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수 상자의 비밀 - 수학적 오개념을 바로잡는 환상 속 모험 2 꿈꾸는 책꽂이 7
박현정 지음, 오윤화 그림 / 파란자전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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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과는 조금 다른 책이었다. 사실 나는 성인을 위한, 그러니까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학적 오류를 예시와 함께 상세하게 풀어주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해리포터처럼 모험을 통해 큰 위기를 헤쳐 나가는 네 명의 어린친구들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나는 수학을 싫어했다. 처음부터 싫었던 영어처럼 애초에 싫었던 건 아니었다.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학년주임이었는데 시시껄렁한 작은 문제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아이들을 들들 볶았다. 그 선생님이 너무 싫어서 그 과목마저 싫어졌다. 사춘기 때 반발심이 컸던 나는 수학에 손을 놓았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수학 첫 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1 더하기 1은 왜 2일까.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선생님이 나를 지목하셨다. 나는 그렇게 '약속'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선생님이 웃으시며 그게 바로 정의라고 말씀하셨다. 기분이 으쓱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갈대 같은 학생. 선생님의 호불호로 성적이 들쑥날쑥했다. 하지만 워낙 바탕이 없던 지라 내신은 그럭저럭 점수가 나왔지만 기초가 튼튼해야하는 수능에서는 처참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들은 계산만 할 줄 알면 되지 수학이 사는데 필요 없다고 한다. 큰 오산이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건물 등등 수많은 것들은 수학이 기초가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순수학문을 도외시한다. 서글픈 이야기다. 실용학문의 뿌리는 순수학문이다. 순수학문이 탄탄해야 우리가 사는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모른다. 또한 순수학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대학에 중요시 되는 논술은 철학에서 나왔고 철학은 수학과 연관되어 서로를 채워주고 지지해준다. 학교 과목이 아닌 수학은 어떻게, 왜라는 호기심을 자극해서 흥미로웠다. 문제를 푸는 과정이 신이 날 정도로 재밌어 답이 자주 틀려도 다섯줄이 넘어가는 문제를 몇 시간씩 파고들었던 게 생각난다. 머리가 굳을까봐 가끔 지금이라도 '수학의 정석'을 사서 풀어볼까, 지금 푼다면 예전 보다는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유리수 상자의 비밀은 '0의 비밀의 화원'의 연작이다. 전편을 보지 않아도 수월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는 내내 '0의 비밀의 화원' 내용도 궁금했었다. 솝, 승, 류, 토파즈는 악령 세트의 음모를 깨고 메타중학교를 지킬 수 있었을까. 책의 인물들의 대화에 나오는 수학의 개념과 정의의 주석이 따로 달려있어 다시 한번 정리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컸다. 중간 중간 나오는 신화와 음악 그리고 수수께끼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관련된 신화와 음악도 같이 찾아보면서 아이들과 좋은 독서를 같이 할 수 있겠다. 아이들과 함께 환상의 수학모험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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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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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책이 두꺼워서 놀랐다. 밤늦게야 책장을 펼쳤다. 일이 고된 날이라 맛만 조금 보고 다음날에 읽자 생각했는데 두 시간 동안 놓지 못하고 완독 하였다. 어거스트가 어떻게 되었을 지 계속 궁금하여 책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코끝이 찡하자 눈물이 났다. 이 책은 주인공인 어거스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안면기형으로 집에서만 지내던 어거스트가 학교에 나가면서 벌어지는 일 년간의 성장소설이다. 또한 어거스트로 인해 성장하게 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도 하다. 아주 오래 전 얼굴 한쪽이 심하게 일그러진 할머니가 지하철 안에서 구걸하며 돌아다녔다. 어린 시절 남들과 달라 따가운 시선-그것이 경멸이든 호기심이든-을 받아보았기에 나만이라도 사람들 보고 꺼려하는 마음을 갖지 말며 뚫어지게 쳐다보지 말자고 평소 다짐했던 나조차도 피하고 싶을 정도로 모습이 기괴했다. 바로 부끄러움이 들어서 찡그렸던 이마를 피고 싶었지만 자신의 장애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구걸을 한다고, 모든 책임을 할머니께 돌리던 나의 마음이 계속 떠올라 미간의 주름을 지우지 못했다. 할머니는 구걸 할 수밖에 없었을 사연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여전히 가끔 궁금하다.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지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까. 나 같은 경우는 차라리 무관심 한 게 상처를 덜 받았었다.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묻는 사람들의 입을 꿰매고 싶을 때도 있었다. 어째서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저 스쳐 지나는 사람에게조차 일일이 설명해야 될까, 서글퍼지기도 했었다. 나와는 다르게 평생 그런 질문에 시달려야 할 어거스트를 생각하면 가슴 한 켠이 시려온다. 불에 달구어진 돌 위를 걷는 성인식을 치루는 부족에 대해 얼핏 들었던 것 같다. 호기심으로 다가왔던 사람이 후에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기도 했지만 내 마음은 거기까지 가기 위해 불 위를 걷는 발바닥처럼 뜨끔거리며 어른이 되어야 했다.

