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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선 ㅣ Oslo 1970 Series 2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4월
평점 :
요 네스뵈, 노진선 역, [미드나잇 선], 비채, 2016.
Jo Nesbo, [MERE BLOD](MIDNIGHT SUN), 2015.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비... 요 네스뵈의 '오슬로 1970 시리즈' 첫 번째 [블러드 온 스노우](비채, 2016.)에 이어서 두 번째 [미드나잇 선]을 읽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빨간 책은 강렬하고, 파란 책은 희망적이다. 빨간 책이 오슬로에서 조직을 배신한 살인청부업자의 이야기라면, 파란 책은 오슬로를 떠나 노르웨이의 최북단으로 도망간 해결사의 이야기이다. 빨간 책과 파란 책은 일부 같은 조직원이 등장하는데, 모두 뱃사람과 관련이 있다. 주인공은 암살자와 해결사라는 일을 하지만, 이것과 어울리지 않게 순정적이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전작이 형사 해리 홀레가 나오는 시리즈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면, 이번에는 약물에 의존하는 몽환적인 장면이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대기는 맑아서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력이 허락하는 한. 사람들은 핀마르크 고원이 아름답다고들 한다. 아름답기는 개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그냥 그렇게 돌려 말하는 거 아닌가? 약간 센 척하기 위해 혹은 남들보다 우월하고 무슨 통찰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나 어려운 문학 작품을 좋아한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때는 나도 그랬다. 그렇게 하면 나의 부족한 면들 중에서 적어도 서너 가지는 채워질 줄 알았다. 어쩌면 그 말은 여기 사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긴 정말 아름답네요." 왜냐하면 이 단조롭고 평평하고 황량한 풍경이 아름다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긴 마치 화성 같다. 붉은 사막. 사람이 살 수 없는 잔혹한 곳. 숨기에 완벽한 장소. 부디 그러하길.(p.7-8)
낭만적인 휴가 여행이 아니라 목숨의 위협으로 긴박한 상황이라면,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척박하고 황량할 뿐이다. 숨을 곳이 필요하다. 빨간 책으로부터 2년이 지난 1977년 8월, 핀란드와 러시아의 국경이 접해있는 핀마르크 주의 코순이라는 마을에 낯선 외지인이 들어선다. 이름을 울프라고 하는 남자는 사냥을 하러 왔다고 하지만, 그의 품에는 권총과 거금이 들어 있는 전대를 차고 있다. 그는 뱃사람의 추적을 피해 도망 중이다.
"아저씨는 레스타디우스교가 아닌가요? 그럼 지옥 불에 떨어질 거예요."(p.28)
"코순 말이에요. 이 집들. 예전에는 아름다운 마을이었어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요. 하지만 1945년에 소련군이 도착하자 독일군은 도망쳤고, 후퇴하면서 마을을 모두 다 태워버렸어요. 교회만 제외하고요."
"초토화 작전이군요."(p.34)
본명은 욘한센으로 공원에서 대마초를 팔다가 우연히 뱃사람 조직에 들어갔다. 해결사로, 엄밀히 말해서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해결사로 일했다. 다행히(?) 뱃사람의 악명으로 그럭저럭 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공원에서 만나 하룻밤 사랑을 나눈 여자의 임신으로(사실 친자인지 확실하지 않다) 딸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부담한다. 그러다 결국 뱃사람의 돈을 빼돌려 뱃사람은 다른 해결사를 그에게 보낸다. 해결사를 피해 도망 중인 전직 해결사는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의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마을에 늦은 시간에 도착한다. 교회에서 밤을 보내는데, 잠시 눈을 붙인 후에 교회 관리인 레아와 그녀의 아들을 만난다.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어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에서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있다. 관리인은 그에게 외딴 오두막을 알려주는데, 거기에서 죽이러 오는 자를 기다려야 한다. 부디 추적자들이 그냥 지나쳐 가기를... 그런데 그전에 레아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또한 약점을 지닌 자였습니다." 그가 말했다. 약점. "우리 모두가 가진 그런 약점이죠. 죄를 지었을 때 그 죄와 대면하지 않으려고 달아날 수 있는 자였으며, 시간이 흘러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길 바라며 그냥 어딘가에 숨어버리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처벌로부터 숨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릴 찾아내십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예수의 잃어버린 양이기도 했습니다. 무리에서 이탈한 양이자, 죽음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비롭게 구원하고자 하는 양이었습니다."(p.101-102)
자기가 찾는 사람을 반드시 찾아내는 뱃사람, 언제나 죄인을 찾아내시는 예수 그리스도... 조직에서 이탈한 자를 가차 없이 처리하는 악랄한 인간, 무리에서 이탈한 양을 자비로 구원하는 신... 울프는 무신론자이고, 뱃사람에게서 벗어나길 원한다. 하지만 복수의 칼과 은혜의 손길은 늘 그의 곁을 서성인다. 이러한 대비가 매우 흥미롭다.
"화가 나요? 화가 난 정도가 아니라 부아가 치민다고요. 당신들이 말하는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왜 인간에게 그런 장난을 치는 겁니까? 왜 누구는 태어나면서부터 고통받게 하고, 왜 누구는 풍족한 삶을 살죠? 대다수는 신에 대해 듣지도 못하는데 왜 누구든 자기를 구원해줄 믿음을 찾아내는 겁니까? 왜 신은...... 어떻게 그렇게......?"(p.161)
태어나자마자 병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딸에 관한 기억은 신을 향한 불신으로 불공정함을 토로하게 한다. 누군가는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받고, 누군가는 풍족한 삶을 사는데... 인간은 미리 정해진 삶을 사는 것인가? 그 또한 예정된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울프와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레아... 이들은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울프는 추적자를 따돌려야 하고, 레아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 하지만 운명과 신앙의 족쇄는 이들의 발목을 움켜잡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흠. 단상에 올랐는데 그다지 확고한 믿음이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는 턱을 문질렀다. "그럴 때는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믿는 수밖에. 금욕 생활을 하고 죄를 짓지 않는 건 이 속세에서도 가치 있는 일이오. 운동선수들도 훈련에서 얻는 통증과 노력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 들었소. 설사 우승하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오. 그것과 비슷한 이치라 할 수 있지. 설사 천국이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안정되고 훌륭한 삶을 살고 있소. 열심히 일하고, 검소함을 실천하고, 하나님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보살피면서 말이오. 역시 성직자였던 우리 아버지께서 레스타디우스교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 우리의 종교를 통해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고, 가정이 깨지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하는 일은 가치 있다고 하셨소. 설사 우리가 거짓을 설교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오. 대로는 성경에 따라 사는 것이 필요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있소. 레아의 경우처럼...... 내가 잠시 망상에 빠져 레아에게 강요한 삶처럼 말이오."(p.269-270)
종교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어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삶을 바꾸기 위한 남자와 여자의 투쟁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까?
빨간 책과 마찬가지로 파란 책도 아주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어쩔 수 없이 보스의 돈에 손을 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세상의 끝으로 도망치지만, 여전히 추적을 따돌릴 수 없다. 역사의 아픔과 함께 종교의 신념으로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영화의 단골 소재라서 어디에선가 본듯한 기분으로 아주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사랑의 눈빛이 살아있는 진짜로 행복한 삶은 무엇인지를 은연중에 전하고 있다. 순응하는 것이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바꾸는 것은 좀 더 짜릿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