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제프리 디버, 최필원 역, [옥토버리스트], 비채, 2014.

Jeffery Deaver, [THE OCTOBER LIST], 2013.

  한 마디로 거꾸로 된 소설이다. 출간 당시 역순 구성으로 화제가 되었던 제프리 디버의 소설 [옥토버리스트]를 읽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2000.)가 연상된다고 하는데, 나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1999.)이 떠올랐다. 기-승-전-결이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라는 전통적인 구조를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에 작가는 수많은 장치와 함정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며 두뇌 싸움을 벌인다. 이러한 구성이 약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른 평가를 하겠지만, 새로운 시도이기에 충분히 눈여겨볼 만하다. 간혹 거꾸로 읽는 소설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난 꿈의 직장을 가진 평범한 엄마였어요. 대니얼을 처음 만났고...... 뭔가 통하는걸 느꼈죠.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봐요. 딸은 유괴당했고, 대니얼과 당신 사장님은 협상하다가 총에 맞을 수도 있어요. 경찰은 날 쫓고 있고, 난 오늘...... 오늘 끔찍한 일을 저질렀고요. 오, 하느님......"(p.15)

  결말부터 시작하는 소설이라서 처음에는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과 관계 그리고 선과 악의 개념을 잡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중반부터 독서의 궤도에 올랐을 때는 그 이전은? 그 이전은? 이라는 궁금증으로 선행 사건에 관한 호기심을 유발하여 끊임없이 책을 읽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소설은 정확히 72시간을 역행하는데... 일요일로부터 토요일로, 금요일로 거슬러가는 3일간의 내용이다. 번역자는 한 번은 앞에서부터, 두 번째는 뒤에서부터 읽는 것을 추천하는데... 이미 이것을 의도한 편집이 눈에 띈다. 노란색으로 빛나는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옥토버리스트 말이에요, 샘." 그녀가 <뉴욕타임스>를 샘의 앞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샘이 다가와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말이 계속됐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단서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고요. 단지 제대로 끼워 맞추지 못했을 뿐이지."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느낌이 좋지 않아요, 샘. 우리에게 곧 벌어질 일 말이에요."(p.17)

  사건의 중심에는 가브리엘 맥킨지라는 30대 중반의 여자가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린 딸 세라는 납치된 상태이고, 유괴범은 몸값으로 옥토버리스트와 미화 5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겨우 이틀 전에 만난 남자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협상하러 갔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서 시간과 분 단위로 거슬러가며 36개의 단계를 거친다. 옥토버리스트는 무엇인지?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지? 왜 여자는 모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지 매우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앤드류가 물었다. "그러니까 '옥토버(October)'라는 단어가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얘기죠?"

  가브리엘라가 대니얼을 흘끔 쳐다보자 그가 대신 답했다. "10월에 벌어진 어떤 일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말이죠. 모임이나 사건. 아니면......"

  대니얼이 어두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다음 달에 벌어질 일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뭔지는 몰라도 보통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잘못 짚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회사나 사람 이름이 기록된 단순한 명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혹은 암호인지도 모르고요. 숫자 10. 열 번째 달."

  "어쩌면......" 가브리엘라가 말했다. "대니얼은 애너그램"의 가능성을 얘기했어요."

  "옥토버(October)'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단어가 꽤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죠. '리부트(Reboot)', 부트(boot)', '핵심(core)', '강도질(rob)'. 뭐 추측일 뿐입니다만."(p.28-29)

  "일종의 맥거핀*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떤 사실이나 사건이 매우 중요한 것처럼 꾸며 독자나 관객의 주의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하는 속임수(p.326)

  그녀가 카르판코프에게 설명했다. "맥거핀은 서스펜스 영화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쫓는 물건이에요.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 사라진 성궤, 첩보원들의 신분을 위장한 정보원 명단, 실재하지는 않지만 스토리에 추진력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나도 폭탄 테러 같은 황당한 아이디어를 한 번 떠올려볼까 해요. 은행이나 증권거래소를 날려버리는 계획 같은. 문제의 명단엔 그 테러로 크게 이득을 보는 이들의 이름이 담겨 있는 걸로 해야겠어요."(p.352)

  "여기서 한 가지 얘기해둘 게 있어요. 영화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 같은데, 메소드 연기법*이 뭔지 알죠?"

  "들어본 적 있어요. 정확히 뭔지는 모릅니다만."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정신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하나가 되는 걸 의미해요."

  *배우가 극중 배역에 몰입해 그 인물 자체가 되어 연기하는 방법(p.357)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사실 [옥토버리스트]는 영화적인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맥거핀과 메소드 연기라는... 이것은 모든 이를 함정에 빠뜨리는데, 심지어 책을 읽는 독자까지 포함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개는 36장에서부터 역순으로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 2장과 1장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실을 만날 수 있다. 이 과정은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데, 그래서인지 하드보일드 서스펜스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고, 독자를 속이기에 서술 트릭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듭되는 반전은 최고의 매력이다.

  [도로변 십자가](비채, 2012.) 이후에 오랜만에 만나는 제프리 디버의 스릴러이다. 그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소문이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 그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더 많기에 오히려 과거의 작품을 찾아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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