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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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은 자신의 이름과 모습으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사람이 목격되고 있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작가 필립 로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현실과 허구가 어느 경계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집중하며 읽게 되는 몰입감을 처음부터 느끼며 읽게 됐다.

또 다른 나의 출현이라 혹시 ‘도플갱어’의 느낌일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많이 엉뚱했다는 점 인정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자신을 사칭하는 자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에 그 자가 있는 이스라엘로 향하고 그와 만나게 되면서 비밀 작전에 휘말리고 그들 나름의 첩보활동을 하게 된다.


『샤일록 작전』의 기본적인 배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유대인과 그들에게 만행을 저지른 자들인 나치와 홀로코스트 등 많은 이야기의 민낯이 담겨있다.

작가가 실제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기에 좀 더 생생하게도 느껴지지만 소설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관계자들이나 어떠한 부분들의 실명이나 지명에서는 다르게 표기한다는 설명이 있다.

오랜 시간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처음 작품이 나온 1993년 이후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지만 앞으로도 역사 속에서 어떤 결말의 끝을 보이게 될지 알 수 없기에 『샤일록 작전』이 지금 2025년에 읽히고 재미를 넘어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


책의 초반부에 나오는 ‘데이야뉴크’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좀 더 찾아보기도 했는데 가스실에서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를 받았는데도 석방이 되고, 미국에서 추방되어 다시 재판을 받아도 90이라는 나이를 넘어서까지 잘 살다가 사망했다고 하는 점에 우리나라 친일파들이 오버랩되며 화를 넘어 분노의 마음이 일기도 했다.


‘아주 막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싶은 감상은 아닐지라도 꼭 읽어 봐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고전으로 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마저 생길 만큼의…….


P10, 11 [서문 발췌]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을 변형해서 이 책에 쓸 수밖에 없었다. 주로 인물과 장소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살짝 손보았으므로, 이야기의 전체적인 내용과 진실성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 내가 바꾼 이름은 처음 이 책에 등장할 때 작은 동그라미를 붙여 표시해두었다.

이 책에는 내가 1988년에 직접 방청한 1심 재판이 묘사되어 있다. 소련이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던 사람들을 1944년부터 1960년까지 조사한 심문기록은 소련이 무너진 뒤에야 세상에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붉은 군대 소속 병사였다가 자진해서 나치 SS의 보조인력이 되었고 나중에 소련 당국의 손에 처형된 사람 스물한 명이 ‘공포의 이반’의 성은 데미야뉴크가 아니라 마르첸코라고 진술했다.

기록에 따르면, 데미야뉴카가 트라브니키 수용소, 플로센뷔르크 강제 수용소, 소비보르 처형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다는 사실을 거듭 부정하는 위증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입증되었다는 점도 내세웠다.

현재 이스라엘 대법원에서는 항소심이 아직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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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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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 작가님의 작품이라면 조건 없이 좋아한다. 피가 낭자하거나 범죄와 악당들의 극악무도한 일들만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깊게 서늘하게 만드는 특유의 한기를 느끼게 만드는 매력의 글들.

가벼이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이 나온다고 해도 작가님의 글이라면 애정 한가득하게 읽고 있다.

『노을 진 산정에서』는 여성과 산의 이야기다.

여성들이 삶 속에서 산과의 관계는 끊이지 않았고, 다만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것.

잊고 있던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다시 오르는 산을 만나면서 산이 찾아주는 추억이 되어 과거와 지금의 현실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미래까지 그릴 수 있도록 나아가게 만들어 주는 ‘산’과의 관계.


『노을 진 산정에서』는 산의 이름으로 네 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산을 다시 찾게 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고, 올라가는 과정 또한 다르다.

산에 내려오며 느끼는 마음도 물론 다르다.

하지만, 회색 꿈이 푸르고 환해진 파스텔톤 꿈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 과거를 회상할 때나 답답한 관계를 떠올리는 인물들의 생각 속에 내가 함께하다가 산에서 내려오며 환해지는 머릿속과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네 가지 모든 이야기에 자꾸만 울컥거려지는 포인트가 있어서 한편씩 끝난 후 책장을 덮고 다음 이야기를 읽기 전 잠깐의 시간이 필요할 만큼 푹 빠져서 읽게 되었다.

