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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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혼다 테쓰야, 한성례 역, [스트로베리 나이트], 씨엘북스, 2012.

Honda Tetsuya, [STRAWBERRY NIGHT], 2006.

  일본 미스터리에서 범죄소설과 경찰소설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경찰소설은 특유의 클리셰가 있다. 남성 중심으로 마초적인 성격이 강하고, 계급 간의 갈등이 있으며, 수사 회의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경찰 한 명 한 명이 유닛으로 배정된 지역을 탐문하고, 범인을 코너로 몰면서 생기는 헛발질... 동료애와 사명감 같은 게 있다. 도쿄 도 경시청 수사 1과 경위 히메카와 레이코를 주인공으로 하는 혼다 테쓰야의 소설 [스트로베리 나이트]는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을 앞세운다.

  경찰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계급 사회다.

  경찰 세계에는 일반 회사의 직급과 다르게 계급이 아홉 단계로 이루어진다. 말단에서부터 순경, 경사, 경위, 경감, 경정, 총경,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순이다. 관할서 서장은 경찰청으로 따지면 과장과 같은 계급이다. 경시청의 주요 부장은 각 현경의 본부장보다도 계급이 높다.

  계급은 처음 만난 사이라도 서열의 상하 관계를 명확히 하고 명령 계통의 신속한 확립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앞으로 관할서가카메아리 서와 도쿄 도 경찰 본부인 경시청이 합동으로 꾸리는 수사본부도 이 계급 체계가 있기에 올바르게 기능한다.(p.24-25)

  강력팀을 이끄는 주인공은 과거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경찰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 그녀는 남다른 감각으로 사건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하나씩 풀어간다. 여기에는 요즘에 유행하는 페미니즘하고는 거리가 있다. 경찰이라는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한 여성이 이런저런 핍박과 제한을 이겨내고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다는 슈퍼우먼의 이야기가 아니다. 레이코는 여성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매력이 있다. 다른 수사관은 논리적인 정황과 물증으로 사건을 끼워 맞춰간다면, 그녀는 감으로 예측하고 공간을 채워간다.

  레이코는 피해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입술이 닿을 만큼 최대한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다.

  "또 시작이네"

  코미네가 '변태'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얼굴로 말을 뱉었다. 하지만 그것은 레이코 식으로 행하는 피해자와의 소통 방법이었으며 빠뜨려서는 안 될 의식이었다. 누가 뭐라든 거르지 못한다.

  '알려줘. 당신이 마지막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내게 알려줘'(p.30)

  낚시터 수풀 사이에서 파란 천막과 비닐 끈으로 묶인 시체가 발견된다. 면도칼 혹은 커터 날에 의한 경동맥 절단, 마치 어떤 의식의 제물이라도 된 것처럼 시신의 복부는 절개되었다. 감식반이 출동하고, 경찰은 2인 1조가 되어 증거를 수집한다. 수사본부가 세워지고, 수사 회의에서 정보를 공유한다. 공을 세우기 위한 노력, 팀원 간의 경쟁... 사건을 조속히 해결해야 부담을 덜 수 있다. 만약 복부의 절창이 부패 가스가 차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면, 유기 장소가 수풀 사이가 아니라 물속을 목적으로 했다면... 낚시터를 뒤져야 한다.

  언제든 한결같았다. 오쓰카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거나 큰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직접 공을 세운 적은 없었다. 오쓰카가 한 일을 꼽자면 결백한 인물을 용의자 목록에서 한 사람씩 삭제하는 작업뿐이었다. 사소한 작업이었지만 항상 누군가가 지켜보고 의미 있게 평가했다.

  지금은 그런 작업을 왜 했는지 이유도 충분히 알았고, 조직 수사에서 자기가 했던 일의 가치도 정확히 이해했다. 말하자면 소거법이었다. 누군가는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런 위치에 있는 한 범인 체포에 직접 공헌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죄 없는 사람을 밝혀내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바깥 구멍을 메우는 작업을 맡아야 한다. 오쓰카는 그것이 자기 일이라고 믿었다.(p.178)

  기존의 범죄소설이 영웅적인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면, 경찰소설은 조직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 범인이 아닌 사람을 하나씩 지워가는 소거법이 적용되고, 팀원들이 물어오는 증거를 포괄해서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정보를 모아서 취합하는 수사 과정이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등장하는 수사관의 성격이 분명하고 개성적이다. 하나의 살인사건으로 연쇄살인의 징후를 포착하고,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매월 둘째 주 일요일 밤마다 어디론가 외출한 흔적을 발견한다. 일명 스트로베리 나이트...