  비록 고개를 푹 숙이고 등 떠밀며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용기를 낸 어거스트. 용기를 낸 건 어거스트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나는 어거스트만 보였을 거다. 그 아이의 슬픔과 좌절과 실망만 보였을 테다. 하지만 조금은 성장한 나는 주변 사람들이 보인다. 어거스트 등을 밀어 세상에 내보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던 가족들이나 그 아이를 받아들이기까지 용기를 낸 친구가 보인다.  어거스트 말대로 모든 사람들은 기립 박수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용기를 내어 극복해서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겉모습이 달라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까지 쉽게 뒤틀릴 수 있다. 어거스트의 마음이 그렇게 되지 않게 지켜주고 사랑해준 가족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평범하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하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 존재 하기는 할까?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의 어거스트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겉모습이든 내면이든 간에 남과 다른 내가 존재한다. 표지에 보니 '책콩 어린이'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라고 내놓은 듯하다.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감동 받을 책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어거스트들이 이 책을 읽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상처가 많았던 시절 쓴 글을 남기며 글을 마치겠다.

 

어느 날부터 나는 나의 길에 서 있기만 했다.

그때 눈을 감은 한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이는 나의 차가운 손을 덥석 잡더니

  

   "당신은 얼음 같은 사람이군요."

 

하고는 떠나갔다.

그 길에 서서 더욱 차가워진 손을 부여안고

뜨거운 눈물로 녹이고 있을 때

눈을 감은 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이는 나의 눈물을 만지더니


   "당신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군요."


자신의 상처도 크다며 나를 지나쳤다.

그 길에 서서 눈물을 삼키며 누군가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눈을 가린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다.

앞의 사람과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

나 역시 눈을 감고 외면하려 했다.

그이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마음에 손을 얹었다.


   "당신은 따뜻한 사람이군요."


그러고는 내 곁에 서서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 따뜻한 눈길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내가

스스로 눈을 떠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한참 후

그 사람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 떠났다.

떠나가는 그 사람의 등을 보기 위해

눈을 뜬 나는 아무도 들을 수 없게 중얼거렸다.


"나는 차갑지도, 상처가 많지도, 따뜻하지도 않아요. 나는 그저 나 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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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스캔들 - 키스의 문화와 예술, 그 상상력 읽기
윤향기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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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굉장히 달콤한 단어다. 어릴 적 하이틴 로맨스를 읽으면서 키스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했었다. 소설처럼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며 종이 울리고 입안에 과일향이 가득한 향기로운 느낌일까. 뽀뽀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라는데 어떨까.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도 소년의 열망에 못지않았다. 상상을 하면 가슴 한구석이 말캉해지면서 손끝과 발끝이 찌릿해졌다.  하지만 슬프게도 첫 키스의 기억은 그리 좋지 못하다. 종은커녕 식당 벨조차 울리지 않았고 술과 안주 냄새가 뒤섞인 타액이 역겹기까지 했었다. 실망이 큰 나머지 트라우마까지 생겨 키스를 기피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나의 경험으로 짧은 단편을 쓰기도 했다. 제목은 '땅콩'이다.

