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가, 나의 악마
조예 스테이지 지음, 이수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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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 스테이지, 이수영 역, [나의 아가, 나의 악마], RHK, 2021.

Zoje Stage, [BABY TEETH], 2018.

  미스터리는 좋아하지만, 공포와 호러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연관되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조예 스테이지의 소설 [나의 아가, 나의 악마]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읽었는데, 감정의 소모가 지나쳐서 견디기 어려웠다. 기분 나쁜, 소름 돋는 경험이다. 우리 속담에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다. 일곱 살을 전후로 제일 말썽을 많이 일으키는 때를 뜻한다고 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일곱 살 소녀는 영악함을 넘어서 사악함을 드러낸다. 눈에 띄는 것은, 모든 갈등을 심리적으로 서술한다.

  작가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가정 내에서 공포에 압도당한 여자에 관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연장선이라고 해야 하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미국 문화에서 가정, 가족애는 중요한 화두이다. 아빠에게는 천사이고, 엄마 앞에서는 악마인 딸은 가족을 서서히 파괴한다. 부모는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다.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결국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시작부터 결말이 궁금하다.

  그들은 체벌을 하지 않았다. 알렉스는 고함조차 지르지 않았다. 해나 앞에서 욕설을 할 때는 스웨덴어로만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밀어붙이고 있었다. 수제트는 잠갔던 문을 확 잡아당겼다.

  "대체, 빌어먹을, 왜! 해나, 내 말을 왜 이렇게 안 듣는 거야?"

  소녀는 팔을 늘어뜨리고 서서 자신의 엄마를 찬찬히 보았다. 그러더니 눈이 뒤집어지며 흰자만 남았다. 눈동자가 있던 곳에 죽음과도 같은 허무만이 남았다.

  "왜냐하면 나는 해나가 아니니까." 소녀가 속삭였다.(p.58-59)

  해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언어 치료사와 청각 전문가를 만나 검사했을 때, 아무런 이상은 없었다. 지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또래 다른 아이보다 똑똑하다. 해나는 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데, 아빠 알렉스는 유일하게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와의 사이를 갈라놓는 마녀이고, 아빠는 마녀의 주문에 걸려 있다. 그래서 엄마를 죽이고, 아빠를 구해 둘이서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수제트는 어린 시절에 아빠가 죽고, 우울증에 걸린 엄마로부터 방치되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크론병으로 수술을 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남편 알렉스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드디어 제대로 된 삶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기를 원한다.

  욕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있었지만 벌거벗고 있으니 무방비 상태가 된 기분이었다. 샤워하고 있을 때 해나가 커다란 가위를 휘두르며 들어와 찔러 죽일 것 같은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끔찍하도록 신파적인 근심이었다. 더구나 마리앤 뒤포세는 지나간 역사 속의 아주 사소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1679년 열여덟 살 때 프랑스에서 마녀로 화형 당한 마지막 여성이었다. 이 10대 소녀가 조금이라도 마녀 비슷한 일을 했는가 하는 점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해나가 이 여성을 알뿐 아니라 웬일인지 존경하게 되었다는 게, 아이의 정신을 일깨웠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였다.(p.98)

  해나는 엄마의 보석을 숨기고, 베이비시터를 괴롭히고, 마트에서 다른 아이를 때리고, 학교에 가기를 거부하며 으르렁거린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마녀사냥으로 화형 당한 마리앤 뒤포세를 흉내 내어 괴기스러운 말을 하고... 점점 수제트를 위협한다. 답답한 것은 알렉스의 태도인데, 그의 눈에 딸은 그저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일 뿐이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정말 똑똑한 아이야"라고 말한다. 역대급 고구마이다.