  '이것이 바로 경찰!'

  경찰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동료 의식은 단단했다. 평소에는 서로 시기하고 진급 경쟁에서 상대의 발목을 잡아도 동료 경찰이 위험에 처하면 하나로 똘똘 뭉쳐 구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경찰이었고 경찰 세계였다. 레이코는 이때 처음으로 그것을 실감했다.(p.215)

  연이어 발견되는 시체 더미... 누군가 잔혹한 살인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경찰은 대내적으로는 진급 경쟁으로 서로 앙숙인 것처럼 지내도 대외적으로는 서로를 보호하고 감싼다. 이것이 경찰 세계이다. 레이코는 이 세계에 들어오기를 간절히 원했고, 빠른 진급을 했으며, 지금은 연쇄살인을 추적한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과 현재를 살아가는 삶은 인간의 성장에 관해서이다. 소설은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평범한듯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의 매력과 카리스마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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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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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민경욱 역, [미등록자], 비채, 2018.

Higashino Keigo, [PLATINUM DATA], 2010.

  과거하고 비교해서 현대의 경찰 수사는 첨단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지문과 혈액형 대조에만 의존하던 과학수사는 CCTV 판독과 DNA 분석이라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작가의 상상력은 'DNA 프로파일링'을 말하고 있는데,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체모를 가지고 직접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등록된 DNA 데이터를 기반으로 친족 관계뿐만 아니라 얼굴, 신체 특징을 알 수 있다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우리 미래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문제는 없는 것일까? 영화 <플래티나 데이터>(2013.)의 원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미등록자]를 읽었다.

  "내 상상은 여기부터야. 그녀가 진찰받은 병원이 본인에게 알리지 않고 무단으로 DNA 샘플을 자네 연구소에 제출하고 있다. 그 병원만이 아니라 몇몇 병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자네 연구소는 방대한 DNA 데이터를 갖추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위법행위이고, 거기 기초해 이뤄진 수사는 위법수사일 뿐이지. 그래서 나스 과장이 그렇게 말한 거야. 처음 용의자를 추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어때, 내 상상이?"(p.35)

  DNA 프로파일링을 완성하려면, 전체 인구의 유전자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범죄 해결과 예방을 이유로 개인 정보와 사생활이 간섭받는다면, 아니 국가의 통제라고 해아 하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시험 단계에서 경찰은 비밀리에 불법적인 데이터를 구축하고, 국회의 법안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세금 추징과 같은 국가의 정보 이용이고, 또 몇몇 사건을 해결하지만... 수사 1과 형사 아사마 레이지는 뭔가 거리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유감스럽지만 현 단계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번 샘플과 높은 일치율을 보이는 것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특수분석연구소에서는 이번 샘플을 'NF13'으로 등록했습니다."

  "NF?" 아사마의 입에서 절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NOT FOUND의 약칭입니다. 이번 건과 마찬가지로 일치 대상을 찾지 못한 경우가 이제까지 열두 건 있습니다. 이번이 열세 번 째입니다."

  "뭐야. 도움이 안 되네."

  "지난 열두 건 중 여덟 건이 데이터베이스가 확충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NF13의 정체 판명되 시간문제입니다."

  아사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정말 그럴까."(p.45-46)

  경찰청 특수분석 연구소 주임 분석원 가구라 류헤이는 DNA 정보 분석 시스템을 거의 완성해 놓았다. 그러나 한동안 사건 해결의 만능열쇠로 작용하던 DNA 프로파일링은 NF13... 열세 번째 NOT FOUND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DNA는 어느 누구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의 유전자 정보를 등록해 완벽하게 관리하는 일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천재 수학자의 프로그램 개발로 NF13의 정체 판명은 시간문제라는 의견 대립은 아주 팽팽하다.