현실의 나에게도 산이 필요한 지금 나는 누구를 생각하며, 또는 어떤 때를 생각하며 어떠한 산을 올라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지금 『노을 진 산정에서』를 읽은 것이 운명적인 만남인 것으로 느껴질 만큼 내게도 오를 산이 필요하기 때문인가 보다.

산의 정상에 올라서 어떤 에피소드가 먼저 떠오를지 기대가 된다.


P44 [우시로타테야마 연봉]

“고류다케예요. 실은 보일지 안 보일지 확신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엄청난 타이밍이었어요. 마치 막이 오른 것처럼.”

야마네 씨에게 대꾸를 하기는커녕 눈도 깜빡일 수 없습니다.

“산은 그때그때 쇼를 보여줘요. 산이 등산객에게 주는 상 같아요. 여기까지 잘 올라왔다. 이런 거라기보다 ‘매일 고생 많지”하는. 산 하나를 거점으로 활동하다 보면 곧잘 질리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이십 년을 등반해도 그런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매번 다른 쇼를 볼 수 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이 쇼는 멋졌어요. 분명 산이 제가 아니라 아야코 씨에게 상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회고의 나눔 감사합니다.“


P99 [북알프스 오모테긴자]

산에 오르면 그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는 줄곧 함께 있을 수 있다. 태양이 상공에 있는 동안에는 손을 맞잡고 암릉을 넘고 꽃을 즐긴다. 밤에는 랜턴 불빛 아래 한 손에 따뜻한 와인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서로의 심장 소리를 자장가 삼아 기대어 잠든다.

부디, 부디, 꿈에서 깨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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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 - 햄스터와 저주 인형 반올림 63
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 윤예니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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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나 심리상담에 대해서 평소에도 관심이 많이 있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소뵈르 박사의 상담일지』라는 제목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청소년 문학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들어서인지 학생들이 겪는 청소년기 문제들을 상담하시는 박사님의 일지라는 막연한 무지함의 추측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완벽한 오해였다.

물론 ‘소뵈르 박사’가 상담하는 내담자 중에는 청소년들도 있다.

학교에 가는 것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모와의 사이가 좋지 않거나 여러 문제점을 갖고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아이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물론 우리가 많은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소위 ‘금쪽이’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을 알지 않는가)

‘소뵈르 박사’에게는 많은 내담자가 있다.

초등학생부터 나이가 많으신 노부인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까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프랑스어로 《구원자(Sauveur)》의 뜻을 가진 소뵈르는 문 하나 사이로 상담하는 공적인 공간과 아들 ‘라자르’와 생활하는 사적인 공간인 「집」이 있다.


큰 키에 체격도 좋고 호남형에 미남인 소뵈르는 흑인이다. 아들 라자르는 백인인 ‘이자벨’이 엄마이기에 혼혈이다.

이 부분도 이 책의 내용에 큰 축이 된다.

여전히 겪고 있는 인종차별을 느끼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과거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는 어떠한지, 라자르가 살아가야 할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담자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평일부터 혹은 주말이며 새벽의 어느 시간을 내어주는 소뵈르의 모습에 내가 힘이 들 때 저런 상담자를 만난다면 정말 하늘이 내려주는 선물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것 같다.

말 그대로 《구원자》다.

하지만, 과연 소뵈르와 나자르의 삶도 구원받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우리 속담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홀로 키우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나자르’의 비밀이나 속상함의 상처까지 보듬어 주고 있지도 못하고, 물론 본인의 삶도 너무나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무모할 만큼의 희생만이 보여서 안타깝고 답답하기까지 한 마음에 책에서 끄집어내 주고 싶을정도였으니....


내담자들의 사연마다 공감이 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면서 소뵈르의 공감과 응원에 나 마저 격려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다고, 안타깝다고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치유되고 있었나보다 싶은 마음이 생기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소뵈르’의 과거와 엄마 ‘이자벨’은 물론 고향과 가족까지 모든 것을 다 ‘라자르’에게 알려주고 싶어하는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내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라자르’와 친구‘폴’의 너무나 귀엽고 예쁜 아이들 이야기, 폴의 엄마와 그의 가족들까지 모두다 너무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사랑스러운 그들이 모두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그들의 행복한 다음 이야기를 내가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P45

“세상에, 바깥 날씨가 정말 춥구나. 아프리카 너희 집이 훨씬 낫겠어.”