  "빌어먹을. 왜 나는 정상적인 딸을 가질 수 없는 거야?"(p.227)

  첫 주가 가장 힘들었다. 마시즈에서 작별을 고한 후 발작적으로 터져 나오는 킥킥거림을 그럭저럭 혼자 있을 때만 할 수 있게 됐다. 안도감과 믿기지 않음, 수치심이 때로 터져 나왔다. '정말 이런 일이 내게?'라는 행복하고도 슬픈 감정이 북받쳤다. 둘째 주가 되지 부모로서의 번민이 많이 누그러졌다. 그래서 시간이 초현실적으로, 해나의 부재로 인한 간헐적 비탄의 기진맥진한 박자가 아닌, 정상적인 속도대로 흘러갔다.(p.407)

  동양적 사고에서는 효(孝)를 강조하며 부모가 우선인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북플라자, 2017.)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얼굴을 크게 뒤덮은 멍 때문에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라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좋은 부모, 사랑하는 가족, 특별한 아이를 강조하며 회복과 치료를 갈망한다. 하지만 이것이 올무가 되어 숨통을 조여온다. 자녀를 포기할 수 없는 현실적인 부모의 심리를 아주 잘 묘사하고, 사이코패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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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회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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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 심정명 역, [일곱 개의 회의], 비채, 2020.

Ikeido Jun, [NANATSU NO KAIGI], 2012.

  작년, 2020년은 이케이도 준의 해였다는 생각이다. [한자와 나오키](인플루엔셜, 2019.) 시리즈에 이어서 [변두리 로켓](인플루엔셜, 2020.) 시리즈의 열풍(?)이었다고 할까... 독자의 호평 일색으로 꼭 읽어보고 싶은 작가였다. 그래서 부담 없이 선택한 것이 소설 [일곱 개의 회의]이다. 기업 소설? 경제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도쿄겐덴이라는 중견기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곱 개의 회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이 있다. 문득 작가의 이력이 궁금한데... 기업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가 미스터리 못지않은 힘을 지니고 있다.

  '八角'이라는 한자는 원래 '야스미'라고 읽지만 사내에서는 어쩐지 '핫카쿠'라 불렀다. 이유는 모른다. 나이는 하라시마보다 다섯 살 위인 쉰 살. 어디에나 있는 무기력한 회사원의 전형 같은 사람이었다. 회의만 열렸다 하면 좋다고 꾸벅대는 만년 계장이다.

  일단 출세가도에서 벗어나 옆길로 빠지고 나면 무서울 게 없다는 듯이 기타가와 앞에서도 당당하게 졸았다. 그 정도면 불량사원으로서 심오한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잠귀신 핫카쿠'다.

  핫카쿠가 기타가와를 겁내지 않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핫카쿠는 기타가와 부장과 동갑인 데다 입사 동기였다.(p.12)

  대기업 소닉의 자회사인 도쿄겐덴은 영업부, 경리부, 제조부, 고객 관리실... 각 부서는 연일 회의의 연속이다. 영업부 정례회의는 매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영업부장은 매출 실적을 보고받으며 소리를 지른다. 목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법도이다. 영업2과의 형편없는 실적하고 비교해서 영업1과는 늘 승승장구이다. 모두가 긴장하는 회의 현장에서 매번 팔짱을 끼고 조는 사람이 있다. 만년 계장 야스미 다미오, 사내에서는 잠귀신 핫카쿠라고 불린다. 그는 영업부장과 입사 동기이다.

  "회사는 어디나 똑같아."

  핫카쿠가 단언했다. "기대하면 배신당하지. 대신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당하는 일도 없어. 나는 그걸 깨달은 거야. 그랬더니 희한한 일이 일어나더군. 그때까지는 그저 힘들고 괴롭기만 했던 회사가 아주 편안한 곳으로 보이더라고. 출세하려 하고 회사나 상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니까 괴로운 거지. 월급쟁이의 삶은 한 가지가 아니야. 여러 가지 삶의 방식이 있는 게 좋지. 나는 만년 계장에 출셋길이 막힌 월급쟁이야. 하지만 나는 자유롭게 살아왔어. 출세라는 인센티브를 외면해버리면 이렇게 편안한 장사도 없지."(p.47)

  영업부장하고 동갑에 입사 동기, 한때 엘리트 사원으로 이름을 날리던 남자가 이제는 출셋길에서 벗어나 아니 출세를 외면하고 만년 계장에 머물러 있다. 사자 같은 영업부장도 핫카쿠에게는 관대하고... 과거의 사연이 궁금하다. 회의가 끝나고, 최연소 과장 타이틀을 가진 영업1과장은 그동안 참았던 화를 터뜨리며 핫카쿠에게 폭언을 한다. 안하무인 핫카쿠는 이것을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위원회에 제소하는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온다. 다음 영업부장의 물망에 오르던 영업1과장은 직위 해제되고, 인사부에서 발령대기 명령이 떨어진다.