  "유전자는 인생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이게 자네의 지론이지."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의 근간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때로는 수정합니다. 하지만 어떤 정보를 삶에 활용하고 어떤 정보를 버릴 것인지는 결국 본인에게 주어진 초기 프로그램에 달려 있습니다."

  "그게 유전자다?"(p.60)

  인간의 범죄는 결국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것일까? 범죄를 저지르는 마음의 움직임까지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가구라는 시스템의 완성을 앞두고 살인 누명을 쓴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 한 가닥, 유전자 분석을 하니 자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철저한 과학 신봉자였던 그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가 쳐 놓은 덫에 걸리게 된 것이다. 누명을 벗고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술은 작가가 의식해서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그 반대이다. 예술은 작가를 조종해 작품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 작가는 노예다."(p.72)

  도대체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구성 물질이 다르다는 것 외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마음이란 존재할까. 그럼 마음은 무엇인가. 뇌라는 물질이 만들어 낸, 행동을 조절하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그 증거로, 뇌가 고장 나면 정신에도 지장이 생긴다. 뇌 속 물질을 보충하면 우울증이 완화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구라는 자기 손을 살펴봤다. 몇 시간씩 며칠씩 계속 바라보며 장기와 뇌와 혈액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사색의 대상은 세포가 되었다.

  얼마 후 그는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그것이 유전자였다.(p.84)

  "범인이 정액을 남긴 이유 말이야. 지금까지는 BNA 수사 시스템 망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범인이 단순히 욕망에 따라 저지른 짓이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어. 정액을 남기면 경찰은 안심하고 초동수사를 게을리한다. 그 결과, DNA 수사 시스템뿐만 아니라 기존 수사망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p.260)

  누명을 쓴 도망자와 뒤를 쫓는 경찰 이야기는 스릴러와 로드 무비를 연상하게 한다. 유전자 분석 외에 다중인격 그리고 뇌를 전기 자극하여 쾌감을 얻는 도구, 과학 수사의 명과 암은 다소 철학적이다.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기술 문명, 인간과 기계의 근본 차이에 관한 질문, 유전자의 영향력... 여기에서도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자유로운 생각의 유뮤, 이것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척도이다.

  어느 시대나 특권층은 존재하는 것인가 보다. 정치가와 고위직 사람들은 유전자 등록 시스템 안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혹시 모를 범죄와의 연결성을 근원부터 차단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회 문제를 여실히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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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지음 / 광화문글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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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의경, [콜센터], 광화문글방, 2018.

제6회 수림문학상

  직업은 신으로부터의 소명이라는 인식으로, 나는 직업으로 사람을 가리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직업의 의미는 돈을 버는 경제활동인 동시에 자아의 실현이고 봉사의 기회라고 한다. 모두 다 대통령일 수 없고, 또 모두가 청소부일 수 없듯이... 사회가 굴러가는 울타리 안에는 어느 하나 소홀한 것 없는 다양한 직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기 일을 부정하고 하루라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청춘이 있다. 1588 번호로 시작해서 전국 어디서나 주문할 수 있다는 유명 피자의 콜센터 직원들은 인격을 파괴하는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한 소설 [콜센터]는 우리 시대 젊음의 생존 투쟁, 꿈과 사랑을 향한 처절한 도전기이다.

  강주리

  우용희

  최시현

  박형조

  하동민

  시대의 반영이라는 현실감과 함께 독특한 구성이 매우 돋보이는데,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십 대 다섯 명의 남녀는 하나씩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신체 어디에 장애가 있거나 남이 다 가는 대학을 가지 못한 것이 아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졸업 후에도 취업 준비를 집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강주리는 취업을 준비하며 그나마 앉아서 일하기에 육체 피로가 적을 것이라는 이유로 콜센터에 들어왔다. 그러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절대 만만치 않다. 우용희는 밥벌이를 위해 주중에는 콜센터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도서관을 찾는다. 집안의 도움으로 일주일 내내 도서관에서 살았던 남친은 대기업에 들어가고 둘의 관계는 조금씩 서먹해져 간다. 최시현은 아나운서를 꿈꾸고 있다. 콜센터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를 가졌지만, 900대 1의 경쟁률을 뚫기에는 점점 한계가 느껴진다. 박형조는 두 해를 콜센터에서 일하고 나서 모은 돈으로 한 해를 공무원 시험에 집중할 예정이다. 그에게 연애 감정은 사치이고 낭비이다. 하동민은 콜센터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피자 배달을 한다. 밀려드는 주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누빈다.

