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라앉는 프랜시스』로 ‘마쓰이에 마사시(まついえまさし, 松家仁之)’ 작가님의 작품과 처음 만나게 됐다.

이르지 않은 나이로 일본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는 작가님의 신간과 만나게 되어 여름의 끝자락에 몽글몽글함으로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소란한 도쿄를 뒤로 하고 홋카이도의 작음 마을에서 우편 배달일을 시작하게 된 서른다섯의 ‘무요 게이코’는 세상의 소리를 모은다는 ‘데라토미노 가즈히코’를 만나게 된다.

동네와는 조금 외떨어진 곳에 혼자 살고 있는 ‘가즈히코’와 《어른의 연애》를 하게 되면서 커져가는 사랑의 감정과 주위의 시선에 대한 버거움까지 ‘게이코’를 완벽한 편안함으로 이끌어주지는 않는다.

서로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가기도 전에 ‘연애’부터 시작하게 되면서, 작은 마을의 특징(?)과도 같은 관심들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게이코의 ‘쿨’함으로 별것 아닌 일들이 돼버린다.

그렇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이 남아있다.

옛사랑을 잊고, 현재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에 열심히 부딪혀나가는 게이코의 일상이 어찌 보면 단조롭기도 하지만 그녀 나름의 평안함으로 만들어 나간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마저 어쩜 저렇게 넘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가볍게 넘어 가는 게이코의 연애관이나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마음가짐에 몇 번을 놀라기도 했다.

『가라앉는 프랜시스』의 ‘프랜시스’는 과연 누구일까가 처음부터 궁금했는데 매우 극적으로 알게 해주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아…….” 정도로만 그친 것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다.(아주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게이코의 일상이나 우편배달을 시작한 동네의 풍경들은 눈앞에 보일 듯이 잔잔하게 읽을 수 있고, ‘게이코’와 ‘가즈히코’의 사랑은 회오리와 같이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전혀 지루할 틈도 없고, 이들의 사랑에 어떤 일들이 더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눈을 뗄 수 없기도 했다.


작가님께 조련 받는 착한 독서가의 모습으로 설레며 읽은 『가라앉는 프랜시스』,,,

10대, 20대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랑의 순간들을 보며 꿈꾸고 싶은 마음에 ‘사랑’과 ‘연애’ 이야기를 읽게 된다.

잊고 있던 풋풋한 마음을, 조금 더 어른이 된 성숙한 마음을 번갈아 가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느끼곤 한다.

오랜만에 그런 감정으로 읽은 것 같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으로 새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소설 같은 마음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구나 싶은 마음으로...

‘게이코’와 ‘가즈히코’의 남은 이야기는 어떠할지, 행복으로만 가득한 그들의 사랑과 일상에 다시 한번 더 몽글한 마음을 더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보면서도 ‘어떻게?’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던 터라 열어놓은 채 마무리가 되는 책을 보면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지고, 속편을 기다리는 편이다.

지금도 그런 마음이다.

작가님께 이런 소망의 마음이 닿기를 한동안 꿈꿔야겠다.


P40

그러고 보니, 아까 데라토미노가 말하던 ‘프랜시스’란 누구일까. 프랜시스는 남자 이름 아니었나, 게이코는 생각한다. 수염이 덥수룩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그렇지만 《소공녀》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은 여류 작가이다. ‘가오루薰’처럼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는 이름인가? 어느 쪽이든 안치나이 마을에 와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어쩌면 데라토미노는 오디오 마니아로, 연인이 외국 남자인가? 그러니까 이렇게 스스럼없이 여자인 나을 집으로 초대하는 건가? 마당의 빨랫줄에 걸린 하얀 세탁물이 정연하게 바람에 흔들리던 광경이 떠오른다. 혼자 사는 것치고는 숫자가 많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P113

가즈히코의 집에 간 날은 마지막에 목욕을 한다. 게이코는 하얀 타일이 발린 청결한 공간을 좋아했다. 천천히 옷을 주워 입고, 떨어진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줍는다. 샴푸 냄새를 풍기면서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간다. 자기가 운전해서 돌아왔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데려다줄까?’라는 말을 해주지 않는 것이 게이코의 작은 불만이었다. 게이코는 충일된 감각에 깃든 약간의 허무함과 엔진 소리, 진동만을 동반한 채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숲길을 혼자 집으로 향한다.


P167

강가의 커다란 돌에 걸터앉았다. 여기에는 나만 있다 게이코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 속에서 움직이는 물고기의 모습을 보려고 눈에 주의를 기울였다. 눈은 아무래도 수면의 움직임에 이끌린다. 그래도 지지 않고 집중해서 응시한다. 차차 강바닥 부근에 돌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움직이지 않는 돌.

