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스캔들 - 키스의 문화와 예술, 그 상상력 읽기
윤향기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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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굉장히 달콤한 단어다. 어릴 적 하이틴 로맨스를 읽으면서 키스는 어떤 느낌일지 상상했었다. 소설처럼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며 종이 울리고 입안에 과일향이 가득한 향기로운 느낌일까. 뽀뽀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라는데 어떨까. 사춘기 소녀의 호기심도 소년의 열망에 못지않았다. 상상을 하면 가슴 한구석이 말캉해지면서 손끝과 발끝이 찌릿해졌다.  하지만 슬프게도 첫 키스의 기억은 그리 좋지 못하다. 종은커녕 식당 벨조차 울리지 않았고 술과 안주 냄새가 뒤섞인 타액이 역겹기까지 했었다. 실망이 큰 나머지 트라우마까지 생겨 키스를 기피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나의 경험으로 짧은 단편을 쓰기도 했다. 제목은 '땅콩'이다.

 

   그의 키스에서 이상하게도 땅콩 냄새가 난다는 나의 말에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의 체액에도 궁합이 있어. 사람들마다 침, 땀, 눈물, 콧물…등에 각기 다른 냄새와 성질이 있기 때문이지. 예를 들어 어떤 남자와 키스를 했는데 무척 역겨운 냄새나 느낌이 들어 그에 대한 호감이 사라졌던 경험 있지 않아? 그런데 다른 여자도 그 남자에게 그런 것을 느낄까? 그건 아니거든. 네가 그렇게 느꼈던 건 그 남자의 체액이 너와의 것과 맞지 않기 때문이야. 궁합이 잘 맞을 경우에는 상생작용을 해서 기분도 좋고 건강에도 좋거든. 하지만 맞지 않으면 그건 서로에게 해를 불러오기도 해. 맞지 않으니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 또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래도 꺼려하는 것이 생길 테니 그 사람과 마음이 잘 맞아도 몸이 거부를 하게 되지. 그래서 멀어지는 거야. 우리는 그런 궁합이 잘 맞는 가를 따지는 걸 液合法(액합법)이라고 불러. 이것이 어긋나면 같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기 때문에 중요하지. 네가 그 남자에게서 땅콩냄새를 맡았을 때 기분이 안 좋았어? 아니라고? 달콤했다고? 그렇다면 문제될 건 없어.”

  그녀는 큰소리로 유쾌하게 웃으며 큰소리로 말을 했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그녀의 말에 나도 그제야 안심하고 웃을 수 있었다. 어느덧 마음은 가벼워졌고 그와의 사랑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내 연락을 기다린 눈치였다. 그동안 왜 연락을 안 했냐고 투정을 부리는 그와 나는 일주일 뒤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와의 만남은 행복했다. 그의 사소한 배려, 이를 테면 데이트 시간에 맞추어 집 앞까지 마중을 나온다든가 오랜 시간 걸어 퉁퉁 부은 내 다리를 거리에 앉아 거리낌 없이 주물러 준다던지 하는 여러 가지 것들은 나를 감탄하게 했고 나를 쳐다보는 그의 진지하고 깊은 눈빛에서 우리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이 되어 그가 집까지 배웅해줄 때 우리는 항상 달콤한 키스와 함께 아쉬운 작별을 했다. 여전히 그의 키스는 진한 땅콩 냄새를 풍겼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얼굴에 하나 둘 이상한 붉은 반점이 생겼다. 작은 트러블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며칠 뒤 그것은 온 얼굴을 덮은 후 팔과 다리에까지 나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내 몸을 덮더니 서서히 간지러워왔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은 딸기처럼 부풀어 오른 내 얼굴이었다. 내 몸에 큰 문제가 생긴 것인가 두렵기도 했지만 병원에 가기는 꺼려졌다. 나는 언제나 자연 치료법을 은근히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사람 몸은 자연과 같이 신비한 정화능력이 있기에 그냥두면 스스로 치료를 한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얼마 뒤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와의 데이트를 미루었다. 그는 이유를 계속 물었지만 얼굴의 트러블 때문이라고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시작되는 연인사이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이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빠서,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내게 그는 실망한 눈치였다. 그는 점점 집요하게 만남을 요구했고 집 앞까지 찾아왔지만 나는 나갈 수 없었다. 온몸은 밤마다 나도 모르게 긁어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더 이상 적조에 오염된 바다처럼 붉은 기가 퍼져가는 피부를 마냥 둘 수만은 없고 그와의 만남도 서둘러야 했기에 근처 피부과 병원을 찾아갔다.