 

   그의 키스에서 이상하게도 땅콩 냄새가 난다는 나의 말에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의 체액에도 궁합이 있어. 사람들마다 침, 땀, 눈물, 콧물…등에 각기 다른 냄새와 성질이 있기 때문이지. 예를 들어 어떤 남자와 키스를 했는데 무척 역겨운 냄새나 느낌이 들어 그에 대한 호감이 사라졌던 경험 있지 않아? 그런데 다른 여자도 그 남자에게 그런 것을 느낄까? 그건 아니거든. 네가 그렇게 느꼈던 건 그 남자의 체액이 너와의 것과 맞지 않기 때문이야. 궁합이 잘 맞을 경우에는 상생작용을 해서 기분도 좋고 건강에도 좋거든. 하지만 맞지 않으면 그건 서로에게 해를 불러오기도 해. 맞지 않으니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 또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래도 꺼려하는 것이 생길 테니 그 사람과 마음이 잘 맞아도 몸이 거부를 하게 되지. 그래서 멀어지는 거야. 우리는 그런 궁합이 잘 맞는 가를 따지는 걸 液合法(액합법)이라고 불러. 이것이 어긋나면 같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에 중요하지. 네가 그 남자에게서 땅콩냄새를 맡았을 때 기분이 안 좋았어? 아니라고? 달콤했다고? 그렇다면 문제될 건 없어.”

  그녀는 큰소리로 유쾌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말을 했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그녀의 말에 나도 그제야 안심하고 웃을 수 있었다. 어느덧 마음은 가벼워졌고 그와의 사랑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내 연락을 기다린 눈치였다.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했냐고 투정을 부리는 그와 나는 일주일 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와의 만남은 행복했다. 그의 사소한 배려, 이를 테면 데이트 시간에 맞추어 집 앞까지 마중을 나온다든가 오랜 시간 걸어 퉁퉁 부은 내 다리를 거리에 앉아 거리낌 없이 주물러 준다던지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은 나를 감탄하게 했고 나를 쳐다보는 그의 진지하고 깊은 눈빛에서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그가 집까지 배웅해줄 때 우리는 항상 달콤한 키스와 함께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여전히 그의 키스는 진한 땅콩 냄새를 풍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얼굴에 하나 둘 이상한 붉은 반점이 생겼다. 작은 트러블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며칠 뒤 그것은 온 얼굴을 덮은 후 팔과 다리에까지 나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내 몸을 덮더니 서서히 간지러워왔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은 딸기처럼 부풀어 오른 내 얼굴이었다. 내 몸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인가 두렵기도 했지만 병원에 가기는 꺼려졌다. 나는 언제나 자연 치료법을 은근히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사람 몸은 자연과 같이 신비한 정화능력이 있기에 그냥두면 스스로 치료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얼마 뒤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와의 데이트를 미루었다. 그는 이유를 계속 물었지만 얼굴의 트러블 때문이라고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시작되는 연인사이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빠서,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내게 그는 실망한 눈치였다. 그는 점점 집요하게 만남을 요구했고 집 앞까지 찾아왔지만 나는 나갈 수 없었다. 온몸은 밤마다 나도 모르게 긁어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더 이상 적조에 오염된 바다처럼 붉은 기가 퍼져가는 피부를 마냥 둘 수만은 없고 그와의 만남도 서둘러야 했기에 근처 피부과 병원을 찾아갔다.

    여러 가지 반응 검사 후 의사는 내게 말했다. 

    “땅콩 알레르기입니다. 근래에 견과류를 드신 적이 있나요?”


  10여 년 전 글이라 조금 어설프고 웃기기까지 하나 어쩌면 키스가 알레르기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그 당시 나의 깊었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나의 거부감은 아직 설익었던 스무 살의 결벽증에서 왔을 테니 말이다. 키스는 대화다. 얼굴이나 몸의 어떤 부분에 하느냐에 따라 사랑이나 존경을 표현이 다르기도 하다. 또 입술을 내미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며 그것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까지 알 수 있다. 연인끼리 하는 딥 키스(프렌치키스)는 사랑의 몸짓언어 아닐까. 상대와 타액을 나누며 '너의 침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라는 사랑의 확인일수도 있겠다. 어떤 책에서 왜인지는 모르지만 길의 여자는 몸을 팔지만 입술을 팔지 않는다는 구절을 보았다. 키스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하는 사랑의 언어인가보다. 여자의 음순을 닮은 서로의 입술이 포개지고 남자의 성기 같은 혀가 서로를 탐색한다. 키스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같이 지닌 쉬우면서도 깊은 세미섹스같다. 섹스에 체위가 있듯이 전에는 몰랐는데 키스도 버드키스, 햄버거키스, 에어클리닝키스, 프렌치 키스 등등 여러 방법에 이름이 붙여 있었다. 그럼 키스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존경의 의미나 애정표현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건 로마시대라고 하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일이다.

