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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ㅣ 스콜라 창작 그림책 117
케이트 비턴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평점 :
레베카는 한 여성의 삶에 깊이 드리운 상실을 통해,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삶의 시간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그림책이다. 섬에서 어부인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레베카의 집은 작지만 따뜻하고 활기가 넘친다. 바다와 맞닿은 평범한 일상 속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과 삶의 온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러나 어느 겨울, 남편이 얼어붙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면서 레베카의 삶은 한순간에 달라진다. 사랑했던 사람의 빈자리는 너무 커서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슬픔은 밀려왔다 물러가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하루를 잠식한다.
그럼에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라고, 집을 돌봐야 하며, 땅에는 다시 씨앗을 심어야 한다. 레베카는 슬픔을 떨쳐 내거나 잊어버리는 대신, 그 슬픔을 자신의 삶 한가운데 품은 채 두 손으로 다시 일상을 일궈 나간다. 작은 집을 돌보고 아이들을 길러 내며 땅을 일구는 일은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단단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이 그림책의 아름다움은 상실 이후의 삶을 극적인 극복의 서사로 만들지 않는 데 있다. 떠난 이를 잊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과 슬픔을 품은 채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것 역시 사랑의 한 모습임을 보여 준다. 레베카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을 지키고 삶을 이어 온 수많은 여성과 어머니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리고 묻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에도 어떻게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답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오늘의 밥을 짓고 아이의 손을 잡으며 다시 땅을 일구는 작고 단단한 삶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