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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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은 서정적 감수성이 풍부한 작품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문득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마음을 찔리듯 뜨끔거리는 문장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 중에 하나는 죽음을 두려워 한다는 것. 또는 잊고 잊혀지는 고통과...막막한 고독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키친>은 주인공인 미카게의 감정을 잘 포착한 작품이다. 고아였던 미카게는 할머니를 잃는다. 사는 것에 대한 미련마저 없어질 정도의 고독. 미카게가 부엌에 몰두하는 것은 어쩌면 살고 싶다는 무의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부엌, 냉장고, 먹을 것...미카게는 생존에 대한 의미를 요리에서 찾았다. 홀홀단신의 미카게가 살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 위해서는 삶을 의미하는 음식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음식은 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카게에게는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 식사를 할 사람이 없지 않은가? 낯선 유이치의 집에 몸을 의탁하면서 더없는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이치는 아버지였던 이가 성전환을 해 어머니가 된 경우다. 일반적인 가정과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소중한 어머니가 죽은 후 그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 양성의 부모가 느닷없는 죽음을 당했을 때 유이치 또한 삶에 대해 미련이 없어졌다.

이때 미카게는 유이치의 마음을 이해하는 단 한명의 동지이자, 타인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유이치에게 미카게가 준 것은 돈까스 덮밥. 포장한 돈까스 덮밥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유이치의 여행지를 찾는다.

미카게와 유이치는 마치 영혼을 나눠가진 존재처럼 서로를 느낀다. 그게 사랑인지...아니면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동질감인지 모르겠지만, 둘을 이어주는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죽음'과 '고독'이다.

<키친>을 읽고나서 왠지 유미리의 <가족 시네마>가 떠올랐다. 두 소설은 전혀 다른 이야기같으면서도 비슷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 단, <키친>이 고독한 사람들이 모여 혈연과 같은 관계를 얻게 되며,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는데 반해...<가족시네마>는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간을 부정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미카게'는 유이치의 집에서 보내는 첫날밤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았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일들과 앞으로의 일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그런 잠자리만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외로움이 커지니까 안 된다. 하지만 부엌도 있고, 식물이 있고, 같은 지붕 아래 사람이 있고, 조용하고 ......최고다. 여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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