게이코의 머리는 생각해야 할 일들로 꽉 차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곧 날이 저물려고 한다. 강물이 까만색을 띠기 시작한다. 그 시커먼 물속 깊이 까만 그림자가 둘, 셋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인다.

물고기에게 게이코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게이코에게도 지금의 자기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판타스틱 자개장 - 압도적 새 타임머신의 탄생
박주원 지음 / 그롱시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판타스틱 자개장』은 제목부터 《판타스틱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0년째 작가 지망생인 ‘박자연’이 살고 있는 ‘양평 집’(어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에는 아버지의 것일 수도 있고, 어머니의 것일 수 있는 ‘자개장’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에도 우리집에는 자개장이 있었다.

얼마 전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주인공 집에도 자개장이 나온 것을 보았다.

‘자개장’은 예전에는 나름 부의 상징이며, 경제력의 훈장과도 같은 큰 의미가 있는 가구다.

요즘 시대에 남아있다면 무겁고 자리만 많이 차지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현재까지 갖고 있다면 자개장 주인에게는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큰 의미가 없고, 엄마에게 처분을 재촉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래서 이해가 되기도 한다.

『판타스틱 자개장』은 그러한 ‘자연’에게 《판타스틱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번듯한 직장에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 여동생 ‘서연’에 비해 아직 아무런 성과 없이 마흔이 다 된 나이에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자연’은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가족과도 그리 썩 좋지 않은 데다가 절연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어 보인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돌보는 일마저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을 만큼 메마른 감정으로 가득하다.

어머니보다 먼저 주인인 자개장의 주인인 아버지의 혼수상태는 ‘자연’에게 시간을 거스르게 만드는 엄청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어느 날 이었던 과거로 돌아가는 일들이 반복되며 아버지와의 건강을 회복시키려는 노력과, 관계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동안 알지 못한 아버지의 생활과 생각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일들을 겪으며 잊고 있던 아버지의 사랑도 다시 기억한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나아진 관계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연’의 이야기는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있는 여러 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시간을 거스르며 과거의 일들에 의해 현재가 바뀌기도 하는 영화 ‘나비 효과’와 ‘어바웃 타임(About Time)’이 많이 생각났다.

그래서인지 『판타스틱 자개장』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정말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좋아하는 배우 부녀인 ‘전무송’님과 ‘전현아’님의 추천 또한 책을 읽고 싶은 마음과 기대를 크게 하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그때’라는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후회되는 일들이 생길 때일 것이다.

나에게는 ‘자연’의 ‘자개장’이 없기에 하루하루, 시간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커지기도 했다.

친구나 지인들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지 않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잘 지켜지지 않는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판타스틱 자개장』을 통해 또 한 번 더 나를 돌아보게 됐다.


P37

서랍을 탁 닫고 고개를 돌리다 문득 자개장에 시선이 꽂혔다. 엄마가 옷을 꺼내던 옷장 칸을 활짝 열었다. 고급스러운 모피 코트부터 색색이 다양한 여성 외투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옷들을 모두 한쪽으로 밀어붙이니 앉을 만한 공간이 생겼다.

바닥에 개어 놓은 바지와 셔츠들을 깔아뭉개며 벽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다 당황했다. 검게 옻칠이 된 문은 매끈 한데다, 붙어있는 거라곤 납작한 경첩뿐이라 잡을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모서리를 잡고 문을 닫다가 하마터면 문틈에 손가락을 찧을 뻔했다.

젠장! 낼모레 마흔을 앞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문을 꼭 닫자, 옷장 안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마치 관 속에 누운 것 같기도 하고, 내 미래 같기도 했다. 

문득 뒷덜미에 살랑거리는 바람의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 바람이 들어올 리 없었다. 기분 탓인지도.

점차 아늑하고 몽롱한 느낌에 졸음이 밀려왔다. 잠들기 직전까지 떠올린 생각은 하나였다.

어제가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39

그때 윙- 하는 진동음이 들렸다. 어제처럼 책상 위 수북한 책더미 아래에 휴대폰이 깔려 있었다.

어젯밤에 분명 침대 위에 올려뒀었는데?

휴대폰을 들여다본 난, 눈을 의심했다. 거미줄처럼 깨져 있어야 할 액정에 실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멀쩡한 화면이 켜지자 난 비명을 지를 뻔했다.

