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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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사쿠미에게 일어난 일들도 불가사의한 일들 중에 하나이다. 아름다운 여동생이 죽고, 그 여동생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여행을 가서 만난 '공중변소'라는 이름으로 창녀이자 가수인 여성, 그리고 그의 기묘한 남편....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에 일반적이고 평범한 인물이 한명이라도 있을까?

그렇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인간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개인 역사의 무늬를 짜면서 죽음을 향해 다가간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색깔이나 무늬를 만들기도 한다. 이 소설은 유미리의 '가족시네마'나 '풀하우스'와는 다르지만 역시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해체된 가족이라기 보다 독특한 인연으로 구성된 인공적인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함을 다룬다.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일들...즉 남동생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거나....사쿠미가 유령을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등 삶과 죽음의 불투명한 경계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하지만 이들은 그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하기 보다는 숙명처럼 그 사실을 껴안으려고 노력한다. 적응하는 것이다.여동생이 죽은 후 일어난 이 기묘한 일들을 껴안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어쩌면 여동생의 죽음을 껴안으려고 하는 간절한 몸짓인지도 모른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았을 때...사람들은 보통 죄책감을 느낀다. 또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해 예상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미 죽은 사람의 기억을 평생 지고 가야하는 무게를 버티기 위해서는 몇 배나 큰 중력을 짊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암리타'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에게 주어진 기억과 삶의 무게를 지고 나가야 하는 인간..그리고 희망...불투명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짓지 않고 순응하며 적응하는 모습이 보인다. 키친 이후로 가장 흥미로웠던 소설이었다. 안타깝게도 가족들간의 에피소드가 연결고리를 가지지 않아 조각조각난 단편을 이어붙인 느낌은 들었지만 말이다. 장편이라는 점도 꽤 마음에 들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고 가는 소설적 힘도 느껴졌다. 단,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이면서도...가장 어색했던 것은 뭐니뭐니 해도 초능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는 소설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아마도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인간 존재를 내세워 현실의 모호함을 더욱 강조하려고 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조금만 더 고치면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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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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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기묘한 이야기이다. 키친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강하며 작가의 마음 밑바닥이 짙은 향기를 드리운다. 이는 아마도 '죽음'이라는 주제 때문인 듯 하다. 동성애 관계에서, 자신으로 말미암은 파트너의 죽음(하드보일드), 언니의 죽음이 가져온 가족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감정의 파장(하드럭)에 관한 내용이다. 마치 죽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듯, 주인공들이 느끼는 기억들이 공기 속의 축축한 습기처럼 느껴진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철저히 따라간다. 객관적인 부분을 묘사할 때조차도. 개인적으로는 '하드럭'이 마음에 들었다. 동성애 파트너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으며, 꿈과 유령, 환상에 의지한 하드보일드보다는 언니의 죽음이 가족들 사이에서 또는 언니의 연인과 주인공 자신에게 미친 영향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주는 뿌연 안개같은 느낌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은 현실과 과거 사이에서 헤매는 느낌이었고, 주인공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면서도 죽은 이들의 발자취를 기억 속에서 계속 더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겉과 속이 다른 느낌... 그리고 습한 기억의 무거움... 하지만...인간의 기억 속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을 단지 기억 속에만 가두어야 한다는 이상한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은 현실적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한 사람의 감촉이 내 주위에서 사라지고, 그 기억의 잔재가 주변을 떠돌아다닌다면...아무리 담담하려 해도 감정이 격렬해질 것은 당연한 일... 어쨌든 이 소설은 줄거리 보다는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지루한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슬프디 슬픈 소설이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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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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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예술가에게 있어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절실한 얘기는 없을 것이다. 단편소설집 한 권을 낸 작가치고 이정도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작가는 드물 것 같다. 자신만의 주제와 문체, 인물의 성격까지 자신만에 틀에서 뽑아낸 것처럼 매끈하다. 그 때문에 천운영의 소설에 신뢰가 가기도 하고, 반면에 신인작가로써는 너무나 명확한 자신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늘'이라는 작품에서 천운영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그녀는 소설을 쓰는 방법을 아는 작가다. 재미있는 소재를 고를 줄 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성 문신사라는 독특한 소재, 또한 일상적이지 않은 인물 성격, 상세한 세부지식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는 맛을 준다. 요즘의 소설과는 접근방법 자체가 다르다. 현대인들의 일상들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하면서 낯설게 하는 접근 방식이 아니라, 소설의 구성 하나하나가 독자들의 정신을 뱀처럼 휘어잡아 끌어들이는 것이다.

시적인 문장을 구사한다는 점에서도 소설 한 줄 한줄에 얼마나 많은 땀냄새가 배어있는지 느껴진다. 천운영의 소설을 읽다가 문득 허수경의 초기 시집이 생각났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천둥벌거숭이처럼 가꾸어지지 않은 감수성을 이리 저리 펼쳐놓았지만, 소박하고 건강한 들꽃처럼 풀냄새가 났던 시집....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천운영'의 소설에는 더욱 계산적이며 프로다운 느낌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어떤 부분에서 감동을 줄 것이며, 이 대사에서 이런 느낌을 주겠다는 철저한 계산 속에서 소설이 쓰여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분명, 이 작가는 손 끝에서 피가 맺히도록 정열을 다해 썼겠다는 생각, 또한 이런 식으로 소설을 계속 쓰다보면 제 생명력까지 갉아먹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친구 하나는 자기 가슴 속에 새파랗게 갈아 놓은 칼날을 품는다고 했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의 약점을, 또는 그에 대항할만한 꺼리들을 가슴에 칼처럼 품으면서 절대 드러내지 않는 것. 그건 하나의 자기만족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약자들이 가지는 마지막 수단일지도 모른다. 한번의 독침과 자신의 생명을 맞바꾸는 벌들처럼 말이다.

