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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꽤나 기묘한 이야기이다. 키친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몽환적인 느낌이 강하며 작가의 마음 밑바닥이 짙은 향기를 드리운다. 이는 아마도 '죽음'이라는 주제 때문인 듯 하다. 동성애 관계에서, 자신으로 말미암은 파트너의 죽음(하드보일드), 언니의 죽음이 가져온 가족들 사이에서의 미묘한 감정의 파장(하드럭)에 관한 내용이다. 마치 죽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듯, 주인공들이 느끼는 기억들이 공기 속의 축축한 습기처럼 느껴진다. 두 소설 모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철저히 따라간다. 객관적인 부분을 묘사할 때조차도. 개인적으로는 '하드럭'이 마음에 들었다. 동성애 파트너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으며, 꿈과 유령, 환상에 의지한 하드보일드보다는 언니의 죽음이 가족들 사이에서 또는 언니의 연인과 주인공 자신에게 미친 영향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주는 뿌연 안개같은 느낌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은 현실과 과거 사이에서 헤매는 느낌이었고, 주인공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 하면서도 죽은 이들의 발자취를 기억 속에서 계속 더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겉과 속이 다른 느낌... 그리고 습한 기억의 무거움... 하지만...인간의 기억 속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을 단지 기억 속에만 가두어야 한다는 이상한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은 현실적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있었던 한 사람의 감촉이 내 주위에서 사라지고, 그 기억의 잔재가 주변을 떠돌아다닌다면...아무리 담담하려 해도 감정이 격렬해질 것은 당연한 일... 어쨌든 이 소설은 줄거리 보다는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지루한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슬프디 슬픈 소설이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