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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ㅣ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평점 :
출판사 <작가정신>의 책들은 주로 스릴감 넘치는 소설이 떠오르지만 의외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에세이를 좀 더 낭만적으로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하기도 한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제목이 나의 상황과 너무 똑같아서 마음이 애절해지는 책이기도 했다. CRPS로 투병하기 시작하면서 책의 제목과는 다르게 이제는 아파, 힘들어 이런 말보다 괜찮아 뭐 맨날 그럴 수 있죠 괜찮아요 이정도는~ 이라는 말이 입에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붙은 단어 미안해
에세이를 보면서 이사람이 내가 되지 못한다는걸 알기 때문에 소설보다 몰입도가 높지는 못하지만 드문드문 흑백사진과 명언과 같은 문장들 숨을 쉬는 것 처럼 예쁘다. 여백의 미를 남기고 중앙에 채워진 사진과 반대쪽에 쓰여진 문장들이 오히려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제목 역시 저자가 그 순간 괜찮다는 말을 하지 차마 하지 못했지만 혀끝까지 그 말이 올라왔지만 진짜로 말하지는 못한채 하지만 무시하지도 못한채 썼고, 쓰는 수 밖에 없었다는 그 울컥하는 감정이 나에게 전달 되어 더 쓰디쓴 느낌이 들었다.
내가 괜찮지 못할 때 책을 읽고 아이들을 안고 이불 속으로 꼭꼭 숨어버리는 것 처럼 소설가인 작가는 새로운 글을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쓰고 읽은 것들에 대한 느끼는 감정들을 글로 쓰고 써왔다. 그래서 더 에세이가 반가웠던건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을 만나볼 수 있고, 읽었던 책에서 작가가 찾아낸 것과 내가 찾아낸 것을 합해볼 수 있었다.
작가로써 책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것에 위로 받는 방법처럼 그녀는 책이라는 또다른 공간에서 오로지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내는데 집중하고 그 생각을 글로 담아낸 것이다.
톨스토이의 무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하늘 아래 새소리뿐. 그것이 톨스토이가 묻혀 있는 곳이라는 것을 누군가 귀뜸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방금 지나온 자작나무 숲과 사과나무밭에서처럼 걸음을 늦추거나 잠시 발길을 멈추어 그대로 서 있다가 조용히 다시 앞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길,
슬퍼하지도 생각하지도 말고, 아무것도 세우지 말고 그저 소박하게 묻어달라던 톨스토이, 하늘을 사랑하여 하늘을 잘 보이게만 해달라고 당부했다던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을 되새겼다. 하늘과 새소리, 그리고 초록의 자연뿐 아무것도 새겨놓지 않은 톨스토이의 무덤은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찾아갔던 세상의 수많은 예술가의 무덤 중 가장 아름다웠다.
옛 소설가들의 숨결을 찾아간 곳에서 평생을 살아갔던 모습과 죽음의 터에서 느끼는 감정은 때론 우리를 당황시키기도 한다. 한 여자를 수 많은 천재들이 사랑함으로써 희대의 명작과 연구결과가 나오거나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365일 담아 무명의 작가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유명작가가 되는 것까지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는 나의 숨겨져 있던 감정을 이끌어내는 작품이지만 그녀의 일상 같은 것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수필이라는 느낌 보다는 서로 좋아하는 주제를 통해 공감대를 간접적으로 형성하는 에세이라고 해야할까?
글마다 감정따라 문체나 글의 길이가 다른 것도 이 책의 중요한 느낌이기도 하다.
괜찮지 못해서 책을 읽은 나와 그래서 그 안에 발견한 걸 글로 쓴 작가, 괜찮아도 괜찮지 않아도 그녀의 에세이를 읽어보면서 공감되는 작품을 한 편씩 골라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치명적인 상처로 괴롭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이런 방법이 우리에게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도 느끼면 더없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박물관에서 소설을 꿈꾸다>가 인상적이었다. 책이 주는 감성 외에 무언갈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거나 감동을 받는편이 아니기도 하고, 여행을 통해서 오래된 무언가를 봐야한다는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나의 여행은 휴식 그 자체에 불과했지만 서사 창작자로서 지녀야 할 관심과 감각이 유물들을 만나면서 꽃피운다는 거,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존재들이 주는 안타까움과 연민이 좁은 가슴팍을 타고 물밀듯이 북밭쳐 올라 견딜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기 떄문이다.
인생은 살면서 괜찮지 못한 순간이 많다.
나는 지금도 괜찮지 못한데 괜찮다 해야하고, 그 말을 자꾸 입에 담기 싫어 전화를 받는 것도 싫어한다. 담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는 삶에서 담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고 찾아낸 것 같다.
너는 나를 오솔길을 걸어 숲으로,
고개를 돌고 걷고 또 걸어도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겨우 보일 뿐인 울창한 숲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숲속은 거대했고, 신성했고, 컴컴했다. 우리는 서로의 발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말없이 걸었지.
살다 보면 뜻밖의 선물이 주어지는 일이 있는데,
이때 선물이란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는 책이나 꽃 같은 물질 형태가 아닌, 어떤 영혼과의 만남 형태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긴 여행에서 돌발은 계속 되겠지만 책과 나는 사랑하는 영혼을 만나 위로를 받고 행복해 하고 있다. 우리의 만남은 또 다시 언젠가 슬픔이 되기도 하지만 감사하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고 나의 글을 읽는 분들에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인 모습을 공유해드린다.
"외롭지말고!"
"마음이 아픈게 나한테 찔리는 것 보다 더 아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