니콜이 주방에 들어서며 말했다.

“전 아프리카 사람이 아니에요”

폴에게 줄 그림을 그리던 라자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나? 넌 흑인이잖아.”

“맞아요. 그런데 전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거긴 태양이 없어?”

니콜은 항상 남의 말을 꺾어 누르는 버릇이 있었다.


P148

왜 라자르가 내 아들과 제일 친한 친구이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집에 돌아와 다시 거울 앞에 앉은 루이즈가 자문했다. 다투기는 싫으니까. 하지만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아내를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는 임상심리상담가 소뵈르 박사

그의 상담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

자해, 학교공포증, 성정체성 혼란, 망상장애 야뇨증……

마음을 다독이며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그러던 어느 날, 소뵈르의 집 앞에 놓인 수상한 물건들

소뵈르에게 악담과 저주를 보낸 이는 누구일까?

소뵈르는 그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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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얼굴
이충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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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부터 약간의 충격적인 비쥬얼이었다.

눈과 코, 입이 뭉개진 것인지 처음부터 없는 것인지 모를 만큼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표지의 그림은 뒤표지의 글로 이 소설의 내용이 절대로 가볍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딸의 얼굴을 품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다』

언젠가 보았던 일본 영화 ‘비밀’이 생각났다.

사고로 인해 아내의 영혼이 딸에게 옮겨진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충분히 소설적이고 판타지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런일이 일어날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만큼 푹 빠져 보았던 기억이 있다.

GQ KOREA 편집장을 지낸 이충걸 작가의 장편소설 ‘너의 얼굴’도 마음 아픈 판타지가 펼쳐지는 것인지 읽기도 전에 궁금함으로 가득했다.


첫 장부터 계절이나 주위 풍경, 주인공이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자세한 수식어로 가득 차 있어서 눈앞에 훤히 다 그려진다.

공기의 냄새까지도 느껴질 만큼...

사고가 일어나고, 사고 이후 정신을 차린 이후까지 빼곡하게 묘사되는 단어들이 내가 직접 겪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기 어렵고, 고통스러움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교통 사고로 정신만이 남아있고 온전한 곳을 찾기 힘들 만큼의 몸 상태로 딸의 남자친구만이 그녀의 보호자로, 간병인으로 옆에 있게 되면서 힘든 투병을 시작하게 된다.

조금씩 차도를 보이는 신경들은 있지만 얼굴은 완전하게 사라졌다.

얼굴을 다시 찾을 방법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가져오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사고 후 병원에 옮겨지면서 딸의 남자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그녀의 딸 ‘파라’ 또한 병원에 있다는 것을, 매우 위중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얼굴을 만들 수 있는 이식의 기회가 자꾸만 좌절되면서 사경을 헤매던 그녀의 딸이 죽게 되고, 딸의 얼굴로 그녀가 다시 얼굴을 갖게 되지만...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싶다.


이충걸 장편소설 ‘너의 얼굴’은 그녀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행복의 원천이었던 딸과의 이야기, 딸의 남자친구‘모하’와의 오묘한 교감을 느끼는 감정 등 이렇게 솔직해도 될까 싶은 이야기들로 꽉 차 있는 책이다.

문장의 첫 시작부터 마침표를 찍는 부분까지 너무도 세세하게 표현되는 글자들에 너무도 크게 이입되는 감정 때문에 호흡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픔을 모두 이해한다고, 힘내라고만 할 수도 없을 만큼의 모든 일들은 겪고 있는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잘 견디고, 버티고 헤쳐 나갈지 맘을 졸이며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P18

얼굴이 지워졌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빈틈없는 사실이었다. 내 이마부터 오른쪽 눈꺼풀과 코, 턱과 입천장을 포함한 얼굴 하부 골격이 완전히 으깨졌다. 머리카락으로 숨기던 왼쪽 귀의 절반도 사라졌다. 안구 뼈가 함몰되었으나 눈 자체는 보전된 상태며, 시야가 흐릿한 것은 후두부의 타격 때문이라는 설명이 끼얹어졌다. 내 얼굴에서 온전한 것은 눈과 혀뿐이었다.