천운영의 인물에선 그런 절박함들이 엿보인다. 바늘의 주인공은 세상에 대항할만한 무기로 자신의 바늘을 가졌다. 문신을 새기려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문신으로 타인들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하는 내면의 연약함을 지니고 있다. 개인 속의 약함이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정이겠지만, 그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절박한 심정은 강한 외모와는 정반대의 심리가 아닐까? 문신을 새기는 직업 속에서 전능한 위치를 차지한 여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이 매우 매혹적인 작업임은 분명하다.

안타까운 점 중에 하나는 소설이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기괴하고 결핍된 인간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천운영이 바라보는 인간상이 그러한 것이라면 왠지 씁쓸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너무나 국지적인 형태로 사회를 바라보는 형식이기 때문에 작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좀더 크게 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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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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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이 책을 읽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친구는...왠일로 책을 빌려달라는 제안은 거절해버렸다. 이런 책은 꼭 사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 학자의 단순한 회고록에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그가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자 노력해기 때문일 것이다. 하워드 진은 어떻게 하면 평범한 삶을 살 것인가? 이 평범한 삶을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가장 긍적적인 부분은 세계를, 또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는 브루클린의 빈민가에 태어난 유태인의 후손이었으며, 조선소에서 일하던 선박공이었고, 제 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가해 전쟁이 가져오는 비인간성을 접했었다. 그 모든 비참한 현실의 정중앙에 있었으면서도 타협하지 않았다.

미국 헌법과 독립선언문에 엄연히 나와 있는 미국 내의 흑인인권을 위해 싸웠고, 모든 전쟁의 부당함에 대해 싸웠으며, 한가지 시각만 강요하는 교육 제도와 싸웠다. 그는 그 모든 싸움들의 중심에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흑인들의 투쟁에 참여하면서 '불복종'이라는 시민 운동의 방법을 신념으로 삼았다. 바로 앞에 다가온 형벌을 피하기 보다, 모든 법에 우선하는 헌법과 자유의 평등을 가로막는 것들에 묵묵히 저항한 것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인들의 거리를 제대로 지날 수 없고, 똑같은 요금을 내고 백인들의 자리에 앉지 못하고, 항상 멀시받고 천대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과 위배되는 행위이다. 테러의 위협과 법정의 불공평함 등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한 결과 작은 불씨가 전체를 활활 태운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 나타난 상황도 그러하지만, 미국은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테러국가나 테러범을 잡기 보다는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전쟁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강조하기위해 진실을 날조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미군의 피해와 납치 손실들에 대해 언급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전쟁의 목적으로 삼았던 미국이 얼마나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는지...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약탈했는지, 남의 나라에 허수아비 정권을 세우려 얼마나 많은 반대자들을 없애야 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문제는 진실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것이다. 은폐되어 있는 진실을 알고 위해서는 진실을 아는 극소수의 반성과 희생이 필요하다. 바로 하워드 진과 같은 실천적 지식인이 그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진실을 알리는 일과, 그 진실을 제대로 아는 일'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하워드 진이 주장하는 대로 전쟁과 기아, 모든 종류의 편견과 차별은 시대마다 모양만 바꿔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리면, 작은 저항심들이 모여 큰 물결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기에 인간이다. 사회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우리는 수많은 부조리와 편견, 불필요한 관습의 굴레에 붙잡힌다. 그리고 이런 불합리에 서서히 순응해간다. 아마 '386'세대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현실에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소극적 진보주의자로 머물러 있는 특수 계층이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 조차 제 2차 세계대전 때 패잔병들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전투기의 조종사였으며, 일본의 원폭투하에 대해 전쟁이 끝났다는 정도의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무수한 잘못들 밟고 일어나서 현재의 참지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이런 참지식인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사회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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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 보고서 1 - 오감과 성기편
강승귀.권병두 지음 / 지수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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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권으로 나누어진 성문화 보고서는 다양하면서도 풍부한 사례와 적절한 화보, 때로는 코믹한 속설들을 자유자재로 제공해준다. 필요에 의해 성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성문화 보고서'의 경우 마치 성백과사전과 같은 인상을 준다. 에세이식이 아니라 정말 과학적인 사실들을 풀어서 쉽게 해석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지하철에서 펴 놓고 읽기에는 민만하리만큼, 적나라한 화보나 그림이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성에 관한 왠만한 연구는 죄다 모아 놓아 기본적인 성지식을 쌓기엔 충분할 듯하다. 성적인 모든 인체의 반응, 생각, 습관, 규칙 들을 과학적으로 해설해준다.

청소년이 보기엔 강도가 센 편이지만, 자녀 교육이나 성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라면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성에 대한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현대 미술에 관련된 잡지 화보를 보면 왠만한 포르노 잡지 저리가라 할만한 사진이나 그림이 한 둘이 아니니 말이다.

'성'은 성인인 남녀가 즐김과 동시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런 반면에 우리나라 성인들은 이에 너무나 무지하다. 대학에서는 성과 관련된 강의가 항상 제일 빨리 마감이 된다. 중고등학교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에 대해 그저 섹스와 관련된 부분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오면서 수많은 문화적 함의와 인류학적, 생물학적, 진화론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과는 달리 인간의 일상에 밀착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자기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여성, 남성을 막론하고 자기 몸의 기본적인 매커니즘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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