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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 - 개정판 ㅣ 에디션 D(desire) 1
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이 서평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나 결과보다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중요한 소설이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불편하신 분들은 읽지 말아주세요※

<사진출처:네이버영화> - 영화 속 스티븐은 소설과 다르게 날씬하고 중년의 멋을 풍기고 있다. 소설에서는 스티븐보다 마틴이 더 나은 외모라고 나와있지만
영화애서는 그 반대이다. 관객을 좀 더 설득시려는 일종의 장치(?)가 아니었나 싶다.
50세 되는 해에 죽지 않아서 가족에게 비극이 된 사내가 있다. 사내는 성격이 강한 아버지와 조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자신이 선택한 길조차 아버지의 목적 하에 조종되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삶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아내와 잘생기고 영리한 아들딸이 곁에 있고 의사이자 존경받는 정치가임에도 항상 마음속이 비어있다. 마음은 그러지 아니함에도 직업과 가족을 사랑하는 '척' 연기를 하며 자조적으로 산다. 겉보기엔 누구나 부러워할 인생이지만 아무도 자신의 공허를 모른다고 투정부리는 이 사내의 이름은 스티븐 프레밍. 인생은 바라는 것과 가야만 하는 것의 선택의 갈림길에 항상 놓여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자신이 선택한 길에 행복이 놓여있지 않을 수는 있다. 등 떼밀려 가야만 했던 길의 끝이 허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이니 거기에서 벗어나는 건 자신의 몫이다. 헛헛하고 지루한 탓을 아버지나 가족에게 돌리는 건 비겁한 짓이다. 주인공은 비겁하다.
스티븐의 아들 마틴은 어머니를 닮은 매력적인 외모로 금발의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갖는다. 또한 아버지를 닮아 명석하지만 무척 자유분방하여 아버지가 내심 바라는 의사나 정치가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 한다. 스티븐은 아들을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지만 마틴은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온전히 자신만의 위한 야망을 실현해 나간다. 아무래도 스티븐은 마틴의 이런 점을 질투하기 시작한 듯싶다. 자신과는 달리 인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는 아들. 회색빛 자신의 인생에 비추어 금빛으로 빛나는 아들의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을까.

<사진출처:네이버영화> - 다정해보이는 마틴과 안나.
모든 비극은 마틴이 안나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마틴이 안나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 모르겠다. 햇빛처럼 찬란한 마틴은 어두운 과거로 고통스러운 안나가 자신의 하나 뿐인 그림자로 여겨졌을 수도 있겠다. 허나 안나는 마틴이 죽은 친오빠와 닮았기 때문에 다가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동생이 아닌 여자로 사랑하는 친오빠의 자살을 목격한 상처를 안고 살아남았다. 통념과 도덕 안에서 오빠를 거절한 대가로 오빠를 잃는 고통을 겪은 후 도덕에서 벗어나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그녀는 그 일 이후 도리어 방만해졌다. 오빠의 상흔이 뿌리 깊게 남아 다른 어떤 남자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 듯하다. 그 저주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 오빠와 닮은 마틴을 선택했겠지. 오빠와 닮은 그를 받아들이고 삶을 함께한다면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스스로를 용서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마틴과 다르게 스티븐은 안나와 자기가 '동류'라고 의식하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나는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서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의 허무했던 내면-가족들에게 숨겨왔던 자신의 진실-을 안나가 꿰뚫어 본 거라고 한다. 스티븐과 안나가 거짓된 삶이란 표면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심연은 허무와 고통으로 그 양상이 다르다. 뿌리가 다른 그 알아봄이 어떻게 욕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나라면-나와 같은 사람이거나 나의 비밀스런 내면을 들쳐본 이가 있다면- 무섭거나 수치심에 싫어서 피하겠다. 원래 자석처럼 같은 극은 서로 밀어내지 않는가. 그 순간을 이해할 수 없어서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되지 못해 불편했다. 아니, 어쩌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출처:네이버영화> - 늪에 빠진 것처럼 안나에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스티븐.
스티븐은 안나를 만나고서 죽음과 같던 삶을 끝내고 알에서 깨어나듯이 다시 태어났다. 알에서 깬 새끼가 처음 본 이를 평생 어미로 각인하듯이 스티븐은 안나를 다시 볼 할 처음이자 평생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몸 속 세포 하나하나가 안나를 부르고 원한다. 그 동안 쌓아온 명예나 자기를 사랑하는 가족은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허울을 벗고 안나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며 그녀를 탐닉한다. 하지만 안나도 그와 같은 생각일까. 안나는 모두를 놓치지 않고 그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싶어 한다. 마틴과의 결혼을 앞두고도 평생 스티븐과 밀애를 하고 싶다 한다. 두 번째 비극이 여기에 있다.

