에 들지 않으니...참 무서운 일이다.

신체에 상처가 나거나 불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심지어 여성의 몸안에 넣는 페서리 중에서는 강간이나 성폭행을 방지하기위해 날카로운 칼 같은 것을 달아 남성의 성기를 자를 수 있도록 한 것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적인 기록에 의거한 성 관련 도구의 발전과 상세한 그림을 통해 현대의 성과학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인식의 성과학탐사 탐사와 산책 13
이인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성을 다룬 책은 보통 뻔한 사실만을 늘어놓은 것들이 많다. 숨겨진 정보나, 깊이있는 지식을 주기에는 역부족인 성과학서가 많은 반면,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성을 바라본다는 것이 장점이다.

각 테마별로 나누어 성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간의 성, 동물의 성, 성적 신호, 생식, 성문화, 성적 터부, 성폭력, 피임, 성풍속, 성경 속의 성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고대의 사례, 과학적인 지식, 성문화적인 요소, 심리학적인 측면 등을 골고루 섞어 금세 책 한권을 다 읽게 만들었다. 게다가 각 주제에 알맞은 미술 작품 화보는 물론 자료 사진의 풍부함이 독서를 훨씬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

사람은 왜 성생활을 할까? 동물과는 다른 점은 무엇일까? 불과 1세기 전과 현재의 성인식의 차이는 엄청나다. 예를 들어 수음을 자주 하면 정신이상이 생긴다고 생각한 것...심지어 미국인들이 아침식사로 먹는 콘플레이크가 자위하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음식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성문화적인 측면과 인식의 변화, 과학적 증명을 적절히 잘 사용했다는 점이다. 다른 포유동물과 다르게 인간에게 발정기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들이 자유롭게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이 배란기를 숨기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남성들이 자신의 아이를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구의 아이인지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더 우수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남성들의 정자가 한 여성의 몸 속에 들어가면 서로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운다. 그 뿐이겠는가? 남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가지기 위해 여성들이 자녀를 키우는 수유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들을 무참히 학살하게 된다.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간 또한 종족에 알맞은 방식으로 진화해온 셈이다. 문화적으로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것은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상세하며 재미있는 성을 보여주는 책이다. 가볍지 않고, 무겁지도 않으며 성을 진지하게 탐구한 흔적이 엿보인다. 무수한 사례와 자료 수집, 그림, 학문적인 성과가 잘 어우러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키친>은 서정적 감수성이 풍부한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문득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마음을 찔리듯 뜨끔거리는 문장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 중에 하나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것. 또는 잊고 잊혀지는 고통과...막막한 고독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키친>은 주인공인 미카게의 감정을 잘 포착한 작품이다. 고아였던 미카게는 할머니를 잃는다. 사는 것에 대한 미련마저 없어질 정도의 고독. 미카게가 부엌에 몰두하는 것은 어쩌면 살고 싶다는 무의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부엌, 냉장고, 먹을 것...미카게는 생존에 대한 의미를 요리에서 찾았다. 홀홀단신의 미카게가 살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 위해서는 삶을 의미하는 음식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식은 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카게에게는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 식사를 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낯선 유이치의 집에 몸을 의탁하면서 더없는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이치는 아버지였던 이가 성전환을 해 어머니가 된 경우다. 일반적인 가정과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소중한 어머니가 죽은 후 그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 양성의 부모가 느닷없는 죽음을 당했을 때 유이치 또한 삶에 대해 미련이 없어졌다.

이때 미카게는 유이치의 마음을 이해하는 단 한명의 동지이자, 타인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유이치에게 미카게가 준 것은 돈까스 덮밥. 포장한 돈까스 덮밥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유이치의 여행지를 찾는다.

미카게와 유이치는 마치 영혼을 나눠가진 존재처럼 서로를 느낀다. 그게 사랑인지...아니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동질감인지 모르겠지만, 둘을 이어주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죽음'과 '고독'이다.

<키친>을 읽고나서 왠지 유미리의 <가족 시네마>가 떠올랐다. 두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같으면서도 비슷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단, <키친>이 고독한 사람들이 모여 혈연과 같은 관계를 얻게 되며,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는데 반해...<가족시네마>는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간을 부정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미카게'는 유이치의 집에서 보내는 첫날밤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았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그런 잠자리만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외로움이 커지니까 안 된다. 하지만 부엌도 있고, 식물이 있고, 같은 지붕 아래 사람이 있고, 조용하고 ......최고다. 여긴 최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