  핫카쿠가 사카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했는지, 왜 기타가와가 사카도를 경질하려 했는지, 왜 임원회의가 그것을 승인했는지. 이제 전부 이해되었다.

  "꽃 같은 1과, 지옥 같은 2과라......"

  입 밖으로 내어보니 이 말에는 아무래도 허무한 울림이 있었다.

  화려한 실적은 과연 무엇으로 지탱되었던가.

  핫카쿠는 회사라는 조직의 추악한 무대 뒷면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제 그 무대 뒷면을 지탱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p.49)

  1화 마지막 장에서의 심한 충격! 핫카쿠는 새로 온 영업1과장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소설을 끝까지 끌고 가는 쟁점이자 힘이다.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비밀... 화려한 영업실적의 이면에는 아주 추악한 민낯이 있었다. 영혼을 맞바꾸어야 하는 출세가도를 핫카쿠는 오랫동안 홀로 거부하고 있다. 밝혀지면 기업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되는... 작가는 현대의 기업윤리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마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경합이라는 제도는 발주자 측에만 유리하게 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경쟁사가 저렴한 가격을 들고 오리라는 생각만으로도 네지로쿠 같은 영세기업은 통상보다 몇 할쯤 싸게 입찰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경합으로 가져가서 비용 절감을 노리는 사카도의 의도가 뻔히 보이지만, 이 일을 따내지 못하면 네지로쿠의 매출이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p.69)

  원가 절감이라고는 하지만 나사는 원래 수주 단가가 싼 데다 오래 계속한다고 싸게 만들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결국 하청의 수익을 대기업이 빨아올리는 구조, 그저 한쪽의 이익을 다른 쪽의 이익으로 갈아끼울 뿐인 구조를 강요당하는 것 아닐까. 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하청은 적자가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제조업은 뿌리부터 무너져내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월급쟁이인 구매 담당자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p.87-88)

  오 년 동안 도쿄겐덴이라는 회사에서 유이는 주체성 없는 부품이었다. 시키는 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눈에 띄는 일 없이 그저 한결같이 일에 매진하는 말 없는 부품이었다. 회사뿐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은 부품이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키고 안정시키기 위한 편리한 부품.

  부품이 되어버린 것은 의사나 감정은 있어도 상황에 맞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헛되게 지나버린 나날은 이제 되돌릴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p.128)

  핫카쿠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옳은 건 옳은 거야.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 그 외에 뭐가 있어. 부정을 저지른 사람은 사카도이고, 너희는 그걸 은폐하고 있어. 나를 속여서 말이야. 넌 진심으로 네가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해?"(p.324)

  그런 기타가와에게도 모회사가 설정한 목표를 완수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그해 할당치를 달성하면 이듬해에는 소닉에서 더 높은 할당치가 내려왔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목을 조르게 되는 구조다. 부하를 질타할 뿐 아니라 자신도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던 기타가와조차 목표치 달성이 어려워졌다.(p.330)

  소닉 사장인 도쿠야마 이쿠오가 참석하는 회의를 임원들은 어전회의라고 불렀다. 중역이 대거 모이는 경우도 있고 필요한 최소 임원으로 진행될 때도 있다.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동적인 회의인데, 회의록이 작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역회의와 결정적으로 달랐다. 여기서 논의되는 내용은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는다. 참석자의 기억에만 남는다.(p.361)

  아버지가 말했다. "일이란 말이지, 돈을 버는 게 아니야.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면 즐겁거든. 그렇게 하면 돈은 나중에 따라와. 손님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장사는 망해."(p.365)

  "굳이 말하자면 체질일까요."

  핫카쿠는 그런 말을 했다.

  "체질?" 뜻밖의 말이다.

  "그러니까 반복되는 거죠."(p.386)

  일곱 개의 회의란? 영업부의 정례회의, (하청 중소기업의 임원회의), 근무 개선을 위한 환경회의, 경리부의 계수회의, 고객 관리실의 편집회의와 부서간 연락회의, 임원회의, 사장이 참석하는 어전회의이다. 이야기는 영업부를 중심으로 전개하는데, 처음에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던 부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에는 회사를 위협하게 된다. 영업부와 경리부, 영업부와 제조부의 알력... 원청과 하청의 불합리... 생산 원가와 제품 품질의 상관성... 열심히 일할수록 목을 조여오는 구조... 변하지 않는 체질... 기업의 부조리는 아주 생생하다.