  콜센터 구성원은 80퍼센트가 대학생과 휴학생 그리고 졸업한 지 얼마 안 되는 취업준비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머지를 서른 살 이상의 미혼 여성과 아줌마, 그리고 여고생이 차지하고 있었다. 여고생의 경우 부모동의서가 있어야 한다는데 엄마 도장을 슬쩍해 찍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눈치였다. 지금처럼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에는 여고생까지 아쉬워할 만큼 콜센터는 인력 이탈이 잦았다.(p.9)

  전광판은 시간 단위로 카운트가 되는데 전화를 많이 받는 순서로 이름이 떴다. 한 시간 동안 14통의 전화를 받자 2등이었던 주리의 이름이 1등 자리로 올라섰다. 주리는 후름라이드를 타고 높은 곳에서 거침없이 빠르게 내려온 것처럼 짜릿했다. 1등이라니. 무언가에서 1등을 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금세 침울해졌다. 서류 통과도 못하고 있는 취준생 처지라 고작 이런 것에 기뻐하는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p.12)

  콜센터는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직원을 압박 관리한다는 것, 콜센터에 근무하는 대부분은 대학생과 휴학생 그리고 취업준비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연말에는 인력 이탈이 잦다는 것, 직원들은 쉬는 시간이면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 콜센터는 빨리 그만두고 싶으나 섣불리 그만둘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서이다. 나의 이십 대는? 그 연장선에 서 있는 현재의 삶은? 소설 안에서의 나는 어디에서도 탈출구를 찾을 수 없다.

  "인내심이겠지."

  용희 생각에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그야말로 인내심 말고는 없었다.(p.26)

  동민이 사장에게 오만 정이 떨어져나간 것은 사실 한참 되었다. 사장이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라는 사실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헬멧은 운전하는 데 방해가 되니 눈비 오는 날에만 쓰라고 하는 인간이었다. 그래도 뭔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서 지금껏 붙어 있었다. 사장의 피자는 전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맛이었다. 언젠가는 베스트피자를 넘어서는 피자 체인점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우습지 않을 정도로 피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 같은 체인점 피자인데도 사장이 만든 피자는 어딘가 달랐다. 동민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지금까지 버텼지만 그 무언가는 결국 아르바이트생들의 땀과 눈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p.96-97)

  잠시 희망이라는 게 있었던 것일까? 아니 막연한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청춘을 담보로 다른 누군가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등장하는 다섯 인물은 자기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인내심 하나로 귓가에 파고드는 감정의 배설물을 홀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 존중받기를 원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전쟁 같은 폭풍 주문을 예견하는데, 이들은 짜릿한 일탈을 계획한다.

  여전히 주리의 몸속에서 두 개의 마음이 충돌했다. 여기만큼 몸이 편안한 일자리도 없다는 마음과 지금 당장 그만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하지만 주리가 선택한 것은 형조와 함께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p.110)

  주리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말했다.

  "그냥 좀 멈추고 싶었어. 건전지처럼 기 빨리는 순간을. 콜센터에서 일하는 동안 내내 그랬거든. 이게 대체 뭔가. 돈을 받는다는 것 말고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게 뭔가. 그저 돈을 벌려고 시간을 버리고 있다. 낭비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 청춘을 이곳에서 낭비하고 있다......"(p.149)

  "아무런 의미를 못 찾겠어. 콜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깎여 나가는 것 같아. 그리고 다시는 깎여 나간 것들을 보충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무리 애써도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어. 그래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었어. 더 이상 깎여 나가지 못하게."(p.180)

  몸도 마음도 멍투성이, 목소리 폭력으로 상처받은 영혼... 무엇보다 다른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청춘의 신음이 귓가를 울린다. 우리는 왜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을 무시하게 된 것일까? 개인적으로 두세 가지가 떠오르는데... 하나는, 부동산 정보를 제공한다는 텔레마케터의 무차별적인 스팸 전화가 콜센터의 이미지를 깎아내렸다. 다른 하나는, 무한 서비스 경쟁으로 소비자의 목소리에 무조건 귀 기울여야 한다는 사업 방침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콜센터에 전화질하는 미친 변태들이 있다...