  책을 처음에 받고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나는 예쁜 디자인의 책이 좋다. 또 만질 때의 질감이 좋은 책이 좋다. 딱 움켜쥐었을 때 성실한 느낌이 드는 책이 있다. 키스스캔들이 그랬다. 하얀색의 표지에  빨간 입술이 포인트로 첫인상은 깔끔했다. 읽기 전에 한번 후루룩 훑어보는 버릇이 있는데 성의 있는 편집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 미술서적을 많이 찾아 읽는 편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보아오지 못해서 그런지 미술은 가까이 하고 싶어도 먼 세상이다. 미술작품에 얽힌 이야기는 보면서도 보지 못한 면을 일깨우며 더 깊게 이해하게끔 해준다. 남들과 조금 다른 생을 살아간 작가의 인생을 엿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 이야기를 읽을 때면 작품과 작가가 내 곁에서 움직이는 듯하다.

  키스스캔들은 키스를 매개로 미술작품과 시, 그리고 영화를 소개해준다. 부제인 '키스의 문화와 예술, 그 상상력 읽기'는 딱 알맞은 소개 글이다. 내가 봤던 미술 작품의 또 다른 면과 생소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아름다운 시가 책속에 있었다. 뮤즈와 사랑에 빠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작품을 만든 예술가와 되 받을수 없는 사랑에 파멸로 간 작가들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욕망의 역사와 신화가 있다. 복잡하여 자칫 얼기설기해 질 수 있는 내용을 짜임새 탄탄하게 만든 작가의 역량이 돋보였다. 이토록 많은 미술작품과 시, 영화를 섭렵해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상식이 넘치는 작가가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러웠다. 키스스캔들은 결국 사랑에 관한 책이다. 사랑은 우리 문화와 예술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 시, 영화, 신화가 가득 차 있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읽었다. 예술에 관한 책의 첫 발걸음을 떼거나 문화상식에 목말라 있는 사람에게 더없이 유익할, 지은이의 이름처럼 향기가 가득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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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체험판)
방현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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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속을 걷다가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 뱅뱅 도는 느낌이다. 차가운 공기가 서늘하게 살갗을 스쳐서 닭살이 오돌토돌 났다. 앙상하게 시들어 새까맣게 죽은 나뭇가지만이 안개 속에서 나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치고 있다. 그 손에 붙잡히면 나 역시 마른 고목으로 뿌리를 내려 다른 방문자만 기다리게 될까봐 몸을 움츠려 피한다. 저 멀리서 어떤 집의 그림자가 보인다. 가서 쉬고 싶지만 나는 그 언저리만 돌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느낌이다. 묘하고 조금은 복잡한 구성이라서 쉽게 읽히지 않아 우선 등장인물의 사연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봤다. 이 내용은 상당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마르셀

   마르셀의 어머니는 삷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는 심한 우울증의 돌파구로 아버지가 아닌 남자들과 몸을 섞으며 창녀처럼 굴다 길에서 죽었다. 아버지는 책에 나오지 않은 연유로 돌아가셨고 모국인 프랑스로 운구 되는 도중 비행기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폭파되어 시체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마르셀은 여행지에서 한국인인 규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마르셀은 일본행 도중 한국에 들려 규를 찾는다. 하지만 규는 마르셀과의 관계를 그저 여행지의 짧은 사랑이라고 치부한다. 마르셀은 그런 규에게 실망을 느끼고 관계를 정리한다. 규는 마르셀이 한국에서 지낼 집을 소개해준다. 거기서 마르셀은 장을 만난다. 장은 방송국 연출자이고 마르셀과는 전에 리포터와 PD로 만났었다. 그리고 다시 장의 집에서 둘은 조우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책에서는 집에서의 만남이 처음이라고 서술되어있다는 점이다. 마르셀과 장은 격렬하게 서로를 탐한다.