<사진출처:네이버영화> - 여럿 남자들을 파멸로 이끈 안나. 처음으로 스티븐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다. 안나 역의 줄리엣 비노쉬의 아이와 같이 말간 얼굴은
순수와 팜므파탈을 오가는 안나 역에 적격이었다.
그녀는 스티븐의 욕정을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릴 적 그녀가 겪은 일이 못내 안쓰럽다가도 후의 행동은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을 원하는 모든 남자의 욕망을 받아들이고 살겠다면 안나는 창녀가 되어야지 않았을까. 차라리 스티븐을 사랑하게 되어서 마틴과 헤어지고 이혼한 스티븐과의 삶을 선택했다면 삼류소설이 되겠지만 좀 더 인간적이다. 두 사람 다 선택하겠다는 안나의 내심은 무엇일까. 마틴에게 상처를 줄 게 빤한데 굳이 스티븐을 유혹하는 말투와 행동은 왜일까. 안나는 죽음으로써 자신을 쇠사슬로 결박한 오빠의 잔재를 부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지옥에 떠 밀은 오빠에 대한 복수를 마틴이 대신 받도록 스티븐의 마음을 이용해 아버지가 아들을 배신하게끔 유도 했다면 가해자는 누구고 피해자는 누군 인지 알쏭달쏭해진다. 다만 부자가 그녀에게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마틴, 스티븐 거기다 친오빠까지 사랑에 빠지게 한 그녀의 마력은 당최 어디에서 나왔을까. 친동생을 사랑한 애스턴이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의 원흉이라고 생각했으나 친오빠조차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그녀 존재 자체가 파멸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스티븐은 안나와 헤어지지 못한다.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갈망으로 더더욱 안나의 육체에 빠진고 만다. 그러다 마틴에게 안나와의 정사장면을 들킨다. 마틴은 충격으로 사고사인지 자살인지는 모를 죽음을 맞는다. 스티븐이 아들의 시신을 안고 모든 죄를 달게 받겠다며 어떠한 변명도 없이 사태를 수습한다. 스티븐은 자신의 행동의 끝이 어떠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아들의 기만했으며 일그러진 시기심으로 아들의 사랑을 훔쳤다. 나는 비교적 욕망에 관대한 편이라 사실 아버지가 아들의 연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게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이 있는 법이다. 욕망이 일어난다고 그 선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면 우리가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소설에서 스티븐이 안나에게 찾아가기까지의 고뇌를 충분히 담았다면 어쩌면 나는 스티븐을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쉽게 아들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니 그의 슬픔은 위선이다. 마틴이 죽자 안나는 태연히 자신을 짓눌렀던 그간의 고통을 스티븐에게 떠넘기고 사라진다. 스티븐은 안나가 없는 허무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나가야만 한다. 오래시간이 지난 후 스티븐은 안나와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결혼할 뻔한 사이였던 피터와 재결합하여 두 아이를 낳았다. 그녀가 진실로 사랑이는 누구였을까. 피터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토록 처참한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닌지 너무 앞서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출처:네이버영화> - 비극의 주인공들이 찍힌 사진. 안나를 쳐다보는 마틴, 그런 마틴을 보고 있는 스티븐.
남자가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둔 안나에게서 이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을 엿 볼 수 있다. .

<사진출처:네이버영화> - 모든 것을 잃은 스티븐.
데미지는 '상처 입은 사람은 위험하다(Damaged people are dangerous)'는 안나의 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 데미지는 결국 또 다른 데미지를 만들었다. 소설을 다 읽자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소설 속 사건이 숨 막히게 잘 짜여 있다면 영화의 상상력을 덧붙이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사건이 아닌 주인공의 내면묘사가 중점적이라서 영화로 표현할 여지가 충분히 많았다. 영화와 소설의 결말은 조금 달랐다. 소설에서 스티븐은 안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찌질하다. 하지만 영화의 스티븐은 안나도 다른 여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소소한 차이 같지만 어쩌면 영화와 소설의 주제, 말하는 바가 크게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차이를 비교해보면 재밌겠다. 나에게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복잡함보다는 ‘안나가 대체 왜 그랬을까’에 대한 의문만 안겨 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