3월 31일 금요일 오전 8시 30분

오늘은, 어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라는 제목만으로 나의 ‘집콕, 방콕 휴가’에 찰떡인 책을 만나게 되었구나 싶었다.

쉬면서 느긋하고 한가롭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쉼을 위한 쉬는 시간’을 마련해야만 하는 ‘번 아웃’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며 《쉼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

나의 ‘쉼’과는 완전히 다른 작가의 ‘쉼의 시간’을 읽으면서 역시 ‘작가는 작가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면 마냥 늘어지고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끼고 누워서 ‘뒹굴뒹굴’이 태반이었을 텐데 말이다.

작가 가족들의 소소한 이야기며 그림들이 참 행복하게 살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에 모든 글이 사랑스럽다 느껴졌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는 나에게는 ‘잠수’의 의미로 다가왔지만, 작가에게는 ‘도약’의 의미가 있구나 싶었다.


중국계 캐나다인인 저자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같은 아시아인의 정서를 건드려주고,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마음까지도 내게 와닿는 것 같았다.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는 말에 공감하게 되는 요즘의 내 감정까지 건드려주는 따뜻함...

짧은 이야기, 조금 더 길어진 이야기인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가 긴장감 가득하게 읽는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읽힐 줄은 몰랐다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아주 가볍게 읽으려고 했던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는 전혀 가볍지 않다.

책을 다 읽고, 마음이 가고 눈이 갔던 글을 다시 들춰보게 되기까지 했으니 책 속에 푹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번 아웃’이라고 낙담하거나 늘어지지 않을 힘과 마음을 기르고 싶다는 소망까지 생긴 것 같다.

더 튼튼하고 건강한 마음을 갖고 싶다는 마음까지도...

무엇을 할지 모를 시간이 생길 때면 그저 뒹굴뒹굴하기만 했던 나의 ‘쉼 시간’에 용기라는 힘을 주신 작가님의 글에 무한 감사를 드린다.


P10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려고 했는데, 잠깐 일을 내려놓고, 일 걱정을 잊고 느긋이 쉬면서 충전할 방법을 찾고, 이런저런 생각에 자유롭게 빠지는 시간을 갖게 되자마자 그런 시간을 글로 남겨야겠다 싶어진 것이다. 기록해서 모아놓지 않으면 잊히고 사라질 것 같았다.

내가 쉬고 충전하고 카타르시스를 느껴봤자 그게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래서 ‘휴식 시간’에 휴식을 한 게 아니라, 그 틈을 타 다른 일을 하려고 휴식 시간을 기다렸다.

그런 휴식을 통해 이 책이 탄생했다.


P189

나는 내가 평생 일을 한다는 게 당연하게 생각된다. 그러지 않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아는 한 만국 공통어에 가장 가까운 것은 일이 아닐까 싶다. 항상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러서 매사 우선순위가 거기에 좌우된다. 누구와 만나고 무엇을 하는 데 시간을 쓸지 하는 문제가 다 그렇다.

일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일하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선택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동료들과 함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작은 자유, 아니 눈곱만큼의 위안이라도 얻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 내게 마법의 존재를 믿느냐고 묻는다면 “마법이 존재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할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힘듦을 느낄 때 누군가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종교를 찾고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법이 존재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는 그런 바람을 갖고 있는 내게 어린 시절 꿈을 키우며 읽던 동화를 읽는 느낌을 일깨워준 책이다.


도시에서 꽤 멀리 떨어진 일본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종달새 마을》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으로 《마법 상점》을 열고 있다.

자신의 마음이 내킬 때면 마법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주로 본인이 키운 약초와 다양한 찻잎을 팔고 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상처나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을 갖고 아름다운 마법사를 찾아오지만 쉽게 그들의 《소원》은 들어주지 않는다.

마법의 힘을 믿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들은 마법사와 함께 살아가지만, 마법사는 마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 하지 않는 것에 어쩌면 야속한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마녀 ‘스이’는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법사》인 것이다.

상처의 치유를,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설 수 있는 의지를 주는 마녀 ‘스이’의 능력이 그러한 따스함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을 도와주는 ‘착한 마녀’, ‘착한 마법사’라면 응당 주문을 외우거나 지팡이라도 휘둘러서 힘든 상황의 사람들을 도와주면 좋으련만 생각하기엔 특별한 마법이 없어 보일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마녀 ‘스이’는 너무나 큰 절망에 빠져 있거나 마지막 기회밖에는 없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마법의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내 삶에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마녀 ‘스이’와 같은 존재가 함께한다면 그녀에게 소원을 빌거나 하지 않더라도 마음 한편이 든든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판타지적인 이야기이지만 ‘판타지 소설’로만 느껴지지 않고, 나도 모르게 어릴 적 마음으로 돌아가는 몽글몽글해짐에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예쁜 책이었다.