  우리 시대 청춘의 고뇌는 아련하고 애잔하다. 그들 모두 꿈을 이룰 수 있기를...

  앞으로 실생활에서 콜센터 직원의 사소한 실수는 그냥 넘어가는 것으로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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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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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쓰이치 외, 김선영 역, [메리 수를 죽이고], 비채, 2018.

Otsuichi, [MEARISU WO KOROSHITE](GENMU KOREKUSHON), 2016.

  작년 말과 올해 초에 이어서 읽은 책이다. 오쓰이치는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이름 중의 하나인데, 드디어 그를 만났다. 누군가는 특유의 잔혹함(?)이 없어서 오쓰이치가 맞느냐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단 한 권으로 작가를 평가할 수 없지만, 여기에는 따뜻함과 힐링이 있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환몽 컬렉션'이라는 부제와 함께 오쓰이치 외에 다른 이름이 보이는데, 같은 작가의 다른 필명이라고 한다.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복잡함으로...;; 소설 [메리 수를 죽이고]는 7개의 단편 모음이다.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

  염소자리 친구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

  메리 수 죽이기

  트랜스시버

  어느 인쇄물의 행방

  에바 마리 크로스

  살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있는가?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는 친구들과 약에 취해 버둥거리고 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으로 잉크병이 전해진다. 어린 시절에 훌쩍 사라진 아버지의 사연은 죽음조차도 무덤덤하였지만, 잉크를 가지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으로 시작된 변화와 성장의 기회였다. '메리 수 죽이기'는 현실의 도피처로 창작물의 세계에서 꿈꾸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동아리 선배의 조언으로 자기 글을 쓰기 위해 메리 수를 죽이기 시작하는데, 부족한 현실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행복을 찾는다. 메리 수는 일본에서 2차창작 관련 용어 중 하나로, 작가의 소망이 불쾌할 정도로 투영된 오리지널 캐릭터를 가리킨다.

  나는 몇 년 전, 잉크병 뚜껑을 열고 글씨를 쓰고 싶어졌던 순간의 충동을 떠올렸다. 나는 잉크병 뚜껑을 열었다. 동시에 글씨를 쓰고 싶어졌다. 글을 풀어내고 싶어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갑자기 생겨나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어쩌면 성장이란 시간의 흐름이 가져오는 필연일지도 모른다.(p.23)

  2차창작소설은 내게 인간관계 그 자체였다. 사이토 로빈슨이나 사이온지 선배, 신도 선배처럼 <천개의 문> 필자들과 화제를 공유하고, 난생처음으로 내가 속해도 될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메리 수를 쫓아내야만 한다. 내 문장에서. 내 소설에서. 메리 수라 불리는 소녀, 그 개념적 존재를 죽여서 지워내지 않는 한, 나는 성장할 수 없다.(p.187)

  학교 폭력과 따돌림의 문제, 피해 학생은 자살이 아닌 가해자를 살해한다. '염소자리 친구'는 살인자를 벽장 안에 숨겨주는데, 그동안 당한 아픔을 외면했기에 그 순간만큼은 함께하고 싶었나 보다. 모진 고교 생활에서는 희생양이 필요한 것일까? 살인사건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은 냄새나고 불우한 소년이 반에서 일어난 만년필 분실과 따돌림 사건을 한 방에 해결한다.

