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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실 혹은 단절 ㅣ 윤곽 3부작
레이첼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한길사 / 2020년 8월
평점 :
윤곽이란 "일이나 사건의 대체적인 줄거리, 사물의
테두리나 대강의 모습"을 의미하는데 정의와 가장 부합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레이첼 커스크의 소설 윤곽은 3부작으로 윤곽(2014), 환승(2016), 영광(2018)으로
이어진다. 장편소설이지만 단편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며 글 속에서 주인공인 '나'가 두드러지지 않고 '나'가 만나는 상대의 독백에 주목이 되는 점이 독특한 작품이다.
이혼으로 삶이 무너진 작가인 주인공 '나'가 아테네로
글쓰기 강의를 하러 떠나면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감춰져 있던 '나'의 윤곽을 드러내는 이번 소설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낮고 잔잔한 느낌이 들지만 관계의 상실과 그로 인해 변한 삶과
주변 사람들과의 변화되는 감정, 자신의 자아에 대해 공감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소설이지만 윤곽을 쓴 작가의 현실과 비슷한 배경이 많아서 좀 더 현실적이고 끊임없는 공감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소설 윤곽의 주인공인 파예가 아테네로 가면서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최소 한 번의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듯
이혼의 이유와 이혼으로 느끼는 감정도 제각각이고 그로 인한 상실과 변화 등도 다양해 누군가는 이혼으로 새로운 만남을 거부하고 또 어떤이는 새로운
사랑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사연을 독백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을 반영하지 않은 주관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상황을 설명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는 대화와 설명을 통해 무언가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는데 윤곽 속에서는 한 명의 인물을 통해 글이 주관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옆자리의 남자는 윤곽 속에서 인상 깊은 느낌을 준 인물로 10대에 만나 약혼하고
결혼을 했고 한 번도 말다툼을 하지 않았지만 한 번의 말다툼으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삶이 부유해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거라 믿고 살았지만 삶이 커질 때마다 이전의 그릇은 하나씩 깨졌고 결국 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이혼 후 그의 인생은 원하는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꼬인 시작이 어딘지 찾지 못할만큼 어려워졌고 그는 아내와 함께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1분이 넘는 통화 속에 짜증을 느끼고 결합을 했어도
또 다시 헤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살았던 이전의 삶은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간이 아닐까?
그는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두번째 아내와도 이혼을 했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고 회복하는 동안에는 아픔도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곽이 진행 될 수록 그가 말하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반전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생각보다 자극적이었고
그의 관계는 자극 속에서 엉망으로 꼬여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정말 아이들을 늘 걱정했던 것일까?
"나는 그것이 사랑에 대한
하나의 정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직 두 사람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믿는 일."_92쪽
파예는 비행기 옆자리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윤곽을 그려나가는 청자이자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화자이다. 그녀가 화자라는 것은 소설의 중반부 정도에서야 알 수 있는데 윤곽의 또 다른 독특한 점은
단편적으로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진실이 무엇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독백과 파예의 생각이 포함되면서
이야기는 주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관을 통해 소설의 초반에서 흐릿했던 주인공 파예의
인생에 대한 윤곽이 조금씩 선명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여성에게 자식을
낳는다는 건 그들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생산 경험이겠죠.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절대적인 희생이 없는 한 그렇게 창조물로만 머무르지는 않을 거예요. 제
희생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고, 요즘 엄마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요. 제 어머니는 저를 완전히 무비판적으로 받아주셨는데요. 그 결과 저는
삶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가 어머니에게 그랬던
것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저는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저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서 저와 결혼하고 싶다는 남자를 만났고,
그때는 받아들이는 게 옳아 보였죠. 하지만 아이를 갖게 되자 그 '소중함'에 대한 느낌이 되살아나는 거예요."_132쪽
윤곽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너무 맹목적인 사랑이 만드는 아이의
모습과 아이를 출산하면서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소중함에 대한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하거나 경험하는 삶의 일부분이면서 쉽게 수정되지
않는 오류는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동감과 씁슬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단어 하나하나로 접하기 때문은 아닐까? 결혼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다면 소설 윤곽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책을 통해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소한 글의 진행이 다소 어색한 초반이었지만 새로운 시도가 책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나에게는 신선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