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 - 읽고만 있어도 좋은
정숙영 지음 / 부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제목 앞에 붙은 수식어는 '읽고만 있어도 좋은'입니다. 전 100% 진실된 부제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과장광고는 아니라는.) 정말이지, 읽고만 있어도 좋은 여행책(?)입니다. 작가는 IMF로 실직한, 피가 끓는 젊은 여인네. 결단을 내린 그녀는 28의 나이로 비일상의 세계로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아니, 여행 자체가 '비일상'이라고 말하지요. 말 그대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제가 생각하는 여행도 그녀가 말하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무엇을 보고, 어디에 다녀오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백인이면 백 모두의 여행 감상이 다른 것. 바로 '느끼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이 책 읽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버스 타고 가면서 혼자 낄낄거리며 웃기도 하고... 현실을 벗어나고파 하는 이들에게, 뭔가 웃음거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 99쪽 : 이거거든. 내가 그렇게 바라던 '공감'이라는 것. 이런 여행에는 유명한 유적지도 대단한 예술품도 그다지 필요치 않다. 친구가 옆에 있자 길거리 화가의 그림도 예술이 되고 이탈리아어로 적힌 간판 아래에서 핥아먹는 맥도널드 아이스크림도 추억이 되더라. 모든 것이 나 한 명의 시선으로 볼 때보다 더 다채로운 색을 지니고, 나 혼자 생각할 때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갖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김.영.하. 그의 자유로우면서 깔끔한, 부드러우면서도 유쾌한 글을 참 좋아합니다. 그간 영화잡지에 연재했던 그의 글을 모으고, 거기에 이우일 씨가 삽화를 그렸습니다. 읽는 내내 배꼽을 잡고 웃었답니다. 우울할 때 보면 최곱니다. (책임은 못 집니다. 취향이란 사람마다 다를 테니.)
빨간 스노보드용 바지를 입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그.
그를 보고(?) 있으면, 왠지 맘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배꼽 잡았던 한 부분 올립니다.

=> 88쪽 : 어쨌거나 한 달에 한 편의 영화를 겨우 보다가 가끔은 그 한 편의 영화마저 못 보는 달이 있어 펑크를 내기도 한 걸 생각하면 정말 나는 어디 가서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은 입 밖에도 낼 자격부터가 우선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화에게서 문초를 당한다. 영화는 마치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묻는 것이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나는 배신자 가롯 유다처럼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며 저 멀리 광야로 달아나는 것이다. "아니오, 나는 당신을 증오하오." 그 광야엔 불행히도 편집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이들이 바로 편집자들인데 이들에 의해 필자들은 늘 시험에 들게 된다. 편집자들은 필자들에게, 절벽에서 떨어져보라 하고 돌을 빵으로 바꾸라고 한다. 그러면 마음 약한 필자들은 자기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줄 알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돌을 빵으로 바꾸는 무모한 일에 뛰어들게 된다(물론 마감이 지나면 광야의 편집자들은 한 달간 모습을 감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대로 두기 -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 여성 편집자의 자서전
다이애나 애실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영국 출판 편집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다이애나 애실. 1917년 생인 그녀가 출판 인생 50년을 되돌아보며 쓴 책입니다.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는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 전문 출판사라고 하네요. 원제는 교정을 볼 때 '그대로 두기'를 의미하는 'stet'입니다. 아직도 정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저 자신을 채찍질하는 의미에서 보았는데... 기대에는 못 미치는 책이었습니다. 그녀의 출판 인생은 '개척'의 의미보다는 '흐르는 물 위의 돛단배'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던 그런 류는 아니더군요. 물론 분야가 다르기도 하고,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에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함께 나누고픈 구절 하나 옮겨 적어 봅니다.