  일 년에 한 번, 사제가 두 마리의 숫염소를 골라 한 마리를 신에게, 나머지 한 마리를 아사셀에게 바친다. 신에게 바친 염소는 속죄에 사용할 피를 얻기 위해 도살한다. 다른 한쪽, 아사셀에게 바친 염소는 사제가 모든 사람들의 죄를 고백한 뒤에 죄를 짊어지워 황야로 추방한다.(p.93)

  무나카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는데 지금까지도 친구가 없다. 그가 미움을 받는 이유는 명확한데, 가까이 다가가면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며칠씩 목욕을 안 하는지 머리카락은 기름으로 번들거리고 손톱 사이에는 새까만 때가 껴 있었다. 옷은 누레서 누가 봐도 며칠, 어쩌면 몇 주는 빨지 않은 것 같았다. 자리를 바꿀 때 그 옆에 앉게 된 여학생이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무나카타가 쩔쩔 매기도 했다.(p.130)

  '트랜스시버'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쓰나미로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남자의 그리움에 관해서이다.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아들의 트랜스시버에서 아빠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마음속에는 죽은 아내와 아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느 인쇄물의 행방'은 3D 프린터 기술의 미래를 말하는데, 기술적인 가능성 외에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에바 마리 크로스'는 인체 악기가 등장하는데, 사라진 연인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으로 노심이 융해된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막연하고 어렴풋한 불안을 끌어안은 채로, 뭐 괜찮겠지, 하고 암시를 걸며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경계란 항상 모호해요. 각자 자기만의 현실 인식에 따라 믿는 것을 스스로 정의해갈 수밖에 없죠."(p.224)

  "그럼 책도 3D 프린터로 만들면 될 텐데."

  그의 제안을 풀어 말하면 이러하다. 자택에 제본용 3D 프린터와 책의 재료를 보관해두고 읽고 싶은 책의 데이터를 다운로드한다. 전자책처럼 텍스트만 담긴 데이터가 아니라 장정이나 재질 등 단행본을 구성하는 모든 정보가 담긴 데이터다. 그것을 3D 프린터로 출력한다. 펄프 입자나 그와 비슷한 재료를 차곡차곡 겹쳐 활자가 인쇄된 종이로 묶은 책을 집 안에서 손쉽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 방법이라면 공장 생산으로는 실현할 수 없었던 복잡한 장정도 가능해진다. 전자서적과는 달리 묵직한 책으로 수중에 남을 것이다.(p.248)

  "정말 있었어. 그걸 만져도 보았고, 품에 안아보기도 했네. 묘하게도 은근히 따스하고 마치 피가 통하는 것처럼 보드라웠어. 품에 안고 있으면 웅크린 아이를 안고 있는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네.(p286)

  오쓰이치라는 이름을 대표로 해서 모인 환몽 컬렉션은 종합선물세트를 떠오르게 한다. 성장동화, 판타지, 스릴러, 추리, SF, 호러, 괴담...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수 있다. 단편 소설인데도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끝을 분명하게 매듭지어서 좋았다. 과연 작가의 상상력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기도 했고, 현실의 아픔을 함께 이야기해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잉크병 하나로 변화와 성장을 시작하게 된다는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가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현실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 아닌가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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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애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7
마리 유키코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마리 유키코, 최고은 역, [골든애플], 비채, 2015.

Mari Yukiko, [FUTARI GURUI], 2015.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 보는 눈이 생겨서일까? 어쩌면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요즘에는 무난한 성격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좋은 말로 하면 캐릭터이고, 특이한 개성으로 하나하나 맞춰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모난 곳 없이 쿨하게 살려고 하는데, 나를 겪는 사람은 이미 고달파하는지도 모르겠다. 마리 유키코의 소설 [골든애플]은 '감응정신병'이라는 정신병리학 증상을 소재로 해서 8개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로토마니아

  클레이머

  칼리굴라

  골든애플

  핫 리딩

  데자뷔

  갱 스토킹

  폴리 아 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을 공부한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단편의 제목은 하나하나 정신병리학 증상 용어이다.