  최근 코로나 시국에 일본을 보면, 연일 대 환장(?) 파티를 하고 있다. 그동안 우러러보았던 장인정신과 책임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우리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능력인데, 그들은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성장 위주로 상명하복의 경직된 기업문화... 이게 다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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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더니스 밀리언셀러 클럽 85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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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코마이어, 조영학 역, [텐더니스], 황금가지, 2008.

Robert Cormier, [TENDERNESS], 1997.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면 큰 거부감이 있다. 나의 아동-청소년기가 그렇게 유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로버트 코마이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고, 청소년 문학가로 소설 [초콜릿 전쟁](비룡소, 2004.)이 유명하다고 한다. 소설 [텐더니스]는 부드러움을 소재로 가출 소녀와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그동안 읽은 청소년 성장 소설은 매우 건전했는데, 수영이나 달리기... 등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부드러움을 향한 집착과 갈망을 이야기한다.

  나는 다시 그 갈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것은 아마 내게 부드럽게 대해주는 사람일 것이다.

  싱클레어 선생님은 언젠가 교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가지 단어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로 아름답게 느껴졌던 유일한 단어는 부드러움(tenderness)이었다.(p.22-23)

  로라(로렐라이 크랜스턴)는 집착이 강한 15세 소녀이다.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엄마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매번 남자가 바뀐다. 제대로 되지 못한 환경은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떠도는 생활로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다크 뮤직을 하는 가수에게 집착하고, 언젠가 우연히 만나 친절을 베푼 에릭을 사랑한다. 자기의 집착을 이루기 위해 집에서 나오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집착이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다.

  에릭은 고양이들부터 시작했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새끼 고양이였다. 그는 고양이들을 끌어안고 쓰다듬고 털 밑의 가냘픈 뼈의 감촉을 느껴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약하디약한 뼈들. 너무 세게 안거나 쓰다듬으면 그대로 분질러질 것 같은 놈들이었다. 처음에는 고양이들을 안고 쓰다듬어 주기만 했다. 너무 예뻐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쓰다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에릭은 두 팔로 고양이들을 끌어안고 두 손으로 얼굴을 잡은 다음, 그들의 몸이 부드럽게 꺾여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런 방식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 부드러운 느낌.(p.41)

  에릭 풀레는 몸에 학대의 흔적을 남기고 친모와 계부를 살해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는 부드러움을 갈망하며 세 명의 소녀를 더 죽였다.) 성인이 아니라 정상참작으로 소년원에 수감된다. 곧 있으면 18세이고, 3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데... 자유롭게 될 때까지 욕구를 감추어야 한다. 함정에 빠져서도 안 된다.

  제이크 프록터는 오리건에서만 26년을 경찰로 근무했고 그 후로는 이곳 뉴잉글랜드에서 20년을 일했다. 그는 온갖 역경과 훈장과 진급을 통해 끝내 경위의 직위를 얻어 냈다. 자신의 본능과 개 같은 부지런함이 가져다준 성공이었지만 그래도 제이크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오리건에서의 단 한 번의 치명적인 실수가 자신의 모든 성공들을 무위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p.67)

  제이크 프록터 경위는 46년의 경찰 근무를 마무리하는 단계이다. 이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의 눈에 연쇄살인이 포착된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소년원에 있는 에릭에게 몰입한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그의 눈은 속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추격전을 시작한다.

  살면서 지나친 집착을 한 적은 거의 없다. 대상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오히려 싫증을 잘 내는 편이다. 그래서 이 모양으로 사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로라, 에릭, 제이크 세 사람의 시선으로 옮겨간다. 수기식으로 기록해서 각 인물의 심리 묘사는 뛰어난데, 특히 집착과 갈망, 욕구와 몰입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로라는 친절함에 집착하여 에릭을 찾아 나서고, 에릭은 부드러움을 갈망하며 대상을 찾는다. 제이크는 에릭에게 몰입해서 새로운 범죄를 막아서는데, 얽힌 세 사람의 관계는 광적이다. 아름다운 로라, 친절한 에릭, 투철한 제이크... 이들은 모두 심리적으로 굶주려 있다. 제어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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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일격 밀리언셀러 클럽 136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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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블록, 박산호 역, [어둠 속의 일격], 황금가지, 2014.

