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개의 별
김광호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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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52개의 별], 책밭, 2012. 

 

  현실에서는 베일에 가려서 실제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주요한 이야깃거리 중의 하나는 정보 요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첩보물이다. 과거 냉전 시대의 영향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진영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 진영의 대립, 대량 살상무기로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와 이를 막아야 하는 특수 기관의 대결, 그리고 막대한 이권을 두고 벌이는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 등은 이미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지금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여 파렴치한 범죄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파헤치는 스릴 있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이러한 소설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이념의 대립과 분단된 조국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는 어쩌면 창작에서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동안 내가 본 것은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체제의 우월성과 권력의 홍보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것뿐이었다. 러한 상황에서 국가정보원을 소재로 하는 김광호의 [52개의 별]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국정원 안보전시장에는 52개의 별이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고, 별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국정원 활동 중 순직한 52명의 넋을 기리는 명패였다. 내가 그곳에 처음 섰을 때 느꼈던 것은 그들의 충성심에 대한 감동이 아니었다.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아니었다.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남들과는 다른 세계에 들어섰고, 그 세계는 죽음도 받아들일 정도의 애국심을 요구하는 곳이라는 강렬한 현실 인식이었다.(p.10)

 

  우리의 근대사와 마찬가지로 국정원의 역사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독재 권력의 하수인으로 통치자의 눈과 귀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중앙정보부는 안기부를 거쳐 민주화가 된 이후에 국가정보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소설은 진보와 보수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렇게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듯이 인생은 뜻대로만 풀리지 않는다. 자신이 아무리 결백한 삶을 산다고 해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고난을 겪게 되어 있다. 불운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과 좌절을 겪는가.(p.47)

 

  소설은 회고록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로 표현되는 윤정태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국정원의 직원으로 근무했다. 이것이 글을 쓴 작가의 실제 경험인지 아니면, 순수한 허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故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를 실제 배경으로 하는 팩션이다.

 

  정태는 남들에게 주목받지도 않고 소외되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원했다. 하지만 자기 일을 성실히 할수록 점점 권력의 중심으로 다가간다. 국정원 산하 국내방첩국 소속으로 처음에는 국내외 주요 인물들의 보호를 책임지는 신변 안전팀이었으나, 탈북 고위 인사들을 보호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보고 함으로 정책의 전면적인 수정이 이루어지고 상부의 눈에 들게 된다. 주임으로 승진과 모범 요원으로 선정, 이어서 대북공작팀과는 다르게 남북회담을 실무적으로 지원할 새로운 팀의 팀장으로 발령된다. 그리고 베이징에서의 역사적인 남북회담...

 

  남북관계 악화를 우려해서 망명을 덥석 받아들일 수 없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망명 요청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있어야 옳았다. 그냥 내버려 두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단 회담 성공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임무야."

  "김만길은 남한 정부를 믿고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킬 수밖에."

  "한 인간의 자유를 선택하려는 의지도 회담의 성공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p.188-189)

 

  남북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미국을 비롯한 대외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부시의 공화당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협상이나 원조보다는 힘으로 변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들에게 북한은 미사일 방어체계(MD) 배치를 위한 명확한 구실이었다. 어떻게든 남북의 평화 무드를 깨야 했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의 의지는 분명했다. 그런데 어렵게 진행되는 회담에서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회담에 참가한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망명을 요청해 온 것이다. 냉혹한 스파이들의 세계에서는 조직의 명령이 최우선이겠으나, 한 민족이 분단된 남북의 상황에서 정태는 인간적인 고뇌에 빠진다. 그리고 일은 점점 걷잡을 수 없게 되는데...