 

   닥터정

   마르셀의 심리치료사다. 마르셀은 장과의 관계의 끝이 자신의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정신과 의사를 찾는데 바로 닥터정이다. 닥터정은 아름다운 마르셀에게 호감이 있다. 장은 어쩌면 유행에 한참 뒤쳐진 의사다. 환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우유부단함으로 인스턴트 진료를 따르지 않으려고 한다. 닥터정은 마르셀과의 상담 도중 유혹을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목을 죄려는 가학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닥터정은 아버지의 훈육으로 일종의 남성성을 거세당할 뻔했다. 그는 원초적으로 내재되어있는 늑대와 같은 공격성을 지키기 위해 몰래 권투를 배웠다. 닥터정은 마르셀이 상담에 오지 않자 그녀를 걱정하며 그녀와의 상담시간을 더듬다가 마쓰코를 떠올린다. 마르셀과 비슷한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던 2년 전 실종된 동양인 여자. 닥터정은 실종된 마쓰고가 사실은 이미 죽었다고 단정 지었었다. 그랬던 과거를 생각하며 마르셀 역시 그렇게 되었을까 걱정되어 그녀가 머물었던 장의 집에 찾아간다. 하지만 마르셀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병원에 장이 찾아온다. 장은 있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게 가능하냐고, 분명 있는데 없기도 하다는 알 수 없는 말을 그에게 남긴다.

 

   그 사람, 장

   마르셀은 자기를 바치겠다고 하면서 장에게 다가온다. 장은 바치다, 는 말을 들으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장의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한국인인 아버지는 그렇게 싫어하는 나라의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멀었던 눈이 떠지자 짐스러워했다. 그는 장과 어머니를 구석방에 가두어 남들 눈을 피해 숨기고 다른 여자와 정식으로 결혼해서 두 살림을 차렸다. 밤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던 어머니는 종래는 모든 것을 바쳤지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사요나라, 인사를 하고 떠났다. 장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었다. 장은 일본인을 혐오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자신을 미워하게 되고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가학적으로 변한다. 후에 그는 방송국에서 마쓰코를 만나서 한눈에 반해버린다. 자기를 떠난 어머니를 닮은 마쓰코. 하지만 장은 자신과의 섹스에서 아무 열망도 못 느끼는 그녀를 발견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쓰코의 목을 조르는데 그녀가 깊은 쾌감을 느끼는 걸 목격한다. 장은 그녀와 잠시라도 같이 있고 싶고, 그녀를 붙잡고 싶고, 그녀와 서로 사랑한다고 믿고 싶어서 목을 조른다. 그러다 마쓰코가 자신을 떠날 거란 걸 알고 그녀의 사요나라, 마지막 인사를 막기 위해 목을 오랫동안 조르다가 그녀를 죽인다. 그리고 몇 년 후 마르셀을 만난다. 그리고 마르셀의 '바치겠다.'는 말에 어머니와 마쓰코의 사요나라가 떠올라 정사도중 마르셀의 목을 세게 움켜쥔다. 마르셀이 죽었다고 생각한 장은 황망한 마음에 도망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마르셀의 시체는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장은 마르셀과 마쓰코가 다녔던 병원, 닥터정의 병원 예약증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두 여자가 환각이 아닐까하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환영을 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닥터정의 병원으로 향한다.

 