P151

내 속의 풍랑을 설명하기 위해선 17층 병실에서 뛰어내려야 마땅했다. 내 비위가 약했다면 목을 매는 식으로 예상하기 쉬운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수면제는 다량을 삼킨다고 해도 내가 유배된 곳이 병원인 한 소극적인 방법일 것이다. 손목을 가르는 건 시적으로 보이겠지만 확신이 안 섰다. 결국 차에 치이는 게 최상이었다. 그 정도면 재수 없는 사고로 정리될 것이고, 내가 자살했다는 사실 때문에 모하가 오래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사랑 받았으나 잊힌 소설, 읽혔으나 간과된 소설, 도난 당했으나 회수되지 않은 소설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아는 가장 비문학적인 사람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은 나의 방식으로 플레이한 문학적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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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것 (리커버 에디션)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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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 허스트베트’라는 작가를 잘 몰랐다.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책들의 작가인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것뿐, 그녀의 작품은 이번에 ‘내가 사랑했던 것’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친한 친구와 닮아가고, 더욱이 부부라면 더욱더 생각과 관념들이 닮아가기도 해서 ‘폴 오스터’의 작품들과 어느 정도 닮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녀와 그의 작품세계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껴졌다.


‘자화상’이라는 그림으로부터 시작되는 무명화가인 ‘빅’과 미술사학자 ‘레오’의 이야기가 ‘내가 사랑했던 것’의 전부다.

소호의 갤러리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무언지 모를 매력에 끌려 그림을 사게 된 ‘레오’와 그림의 구매자와 화가의 만남으로 시작된 그들의 역사를 ‘레오’의 시선으로 글은 가득 차있다.

완벽한 절친이 되어가는 과정에 서로의 부부관계,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남편, 아버지로서 가족과 함께 나누는 모든 애정의 생활들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레오’의 시선으로 쓰인 모든 글들은 관찰자이자 동반자로서 레오뿐만 아니라 빅의 인생의 서사를 모두 엿볼 수 있다.

사랑을 얻고 잃고, 자식을 얻고 잃는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겪으며 고뇌하고 또 고뇌하는 그들의 심정에 내 가슴마저 답답함이 극을 달하기도 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사는 그들의 이야기에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큰 한숨이 나오기도 하면서 책을 읽었더니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숨을 고르기 위해 몇 번이나 책을 덮기도 했으니 내가 너무 감정을 쏟고 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후련함 보다는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기도 했다.

어느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너무 몰입하지 않고 조금 더 천천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들은 심플한데 왜 이렇게 복잡한 관계로 보였는지, 레오의 행동들에 공감하면서도 화가 나는 부분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마도 꼭 다시 읽을 것 같다.


P11_12

그 그림은 여기 이 방에 나와 함께 있다.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다. 내 흐려진 시력 탓에 그 그림 역시 예전 같지 않지만, 처음 보고 나서 1주일 뒤 나는 2천 5백 달러를 주고 딜러에게서 그림을 샀다. 에리카는 처음 이 캔버스를 보았을 때 지금 내가 앉은 자리에서 겨우 몇 피트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차분하게 그림을 살펴본 그녀는 “꼭 남의 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죠?”라고 말했다.


P187

아이들은 캠프장 본관 건물 옆의 잘 깍은 넣은 잔디밭에 서 있었다. 커다란 참나무가 머리 위로 가지들을 쭉쭉 뻗어 드리우고, 그 너머로 오후의 햇빛이 호수를 비추고 있었다. 햇살이 수면의 잔물결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빌이 귀가 길에서 먼저 운전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뒷자리의 바이올렛 옆에 앉자마자 나는 다시 돌아서서 차가 기나긴 진입로를 지나 대로로 나오는 사이 멀어지는 두 아이의 형체를 바라보았다.


P433

사흘 뒤 마크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이 내 평생 가장 이상한 여행의 촉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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