 

  [52개의 별]에는 할리우드식의 액션이나 스릴이 나오지 않는다. 영미권이나 북유럽의 서스펜스나 미스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한 요원의 인생과 남북한의 현실이 들어 있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은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 완벽한 팩션이 되었다. 내용의 전개는 현실성이 뛰어나고 매우 사실적이다. 각각의 챕터는 완결성을 가지고 있어서 짜임새가 훌륭하다. 하지만 인물 간의 갈등 구도가 짧고 반전이 약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종북좌빨'이라는 선동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에 과거 정부에 대한 묘사를 하기가 쉽지 않은데, 객관성을 유지하며 적절하게 서술한 작가의 글솜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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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스코틀랜드, Scotch Day 어느 날 문득
홍주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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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홍주희, [어느 날 문득, 스코틀랜드 Scotch Day], 북노마드, 2012. 

 

  여느 유럽과는 다르게 영국 여행은 호불호(好不好)가 많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먼저, 불호(不好)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계절에 따라서 오후 3-4시만 되어도 어둠이 몰려오고, 저녁 6시 이후에는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 그리고 한밤중에는 주정꾼들이 몰려다녀... 영화 <28일 후>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표정으로... 마치 좀비들이 사는 동네 같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호(好)는 전설적인 밴드와 EPL(Premier League)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부터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까지 문학적인 감성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예찬을 듣기도 했습니다(유학하던 어느 선배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소뼈를 사다가 고아 먹을 수 있다는 자랑을 했으나, 광우병이 발병한 이후에는...;;). 아무튼,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은 유럽 대륙의 서북쪽에 있는 섬나라로 정식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고, 일반 명칭은 영국연합왕국(United Kingdom)입니다. 잉글랜드(England), 스코틀랜드(Scotland), 웨일스(Wales), 그리고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혹시 [셜록 홈즈] 시리즈를 집필한 아서 코난 도일의 고향을 아십니까? 제임스 매튜 베리가 쓴 [피터팬]의 배경은?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연기한 윌리엄 월레스는 어느 지역의 영웅일까요? <트레인스포팅>,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다빈치코드>, <일루셔니스트>의 배경은?

 

  바로 '스코틀랜드'입니다.

 

 

  스코틀랜드는 그레이트 브리튼 섬의 북부 1/3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수도는 에든버러이고, 경제의 중심지는 글래스고입니다. 잉글랜드와는 별개의 자치법으로 통치되고 있으며, 독자적인 사법제도와 보건 및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고, 국교회(國敎會)도 독립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6개월 이하의 단순 관광이나 방문일 경우에는 '비자'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에든버러 성(Edinburgh Castle)

  구시가지에 우뚝 솟은 에든버러 성은 에든버러의 심장과 같다. 에든버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황량한 바위산 캐슬 록(Castle Rock)에 자리한 성은 과거 이곳이 적의 접근이 어려운 군사적 요새였다는 것을 말해준다.(p.47)

 

 

  프린시즈 가든(Princes Garden)

  화창한 날은 한 달에 두 번 남짓이라... 가끔 해가 뜨는 날이면 프린시즈 스트리트 앞으로 길게 이어진 산책로와 푸른 잔디가 펼쳐진 프린시즈 가든에는 오랜만에 햇빛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p.61)

 

 

  프린시즈 스트리트(Princes Street)

  길게 뻗어 있는 프린시즈 스트리트는 쇼핑의 천국으로 불린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에서만큼은 현지인들의 삶도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다.(p.63)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

  갈 때마다 환상적인 디스플레이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는 영국의 대표적인 의류 판매장(p.107)

 

 

  글래스고 시내

  메킨토시가 설계한 건물 중 하나인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는 오늘날 스코틀랜드의 디자인과 건축을 테마로 한 아트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곡선형의 계단을 올라가면 탁 트인 글래스고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p.113)

 

 

  글래스고 미술학교(Glasgow School of Art)

  영국의 시각문화예술 전공 학생들은 매년 6월에 졸업전시를 가진다. 정보 디자인, 북 디자인 등 세계적인 디자인 흐름과 비슷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영국 그래픽 디자인의 에너지를 맘껏 느낄 수 있었다.(p.119)

 

 

  캘빈그로브 미술관 & 박물관(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

  1902년에 지어진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은 새로 증축하여 글래스고의 상징이자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오후 1시마다 1층 홀에서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열린다.(p.125)