   마쓰코

   마쓰코는 장이 샤프펜슬을 건네 줄 때야 비로소 그를 알아봤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를 의식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재일교포인 아버지와 사랑에 빠진 어머니는 도망치듯 같이 산다. 아버지는 잘생기고 다정했으며 상냥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는 사랑했지만 그가 한국인이라는 열등감에 벗어날 수 없어 결국 그녀와 함께 집을 떠난다. 마쓰코의 어린시절도 그렇게 끝났다. 그녀의 손에는 파버파스텔, 샤프펜슬 만이 쥐어졌고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샤프펜슬을 힘주어 잡아 공부만 했다. 샤프펜슬에서 벗어난 지 6년 후 그는 장이 건네는 샤프펜슬에서 결핍된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어떤 갈망을 느낀다. 갈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는 장에게 이끌린다. 또 그녀의 갈망은 장의 두손이 그녀의 목을 조르게끔 한다. 그녀는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 결핍을 치유하기 위해 마쓰코는 닥터정을 찾아간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캐내고 싶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메모를 했지만 다 읽은 지금 문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생기던 수많은 궁금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해 모두 버렸다.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이방인들, 서로가 이방인이 된 이방인들. 섞이지 않기 위한 경계심과 그 잔혹함을 말하고 싶은 건지, 인간의 가학적인 면과 피학적인 면을 말하고 싶은 건지, 인간의 정체성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화두를 던지고 싶은 건지, 결핍에 관해서 말하고 싶은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 들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아니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 그릇이 이것밖에 되질 않아 모를 수도 있다.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눈꺼풀 같이 얇은 창호지에 대한 이미지의 묘사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항상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아침에 개운하게 기지개를 피는 로망이 있다. 햇살은 금빛으로 부드럽게 부서지고 서늘한 바람에 커튼이 살랑인다. 밖은 찻소리나 말소리가 들리지 않고 알 수 없는 새만이 작은 소리로 지저귄다. 이런 아침이 창호지에 투영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아침은 아마도 창호지문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묘사가 너무 도에 지나쳐서 작가마저도 자신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사가 계속 되면 더 이상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성애 장면은 아름답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실적이지도 않아서 전혀 에로틱하지 않았다. 그러니 손목을 간질이거나 목덜미가 팔딱거리는 축축한 분위기를 원하는 분들은 불감증을 해소하기 위해 섣불리 이 책을 선택하면 안 된다. 묘사가 마치 영화 형사를 볼 때의 느낌이었다. 강동원이 주연이었던 형사는 영상은 아름답지만 너무 큰 괴리가 있어서 크게 감흥이 없었다. 또 영상미만 주구장창 추구하여 지루하기까지 하였다. 책 초반의 묘사는 단편소설에 더 어울릴 듯하다. 다행히 중반에 가면서 군더더기 같은 묘사가 깔끔해진 느낌이어서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작가가 계속 내게 수수께끼를 냈다.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초반에 늘어지는 묘사를 지나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는 건 작가로서 큰 장점이다. 지나친 묘사를 줄인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이 그렇게 된 이유에는 결핍으로 점철된 지난 역사가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장의 집에서 여자들은 홀린 듯 장에게 목을 내어 준다. 여자들은 어째서 자신들을 희생자가 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그저 홀려서 그랬다는 건 빈약한 이유다. 장의 결핍이 그녀들의 결핍을 일깨워 불러들였는지도 모른다. 이게 아니라면 아마도 그건 장의 어머니의 저주일 것이다. 그녀의 원한이 집에 내려앉아 장을 조종했는지도 모른다. 부모의 사랑과 방관은 장에게 결국 저주일터이니.  그 역사는 책의 이야기에는 꼭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이 잔혹해 진 건 꼭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일까. 사람은 태생적으로 학대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아기라는 말이나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도 원시부터 내려오는 가학의 DNA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네 가지 비밀은 책의 주인공인 마르셀, 닥터 정, 정, 마쓰코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면을 말한다. 나는 미국드라마를 좋아하는데 미국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무슨 이유였던 간에 가까운 사람이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건 무슨 큰 잘못을 하는 마냥 군다. 나는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는다. 비밀은 나만의 것이다. 세상에 내놓을 판단은 오롯이 스스로의 몫이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비밀을 캐물을 권리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어두운 비밀은 또 다른 말로는 상처라고 부를 수 있다. 각각 다른 생채기를 갖고 있던 주인공들은 어쩌면 그 생채기를 덮기 위해 더 큰 상처를 스스로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한 가지 거짓말은 무얼까? 주인공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주인공들이 종국에는 그렇게 된 이유가 거짓된 자기 위안 때문이라는 걸까. 아니면 작품을 관통해서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하나의 거짓말이라는 걸까.

   장은 닥터정이기도 하고 마르셀은 마쓰코이기도 했다. 서로가 다른 듯 닮아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부모와 같다. 그들이 아직도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네명이서 내 머릿속에서 떠들고 있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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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건강한 임신을 부탁해 - 아기가 찾아오는 엄마의 몸, 아기가 멀어지는 엄마의 몸
조 마리코, 기타노하라 마사다카 지음, 류지연 옮김 / 프리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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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나이 서른 둘. 서른셋을 코앞에 두고 있다. 내 영혼은 열아홉, 스물에 멈춰 있는데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른이 되라고 한다. 서른을 넘기자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주위 사람들은 결혼을 말하고 나보다 먼저 출산을 걱정한다. 마치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생소하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내 나이의 여자는 이미 한물 간 것처럼, 너의 육체는 시들어 가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태만할 수 있냐고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여자를 겨우 애를 낳아주는 사람쯤으로 여기는 몇몇 남자들은 어린 여자들을 찾으며 여자가 서른을 넘기면 똥값이라고 비아냥거리겠지.

