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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평점 :
폴 칼라니티, 이종인 역, [숨결이 바람 될 때], 흐름출판, 2016.
Paul Kalanithi, [WHEN BREATH BECOMES AIR], 2016.
문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으며, 고된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이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폴 칼라니티의 자서전이자 투병기 그리고 아내와 딸에게 남긴 마지막 글인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감정이 메마르고 냉혈인이 되어 가는 것일까?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후에 작품을 내놓은 어느 작가의 역사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꺼져가는 생명으로 마지막 혼신의 힘을 기울여 글쓰기에 몰입하는 모습이 연상되어 소설의 내용보다 작가의 드라마 같은 인생에 더 감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여기저기에서 호평으로 책을 선택하여(김서늬님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단숨에 읽었지만, 역시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의 곡선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CT 정밀검사 결과를 휙휙 넘겼다. 진단은 명확했다. 무수한 종양이 폐를 덮고 있었다. 척추는 변형되었고 간엽 전체가 없어졌다. 암이 넓게 전이되어 있었다. 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이런 정밀검사 결과를 수없이 검토했다. 혹시나 환자에게 도움이 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하지만 이번 검사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 사진은 내 것이었다.(p.19)
저자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어린 시절 심장의였던 아버지를 따라 애리조나 주의 킹맨에서 자랐다. 사막으로 이루어진 작은 도시에서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열은 독서와 공부에 관심을 두게 했고,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해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한다.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이때부터(그 이전부터)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에 의문을 품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를 공부한다. 우리의 경우 돈벌이(?)를 기준으로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세우고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진로를 정한다. 졸업 후 예일대 의과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에서 신경과 레지던트로 일한다. 그가 의사로서 보인 실력은 대단한듯하다. 논문을 쓰고, 상을 받고... 수련의가 끝나면 그를 교수로 채용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접촉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암에 걸린다.
모든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는 동안, 신경외과의는 정체성이라는 혹독한 용광로 속에서 일한다. 모든 뇌수술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질인 뇌를 조작하며, 뇌수술을 받는 환자와 대화할 때에는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뇌수술은 대개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며, 그래서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이 그렇듯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결정적인 전환점에서 요점은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이다. 가령 당신의 어머니가 몇 달 더 연명하는 대가로 말을 못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치명적인 뇌출혈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낮은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시력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면? 발작을 멈추려고 하다가 오른손을 못 쓰게 된다면?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p.95)
우리는 모두 시한부를 살고 있다. 그것이 일 년 후가 될지? 십 년 후가 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는 마찬가지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주일에 100시간이 넘게 일하는 혹독한 병원 근무는 그를 0.0012%에 속하게 만들었다. 폐를 뒤덮은 무수한 암 덩어리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술이나 화학요법 이전에 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원인 모를 체중 감소와 극심한 요통에 시달렸지만, 약물을 복용하면서부터 서서히 일상으로 회복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왜 쉬지 않고 다시 혹독한 레지던트 생활로 되돌아갔을까? 마치 신이 경고했음에도 보란 듯이 무시하고 일반인조차 견디기 힘든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진짜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꿈을 향해 후회 없는 전진을 한 것일까? 글을 읽는 내내 그의 도전정신에 감탄하기보다는 무모함과 오만함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츠키 히로유키의 에세이 [대하의 한 방울](지식여행, 2012.)에서 한 문장이 떠오른다. "무명인 채 일생을 마치고,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이 일생을 마쳤다고 비하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살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떻게 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건 두 번째, 세 번째로 생각하면 됩니다. 산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큰일을 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전후 혼란의 시대를 헤쳐온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p.100) 맞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내 삶은 그동안 잠재력을 쌓아왔으나 그 잠재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할 것이었다. 나는 정말 많은 걸 계획했고, 그 계획이 곧 성사될 참이었다. 내 몸은 쇠약해졌고, 내가 꿈꿨던 미래와 나 자신의 정체성은 붕괴되었으며, 내 환자들이 대면했던 실존적 문제를 나 역시 마주하게 되었다. 폐암 진단은 확정되었다. 내가 신중하게 계획하고 힘겹게 성취한 미래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하는 동안 익숙했던 죽음이 이제 내게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죽음과 마침내 대면하게 되었지만, 아직 죽음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남긴 발자국을 보고 따라갈 수 있어야 할 텐데, 기로에 선 내 앞에 보이는 거라곤 텅 비고, 냉혹하고, 공허하고, 하얗게 빛나는 사막뿐이었다. 마치 모래 폭풍이 그동안 친숙했던 모든 흔적을 쓸어간 것처럼.(p.148-149)
그는 잠시 호전된 몸을 이끌고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다. 어쩌면 혼자 남게 될지 모르는 아내 루시와 협의하여 자녀 계획을 세우고 딸 케이디를 낳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악성 종양의 발발로 모든 것을 멈춰야 했다. 재발한 암은 화학요법으로도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그의 시간을 늘릴 수 없었다. 마침내, 처음 암 진단 후 22개월 뒤인 2015년 3월 9일에 세상을 떠난다. 아쉽다. 정말 많이 아쉽다. 한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왜 그 기회를 놓쳤을까? 의사가 아니라면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다고 하는데, 과감히 의사의 꿈을 접고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죽음 앞에서 전진하라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라기보다는 신의 섭리를 무시한 대하의 한 방울 같은 인간의 최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p.166)
어쨌든 마지막 투병 기간에 쓴 글이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결국, 죽음을 대가로 의사의 꿈과 작가의 꿈을 동시에 이룬 것일까?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