 

 

  애슈턴 레인(Ashton Lane)

  힐헤드(Hillhead) 지하철역 근처에 자리한 이 작은 골목에는 바, 카페, 레스토랑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마치 서울의 대학가에 온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p.129)

 

 

  스털링성에서 내려다본

  스털링 성은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메리 여왕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메리 여왕은 1543년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왕실 예배당에서 스코틀랜드 여왕의 왕관을 받았다.(p.145)

 

 

  하일랜드 수비니어스(Highland Souvenirs)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에서 올망졸망 진열된 기념품이 유난히 눈길을 끌어당긴 작은 기념품 가게(P.161)

 

 

  네스 강(Ness River)

  하이 스트리트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네스 호에서 발원하여 인버네스를 거쳐 북해로 흐르는 네스 강이 나온다.(p.167)

 

 

  에든버러 안내도(Map-Edinburgh Old Town)(p.185)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삶은 왠지 모르게 애달파 보인다. 잉글랜드에 비해 험하고 척박한 토양, 불행했던 과거사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회색빛 안개가 자욱한 추운 날 찾은 스털링의 첫인상도 그러했다... 스털링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연과 그것이 주는 고요함이다. 마음의 여유라곤 없이 팍팍하게 살아가는 우리와 달리 이들은 소박한 자연 속에서 느리고 평화롭게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p.146-147)

 

  홍주희의 [어느 날 문득, 스코틀랜드 Scotch Day]는 생활(여행) 안내서입니다. 저자는 2010년 1월부터 7월까지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갔던 스코틀랜드라는 낯선 환경에서 보낸 나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휴대성을 배려해서 조금은 작은 사이즈로 구성된 책 속에는 유용한 정보(지리, 환경, 기후, 교통, 문화, 볼거리와 먹거리... 등등)와 일상의 에피소드가 꼼꼼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디자인에 관한 관심과 에든버러에 대한 애정이 넘쳐납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에든버러(Edinburgh), 글래스고(Glasgow), 스털링(Stirling), 하일랜드(Highland)의 이국적인 풍경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두 눈을 즐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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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참견 : 운수 좋은 날 -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김양수 지음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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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수, [생활의 참견 - 운수 좋은 날], 예담, 2012. 

 

  어린 시절에 학교에서나 집에서 만화를 보면 어른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누가 만들어낸 공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어른의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지적을 당하고 큰 소리를 듣는 처지에서 기분이 매우 불쾌했습니다. 어떠한 논리적인 설명 없이, 단지 만화는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기에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는 격양된 음성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아니 세월이 흘렀다고 할까요? 이제는 만화를 대하는 시선이 예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내가 욕을 먹으며 보았던 만화는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전파를 타고 있고, 문화 산업의 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특화한 고등학교까지 생길 정도이니 많지 않은 나이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오랜만에 책으로 만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인터넷 모 포털에서는 유명한 연재인데, 작가의 독특한 안목으로 특별하게 선별하여 출시한 진짜 만화책입니다. 김양수라는 작가의 이름이 매우 익숙합니다. 개인적으로 맨 처음 작가를 알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 월간<PAPER>를 통해서였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틀렸을 수도 있고요)... 김원 발행인, 황경신 편집장, 정유희, 김양수... 등등의 기자들. 당시 작가는 창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잡지의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정기 연재를 하던 만화가의 공백으로 작가는 발행인에게 "제가 한번 그려보겠..."라고 했고, 발행인은 걱정 반 우려 반으로 마지못해 허락했다는...ㅋㅋ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월간<PAPER>를 구매하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김원 님의 두 페이지 달력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작가의 만화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뭔가 둔탁해 보이고 전혀 세련되지 않았지만, 못 말리는 가족과 엽기 친구들의 폭소 터지는 경험담이 진솔하게 다가와 시선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인터넷 유명 포털의 인기 작가로 등극해 있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다시 책으로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가웠습니다.