Lawrence Block, [A STAB IN THE DARK], 1981.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 네 번째이다. 스커더는 전직 경찰로 (면허는 없이) 탐정 일을 하고 있다. 책의 중반에 경찰을 그만둔 이유를 언급하는데, 도망가는 범인을 향해 쏜 총알이 튕겨서 지나가던 여섯 살 여자아이를 죽게 했다. 그 뒤로 일을 그만두고, 집을 나와 가족과 떨어져 호텔에서 지낸다. 대부분의 스릴러 소설이 그러하듯 주인공 캐릭터가 눈에 띄는데... 그는 커피에 버번을 넣어 먹고, 알코올 중독자처럼 매일 술을 마신다. 수입이 생기면 성당에 들러 1/10을 구제 헌금함에 넣고, 기도는 하지 않는다. 셜록 홈즈하고는 다르게 직관적으로 움직이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1981년에 출간한 소설이기에 CCTV와 DNA 분석 같은 첨단 수사는 나오지 않지만, 발로 뛰는 수사로 복고적인 재미가 있다. 그는 항상 노트에 메모하고,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도서관과 기록보관소에서 자료를 찾는다.

  "그 살인자는 두 달 동안 여덟 명의 여자를 살해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집에 있는 여자들을 백주 대낮에 공격했죠. 피해자의 몸을 송곳으로 수도 없이 찔렀습니다. 그렇게 여덟 명을 죽인 후 그만뒀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9년이 지난 후 경찰에 잡혔습니다. 그때가 언제죠? 2주 전이었나요?"

  "거의 3주가 됐습니다."(p.13)

  "피츠로이 형사가 당신을 미쳤다고 했습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그 형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 겁니다."

  "그리고?"

  "대형 탐정 사무소와 달리 당신은 이 사건에 열정을 쏟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럴 때 당신은 한 번 물면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고요. 승산은 별로 없지만, 바버라의 살인범을 당신이 밝혀낼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p.23)

  얼음송곳이 살해 도구로 쓰인다는 것은 샤론 스톤 주연의 영화 <원초적 본능>(1992.)을 보고 처음 알았다. 여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9년 전 얼음송곳 연쇄살인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두 달 동안 여덟 명의 여자를 죽이고 범인은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전 순찰하는 경찰관에게 한 남자가 붙잡혔는데, 그가 당시의 범행을 자백한다. 문제는, 이 정신병자가 범행을 자랑하듯 하면서도 여섯 번째 바버라 에팅거의 살인은 자기 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알리바이 또한 분명하다. 희생자의 아버지는 스커더에게 진짜 범인을 찾아달라고 한다.

  시작은 매우 좋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술집의 풍경, 오래된 사건, 아버지의 원한, 거기에 사연 있는 전직 경찰관까지... 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방영하는 수사극을 보는 기분이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전개가 마음에 든다. 분위기가 익숙한데, 클리셰의 범벅이지만... 재미있다.

  "그 여자를 죽인 게 얼음송곳 살인자라고 생각하게 된 확실한 이유는, 뭐, 자네도 알고 있겠지."

  "눈."

  "그렇지." 그는 맞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피해자들이 눈을 찔렸어. 눈동자 하나에 한 번씩. 그 사실은 신문에 나온 적이 없어. 동네 사이코들이 가짜 자백으로 우리를 속이지 않도록 사건 정황의 한두 가지는 항상 비밀에 붙이잖아. 이번 거리 칼부림 사건에 이미 얼마나 많은 광대들이 자수했는지 자네는 못 믿을 거야."

  "그림이 그려진다."(p.30-31)

  "만나 보면 어떤 사람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수사의 대부분은 직감이에요. 사소한 점들을 모으고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인상들을 흡수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답이 마음속에 팍 떠오르죠. 셜록 홈즈와는 달라요. 적어도 나는 그랬어요."(p.112)

  "피넬은 죽은 사람의 눈에 그들이 죽기 전에 본 마지막 이미지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렇다면 피해자의 망막을 스캔해서 살인자의 사진을 확보할 수 있겠죠. 그자는 여자들의 눈을 망가뜨려서 그 가능성에 대비해 나름대로 조심하고 있었던 겁니다."