1. 에로토마니아(Erotomania)는 색정광, 또는 연애 망상이다. 접촉이 거의 없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연애 감정을 가지는 걸 넘어 자신이 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망상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증상으로, 유명인이나 아이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2. 클레이머(Claimer)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부당한 불만을 호소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기업 측에서 은어로 쓰던 용어가 일반화된 것으로 시비가 목적인 '병적인 클레임형'과 보상이 목적인 '공갈형'으로 나뉜다.

3. 칼리굴라(Caligula Effect)는 금지하면 더욱 그 행위를 하고 싶어지는 심리 상태이다. 이를테면 '절대로 보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더 보고 싶어지는 심리를 가리킨다. 하드고어포르노 영화 <칼리굴라>가 일부 지역에서 상영금지처분이나 '절대로 보지 말라'라는 평가를 받은 까닭에 오히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에피소드에서 유래한 말이다.

4. 골든애플 전설은 도시전설 중 하나로, 1970년대에 존재했다는 환상의 탄산음료이다. 발매된 흔적도 기록도 없는데 '골든애플'을 분명히 마시고 봤다는 증언이 끊이지 않는 까닭에 집단 최면, 또는 집단히스테리에 의한 착각, 또는 기억착오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2년에 정식으로 '골든애플'이 발매되었다.

5. 핫 리딩(Hot Reading)은 영감, 초능력, 점술 등을 보여줄 때 스태프나 탐정을 통해 사전에 상대의 정보를 조사해두고, 마치 자신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상대에 대해 읽어낸 것처럼 꾸미는 수법이다. 사전 조사 없이 차림새나 말투, 또는 사소한 질문이나 대화를 통해 상대에 대해 알아맞히는 화술은 콜드 리딩(Cold Reading)이라고 한다.

6. 데자뷔(Deja Vu)란 기시감으로, 처음 본 풍경이나 사람 등을 전에 어디선가 본 것처럼 느끼는 기억착오이다. 피곤할 때 자주 겪는 현상이라고 한다.

7. 갱 스토킹(Gang Stalking)은 집단 스토킹이다. 사람을 고용해 표적에 대한 망상, 악평, 문제 등을 날조하고 연출해서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리거나 병원에 입원시키는 행위이다... 단, 피해자의 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8. 폴리 아 드(Folie a Deux)는 감응정신병, 또는 이인정신증이라고 한다. 망상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거나 같이 생활하다가 정상적인 사람까지 망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분신사바나 악령 퇴치, 사이비 종교에 의한 집단히스테리도 이에 포함된다.

  "아, 네. ......그래서 지금은 패션잡지 <프렌지>의 편집자로 하루나 미사키 작가님의 [당신의 사랑에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바야시 씨가 담당하고 있는 [당신의 사랑에게]는 어떤 소설입니까?"

  "훌륭한 소설이에요.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숭고함으로 가득 찬, 용기와 감동과 빛이 흘러넘치는 대단한 걸작이죠."(p.316)

  각각의 단편은 제목의 영향으로 각각의 사건을 다르게 다루고 있지만, 도쿄 근교의 연립 맨션을 중심으로,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얽히고설킨 인간사를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같이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잡지 <프렌지>에 수록된 연재소설 [당신의 사랑에게]를 읽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숭고함으로 가득 찬 소설이라는 찬사가 있지만, 정작 그 글을 읽는 독자인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불안하고 불행하고 침울하다. 화려한 불빛을 뒤쫓다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이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한계를 넘어서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파멸한다.

  소설가는 사랑하는 마음을 소설로 썼다고 해서 스토커가 휘두른 칼에 찔린다. 유명 백화점의 식품매장에서는 잘린 손가락이 발견되고, 시내의 한 맨션에서는 자꾸만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회사 인터넷으로 올린 소문 하나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아내의 존엄사를 두고 남편의 행동이 수상하다. 살인사건의 목격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귀에서 자꾸 지이이익~ 도청하는 소리가 들린다. 패션지에 수록된 연재소설 [당신의 사랑에게]는 무조건 해피엔드로 끝나야 한다.

  살짝 난해함이 없지는 않으나 동시대에 사는 인물과 사건의 연결을 찾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인간의 심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며, 정신병리학의 증상을 나열하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대인의 압박과 스트레스? 복잡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증상으로 나를 진단하기? 소재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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