 

  김양수의 카툰판타지 [생활의 참견 - 운수 좋은 날]은 다섯 번째 단행본입니다. 기존의 책과 다른 점은 평소 독자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작품으로 선별했고, 특히 독자들이 보내준 생생한 사연으로 꾸민 작품을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스트 모음집이며 동시에 기존의 시리즈와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새로운 '생활의 참견'입니다. 내용은 크게 다섯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① 찌질하지만 멋지게... '남자라면'으로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며, 창피함으로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 긴장과 황당함으로 뜻하지 않은 실수를, 커플이 만연한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는 부담감, 월드컵 축구를 보며 나타나는 엉뚱한 직업의식, 택시가 가지 않는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 무전 여행 중의 노숙자 취급, 영원한 숙제 다이어트, 클래식 공연장에서의 허세, 콩글리시 때문에, 이성에 대한 욕망, 젊어 보이고 싶어한 남자의 치명적인 실수.

  ② 일상이 우당탕... 헛갈림의 미학, 스키장에서 죽을 뻔한 사건, 여성의 본능, 긴장된 결혼식, 공중화장실의 덩어리, 외국인의 낯선 한국 경험, 한국 음식 이름 때문에, 여자 연예인에 관한 호기심으로, 오타 메시지, 주객이 전도된 효용가치.

  ③ 먹고살기 분투기... 머나먼 출근길, 황당한 면접 실수, 직장생활의 꼼수, 인생은 과유불급, 개고기와 관련하여, 동네 아줌마의 강매, 사회생활의 노하우, 오탈자의 반전, 입사를 준비하는 여자의 결심, SNS와 관련하여.

  ④ 추억은 방울방울... 대학 시절 어색한 고백의 기억, 겨울 음식의 추억,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특별히 이상한 이름, 학창 시절의 두발 검사, 영어 교육의 악연, 남자의 존재감.

  ⑤ 가족, 가장 친한 웬수...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 부담스런 가족의 관심, 고부간의 오해, 공처가 아버지의 반전, 숫자 놀이의 함정, 게임에 중독된 인생, 쇼핑 중독으로 허상이, 윷놀이의 심리적 분석, 기타 카테고리, 아버지의 인생관, 사소한 오해, 자녀를 키운다는 건.

 

  ... 등등의 이야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작가를 어느 정도 아는 독자라면, 다섯 개의 파트 제목만으로도 대강의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입니다. 컬러풀한 사각의 프레임, 그만의 그림체와 생생한 사연, 뻔한 등장인물의 예상치 못한 행동, 그럴듯한 이야기 속의 어마어마한 반전, 그리고 따뜻함...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웃음이 빵 터지는 오늘, 정말로 '운수 좋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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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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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 현정수 역, [최후의 일구], 블루엘리펀트, 2012. 

Shimada Soji, [SAIGO NO IKKYU], 2006.

 

  개인적으로 일본 미스터리를 읽거나 소개하면, 주위의 반응은 항상 싸늘합니다. 왜 그런 책을 읽느냐는 표정으로 차라리 고전을 읽으라는 비아냥 섞인 조언을 해옵니다. 언제부터 고전은 고상한 것이고 미스터리는 천박한 것이 되었을까요? 책에 대한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제목에 '살인'이나 '사건'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표지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신)본격 소설보다는 은유적인 제목의 사회파 미스터리를 더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읽으며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와 부조리를 다루어 변혁과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순수문학과 비교하여 가치 폄하되는 주위의 편견과 선입견을 만회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이 있습니다.