  "맙소사."(p.196-197)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기이함, 피해자는 하나같이 눈을 찔렸다. 여섯 번째 희생자도 눈을 찔렸고... 스커더는 의뢰인을 시작으로 단서를 모은다. 경찰 친구의 도움으로 사건 파일을 검토하고, 중앙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신문 기사를 찾는다. 사건 현장에 가서 이웃의 의견을 청취하고, 피해자가 다닌 직장에 간다. 사건 후에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편을 만나고, 피해자 여동생에게 연락한다... 오래전 일이고, 사건 자체의 충격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누비는 주인공의 활약은 아주 생생하다. 열정적이면서 인간적인 매력을 보이고... 사실과 드러나지 않은 진실은 엄연히 다르다. 현대하고는 달리 방문자를 맞이하는 태도, 길거리 범죄, 백인 사회에서 흑인을 보는 시선, 가족에 관한 메시지... 등 전형적인 미국 스릴러의 본모습이다. 그리고 9번 애비뉴 모퉁이 단골 바 암스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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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사쿠라기 시노, 양윤옥 역, [호텔 로열], 현대문학, 2014.

Sakuragi Shino, [HOTEL ROYAL], 2013.

제149회 나오키상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려서 야한 책을 읽고 싶었다. 일본의 색채가 물씬 풍기는... 서정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자극적이고 냉담한 이야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눈에 들어온 책이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 [호텔 로열]이다. 성에 관한 거침없는 묘사라기보다는 적당한 은유가 돋보인다. (여기에서 러브호텔이 어쩌고 하면, 또 네이버에서 유사 문서로 분류해 놓겠지...;;) 인생 사연이 곁들어진 문학적 관능미를 뽐내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최고의 단편을 하나 발견했고... 7개의 연작 단편 모음이다.

  셔터 찬스

  금일 개업

  쎅꾼

  거품 목욕

 

  별을 보고 있었어

  선물

  작가는, 어린 시절에 부친이 동명의 러브호텔을 경영해서 거기서 일하면서 자라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홋카이도 구시로시를 배경으로 하고, 호텔 로열이 등장한다. 각 단편은 호텔을 중심으로 인물의 관계가 얽혀 있다. 시간의 흐름은 역순으로 구성했는데... 첫 번째 단편에서는 문을 닫고 폐허로 변한 호텔이 나오고, 일곱 번째 단편에서는 언덕에서 개업을 준비하는 호텔이 나온다. 남자하고 관련한 여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매우 정교한데, 누구나 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이유와 희망을 품고 있다.

  좌절...... 오늘도 또 듣고 말았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유키는 마치 약점을 찌르는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살을 맞대고 함께 아침을 맞이해도, 결국 남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 끝에 하는 결정적인 한마디에는 반드시 '좌절'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문득 위(胃)의 뒤쪽 어디쯤에서, 좌절이라는 말에 푹 빠져버린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솟아올랐다. 다카시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 기복 없이 살았던 나날을 돌이켜보면, 오랜 시간을 들여 시커먼 구멍 밑바닥으로 빨려 들어간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p.24)

  가가야 미유키는 중학교 동창으로 현재 같은 곳에서 일하는 남자 친구로부터 누드모델을 제안받는다. 다이어트를 하고, 속옷 자국에 신경을 쓰며... 낡은 건물을 찾는다. 카메라 셔터 소리를 들으며 어색함과 불편함을 호소하자, 부상으로 아이스하키 선수의 꿈을 접은 남자는 좌절을 얘기한다. 이번에도 그의 요구를 피할 수 없다.

  다른 단가의 봉투는 다음 날 아침이면 사라졌지만 사노에게서 받은 봉투만은 한 달이 지나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사이쿄는 이미 세대가 바뀐 단가가 미키코에게 가져다준 쾌락을 알아본 것이다.(p.63)

  시타라 미키코는 관락사 주지의 부인이다. 절에 오기 전에는 간호조무사로 일했고, 용모의 아름다움은 없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단가(사찰에 시주, 후원하는 불교 신자)를 호텔에서 만나 관계를 갖는다. 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가의 후원이 필요했고, 그녀는 이것을 봉사로 여긴다.