=> 98쪽 : 타임/라이프 측에서는 해마다 회의를 앞둔 시점이 되면 각 제휴사가 뉴욕으로 제출한 출간 기획안 열 개를 인쇄해 고급 가죽 장정으로 묶고 대표 이름을 금박으로 새겨 회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강요에 의한 <구상>은 출판업계에서 가장 쓸데없는 짓으로 꼽힌다. 작가가 아닌 제3자의 머리에서 흥미진진한 책이 탄생했다면 심하게 들볶이는 상황에서 번쩍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나 오랫동안 집착하던 주제가 있는데 적합한 저자가 나타났거나 둘 중 하나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그거 괜찮겠다!' 싶어서 낸 책치고 괜찮은 경우는 없다. 어떤 주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강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읽을 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유능한 글쟁이라면 출판사 사장의 주문에 맞춰 책 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겠지만 이렇게 생산된 물건은 남들보다 두 배 빨리 재고 창고로 넘어갈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경을 넘는 일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강좌 커리큘럼에 나오는 책.

''공동체''라는 테제 하에 이 책이 들어 있었다.

솔직히 전성태라는 작가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왠지 끌리지 않는 느낌인지라 거의 의무감에 펴든 책장은 생각보다 술술 잘 넘어갔다.

8편의 단편이 묶여 있는데, 각각이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 하부에 흐르는 전성태 소설의 핵심이 무엇인지 별다른 정보 없이도 파악할 수 있었다.(만만하다는 건 아니다. 그는 그만큼 보편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흥미롭게 틀의 안과 밖에서 풀어낼 줄 아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그가 일관되게 가지고 있는 의식(문제의식)이 맘에 들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인... 그래서 구수한 느낌으로 방어막을 허물고 된장찌개처럼 다가온다고 해야 할까.(물론 거기에는 그의 사투리 구사 능력이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시골스러움이 바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그가 말하려 하는 바인 것 같다. 그와 함께 특수한 시대 상황이 들어가고, 결국은 모든 것의 해결 지점은 바로 그곳이 된다는.. 때로는 감싸안고, 때로는 은폐되고, 때로는 감싸안은 듯한 것이 비극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어쨌든 종국에는 그곳이 우리의 문제 해결의 지점이 된다는 것이다.

전성태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과 사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겹겹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사회들.. 과연 그 모두가 ''공동체''라는 이름을 담을 수 있을까. 역으로, ''공동체''라는 이름을 달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그것은 노력으로 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공동체는 따스함의 대명사이기만 할까. 그 이면에 깔린 무수한 압력들은 과연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걸까... 수많은 생각의 고리들만 던져 주고 닫혀 버린 책장. 하지만 문제제기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또 하나 전성태가 가진 장점이라면, 언어 구사가 생생한 회화성을 띠면서도 전혀 사치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가끔 ''글자''의 미에 취해 ''맥락''을 놓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의 소설은 결코 간결하지는 않으나 흐름이 끊기지도 않는 매력이 있다. 한마디로, 앞으로 다시 돌아가 읽게 되는 법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물론 단순한 의미 파악을 위해서일 때 말이다.


같은 커리큘럼 상에 들어 있던 장편 <리나>(강영숙 저)도 함께 읽어 보길 권한다. 비극적인 모습 속에서 발견하는 공동체란 또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 소설전집 - 인문학연구소고전총서동양문학 1
김시준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1996년 1월
평점 :
품절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루쉰의 소설 33편을 모두 수록한 완역본입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루쉰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보니, 이거 보통이 아닙니다. <아Q정전>부터 <쿵이지>, <광인일기>, <자서> 등 루쉰의 작품에서는 부러 힘을 준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슴에, 머리에, 영혼에 미치게 파고드네요. 사회에 대한 그의 일갈이 ''지식인입네'' 하며 ''척''하는 류와는 확실히 다름을 느낍니다.

<쿵이지(孔乙己)>라는 단편을 읽을 때 제 곁에는 캔맥주가 하나 들려 있었습죠. 소설은 끝났는데, 외상 술을 손에 든 슬픈 쿵이지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서 떠나질 않아 고작 캔맥주 하나에 울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웃음은 또 왜 나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