 

  시마다 소지는 1981년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화려하게 등단하여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미스터리의 거장입니다. [최후의 일구]는 '미타라이 기요시'가 등장하는 시리즈로, 미타라이는 탐정이 취미인 점성술사에서 작품이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어 이제는 점성술을 취미로 하는 IQ300의 명탐정입니다. 조금은 허황하지만, 지구 상의 대부분 언어에 통달했으며 취미는 클래식 듣기이고 어떤 이유에선지 커피는 마시지 않으며 대신 홍차 마니아입니다. 마치 셜록 홈즈와 존 왓슨처럼 미타라이 옆에는 이시오카 가즈미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라는 수식어, 그동안 발표한 작품... 등을 통해서 이번에는 잠시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닌 신본격 미스터리를 제대로 즐겨보자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았나 봅니다. 아니, 어쩌면 시마다 소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작품은 신본격보다는 사회파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회파를 좋아하는 처지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나, 신본격을 바라는 처지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서류가 날조되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는 이자제한법이라는 법률이 있어서 돈을 빌리 때의 이자 상한선은 15퍼센트로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그 회사는 40퍼센트의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 위법이라며 따라서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고요."

  미타라이는 고개를 저었다.

  "사유사항확인서라는 것이 '이자 제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재판에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법원은 극단적인 서류 지상주의입니다."(p.43)

 

  [최후의 일구]는 하나의 단편과 하나의 중(장)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작품은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연관된 독특한 구성으로 입체적인 재미를 줍니다. 1장에서는 엉뚱한듯하면서도 천재성이 뚜렷한 탐정 미타라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전개하는 친구 이시오카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을 찾아온 어느 의뢰인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소설은 평면적이고 단순하며, 명탐정의 추리는 사건 해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무기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야구밖에 모르는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한 탓에 저에게 야구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는 행위였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연대보증을 서는 바람에 당시 4백60만 엔 정도의 빚을 지고 목을 매 자살한 뒤로는 그 마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프로야구입니다. 즉 저는 어머니를 위해 처음부터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그 마음가짐으로 매일 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으로도 돈을 위해 야구를 하는 거라고, 야구로 돈을 벌 거라고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p.81-83)

 

  이것이 정말 최후의 일구다. 내 생애 최후의 일구. 죽은 내 아버지를 위해서, 죽은 다케치의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지상에서 영원히 매장된 다케치의 천재성을 위해서. 내 야구 인생 마지막 추도식을 겸한 공을, 지금 던져 보이겠다!

  140킬로미터를 내봐! 라고 자신에게 소리쳤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던져야 한다. 20여 년간의 야구 인생도 오늘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앞으로 영원히 어깨가 망가진다고 해도 상관없다.(p.258)

 

  2장에서는 야구로 인생을 살아온 두 선수의 안타까운 운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부업체와 연관되어 자살한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야구 선수가 되어 집안을 일으키고자 했던 다케타니 료지, 하지만 프로의 벽은 매우 높기만 합니다. 평생 야구를 사랑하고 열심히 했지만, 한 번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2류 투수의 슬픈 인생. 그는 아버지를 위해, 친구를 위해 최후의 일구를 던집니다.

  타고난 재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4번 타자 다케치 아키히데, 하지만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선수는 어떤 이유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벌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최후의 일구]는 다시는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 야구 선수의 기나긴 고백입니다. 두 젊은이의 노력과 성공, 좌절과 복수가 이야기를 지배합니다. 탐정 미타라이는 숨겨져 있습니다. 불법 대부업의 폐해를 고발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밀실 화재라는 트릭이 있고, 복수의 집념이 있습니다. 작가의 빼어난 글솜씨와 번역의 탁월함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인생이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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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
도바 순이치 지음, 나계영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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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바 순이치, 나계영, [오심], 씨엘북스, 2012. 

Doba Shunichi, [MISS JUDGE], 2011.

 

  스포츠에는 도전이 있고, 승리가 있고, 사연이 있고, 감동이 있다. 그래서 창작의 좋은 동기가 될 것 같지만,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연쇄 살인, 밀실 트릭, 납치 유괴, 사회 문제... 등을 소재로 하는 미스터리가 야구와 만난다면? 그것도 팀이나 선수의 대결이 아니라, 선수와 심판의 대결이라면? 조금은 발칙하고 무모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도바 순이치의 [오심]은 악연으로 맺어진 고등학교 선후배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구심으로 만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는 미스터리 드라마를 완성했다.