표지에서부터 끌리는 마음을 책의 마지막 장까지 끝까지 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았다.


P25

여기는 마녀의 상점, 마법상점이다. 분명 마법을 파는 곳이다. 메이는 절대로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분수에 맞지 않는 소원을 말한 것도 아니다.

한 쪽 팔에 있는 흉터 하나만 없애달라고 했을 뿐이다. 마녀라면 그런 소원쯤이야 거뜬히 들어줄 수 있을 텐데.

“저기, 돈은 있어요. 저금한 돈 다 가져왔어요. 혹시 부족하면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 해서 꼭 다 낼게요.”

“우리는 돈으로 움직이지 않아. 그런 건 중요하지 않거든.”

“그런…….”

“설령 네가 나라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가져왔다 해도, 지금 여기서 네 흉터를 없애기 위해 마법을 쓰는 일은 없을 거야.”


P174

“이 마을에는 마법의 힘을 얻기 위해 오는 사람이 하루코 씨 말고도 많아.” 주인은 혼잣말을 하듯 나지막한 음성이었다. “그중 정말 마법으로 소원을 이루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마녀는 선인이 아니라서 모든 사람의 소원을 다 들어주지 않아. 자기 마음이 동해야지만 움직이지.”

“…….”

“마녀에게 거절당하고 우울해하거나 화를 내면서 마을을 떠나는 사람도 있고, 어딘가 후련해지 모습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마녀의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사람 나름이라고 생각해.”

“사람 나름이요?”

“음…… 하루코 씨는 어떨까? 이 마을을 떠날 때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소에도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찍은 영상을 찾아보고 그 과정을 보는 것에 꽤 흥미와 재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내게 선물과 같은 책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우리나라 배우들과 함께 한 《브로커》 등 수많은 작품을 감독한 일본의 대표 거장의 이야기라니 읽어보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그 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일본 원제:진실)」에 대한 기록이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나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이전까지 알지 못했다.

(프랑스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서 워낙 유명한 제목은 들어는 봤지만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는 약간의 비겁한 변명을 하고 싶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찾아서 보고 몇 페이지 읽기 시작했던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며 생생한 문자로 만들어진 ‘메이킹 필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배우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만들어지기까지 장장 8년간의 기록이라니 그저 대단하다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배우와 장소의 캐스팅부터 영화가 마무리 되는 시간까지 중간중간 그 많은,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낸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님의 능력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많은 감독님들의 노고가 그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경외심’마저 들기도 한다.

고레에다 감독님이 찍은 현장 스케치 사진에 손 그림과 스토리보드, 인물 구상도 등 꼼꼼함 이상의 완벽함까지 보이는 모든 행동이 ‘거장’의 수식어가 결코 과하지 않음을 느꼈다.

나의 일상과 일을 함에 있어 부끄러움과 많은 반성을 하게 만드신 고레에다 감독님...


2011년부터 2019년까지 감독님의 일상과 촬영에 관한 글들, 2023년에 쓴 프롤로그와 작가의 후기가 모아져 엮어진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는 우리나라 배우들과 함께한 《브로커》와 《괴물》에 대한 솔직한 기대의 마음도 담겨있다.(감독님께서 송강호 배우님을 매우 아끼시는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쉽게, 흔히 생각하는 영화감독은 “레디! 고!”를 외치는 인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시는지, 어떤 일들까지 해내야 하는 인물이어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잔잔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너무나도 잘 건드려주는 영화감독으로 알고 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가 왜 그렇게도 탄탄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감독님의 영화를 다시 찾아 봐야겠다.


P23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 글의 단행본 제목인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전에 내가 쓰던 미완성 각본의 제목이다. 원래는 2003년 말 파르코 극장에서 무대에 올리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다. 그때 어렵게 부탁해 프르코 극장의 무대 뒤며 ‘미타니 고키’씨의 연기 연습을 견학했는데, 애석하게도 상연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인생의 말년을 맞이한 노년의 여배우 이야기로, 무대는 상연 전과 상연 후의 분장실이 전부다. 

“이렇게 비 오는 ㄹ날에 연극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르려나…….”하고 주인공이 분장하며 중얼거리는 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로는 여배우 역이 ‘와카오 아야코’, 물품 보관소 직원의 아내가 ‘기린’씨였다.

그로부터 십오 년이 지나 이 시나리오는 제목도 무대도 캐스트로 바뀌어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 이 책은 출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