    여러 가지 반응 검사 후 의사는 내게 말했다. 

    “땅콩 알레르기입니다. 근래에 견과류를 드신 적이 있나요?”


  10여 년 전 글이라 조금 어설프고 웃기기까지 하나 어쩌면 키스가 알레르기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그 당시 나의 깊었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나의 거부감은 아직 설익었던 스무 살의 결벽증에서 왔을 테니 말이다. 키스는 대화다. 얼굴이나 몸의 어떤 부분에 하느냐에 따라 사랑이나 존경을 표현이 다르기도 하다. 또 입술을 내미는 사람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며 그것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까지 알 수 있다. 연인끼리 하는 딥 키스(프렌치키스)는 사랑의 몸짓언어 아닐까. 상대와 타액을 나누며 '너의 침까지 받아들일 수 있어'라는 사랑의 확인일수도 있겠다. 어떤 책에서 왜인지는 모르지만 길의 여자는 몸을 팔지만 입술을 팔지 않는다는 구절을 보았다. 키스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하는 사랑의 언어인가보다. 여자의 음순을 닮은 서로의 입술이 포개지고 남자의 성기 같은 혀가 서로를 탐색한다. 키스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같이 지닌 쉬우면서도 깊은 세미섹스같다. 섹스에 체위가 있듯이 전에는 몰랐는데 키스도 버드키스, 햄버거키스, 에어클리닝키스, 프렌치 키스 등등 여러 방법에 이름이 붙여 있었다. 그럼 키스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존경의 의미나 애정표현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건 로마시대라고 하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일이다.

  책을 처음에 받고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나는 예쁜 디자인의 책이 좋다. 또 만질 때의 질감이 좋은 책이 좋다. 딱 움켜쥐었을 때 성실한 느낌이 드는 책이 있다. 키스스캔들이 그랬다. 하얀색의 표지에  빨간 입술이 포인트로 첫인상은 깔끔했다. 읽기 전에 한번 후루룩 훑어보는 버릇이 있는데 성의 있는 편집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설레기까지 했다. 나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 미술서적을 많이 찾아 읽는 편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보아오지 못해서 그런지 미술은 가까이 하고 싶어도 먼 세상이다. 미술작품에 얽힌 이야기는 보면서도 보지 못한 면을 일깨우며 더 깊게 이해하게끔 해준다. 남들과 조금 다른 생을 살아간 작가의 인생을 엿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 이야기를 읽을 때면 작품과 작가가 내 곁에서 움직이는 듯하다.

  키스스캔들은 키스를 매개로 미술작품과 시, 그리고 영화를 소개해준다. 부제인 '키스의 문화와 예술, 그 상상력 읽기'는 딱 알맞은 소개 글이다. 내가 봤던 미술 작품의 또 다른 면과 생소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아름다운 시가 책속에 있었다. 뮤즈와 사랑에 빠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작품을 만든 예술가와 되 받을수 없는 사랑에 파멸로 간 작가들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욕망의 역사와 신화가 있다. 복잡하여 자칫 얼기설기해 질 수 있는 내용을 짜임새 탄탄하게 만든 작가의 역량이 돋보였다. 이토록 많은 미술작품과 시, 영화를 섭렵해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상식이 넘치는 작가가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러웠다. 키스스캔들은 결국 사랑에 관한 책이다. 사랑은 우리 문화와 예술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 시, 영화, 신화가 가득 차 있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읽었다. 예술에 관한 책의 첫 발걸음을 떼거나 문화상식에 목말라 있는 사람에게 더없이 유익할, 지은이의 이름처럼 향기가 가득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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