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워드 진, 이 책을 읽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친구는...왠일로 책을 빌려달라는 제안은 거절해버렸다. 이런 책은 꼭 사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 학자의 단순한 회고록에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그가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자 노력해기 때문일 것이다. 하워드 진은 어떻게 하면 평범한 삶을 살 것인가? 이 평범한 삶을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가장 긍적적인 부분은 세계를, 또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는 브루클린의 빈민가에 태어난 유태인의 후손이었으며, 조선소에서 일하던 선박공이었고, 제 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가해 전쟁이 가져오는 비인간성을 접했었다. 그 모든 비참한 현실의 정중앙에 있었으면서도 타협하지 않았다.

미국 헌법과 독립선언문에 엄연히 나와 있는 미국 내의 흑인인권을 위해 싸웠고, 모든 전쟁의 부당함에 대해 싸웠으며, 한가지 시각만 강요하는 교육 제도와 싸웠다. 그는 그 모든 싸움들의 중심에 국민들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흑인들의 투쟁에 참여하면서 '불복종'이라는 시민 운동의 방법을 신념으로 삼았다. 바로 앞에 다가온 형벌을 피하기 보다, 모든 법에 우선하는 헌법과 자유의 평등을 가로막는 것들에 묵묵히 저항한 것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인들의 거리를 제대로 지날 수 없고, 똑같은 요금을 내고 백인들의 자리에 앉지 못하고, 항상 멀시받고 천대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과 위배되는 행위이다. 테러의 위협과 법정의 불공평함 등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한 결과 작은 불씨가 전체를 활활 태운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 나타난 상황도 그러하지만, 미국은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테러국가나 테러범을 잡기 보다는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국의 국민들에게는 전쟁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강조하기위해 진실을 날조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미군의 피해와 납치 손실들에 대해 언급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전쟁의 목적으로 삼았던 미국이 얼마나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는지...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약탈했는지, 남의 나라에 허수아비 정권을 세우려 얼마나 많은 반대자들을 없애야 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문제는 진실을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것이다. 은폐되어 있는 진실을 알고 위해서는 진실을 아는 극소수의 반성과 희생이 필요하다. 바로 하워드 진과 같은 실천적 지식인이 그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진실을 알리는 일과, 그 진실을 제대로 아는 일'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하워드 진이 주장하는 대로 전쟁과 기아, 모든 종류의 편견과 차별은 시대마다 모양만 바꿔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리면, 작은 저항심들이 모여 큰 물결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기에 인간이다. 사회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우리는 수많은 부조리와 편견, 불필요한 관습의 굴레에 붙잡힌다. 그리고 이런 불합리에 서서히 순응해간다. 아마 '386'세대라는 말이 등장한 것도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싶다. 현실에 순응하지도 저항하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소극적 진보주의자로 머물러 있는 특수 계층이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 조차 제 2차 세계대전 때 패잔병들과 민간인을 학살하는 전투기의 조종사였으며, 일본의 원폭투하에 대해 전쟁이 끝났다는 정도의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무수한 잘못들 밟고 일어나서 현재의 참지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이런 참지식인들이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사회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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