   나는 내가 한창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절정은 언제나 지금이었다. 지금 나는 제일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삶이 즐겁다. 그렇기에 이 안정감을 해치고 싶지 않다. 아기가 생기면 일단 내가 즐거워했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겠지. 아기를 키우며 생기는 또 다른 기쁨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나는 두렵다. 나를 희생했기에 아기를 미워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무섭다.  나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그 몸짓이 나의 큰 손으로 부수어질까 걱정이 든다. 빽빽 우는 그 울음소리도 귀에 거슬린다. 아기가 울면 어쩔 줄 모르겠다. 나는 또한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대가없이 좋아한다는 순한 눈동자와 사람을 한없이 믿을 수 있는 그 헌신이 부담스럽다. 예전에는 싫어하면서 좋아하는 척 했다. 아기와 강아지를 싫어하면 차가운 여자라고 주변인이 말하는 걸 듣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좋아해야 된다고 다짐했다. 내게는 모성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어떤 어린아이를 보면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며 보호해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다. 아마 이런 감정이 모성애일터이지. 하지만 나는 내 눈에 예쁜 애들만 예쁘다. 길 가다가 보이는 모든 아기를 보며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던 아는 여자동생과는 다르게 나는 그러지 못하다. 어쩌면 나는 그저 이기적인 여자이겠다. 책임지는 게 무서워서 싫어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 나는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도 벅차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그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지켜야 하는 긴 시간을 지우는 것이다. 머털도사가 머리털을 뽑아 훅하고 불어서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지 않다. 한 인간의 육체와 가치관을 가꾸는 어려운 일이다.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내가 나와 같은 인간을 만들고 나의 미성숙과 불완전함으로 상처를 줄까봐 걱정이 든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건 온통 걱정거리뿐인 것 같다.  하지만 영원히 아기를 낳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짝지의 귀엽고 순한 얼굴을 볼 때면 이 사람과 닮은 아기를 낳고 같이 키우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밀려드는 책임감에 벅차 고개를 흔들 뿐이다. 나는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아기를 낳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시간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등 떠밀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싶지는 않다. 세상 모든 이들이 같은 길을 걷을 수는 없다. 나는 나만의 시간이 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노산의 위험을 생각해야 되니, 조금은 서글프다. 그런 위협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늙은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 안이 쓰다. 그렇지만 이왕이면 나와 아기 모두가 건강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준비가 필요 할 테다. 서른 중반, 건강한 임신을 부탁해.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반가웠다. 이 책은 영양테라피에 관해 쓰여 있다. 사람들은 좋은 것을 먹어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그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는 열량은 넘쳐나지만 영양은 부족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음식의 홍수에서 진정한 영양의 밸런스를 잡기란 어렵다. 우리는 잘못된 식습관과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책의 첫 장에는 자신의 영양부족이 어떤 타입인지 체크할 수 있다. 2장에서는 영양테라피를 소개한다. 3장은 엄마가 되기 위한 영양소를 소개했다. 4장에서는 임신을 위한 식습관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5장은 영양소별 레시피를 공개했다. 이 책의 요점을 말한다면 '골고루'이다. 우리의 편향되고 편협한 식습관이 불균형과 결핍을 부른다. 우리 옛 식단이 건강한 몸을 만드는 데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거친 잡곡밥과 채소가 주를 이뤘던 식탁에 살코기와 해물을 올려놓으면  완벽하겠다. 이 책에서 엄마가 되기 위한 영양소로 단백질, 철, 아연, 비타민 b군, 비타민 E, 비타민 A, 칼슘을 꼽았다. 모두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이다. 하지만 이들은 임신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여자가 건강하게 삶을 살아가려면 꼭 챙겨야할 영양소이다. 책에서는 부족한 영양소에 따른 증세를 가르쳐 주며 이를 예방하거나 고치려면 어떠한 영양분을 섭취해야한다고까지 일러준다. 영양테라피 출산 전 뿐 아니라 출산 후의 건강과 미용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꼭 임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기 위해 영양테라피 상담을 한번쯤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먹는 게 우리의 인생을 지배한다니, 조금 더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의식하며 먹어야겠다. '음식이 보약이다'는 선조들의 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 말미에 나왔던 레시피의 종류가 조금 부족했단 생각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지은이가 일본인이라서 그런지 일본 가정식 레시피 같았다. 우리 식탁에 맞는 레시피가 살짝 소개되었음 더 좋았을 것이다. 출산을 준비하거나 임신을 하신 분들께 유익한 책이니 한번쯤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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