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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닷컴
소네 케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소네 게이스케, 권일영 역, [암살자닷컴], 예담, 2016.
Sone Keisuke, [KOROSIYA DOT COM], 2013.
[코](북홀릭, 2011.),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북홀릭, 2013.), [침저어](예담, 2013.), [열대야](북홀릭, 2014.)로 알려진 소네 게이스케의 작품을 드디어 읽었다. 그동안 책의 독자들이 왜 그의 작품을 좋아하면서 아쉬워하는지, 재미있어하면서 찜찜해 하는지 이해가 된다. 한 권의 소설을 읽고 그의 작품 세계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암살자닷컴]을 통해서 느낌 감정은... 일반적으로 일본 미스터리는 아무리 잔혹해도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의 구도를 유지하고 선과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소설은 매우 파격적이라고 해야 하나?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악과 악의 대결이고 때로는 선한 의도가 악에 의해 희생하기도 한다. 기발한 발상... 그동안의 익숙함과 동떨어진 진행은 가히 놀랄만하지만, 나 역시 아쉬움과 찜찜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오마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고로가 말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이게 내 직업이라."(p.12)
여기에는 암살자닷컴(krosiya.com)을 중심으로 연결된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네 개의 암살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앞의 세 개는 로런스 블록의 소설 [살인해드립니다](엘릭시르, 2015.)가 떠오르고, 마지막 한 개는 하라 료의 소설 [안녕, 긴 잠이여](비채, 2013.)가 떠오른다. 한 명의 암살자가 등장하는 게 아니라 장마다 다른 암살자가 등장하는데... 이혼한 아내와 아들의 학원비를 보내기 위해 부업으로 일하는 현직 형사로부터 직장을 잃은 남편을 대신하여 일하는 가정주부 그리고 평생을 조직에 몸담고 있다가 이제는 은퇴할 때를 기다리는 전문가까지 다양한 암살 노동자가 나오고 있다. 누가 이러한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조직'은 일감을 알선하는 입찰 사이트만이 아니라 쇼핑몰도 운영한다. 거기서는 권총, 독약 등 업무에 필요한 각종 용품에서부터 양심의 가책을 견뎌낼 수 없을 때 현실 도피를 도와주는 각성제까지, 청부살인업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다.(p.68)
마음이 변한 까닭은 그저께 '암살자닷컴'에서 보낸 '배신자 정보'라는 제목의 메일 매거진을 봤기 때문이다. 그 내용에 따르면 'pikopiko-1216'인가 하는 청부살인업자가 낙찰받은 일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에 따라 '상응하는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메일 매거진에는 pikopiko-1216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나는 너무나도 참혹한 그 광경에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로 달려가야만 했다.(p.113-114)
'조직'은 사정이 있어 입찰에 부칠 수 없거나 입찰에 부쳤어도 마무리되지 않은 일을 임의로 선택한 청부살인업자에게 맡긴다. 이것을 수의계약, 흔히 '수계'라고 한다. 보수는 지불되지만 지명을 받은 청부살인업자는 그 일을 거부할 수 없다.(p.173)
수의계약으로 처리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카테고리1은 입찰에 부쳤지만 보수가 싸거나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참가자가 모이지 않아 유찰된 일, 카테고리2는 낙찰되었지만 미수에 그친 일이다. 낙찰자가 시도는 했지만 미수에 그쳐 실행 단계에서 표적에게 반격을 당했거나 경찰에 체포된 경우다.
카테고리3은 위의 두 경우와 달리 '조직'이 직접 의뢰하는 일이다. 낙찰받고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자, '조직'의 비밀을 외부에 유출시킨 자 등에게 제재를 가한다. 표적이 되는 대상은 주로 '조직'과의 계약자, 즉 청부살인업자인데 '조직'을 탐색하는 기자나 탐정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카테고리3에는 표적을 처치하는 일 이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작업이 따른다. 이른바 '세공'이라고 해서 본때를 보이기 위해 표적의 시체를 훼손하는 것이다.(p.176-177)
암살자닷컴은 철저한 비밀 속에서 옥션처럼 입찰 경쟁으로 일감을 분배한다. 즉,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이 일을 따내는 방식인데, 난이도에 따라 경쟁률이 다르다. 때로는 몇몇 회원 간의 가격 경쟁이 붙기도 하고, 아예 입찰이 없는 경우도 있다. 먼저, 기한 내에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조직은 그에 응당한 벌을 내린다. 가격이 너무 싸거나 일의 까다로움으로 입찰이 없으면, 조직은 수의계약을 맡은 이에게 일을 떠맡기는 체계이다.
짧으면서 분명한 네 개의 이야기는 소네 게이스케의 명성이 전혀 헛되지 않았음을 잘 드러낸다. 흡입력이 있고, 사소한 반전으로부터 마지막의 충격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 재미라는 한 가지를 두고 평가하면 절대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벗어난 설정은 끝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버지의 잘못된 부정이나, 미성년자의 아무렇지 않은 살인 행위, 그리고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이를 향한 조직의 복수는 끔찍한 작업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재미와 찜찜함이 공존하는 작품,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