  남자든 여자든 몸을 이용해 놀아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그때는 오늘이 아니었다. 이 남자에게는 잠시 잠깐의 감정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미야카와는 띄엄띄엄 말을 끊어가면서 아내가 첫 여자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게 이유가 돼요?"

  마사요는 허리를 숙이고 웃었다. 그의 아내가 어처구니없을 만큼 행복한 여자인 것 같아서 숨이 막혀왔다. 점점 메말라간다. 점점 가벼워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남기지 않는다.(p.90-91)

  마사요의 아버지는 처자식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호텔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태어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떠난다. 그 뒤로 십 년 동안 호텔 관리는 그녀가 해왔다. 3호실 커플이 나란히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손님은 뚝 끊기고, 폐업 마지막 날이다. 쎅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성인용품 판매 회사의 영업 사원에게 재고품을 반납하면 완벽하게 끝이 난다.

  메구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니,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부끄러워해서도 안 된다. 당당하게 유혹할 것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펀치를 찾아보았다.

  "나도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데서 한번 해보고 싶단 말이야."(p.104-105)

  메구미는 좁은 집에서 남편과 두 자녀 그리고 시아버지와 살고 있다. 추석 성묘에서 스님이 오지 않자, 시줏돈으로 준비한 오천 엔을 아끼게 된다. 닷새 치 식비, 얘들에게 새 옷을 사주고 외식할 수 있다. 한 달 치 전기료와 이것저것을 할 수 있는 돈... 그녀는 남편에게 호텔에 가자고 조른다.

  "쌤, 왜 집에 안 갔어요?"

  "귀찮은 질문 자꾸 할 거면 나가줄래?"

  "혹시 귀가 공포증?"(p.146-147)

  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노지마 히로유키는 아내가 고등학교 시절의 담임과 이십여 년을 연인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춘분의 날 연휴에 삿포로 집에 있는 아내에게 간다고 말하지 않고 기차에 오른다. 허탈함과 자괴감... 그런데 그가 담임을 맡은 2학년 A반 학생인 마리아가 따라붙는다. 엄마는 도망가고, 아빠는 집을 나가 하루아침에 노숙자 여고생이 되었다고 한다.

  남편의 등에 업혀 숲을 나왔다. 넓은 등판으로 미코에게 조금씩 조금씩 온기를 나눠주며 쇼타로가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 올라선 참에 불쑥 쇼타로가 멈춰 섰다.

  "당신, 그런 데서 뭐 하고 있었어?"

  조용한 물음이었다.

  "별......"

  "별이 어쨌는데."

  "별을 보고 있었어."(p.187)

  환갑의 나이인 미코는 호텔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세 아이는 전부 집을 나갔고, 열 살 어린 남편은 집에만 있다. 평생 일만 하고 살아서 고생이 고생인 줄 모르는 억척스러운 삶이다.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주위의 사람은 착하게 변했고, 그녀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의 편지를 받는다.

  "나는 사업이라는 건 반드시 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이 세상이란 게 남자와 여자밖에 더 있느냐고. 다들 원하는 건 똑같다는 얘기야. 꿈이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장사라면 나도 뭔가 꿈이 보일 것 같더라고."(p.194)

  다나카 다이키치는 간판 일을 하면서 젊은 루리코와 바람을 피운다. 그는 러브호텔을 경영하고 싶어 하는데, 동갑내기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장인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임신한 루리코와 새로운 출발을 한다.

  사연제조기(?)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은 [유리 갈대](비채, 2016.)에 이어서 두 번째이다. 우울한 현실에서 몸부림치는 여자의 삶이 기억나는데, 이 책에서도 여자의 삶은 지독하고 투쟁적이다. 독립적이지 못해서 하나같이 남자(애인, 남편, 아버지, 선생님)에게 종속되어 있다. 다른 삶을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현실은 우울하고 막막하다. 자의든 타의든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셔터 찬스'를 읽으며 누드 촬영은 나의 로망이고, '금일 개업'은 고결함과 불결함을 동시에 느끼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쎅꾼'은 뭔가 답답함이 있고, '거품 목욕'은 현실적이다. '쌤'은 블랙코미디이고, '별을 보고 있었어'는 인생의 회한이 있다. '선물'은 호텔 로열의 시작이다.

  '금일 개업'은 지금까지 읽은 단편 중에서 최고로... 나의 인생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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