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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김성한, [달콤한 인생], 새움, 2016.
달콤한 인생이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은 가진 자의 나라이고... 소수의 몇몇이 달콤한 인생을 누리고 있다. 단맛의 중독, 끊을 수 없는 달달함... 돈과 권력의 맛은 처음에는 설탕처럼 뇌의 쾌감중추를 자극하여 포만감을 불러오고... 이것이 지속하여 만성화되면, 우리의 뇌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하여 마약처럼 더 강한 맛을 찾게 한다. 중독! 충분히 달콤하면서도 만족이 없는 삶... 김성한의 소설 [달콤한 인생]은 한 남자의 끝없는 욕망이 결국에는 멈추지 못하고 왜곡되어 파멸을 불러오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자식은 분명 살인자다. 사회의 암 덩어리다.'
그렇지만 상우는 암세포를 절제해내는 것은 의사가 할 일이지 알량한 정의감을 가진 변호사의 사명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우가 할 일은 높은 수임료를 받아 챙기고, 그 대가로 이 어린 살인자를 법의 사각지대로 안전하게 숨겨주는 것이었다.(p.12)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제대로 된 한국형 스릴러이다. 주로 일본소설을 읽는데, 이유는 가벼움과 메시지 때문이고... 확실한 장르를 유지하면서 자기만의 글을 쓰는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남이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분야에서 평생의 소재를 가지고 계속해서 써내는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국내소설은 순수문학을 향한 자기 검열 때문일까? 경계의 짜릿함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메시지는 약하고, 더구나 가볍지도 않다. 그래서 매번 하는 말이 우리도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작가가 나왔으면 하는데...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들은 너무나도 높게만 보인다. 제발 순수문학에 물들지 않기를...
"이제부터 모두가 자네들을 부러워할 거야. 자부심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라도 좋아. 그렇지만 진짜 변호사 생활은 3층부터 시작하는 거니 유념들 하게. 제군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더 높은 연봉을 받으며 더 높은 층수에 오를수록 직업윤리가 어쩌니 영혼 없는 변호사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될 테지만, 그런 시기와 질투에 일일이 신경 쓸 것 없어. 군들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만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거야."
정훈은 젓가락으로 유리잔을 두드리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더 높은 층수에는 더 달콤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과 성공이 바로 그 곳에 있는 거지. 내 말이 거짓인지 의심되면 어디 한번 올라와 보라고. 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7층에서 군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p.28-29)
그런데 [달콤한 인생]은 절대로 밀리지 않는 작품이다. 카카오페이지 동시 구독자 3만 명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이, 내가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내가 맡는다는 설정은 정말 탄복할만하다. 나름의 논리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힘을 가하는데, 특히 나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심리는 매우 현실적이라 시종일관 시선을 끈다. 상우는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인생이다. 그래서 잠시나마 그 보상이 따르듯이 고교 시절부터 좋아하던 여자와 결혼하고, 고급 주택가에 집을 마련하고, 중형 외제 세단을 탄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높은 연봉, 더 많은 세상의 관심, 그리고 육체의 쾌락을 채우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법률적 대리인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정치권력에 끈을 대기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고, 정기적으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
'아니, 박상우. 정신 차려! 출소하면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살인자의 꿈치고는 너무 과분하군. 게다가 십 년 후에 출소하고 나면 내가 뭘 할 수 있지? 등록이 취소된 변호사 자격증으로 어떤 직업을 구할 수 있겠어. 고작해야 남이 살 집을 짓고, 남이 쓸 물건을 나르고, 하루에 열 시간씩 계산대 앞에 서서 남이 사는 라면과 생리대의 바코드를 찍고...... 아니, 안 돼.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어. 절대로 견뎌내지 못할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온전한 나의 삶이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니야!'(p.53)
그날 새벽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여전히 앞만 바라보며 주저 없이 달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인이라는 치명적인 행위는 그가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갈 수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딸을 포함해서 전 재산을 잃을 것이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몰락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는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을 한다. 사건을 조작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 사람의 변호사가 되어 법정에서 무죄를 변론한다.
"그렇다면 사건의 진범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들 눈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지요.'
"TV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범인은 항상 자신의 사건에 관심이 많은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범인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상우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카메라 한 대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범인이 지금 이 뉴스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잘 들어두세요.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든,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말 겁니다."(p.171)
세상의 순리가 그렇듯이 거짓은 또 다른 거짓말을 생산하고, 한번 꼬인 매듭은 좀처럼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발목을 잡는다. 그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유혹에 빠지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진실은 점점 그의 숨통을 조여오는데...
작가는 브레이크 제동 없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서 일상의 행복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젊은 연인의 속삭임,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 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 따뜻한 저녁 식사... 누군가는 찌들었다고 표현하는 평범한 일상에 사실은 소중한 많은 것이 녹아 있다는 것을 상우는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달콤한 인생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