 

  오만함을 덕지덕지 처바른 듯한 상대방의 말투에 긴장한다. 뒤돌아보기 전에 '침착해!'라고 자신을 타이른다. '동요하지 마라. 평소처럼 하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p.21-22)

 

  심판은 단지 심판일 뿐이다. 경기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직업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게 다짐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버적거리는 불쾌한 소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p.25)

 

  다치바나 요시키는 강속구를 구사하는 화려한 투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프로에 진출한 이후 정확한 제구력으로 매년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기복 없는 활약을 해왔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2선발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스프링 캠프를 마치고 드디어 일본에서 양키스와 개막 2연전을 하는 날, 그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한 사람을 만난다.

 

  맘대로 쓰라지. 분노야말로 자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게다가 그라운드에 나오면 자신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퇴장!"이라는 말을 할 권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심판은 야구의 전능한 신이 된다.(p.93)

 

  그렇기에 심판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두려워하고 확실하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명선수조차 낯빛을 살피는 심판이. "녀석을 열 받게 하지 마"라고 누구나 뒤에서 수군거리는 심판이. 선수를 능가하는 존재라면 역시 심판만이 떠올랐다.(p.94)

 

  다케모토 하야토는 한때 십 년에 한 명 나오는 인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주목받는 투수였다. 고교부터 대학까지 1선발로 눈에 띄는 선수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11년 전, 그날의 악연만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이 마운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텐데... 야구를 그만두고 10년이라는 험난한 시간을 견디고서야 일본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심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그를 만났다.

 

  스트라이크존은 규칙상 엄격하게 정해놓았지만, 실제 운용은 룰북과는 딴판이다. 특히 높낮이는 룰북의 내용을 비웃는다. 투수가 떨어지는 공을 많이 던지고 이에 맞추어 타자도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보니 스트라이크존이 눈에 띄게 아래로 이동했다. 실제로는 허리에 찬 벨트가 상한선이고 하한선은 정강이 한가운데 즈음이리라. 일본 프로야구보다 꽤 낮은 감이 있다. 그리고 다치바나는 아직 그 스트라이크존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코스를 엄밀히 확인해야 한다.(p.57)

 

  2구가 방금 전에 볼이라는 판정을 받은 공과 같은 코스로 들어왔다. 미트만 움직이지 않으면 아슬아슬하게 스트라이크인 코스다. 그러나 화이트삭스의 포수는 질리지도 않고 미트를 비틀었다. 곧바로 볼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불만을 토로했다.

  "들어갔잖습니까?"

  "자네가 미트를 움직였으니 볼이야."(p.140-141)

 

  선발 투수는 로테이션으로 등판하고, 심판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를 합쳐서 50개 구장의 경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특정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특정 심판이 구심을 보는 일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개막전 일구에 대한 의심스러운 판정으로 민감한 일본인 투수의 심리적인 문제와 결합하여 시즌 전체를 지배한다. 마운드에 오르는 제구력 투수는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로 약간의 차이를 주어 타구가 빗맞게 유도한다. 때로는 꽉 찬 코스로 승부하기에 스트라이크존은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같은 코스의 공에 대한 판정이 달라진다면? 투수는 흔들리고 더는 던질 곳이 없다. 그리고 시즌 내내 슬럼프와 겹쳐 악몽에 시달린다. 그때의 일구는 오심인가? 오심이 아닌가?

 

  마운드에 있는 투수보다 내가 더 잘 던졌다.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무엇하나 모자란 것이 없었다. 그날의 사건만 아니었다면... 나름대로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격렬한 세월을 보내며 이날을 기다려왔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무조건 "퇴장!"을 외쳤다. 작가는 세심한 글솜씨로 두 남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던지는 자의 처지에서 그리고 바라보고 판정을 내리는 자의 처지에서... 과거 이 둘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었던 것인가?

 

  소설은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서 팩트와 픽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야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제공한다. 심판, 선수, 감독, 언론에 대한 상황묘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탁월하고, 야구의 매력을 한층 고조시킨다. 작품에 대한 불만은 없으나, 다만 번역이 조금은 깔끔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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