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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자개장 - 압도적 새 타임머신의 탄생
박주원 지음 / 그롱시 / 2025년 5월
평점 :

『판타스틱 자개장』은 제목부터 《판타스틱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0년째 작가 지망생인 ‘박자연’이 살고 있는 ‘양평 집’(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에는 아버지의 것일 수도 있고, 어머니의 것일 수 있는 ‘자개장’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우리집에는 자개장이 있었다.
얼마 전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주인공 집에도 자개장이 나온 것을 보았다.
‘자개장’은 예전에는 나름 부의 상징이며, 경제력의 훈장과도 같은 큰 의미가 있는 가구다.
요즘 시대에 남아있다면 무겁고 자리만 많이 차지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갖고 있다면 자개장 주인에게는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큰 의미가 없고, 엄마에게 처분을 재촉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래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판타스틱 자개장』은 그러한 ‘자연’에게 《판타스틱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번듯한 직장에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여동생 ‘서연’에 비해 아직 아무런 성과 없이 마흔이 다 된 나이에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자연’은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가족과도 그리 썩 좋지 않은 데다가 절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어 보인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돌보는 일마저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을 만큼 메마른 감정으로 가득하다.
어머니보다 먼저 주인인 자개장의 주인인 아버지의 혼수상태는 ‘자연’에게 시간을 거스르게 만드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어느 날 이었던 과거로 돌아가는 일들이 반복되며 아버지와의 건강을 회복시키려는 노력과, 관계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동안 알지 못한 아버지의 생활과 생각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일들을 겪으며 잊고 있던 아버지의 사랑도 다시 기억한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나아진 관계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연’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있는 여러 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시간을 거스르며 과거의 일들에 의해 현재가 바뀌기도 하는 영화 ‘나비 효과’와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 많이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판타스틱 자개장』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좋아하는 배우 부녀인 ‘전무송’님과 ‘전현아’님의 추천 또한 책을 읽고 싶은 마음과 기대를 크게 하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그때’라는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후회되는 일들이 생길 때일 것이다.
나에게는 ‘자연’의 ‘자개장’이 없기에 하루하루, 시간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커지기도 했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지 않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잘 지켜지지 않는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판타스틱 자개장』을 통해 또 한 번 더 나를 돌아보게 됐다.
P37
서랍을 탁 닫고 고개를 돌리다 문득 자개장에 시선이 꽂혔다. 엄마가 옷을 꺼내던 옷장 칸을 활짝 열었다. 고급스러운 모피 코트부터 색색이 다양한 여성 외투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옷들을 모두 한쪽으로 밀어붙이니 앉을 만한 공간이 생겼다.
바닥에 개어 놓은 바지와 셔츠들을 깔아뭉개며 벽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다 당황했다. 검게 옻칠이 된 문은 매끈 한데다, 붙어있는 거라곤 납작한 경첩뿐이라 잡을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모서리를 잡고 문을 닫다가 하마터면 문틈에 손가락을 찧을 뻔했다.
젠장! 낼모레 마흔을 앞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문을 꼭 닫자, 옷장 안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마치 관 속에 누운 것 같기도 하고, 내 미래 같기도 했다.
문득 뒷덜미에 살랑거리는 바람의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 바람이 들어올 리 없었다. 기분 탓인지도.
점차 아늑하고 몽롱한 느낌에 졸음이 밀려왔다. 잠들기 직전까지 떠올린 생각은 하나였다.
어제가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39
그때 윙- 하는 진동음이 들렸다. 어제처럼 책상 위 수북한 책더미 아래에 휴대폰이 깔려 있었다.
어젯밤에 분명 침대 위에 올려뒀었는데?
휴대폰을 들여다본 난, 눈을 의심했다. 거미줄처럼 깨져 있어야 할 액정에 실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멀쩡한 화면이 켜지자 난 비명을 지를 뻔했다.
3월 31일 금요일 오전 8시 30분
오늘은, 어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