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일구
시마다 소지 지음, 현정수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시마다 소지, 현정수 역, [최후의 일구], 블루엘리펀트, 2012. 

Shimada Soji, [SAIGO NO IKKYU], 2006.

 

  개인적으로 일본 미스터리를 읽거나 소개하면, 주위의 반응은 항상 싸늘합니다. 왜 그런 책을 읽느냐는 표정으로 차라리 고전을 읽으라는 비아냥 섞인 조언을 해옵니다. 언제부터 고전은 고상한 것이고 미스터리는 천박한 것이 되었을까요? 책에 대한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제목에 '살인'이나 '사건'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표지를 감추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신)본격 소설보다는 은유적인 제목의 사회파 미스터리를 더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읽으며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와 부조리를 다루어 변혁과 개혁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순수문학과 비교하여 가치 폄하되는 주위의 편견과 선입견을 만회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이 있습니다.

 

  시마다 소지는 1981년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화려하게 등단하여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미스터리의 거장입니다. [최후의 일구]는 '미타라이 기요시'가 등장하는 시리즈로, 미타라이는 탐정이 취미인 점성술사에서 작품이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능력이 조금씩 향상되어 이제는 점성술을 취미로 하는 IQ300의 명탐정입니다. 조금은 허황하지만, 지구 상의 대부분 언어에 통달했으며 취미는 클래식 듣기이고 어떤 이유에선지 커피는 마시지 않으며 대신 홍차 마니아입니다. 마치 셜록 홈즈와 존 왓슨처럼 미타라이 옆에는 이시오카 가즈미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라는 수식어, 그동안 발표한 작품... 등을 통해서 이번에는 잠시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닌 신본격 미스터리를 제대로 즐겨보자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았나 봅니다. 아니, 어쩌면 시마다 소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작품은 신본격보다는 사회파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회파를 좋아하는 처지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나, 신본격을 바라는 처지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서류가 날조되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는 이자제한법이라는 법률이 있어서 돈을 빌리 때의 이자 상한선은 15퍼센트로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그 회사는 40퍼센트의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 위법이라며 따라서 재판에서 이길 수 있다고요."

  미타라이는 고개를 저었다.

  "사유사항확인서라는 것이 '이자 제한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재판에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법원은 극단적인 서류 지상주의입니다."(p.43)

 

  [최후의 일구]는 하나의 단편과 하나의 중(장)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작품은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연관된 독특한 구성으로 입체적인 재미를 줍니다. 1장에서는 엉뚱한듯하면서도 천재성이 뚜렷한 탐정 미타라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전개하는 친구 이시오카에 대해서, 그리고 이들을 찾아온 어느 의뢰인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소설은 평면적이고 단순하며, 명탐정의 추리는 사건 해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무기력한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야구밖에 모르는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한 탓에 저에게 야구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는 행위였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연대보증을 서는 바람에 당시 4백60만 엔 정도의 빚을 지고 목을 매 자살한 뒤로는 그 마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프로야구입니다. 즉 저는 어머니를 위해 처음부터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그 마음가짐으로 매일 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으로도 돈을 위해 야구를 하는 거라고, 야구로 돈을 벌 거라고 똑똑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p.81-83)

 

  이것이 정말 최후의 일구다. 내 생애 최후의 일구. 죽은 내 아버지를 위해서, 죽은 다케치의 아버지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지상에서 영원히 매장된 다케치의 천재성을 위해서. 내 야구 인생 마지막 추도식을 겸한 공을, 지금 던져 보이겠다!

  140킬로미터를 내봐! 라고 자신에게 소리쳤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던져야 한다. 20여 년간의 야구 인생도 오늘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앞으로 영원히 어깨가 망가진다고 해도 상관없다.(p.258)

 

  2장에서는 야구로 인생을 살아온 두 선수의 안타까운 운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부업체와 연관되어 자살한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야구 선수가 되어 집안을 일으키고자 했던 다케타니 료지, 하지만 프로의 벽은 매우 높기만 합니다. 평생 야구를 사랑하고 열심히 했지만, 한 번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2류 투수의 슬픈 인생. 그는 아버지를 위해, 친구를 위해 최후의 일구를 던집니다.

  타고난 재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4번 타자 다케치 아키히데, 하지만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선수는 어떤 이유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벌입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최후의 일구]는 다시는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 야구 선수의 기나긴 고백입니다. 두 젊은이의 노력과 성공, 좌절과 복수가 이야기를 지배합니다. 탐정 미타라이는 숨겨져 있습니다. 불법 대부업의 폐해를 고발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밀실 화재라는 트릭이 있고, 복수의 집념이 있습니다. 작가의 빼어난 글솜씨와 번역의 탁월함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인생이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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